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9


설향이와 은해는 방석을 깔고 나란히 앉아 실습수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그마한 수틀을 무릎우에 올려놓고 그린듯 앉아 수실을 한뜸두뜸 꿰여가던 설향이 《호호호, 이걸 좀 봐줘. 다리아같아 보이니?》 하고 말하자 은해는 수틀을 놓고 방그레 웃으며 설향이 수놓은걸 고개를 갸웃하고 살펴보았다.

《솜씨있구나. 다리아가 방금 피여난것 같애.》

《거짓말, 난 진짜 수놓이는 취미가 없어. 숨막히는것 같이 속이 답답해. 이런노릇을 어찌해.》

은해는 설향의 수를 찬찬히 뜯어보며 말하였다.

《꽃이랑 다 곱게 됐는데 이파리가… 원래 다리아잎은 깃모양이 겹잎인데 홑잎처럼 보여. 덧수를 약간 놓아야겠다 얘.》

《넌 진짜 수예박사야. 어떻게 그런것까지 다 섬세하게 가려보니?》

《근데 넌 왜 그리기 힘든 꽃을 택했니?》

설향은 눈웃음을 곱게 지으며 숨김없이 대꾸하였다.

《경태오빠가 이 꽃을 제일 좋아하니까. 나는 그 오빠가 좋다는건 나한테두 다 좋으니까. … 네 수를 좀 보자.》

그는 은해의 네모진 수틀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신통히 로송이다. 얘, 정말 신통해. 옛날 〈황룡사〉의 벽에 그려넣었다는 솔거의 로송에 못지 않구나.》

《호호, 네가 무슨 8세기의 솔거그림을 보기라두 했니 뭐?》

그 말에 설향은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았지. 》

《어떻게?》 은해 역시 짐짓 능청스럽게 물었다.

《전해오는 말 듣구 눈앞에 그려보았지.》

그 말에 두 처녀는 깔깔 웃어댔다.

《은해야, 하필이면 늙은 소나무를 수놓을건 뭐냐. 푸르청청한 소나무를 그릴것이지.》

《로송인들 뭐라니. 아무리 로송이라두 사철푸르지 않어.》

《오라. 그러니 눈속에서도 시들지 않는 로송, 그 절개의 뜻으로 삼은거구나.》

《아니, 석탑공원에 놀러갔다가 세월의 증견자처럼 눈에 띄여 대충 스케치했던걸루 …》

설향은 별안간 번열증이 나는듯 동그란 수틀을 다시 잡으며 말했다.

《은해, 우리 빨리 필하구 대천강가에 나가자. 시원하게 바람두 쏘일겸. 》

《응, 그게 좋겠어.》

…두 처녀는 설향의 집에서 얼마 멀지 않는 대천강가로 나갔다.

멀리 하늘가로 파도쳐간 산줄기와 평탄한 기슭의 푸른빛을 온통 담아 싣고 흐르는 담청색의 대천강에서는 서느러운 바람이 풍겨왔다.

그들은 강쪽으로 밋밋하게 펼쳐진 푸른 잔디밭에 두활개를 펼치고 반듯이 드러누웠다.

뜨거운 해볕에 노곤해진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에는 새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여있었다.

무슨 일에나 쉽게 사로잡히고 쉽게 다는 설향이 시읊듯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절경을 이룬 대천강의 황홀경이여!… 은해, 아무리 수놓이솜씨가 뛰여난들 저렇게 자연처럼 아름답게 그려낼수 있겠니. 자연의 수놓이솜씨를 좀 보렴. 그 아무리 천재라두 글이나 그림으로 저 아름다운 자연그대로를 옮겨놓지는 못할거야.》

은해도 설향의 시흥에 어지간히 공감되였다. 오래간만에 대천강가에 나온 그는 종일 잔디밭에 누워 온몸이 그대로 잔디밭속에 잦아드는듯 한 감미를 맛보며 금방 내려앉을것만 같은 가없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싶었다.

《설향이, 오늘 솔직히 말해봐. 너와 경태씨와는 지금 어떤 관계니?》

《생뚱같이 그건 왜 갑자기 묻니?》

《내 보기엔 네가 요즘 너무 떠있는것 같구. 또 아무때든 너는 자기의 모든 생각을 그와 다 결부시켜 말하지 않니…》

《그야 경태씨가 친오빠나 다름없으니까 그런거지.》

이렇게 설향은 례사롭게 응대하였다.

《그럼 졸업후에는 어떡하지?》

《호호, 넌 별걸 다… 그야 두고봐야지. 은해, 솔직히 말해서 경태오빠처럼 미남이고 언변이 류창하고 어딜 가나 남들의 호감을 사는 청년은 드물지 않니.》

한순간 은해의 머리속에는 경태가 무선오빠 몰래 읽은 《녀자의 일생》에 나오는 쥴리앙의 기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피뜩 떠올랐다.

《솔직히 경태오빠는 내 마음에 꽉 차있어.》

《하긴 경태씨가 네 생명의 은인이니까 그럴수 있지 뭐. 네 말처럼 경태씨야 어디 빠진데 하나 있니.》

《정말 그 오빤 세상에 모르는게 없구 음악에나 체육에나 다 조예가 깊어. 지난해 가을철 전국체육경기대회때두 그 오빠때문에 혜신고보가 롱구에서 1등을 하니 이젠 혜신남고보가 한때 축구에서 1등을 한 배림고보나 유술에서 1등을 한 보성중학교, 야구승자 부산중학교들과두 어깨를 견주게 되잖았니.》

은해는 너무나 놀라운 표정으로 설향을 돌아다보았다.

《너는 그런걸 어떻게 전국적판도에서 그리 잘 알고있니?》

《호호호, 내 머리속에 있는 지식이랄가, 상식이랄가 그의 95프로는 경태오빠거구 내건 겨우 5프로정도나 될거야. 호호호. 그 오빠가 보고들은 소식은 그시루 내 귀에 다 들어와. 그 오빤 정말 처녀들이 바라는걸 다 갖추고있다 할가. 미리 주의해. 너두 반할수 있어.》

은해는 그의 어깨를 한대 쥐여박았다.

《넌 무슨 그따위 새빠진 소리야.》

《호호호. 》

설향은 자리에서 일어나앉으며 정색을 짓고 말하였다.

《내가 너무두 조용한 집안에서 오빠없이 고독하게 자란탓인지 그 오빠를 알게 된 다음부터는 그 오빠없이 한시두 못살것 같아. …》

설향은 인츰 기분을 돌리며 그 어글어글한 눈에 능청스러운 웃음을 담고 말했다.

《내 네 수에 넘어 속을 다 털어바쳤는데 이번에는 너도 속을 좀 펼쳐보이렴. 》

《솔직히 아직 내 마음에는 아무도 없어.》

《정말?》

《내 너한테 거짓말 하겠니. 너처럼 남다른 인연이 맺어진 대상도 없거니와 내 마음에 찾아든 사람두 없단다.》

《왜? 그 철림씨 있지 않니. 이전날 할아버지서껀 함께 걸어오는걸 봤는데…》

그 말에 은해의 해말쑥한 얼굴이 살짝 붉어지였다. 아직은 아무러한 생활상련계가 없는 그였지만 설향의 입에서 불쑥 철림에 대한 말이 튀여나오자 저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탔다.

《나는 경태오빠를 통하여 철림씨를 잘 알고있어. 그들은 다 너의 사촌오빠의 수제자들이 아니니.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지. 내 보건대두 철림씨가 괜찮은것 같더구나. 너는 어떻니?》

《난 몰라. …》

은해는 설향에게 공연한 의심을 사지 않게 일부러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태연해지려고 속을 다잡았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는 언제나 몸가짐이 단정하고 체격이 름름한 철림의 모습이 정겹게 안겨왔다. 류달리 눈정기 빛나는 그윽한 눈매와 짙은 눈섭, 꼭 다물린 입, 처녀처럼 참해보이는 그의 얼굴은 첫눈에도 친근감이 느껴졌다. 또한 그의 목소리는 류다르게 맑고 부드러워 마음에 차분히 잦아드는듯 했었다.

《내 생각을 말하면 철림씨는 다 좋아보이는데 지내 담보가 커서 언젠가는 반드시 무슨 큰일을 저지를것만 같아서 좀 께름해. 그래 넌 앞으로 어떤 배우자를 택할 심산이냐?》

《난 아직 그런 생각을 가져본적 없어. 우리야 아직 학생이 아니니.》

《넌 뭐 한뉘 학생으로 있겠니. 게다가 우린 졸업학년이야. 리상적인 배우자를 그려보는것이야 처녀들의 생활이 아니냐.》

은해는 자기를 말짱 터놓는 설향의 앞에 자신을 지내 감추기만 하는것 같아 평소에 품고있는 생각을 말하였다.

《난 그렇게 생각해. 마땅히 외형두 남성다와야 하지만 그보다도 마음이 그지없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청년… 호호.》

《마음 아름다운 청년?!… 그러나 겉보기 속보기라구 겉두 아름다워야 속도 아름답지 않을가? 하긴 마음 아름다운것이 기본이지. …》

《너는 그만했으면 경태씨의 마음을 그속에 들어가본것만치나 속속들이 알고있을테지?》

설향은 확신성있게 대꾸하였다.

《잘 안다뿐이겠니. 실토정을 하면 나는 오빠가 생활의 요소마다에서 나의 마음을 느끼게 하고싶어. 눈길이 미치는것, 손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나의 지성을 감득하게 하고싶어. 그렇게 하는것이 내 마음이 오빠의 마음과 함께 있는것이라구 생각해.》

은해는 진심으로 감동되여 설향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설향아, 난 네가 학급의 〈꽃바람〉으루 덜렁덜렁하는줄만 알았더니 어쩌면 그리두 지극하구 다심하니. 너같은 처녀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니.》

《얘, 비행기를 좀 작작 태우려마. 호호호.》

은해는 설향의 진정에 가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