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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제 2 장. 사랑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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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달래는 돌쇠를 오빠라고 불렀다. 산골마을 이웃에 살았고 한때는 한집에서 한가마밥을 먹으며 남매처럼 자란 이들이였다.

돌쇠와 달래의 아버지들은 송아지적 동무였다. 이네들은 동해기슭의 한고향마을에서 자라며 미역도 같이 감았고 수수대말도 함께 탔다고 하였다.

젊어 독립군을 따라다니다 오라를 피해 몸도 같이 숨기였다.

달래의 아버지와 돌쇠의 아버지가 몸을 피한 곳은 그때까지만 해도 일제의 마수가 뻗치지 못했던 압록강건너 중국 장백땅 산간벽촌이였다.

돌쇠의 아버지는 달래네 집안의 은인이기도 하였다. 달래가 몹쓸 병에 걸리여 다 죽게 되였을 때 돌쇠의 아버지가 산에서 캐온 약초로 약을 달여먹이고 침을 놓아주어 살아날수 있었다.

두집 아버지는 일제군경들로부터 몸을 피한 후에도 집에 가만 붙어있지 못하였다. 집을 떠나 오래동안 소식이 없던 달래의 아버지는 돌쇠 아버지의 등에 업혀 돌아왔다.

돌쇠의 아버지는 달래의 아버지를 살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온갖 정성을 다하였으나 달래의 아버지는 돌쇠 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숨이 지였다.

《내 의술로는 친구의 목숨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구나.》

돌쇠의 아버지는 고인의 머리맡에서 꺼이꺼이 소리내여 울다가 장사를 지내고나서 얼마 있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였다. 떠나간 돌쇠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올줄 몰랐다. 편지 한장 없었다.

서간도 내지로 깊이 들어갔다는 소리도 있고 조선으로 나갔다는 소리도 들리였으나 돌쇠 아버지의 행처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이 없는 두집은 서로 의지하여 살았다. 달래의 마음속에 돌쇠한테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난것은 이때부터였다고 할수 있다.

달래네 집에는 어머니와 달래 두사람뿐 장정이라고는 그림자도 없었다. 돌쇠네 집에는 남자꼬부랑이라고 동생 억쇠도 있었지만 모두 어리였다.

돌쇠 아버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자기 아버지가 죽은 후부터 달래는 울음이 많아졌다. 원래 잘 울던 달래는 자기를 위해줄 아버지가 없다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쩍하면 울었다. 어머니한테 욕을 먹고서도 울었고 개울가에 놀러 나가는 돌쇠를 따라가다가 쫓아버리여도 서러워 울었다.

《네 몸은 눈물로 가득찼구나.》

별치 않은 일에도 엉엉 소리내여 우는 달래를 두고 동리녀인들이 하는 말이였다.

커가면서 돌쇠는 달래를 골려주는 장난을 곧잘 쳤다.

집모퉁이에 숨었다가 괴이한 소리를 지르며 덮칠듯 달려드는가 하면 죽은 뱀을 길앞에 던져놓아 놀래우기도 했다.

달래는 자기를 혼내우려 돌쇠가 장난질하는것을 알면 영낙없이 울었다.

언젠가 돌쇠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들고 쫓아오며 《너 왜 달래를 자꾸 울려?》하고 욕질을 했다. 돌쇠는 저만치 달아나 코를 훌쩍거리며 《우는거 보느라구.》하며 히죽거리였다.

달래는 돌쇠 어머니가 자기를 편역들면 더욱 큰소리로 서럽게 울었다. 울음속에 정이 깊었고 믿음도 깊어갔다.

달래한테는 울수 있는 이런 때가 행복했던 시절이였다. 마음 무던하던 돌쇠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초상집을 가득 채운 곡성은 십년터울로 태여난 돌쇠네 형제와 달래의 울음소리였다.

돌쇠의 동생은 배고파 울었고 달래는 슬퍼 울었다.

쩍하면 울군 하던 달래의 울음과 돌쇠 어머니의 죽음앞에서 그가 터치는 울음은 서로 달랐다.

달래는 어머니마저 없는 억쇠의 처지가 불쌍하였고 아버지가 죽은 자기보다도 아버지의 소식을 모르는 돌쇠가 가긍스럽게 생각되였다.

돌쇠네 집에 생겨난 불상사를 두고 인정많고 마음씨고운 사람들과 입부리사나운 사람들은 제각기 떠들었다.

《에그, 불쌍도 해라.》

《불쌍하기사 죽은 사람이 제일 불쌍하지.》

《소박받구 살아선 뭘하우.》

《돌쇠 애빈 녀편네 죽었는데 왜 나타두 안 나우?》

《처가 죽은 소식 알기나 할가.》

《곰보라구 내버리고 달아난 사람이 알면 나타날가?》

돌쇠 어머니는 진땅에 콩마당질한것처럼 마주 보기 끔찍할 정도로 심한 곰보였다. 돌쇠네 집이 독산골안 막바지에 짐을 풀었을 때 그들부부를 본 사람들은 입을 쫙 벌리였다. 얼굴이 잘생긴 돌쇠 아버지와 마마자국이 다닥다닥한 그의 마누라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였다.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얼굴 흉한 저런 녀자를 어떻게 처로 맞았을가. 저런 내외지간이 금슬좋을가.

식자깨나 있다는 마을 서당훈장은 애헴애헴 기침을 하고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녀자의 하반신은 무비일색야라. 벌건 대낮에도 눈만 꾹 감으면사 곰보면 어떻고 째보면 어떻단 말인가.》

생도들앞에서는 점잔을 빼도 술만 들어가면 입이 오뉴월시궁창처럼 되여버리는 량반퇴물림의 수작질이였다.

아무리 욕을 하고 비웃어도 듣지 못하는 먼곳의 사람이나 이 세상을 등진 사람보다도 살아있는 두 어린 자식들한테 더 관심이 돌려지는것이 세상인심이다.

하루 두끼 때식마저 풀뿌리와 각종 푸성귀로 굼때지 않으면 안되는 살림형편이였으나 달래의 어머니는 돌쇠네 형제를 연약한 녀인의 몸으로 품어안았다.

이때부터 돌쇠네 형제는 달래네 집에 와서 살았다. 달래는 돌쇠를 오빠라고 불렀고 두사람은 배다른 남매처럼 되고말았다.

인정은 오히려 가난속에 움텄다. 달래네 집안은 돈많고 땅많은 부자집들보다 화목하였다. 산사람입에 거미줄치는 법은 없었고 가난하다고 다 죽으라는 법도 없었다.

두해인지 세해인지 세월이 흘렀을 때 돌쇠의 외삼촌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돌쇠의 외삼촌은 죽은 누이가 남기고 간 자식들을 자기가 고향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였다.

돌쇠의 동생 억쇠는 달래의 어머니를 자기의 친어머니로 알고있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돌쇠네 외삼촌은 돌쇠만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자리잡게 되면 내 억쇠도 데리러 오겠수다. 그때 달래네두 고향에 가서 같이 삽시다.》

달래의 어머니와 돌쇠의 외삼촌은 한고향사람들이여서 어려서부터 모르는 사이가 아니였다.

달래는 돌쇠와 헤여지던 때에도 울었다. 어렸을 때에는 왕왕 소리내여 울었으나 이때에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였다.

소꿉놀이시절에는 심술쟁이라고 싫어했고 철이 들어가면서는 지꿎은 장난질이 심해 미워하기까지 하던 돌쇠, 아버지가 모래불에 잦아든 물처럼 사라지고 어머니가 죽었을 때에는 불쌍해하고 동정하던 돌쇠, 달래는 돌쇠와의 리별이 가슴쓰라림으로 될줄 몰랐다.

달래는 돌쇠와 헤여짐이 서글펐고 그를 따라가고싶기까지 했다.

문을 열면 앞산에 코가 닿을것 같고 산지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막혀 하늘이 둥그런 지붕처럼 보이는 비좁은 골안에 박혀살기보다 가없이 넓고 푸른 바다기슭에서 살면 얼마나 좋으랴.

달래는 아버지, 어머니들이 살던 바다가의 고향으로 외삼촌을 따라가는 돌쇠가 부러웠다.

《오빠, 잘 가.》

달래는 겨우 이렇게 말하고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달래의 손가락짬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너 왜 자꾸 우니?》

돌쇠도 목메여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서고말았다.

돌쇠의 외삼촌 오윤봉은 신의가 깊은 사람이였다.

몇년후 돌쇠의 외삼촌은 달래네도 고향에 가서 살자며 데리러 왔다.

달래네 부모들의 고향은 얼마 안되는 오막살이가 해안가에 널려있는 한가로운 농어촌마을이였다.

흥남은 일본의 신흥재벌 노구찌가 일본군벌들, 재벌들과 함께 조선에 식민지지배의 공업적기초를 닦고 중국의 만주침략과 태평양전쟁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대군수복합체로 전변시킨 곳이였다.

개마고원에 있는 부전, 장진, 허천강지류가 북으로 흘렀는데 그 흐름을 막아 큰 호수를 만들고 큰비가 내리는 여름에 물을 모아두었다가 동해로 떨구면 많은 전력자원을 얻을수 있었다.

여기에 눈독을 들여 1924년에 노구찌투자에 의하여 조선수력발전회사가 설립되고 부전강발전소건설이 시작되였다.

조선사람의 피땀을 짜내여 1929년 11월에 제1기공사가 완공되고 6만 5천키로와트의 전기가 송전되기 시작했다. 이 전력을 소비하기 위해 노구찌는 함경남도 함흥을 거쳐 흐르는 성천강하류와 어항 서호진사이 수백만평의 땅을 강탈하여 흥남비료공장, 흥남금속공장, 본궁공장, 흥남제련소 등 여러 공장을 일떠세웠다. 이외에 수송부문을 담당하는 일본질소운수, 이 철도로 운반된 목재를 제재하는 함흥합동목재, 일본질소 시오노끼제약의 여러 회사들로 대공업지대를 형성하였고 점차 두만강연안에 이르기까지 세력을 뻗쳐 대군수복합체를 이루었다.

일제는 1927년 6월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의 이름으로 흥남공장건설기공식을 벌려놓았고 1930년 1월 2일에는 조선수력전기회사와 하나로 병합시키였다.

달래가 어머니와 함께 부모들의 고향에 돌아왔을 때 흥남에서는 압제가 실시되고있었다. 그전에는 함경남도 함흥군에 속해있던 고장이 이때에는 함주군 흥남읍이 되였다. 흥남은 인구가 18만의 큰 도시로 변하였다.

흥남의 초대읍장은 여기에 식민지소공국을 꾸려놓은 노구찌자신이였고 읍평의원들마저 그의 수하졸개들이였다.

강제로동으로 끌려와 먹고 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골거리였으나 조선사람들중에 노구찌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었다. 노구찌는 흥남일대의 《조선총독》격이였고 일본《천황》처럼 행세하였다.

달래는 이런 내막을 알수 없었으나 이들때문에 굶주려야 하고 이들때문에 하루도 마음편히 살수 없다는것을 누가 가르쳐주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으로 뼈에 사무치게 알고있었다.

달래가 어머니와 함께 자리잡은 곳은 로동자합숙이였다.

새라새로운 공장들이 일떠서고 각지에서 끌려온 인부들이 넘치여 하숙집은 앉을자리, 설자리도 없는 장마당 한구석처럼 되였다.

달래가 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하숙집은 널판자로 걸써 지은 두채의 림시건물이였다. 건물 한채에 근 쉰명이 한곳에서 먹고 잤다.

하숙집에서는 매 사람한테 목침도 차례지지 못하였다.

벽쪽으로 놓은 굵고 긴 참대통이 공동베개였다. 고달픈 쪽잠에 들었던 사람들이 새벽에 깨여나기 힘들어할 때 십장이 목도채나 함마로 그들이 베고 누운 참대통을 두드리면 머리가 울려 얼굴을 찡그리며 사람들이 일어나앉는다.

벽쪽에 머리를 두고 다리를 가운데로 놓는데 마주 누운 두사람이 발을 쭉 펼수 없어 방가운데 바줄을 매고 그우에 올려놓지 않으면 두사람이 누울수 없다.

쌍통식으로 되여있는 두동의 목조건물에서 로동자들과 인부들이 자고 먹고 살고 그 건물 한쪽으로 주방과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휴계실 겸 살림방, 창고 등이 잇달려있었다.

부엌에서 일하는 식모는 돌쇠네 외삼촌댁하고도 몇명이 더 있지만 그래도 일손은 모자랐다. 밥짓고 국 끓이고 먹고난 그릇을 가시고… 자질구레한 부엌일은 끝이 없다.

불때고 쌀과 소금, 남새같은것들을 꺼들이고 나르는 남정로력은 돌쇠네 외삼촌말고도 또 한사람이 더 있다. 돌쇠의 외삼촌은 하숙책임자격이고 물자를 나르는 달구지군이며 화부이기도 했다.

달래는 어머니와 돌쇠의 외삼촌어머니를 도와 부엌일도 하였지만 인수원격으로 돌쇠 외삼촌을 따라다녀야 하였다.

달래는 부모들의 고향에 와서도 돌쇠를 인차 만날수 없었다.

그가 먹고 자고 일하는 곳은 달래네가 사는 하숙집에서 십리나마 떨어져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손톱발톱이 닳고 신발이 닳도록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에겐 서로 만날 기회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어느날 돌쇠의 외삼촌이 자기 처제가 있는데로 간다고 하였다.

돌쇠의 외삼촌네 처제는 돌쇠의 동생 억쇠가 달래네와 함께 부모들의 고향에 왔을 때 돌쇠 외삼촌집에 온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억쇠는 그 녀인을 이모라고 불렀다.

《외삼촌, 나도 이모한테 갈래요.》

달래는 억쇠의 외삼촌을 억쇠처럼 외삼촌이라 하였다. 억쇠의 외삼촌어머니네 동생이 있는 곳에 돌쇠가 있다고 하였다.

《외삼촌, 나두 이모한테-》

억쇠도 형이 있는 곳에 가겠다고 하였다.

돌쇠의 외삼촌은 그러라며 달래와 억쇠를 말달구지에 태워주었다. 헤여져 여러해만에 돌쇠를 만나러 찾아가는 즐거운 려행이였다.

동심에도 제나름의 상봉과 리별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다.

달래와 억쇠가 이모라고 부르는 돌쇠의 외삼촌 오윤봉의 처제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돌쇠는 지금 시내를 돌고있다.》

돌쇠는 오윤봉외삼촌어머니의 녀동생이 허드레일을 하고있는 무궁화식당에서 먹고 자며 일하였다. 무궁화식당은 ㅁ자로 되여있는 조선식기와집이였다. 식당은 번창하고있었다. 식당에는 단골손님들이 많았고 조선료리와 함께 일본료리도 많이 하였다.

료리종류가 많아 주문해야 할 료리감도 여러가지였다.

돌쇠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돌며 싸전과 밀가루집, 소고기며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각종 어물을 주문하러 다니였다. 하루에 써야 할 종류와 량을 주문하면 오전중에 주문품이 식당에 들어오고 그것을 가지고 료리를 만든다. 주문만 하는데도 반나절이상 품이 들었다.

돌쇠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달래는 소금을 사러 가는 오윤봉을 따라가고 억쇠는 식당에 남아있기로 하였다.

식당은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아 조용하였고 억쇠는 식당마당에서 혼자 놀지 않으면 안되였다.

《저 안뒤결에 가서 놀아라.》

오윤봉외삼촌 처제는 몸채끝에 있는 굴뚝모퉁이를 가리켜보이였다. 그리로 해서 안뒤결에 갈수 있었다. 몸채와 뒤채사이의 마당을 안뒤결이라고 한다.

달래가 소금을 싣고 무궁화식당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식당은 아직 조용하였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벅적 떠드는 소리가 났다. 몸채 굴뚝모퉁이에서 두 아이가 싸우고있었다. 큰 소년이 나어린 억쇠의 목덜미를 쥐고 악에 받쳐 소리치고있었다.

《내 돈 내놔.》

《나 돈 안 가졌어.》

《이 깡통안에 있던 돈 어디 갔어?》

키큰 소년이 왼손에 쥐고있던 깡통을 흔들어보이며 오른손으로 거머잡은 억쇠의 옷깃을 잡아당기였다.

《난 몰라.》

《거짓말할래?》

《거짓말 아니야.》

《네가 이 깡통 가지고 놀지 않았니?》

《굴뚝옆에 딩굴던거야.…》

《내 돈 내놔.》

큰 소년은 빈 깡통을 땅에 내동댕이치더니 철썩하고 어린아이의 뺨을 후려갈기였다.

달래는 왕 하고 소리내여 우는 어린아이가 억쇠이고 그를 때리는 소년이 돌쇠라는것을 알아보는 순간 자기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달려갔다.

《이게 뭐야? 어린 동생 때리면서…》

달래는 돌쇠에게 소리치였다.

《너랑 같이 챘니?》

돌쇠는 말리려드는 달래를 향해 다짜고짜로 주먹을 내둘렀다.

달래는 돌쇠의 주먹에 맞고 눈에서 번쩍 번개가 일었다.

이때 부엌에서 마당으로 나오던 오윤봉 처제가 머리에 이였던 동이를 내려놓고 두 아이가 싸우는 굴뚝모퉁이로 달려왔다.

《오래간만에 형제가 만나 왜 싸움부터냐?》

외삼촌어머니의 동생되는 녀인은 울고있는 억쇠를 끌어안았다.

돌쇠는 억쇠의 옷깃을 놓고 돌아서더니 주먹으로 얼굴을 닦으며 흐느끼였다.

돈을 챘다고 때린 어린아이가 오래간만에 만나는 자기 동생임을 비로소 알게 되여서인지, 애써 모아 감추었던 돈을 모두 잃어버린 설음때문인지 돌쇠는 흑흑 흐느끼였다. 고아의 신세가 되여 여러해 헤여져있은탓에 돌쇠는 동생을 알아보지 못하였던것이다.

동생을 알아보았다 하더라도 돌쇠는 피땀으로 모았던 돈을 모두 잃어버린 분함에 동생을 때렸을수도 있었다.

달래도 울었다. 얼결에 돌쇠의 주먹에 맞은 아픔보다도 반갑게 찾아왔으나 싸움으로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형제의 처지가 더 가슴을 허비였다.

이날의 상봉은 참으로 괴이쩍게 이루어졌고 만나지 않은것만 못한 괴로움만 안겨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지 얼마후 돌쇠가 달래네가 살고있는 로동자하숙집을 찾아왔다.

《내가 잘못했어.》

돌쇠는 용서를 빌며 자기의 설음을 터놓았다.

《내 돈을 챈 놈은 식당주인년이야.》

돌쇠는 식당에서 써야 할 료리감주문을 끝내고 돌아와 마당을 쓸고 손님맞을 준비를 하군 했다. 단골손님들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아 안내했고 그들이 마구 벗어버린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주고 구두를 닦아주기도 했다.

맛좋은 음식과 술에 마음이 들뜬 손님들중에는 돌쇠에게 짤락돈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돌쇠는 그 돈을 깡통에 넣어 굴뚝모퉁이에서 벽돌을 뽑아낸 후 거기에 간수했다. 공부할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공부를 하려면 책도 구하고 공책과 연필도 사야 했다.

돈을 넣어두었던 깡통을 가지고 노는 동생을 보고 돌쇠는 그날 억쇠가 꺼낸줄로만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식당주인마님이 심부름 잘했다고 돌쇠한테 지전 한장을 주었다. 그 돈에는 한귀퉁이에 입쌀알만한 먹물방울이 묻어있었다.

손님한테서 난생처음으로 지전을 받고 너무 기뻐 보고 또 보았던 돈이여서 돌쇠는 주인마님이 상으로 주는 그 돈이 어느 상점주인이 허세를 부리며 낯을 내느라 뿌려준 돈임을 알아보았다.

주인마님은 돌쇠가 굴뚝모퉁이에 자주 드나드는것을 보고 굴뚝밑에서 뽑아내군 하는 벽돌을 발견했을것이고 깡통속에 간수한 돈을 꺼내여 감추었을것이다.

돌쇠는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헤여져 살지 않으면 안되였던 동생을 오래간만에 만나 돈을 내라고 때리기까지 한 자신의 소행을 돌이켜볼수록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아프고 쓰리였다.

《우리 식당주인은 심보 고약한 나쁜 년이야.》

돌쇠는 식당주인년때문에 동생을 때린것이 분한지 손등으로 눈굽을 훔치였다. 얼마후 돌쇠는 달래를 찾아왔다.

《난 여기를 떠날래. 내 돈벌어 공부두 하고 달래 널 데리러 올게. 그때까지 내 동생 좀 돌봐줘. 내 쪼꼬말 때 달래를 못살게 굴었지. 자꾸 우는 너를 보면서 내 다시는 너를 울지 않게 해주려고 했는데… 내 이다음에 너한테 울 일이 없게 해줄게.》

이것이 헤여지던 날 돌쇠가 달래에게 남긴 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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