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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경태는 철림이가 요새 집에 통 붙어있지 않는다는 철림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자기 짐작대로 앞개울 모래톱으로 달려나갔다.

철림은 풀섶에 그린듯 앉아 먼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철림아!》

그는 이렇게 불러놓고는 목이 꽉 메여 다음말을 잇지 못했다. 다혈질인 그는 대뜸 눈물이 그득 고여 철림의 어깨를 와락 그러안았다.

철림은 난데없이 나타난 경태를 놀랍게 쳐다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으려다 그만 설음이 울컥 북받쳐 얼굴이 이그러지였다.

《철림아, 도대체 어찌된 일이야. 아버지가 왜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셨대?》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해하던 철림은 흰구름이 겹겹이 낀 하늘가로 아득히 물결쳐간 산줄기의 기봉인 꼬드래봉을 한동안 바라보며 마음을 수습한 후 젖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기관지천식이 매우 심한 아버지를 청부놈이 무작정 원목재조사에 막 내몰았다는거야. 그래서 아버지는 허리를 치는 사득판에서 줄창 찬비를 맞으며 검척을 하다가 그만 급성페염에 걸렸대. 그런데 병원은 백리밖에 있으니 별수있니. 변변히 손을 못 써보구… 억울하게. 생각할수록 너무 기가 막혀. …》

철림은 울먹이며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게 다 저 찢어죽여두 시원치 않을 왜놈종자들때문이구나!》

경태는 이를 갈며 통분해하였다. 그는 철림을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지 몰라 안타까와하다가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랑나랑 소학교때 바로 이 모래톱에서 너의 아버님은 이렇게 당부하셨지. 〈강태죽을 먹으면서라두 글을 꼭 배워야 한다. 사람이 까막눈이 되면 시국형편에두 까막눈이 되고만다. 사람답게 살려면 아무튼 기를 쓰구 공부를 해야 한다. …〉 그 말씀이 지금두 귀에 쟁쟁해.》

사실 철림은 아버지가 영영 떠나셨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기별밖에 모르고 도착한 그들모자를 보고 집주인은 너무나도 억이 막혀 차마 말문을 열지 못했었다. 그는 《철림 어머니, 계수형님은 벌써 닷새전에 잘못됐수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이라구야.》하고 무너지듯 오금을 꺾고앉아 후들후들거리는 손으로 토스레옷주머니에서 쌈지를 꺼내여 담배를 말아물었다. …

그 순간 철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머리가 뗑해지며 귀안에서 웅웅 바람소리가 났다. 그는 그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마치 꿈속에서 듣는 거짓말같이 생각되였다. 그때 떼타리개감을 해지고 오던 운산(경룡의 아들)이 어느새 알아보고 타리개짐과 낫을 길섶에 내동댕이치며 《철림형!》 하고 살같이 달려와 안기여 엉엉 울음을 터쳤다. 철림이도 울컥 울음이 북받치였다.

저발치의 토장에서 원목을 굴리던 로동자들이 일제히 든장질을 멈추고 추연하게 바라보고있었다.

그날 오후였다. 중키에 몸이 다부진 중년로동자가 구럭망태를 어깨에 걸치고 그들이 머물러있는 운산이네 집에 찾아와 자기소개부터 하였다.

《형수님, 제가 계수형님과 의형제를 무은 박포덕이올시다. 형님이 잘못된것두 모르고 불원천리 찾아왔으니 그 억한 심정이야 더 이를데 있겠습니까만 어쩌겠습니까. 가신 형님은 되돌아올수는 없는 일이니 굳이 슬픔을 가라앉히십시오.》

그는 비감에 잠겨 이렇게 위로하고는 아버지의 산소로 그들을 안내하였다.

철림은 수풀속의 나무등걸이 듬성듬성한 공지에 봉긋하게 솟은 봉분과 최계수라고 쓴 생이깔나무묘비까지 보고서야 아버지의 사망이 현실임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꼈다.

함바의 로동자들이 그처럼 극난한 형편에서도 애써 마련한 제물을 상돌에 챙긴 포덕은 철림이더러 잔에 술을 따르게 하고는 마치도 산사람과 말하듯 《계수형님, 형수님두 오시구 아드님두 왔수. 형님은 알기나하구 그냥 누워계시우? 형님은 어쩌문 그리두 무정하게 우릴 다 버리구 가셨수…》 하고는 꺽! 울음을 삼키였다. 한순간 철림의 눈앞은 뿌옇게 흐려졌다. 참고참아오던 눈물이 동을 터치듯 쏟아져버렸다.

(아, 불행한 아버지!)

아버지의 한생은 너무도 짧고 너무도 불우했다. 독립군이였던 할아버지(최성만)와 할머니를 일제경찰놈들에게 한시에 잃고 놈들의 추적을 피하여 평생 숨어지낸 아버지였다.

그날 밤 저녁식사를 나누며 좀 거나해진 박포덕은 넉가래같이 험상궂은 손을 철림의 무릎우에 얹으며 통짜배기답게 직판 말하는것이였다.

《그 멋대가리없는 씨요, 군이요 하는 허식은 뚝 떼팽개치구 이젠 자넬 철림이, 자네로 부르겠네. 하긴 내가 삼촌벌 되니까…》

워낙 세상의 눈치놀음따위는 썩살만큼도 안 여기는 그는 초면인데도 마음이 내키는대로, 생각나는대로 아무 말이나 꺼리낌없이 하였다.

《나두 3. 1봉기때 온 식솔을 잃구 세상천지가 좁다하구 떠돌다 이 막바지에 머물렀지만… 솔직히 산판에서 아름드리나무를 한대두대 찍을 때면 내 살점을 한점두점 저며내는것 같구, 빼앗긴 내 나라의 허리동아리에 도끼질하는것 같아서 가슴이 섬찍섬찍하단 말요. 저 왜놈새끼들이 본전 한푼 안 들이구 알짜 공것으루 빼앗아가면서두 우리 등골을 또 이리처럼 갉아먹구있네그려. …》

도청부 오까모도란 놈만 해두 떼로 실어내린 원목을 회사측에서 립방당 5원씩 받아서는 제놈이 먼저 3원을 꿀꺽 삼키고 남은 2원에서 청부몫으로 십장이 1원을 잘라먹고 그밑의 소십장이 또 75전, 그 나머지가 채벌, 운재, 적재, 떼무이, 떼몰이군들의 몫이였다. 그러니 아무리 등골이 빠지게 일한댔자 하루 급료가 고작 50~60전인데 함바의 하루 밥값은 45전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반대로 왜인떼군은 하루 급료 5원, 거기에 국경수당금 매달 5원, 이렇게 한해동안 300원씩 벌어가지고 현해탄을 넘었다가는 돈벌이재미에 매해 떼내리는 철이면 기신기신 게바라든다는것이였다.

박포덕이 한창 열이 올라 놈들의 흑막을 발가놓을 때 아까부터 웅성웅성하던 목재소사무실쪽에서 별안간 법석 떠들어대며 혀꼬부라진 왜노래소리가 역하게 들려왔다.

《오료꼬부시, 오료꼬부시.》 하고 왝왝 웨쳐대며 깔깔 웃는 야지러진 계집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것은 놈들이 오늘 줄대차개통식을 경축하여 돼지 두마리를 잡아 산제사를 지낸 다음 베푼 《향연》이였던것이다. 놈들은 속돌개 1호, 2호경찰관주재소에 열댓이나 두고있는 순사들과 기생들까지 불러들인것이였다.

놈들은 소발구로 산판에서 원목 한대두대 실어들이는것이 도무지 성차지 않아 원목을 줄대차에 산더미처럼 실어서 왕복 30여리 급경사면을 따라 부설한 소철레루로 떼동까지 직행하게 만들었다.

만일 그 원목더미우에 탄 로동자가 제동변장대기에 비끄러맨 바줄로 속도조절을 자칫 잘못하거나 핀 하나라도 빠지는 순간이면 눈깜빡할새에 영낙없이 황천객이 될수 있는 위험천만한 사지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그것을 경축하느라고 밤깊도록 질탕거리는것이였다.

박포덕은 확실히 난사람이였다. 지난해 어느 그믐밤에도 든장을 메고 외통길에 우뚝 나타난 그를 보고 기절초풍한 오까모도가 《빨찌산이다!》 하고 내빼다가 도랑창에 허궁 나딩굴었다고 한다.

그래서 포덕이 따라가 《도청부, 나요 나. 박가요.》라고 하는데도 버둥거리며 《빠가, 왜 와다시 박가란 말 안했나말야.》 하고 줴친 소문이 꼬리달려 일시에 퍼져 온 목재판에 《와다시박가》로 통하였다. …

《이 사람, 내 시국형편을 좀 들여다보게 되구 이런 말을 드러내놓구 하게 된것두 다 계수형님이 눈틔워준 덕이네. 형수님, 험한 타향에 형님을 두고 가시기가 걸음 무거우실테지만 우리 여기에 있는 한 산소를 잘 돌보겠수다. 형수님이 여느 내인들 같지 않아서 툭 터놓는데 사실상 계수형님은 그저 가지 않았수다. 형님이 무은 〈친목계〉에 경룡형이며 함바의 적지 않은 친구들이 속해있수다. 이 고역스러운 타향살이를 하면서 서로 화목하게 의지해야 할게 아니겠수. 〈친목계〉를 책임진 형님을 잃었으니 한지가 됐지요. 하지만 형님이 우리 마음속에 묻어준 씨앗이야 어디 가겠쉐까. …》

…철림은 목재소에서 직접 듣고 목격한 사실들이 끊임없이 눈에 밟혀왔다.

이윽고 그는 침통한 얼굴로 한숨을 길게 짓더니 저으기 갈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나는 거기서 다만 하루밤을 묵고왔지만 정말 많은걸 체험했어. 더우기 떠나는 날 운산이 당한 참혹한 일은 옮기기조차 가슴이 미여져와서 …》

경태는 화뜰 놀라면서 다급하게 물었다.

《아니, 운산이 어떻게 됐게? 그것두 이젠 퍽 컸겠는데…》

《열세살 나는게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살림을 보태려구 매일같이 타리개감 하러 산판에 오르내리지 않았겠나… 그런데 우리 떠나는 날 글쎄 왜놈순사가 산판에 오르는 그 애한테 세퍼드를 풀어놓고 물라구 추기지 않았겠나. …》

《그 찢어죽일 놈의 새끼, 그래서?》

《세퍼드가 운산의 허벅다리를 뭉청 물어뜯어 애는 태를 치며 우는데 왜순사놈새끼는 우리 개가 조선사람을 잘 문다고 손벽을 치며 통쾌해하더란 말야. 그때 토장로동자들이 든장을 들고 우르르 몰려가자 놈들은 포대구멍마다 총신을 내뻗치구 그 순사놈새끼는 〈일없다, 우리 개는 사탕 많이 먹어 독 없어. 반도인 물려두 안 죽어!〉하고는 세퍼드를 불러들이구 대문을 철컥 채워버리지 않겠나.》

경태는 주먹을 부르쥐며 이를 갈았다.

《그 개새끼들, 그냥 둬? 든장든 로동자들은 뭘하구…》

《어쩌겠나. 포대구멍마다 총구가 노리는 판에 더 큰 참사를 빚어낼려구. …》

《야, 그 악귀같은 놈, 정말 분통이 터질노릇이구나.》

철림은 그날 그 잰내비같은 순사놈새끼를 즉각 요정내지 못한게 후회막심했다.

《그런데 운산인 어떻게 됐나?》

《마침 포덕아저씨가 의술이 밝아서 독을 짜낸다, 백반가루를 뿌린다 하며 응급처치를 했었지.》

(운산이네 집안엔 왜 하필 그렇듯 가슴터지는 불행만이 몰박으로 몰켜드는것일가?…)

운산의 어머니는 때거리가 없어 난지 두달밖에 안되는 애기를 업고 허기진 몸으로 외나무다리를 건느다 대천강물에 허궁 삼키웠고 맏이 운천은 앓아누운 아버지대신 떼를 몰다가 떼뚝이 부서지는 순간에 처참한 죽음을 당했었다.

그리하여 경룡은 삼포목재소에 이와실이를 올 때 당그랗게 남은 일점혈육인 운산을 부득불 데리고와서 그냥 눌러살게 된것이였다.

《나는 운산이네 일가의 참혹한 불행은 우리 인민 누구나가 다 겪는 불행의 축도라구 생각해. …》

경태는 침통한 표정으로 철림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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