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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이 오래빈 너무도 참해요. 글쎄 어떤 때는 웃방에 너무두 기척이 없길래 새문을 빼써 열구 들여다보면 그저 책에 얼굴을 파묻구있지 않겠나요.》

하숙집녀인의 말에 유영은 애틋한 심정으로 따라웃었다.

《그 앤 참해뵈두 여간내기가 아니라우. 한번은 멀리 심부름을 갔다가 날이 저물자 글쎄 여라문살나는게 몽둥이를 끌구 홍계수골을 질러 오지 않았겠수.》

《아니, 홍계수골이야 어른 셋이나 범밥 됐다는 호랑이골 아니나요?》 《그래서 온 동네사람들을 놀래웠지우. 그뿐인줄 알우. 글쎄 일곱살때는 저보다 나이 두곱되는 구장아들놈이 맨발로 다니는 저보구 거지새끼라구 놀려주었다구 해서 애호박만 한 돌루 그 애의 발등을 까놓아서 또 소동이 일었댔다우.》 하고 유영은 허거프게 웃었다. 그는 오래간만에 철림의 학비며 하숙비를 장만해가지고 와서 시원한 널마루에 앉아 이렇게 하숙집녀인과 한담을 나누고있었다.

이때 철림이 책보를 끼고 마당에 들어섰다.

《어머니, 오셨군요. 언제 오셨어요?》

철림은 너무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보게. 어머니가 그 먼데서 햇감잘 한자루나 이고왔네.》 하고 하숙집녀인은 마루구석에 놓인 큼직한 감자자루를 가리켰다.

《어머니, 그 먼길에 퍽 고생스러웠겠군요.》

《그래두 이젠 기차길이 마저 개통이 돼서 나다니기가 한결 헐해졌다. …》

철림은 어머니를 부축하여 방안으로 모셔들었다.

그리도 그립던 어머니와 마주앉은 철림은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공연히 헤벌쭉거리기만 했다.

《외할아버지랑 무고하셔요?》

《무고하시다. 학교일을 놓은지 언젠데 그때부터 재미를 붙인 매사냥을 종시 놓지 못하셔. 지금두 옛말삼아 〈오소리〉와 조그만 너를 앞세우구 매사냥 다니던 일을 자주 외우신단다.》

철림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매가 장끼를 잡은 날에는 그것을 구럭망태에 넣어메고 한발 앞서 자랑삼아 동리에 들어서던 일이 가슴 알알하게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새 미옥인 어떻게 지내요? 고거 막 보고싶어서…》

유영은 갑자기 한숨을 꺼지게 내쉬며 말하였다.

《이번두 부득부득 따라나서는걸 겨우 떼놓구왔다. 머리를 붕대로 처맨 애를 어떻게 데리구 떠나니.》

그 말에 철림은 깜짝 놀랐다.

《머리에 붕대를 처매다니요?!》

《글쎄 그 벼락맞아 뒈질 정가놈이… 그날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두 이가 갈리구 치떨려서…》

…유영은 꼬드래봉 화전뙈기 감자밭김을 매다가 찬비를 함빡 맞은탓인지 갑자기 심한 고열로 몸져누웠었다. 며칠사이에 입맛을 싹 잃은 어머니를 구완하며 머리맡에서 눈물만 쯜금쯜금 짜던 미옥은 아래마을 의원인 김포수한테서 입맛 돌리는데는 참외가 좋다는 말을 들었다. 미옥은 그날로 자기 집 화전뙈기에서 한창 익어가는 보리풋바심을 해서 솥에 말리고 절구에 찧었다. 그리고는 한되가량의 햇보리쌀을 베주머니에 담아들고 재등원두막으로 줄달음쳐갔다. 원두막의 강로인은 어린것의 정성이 너무도 기특해서 《얘, 네 정성을 봐서두 어머니병 낫겠다. 내 참외 한구럭 따줄게 그 쌀은 도루 갖구가거라.》 하고 잘 익은 참외를 한구럭 따주었다. 바로 그때 밭을 돌아보던 지주 정가놈과 딱 맞다들었다. 정가놈은 미옥의 손에 들려있는 베주머니를 와락 나꾸채여 보리쌀을 한줌 꺼내여보더니 다짜고짜로 개화장으로 그의 머리를 깠다. 《내 집 보리밭에서 밤마다 풋바심을 하는놈을 붙잡으려던 참이였는데 그 도적이 바루 요 쌍 계집애였댔구나.》

정가는 무작정 개화장으로 미옥의 머리며 어깨를 마구 조겨댔다.

강로인이 기급하여 막아나섰다.

《아니, 알아보지두 않구 이 어린것한테 이게 무슨 행패요?》

미옥은 피흐르는 이마를 싸쥐고 당돌하게 대들었다.

《왜 때려요! 우리밭에서 풋바심한건데 내 잘못한게 뭐나요? 내가 치사스럽게 남의 보리밭에 손을 댈것 같아요. 업신여기지 말라요! 더러워요. 》

미옥은 너무나도 뜻밖의 억울한 봉변에 분이 치밀어 쌔근발딱거리며 들이대다가 별안간 픽 쓰러지고말았다. …

《그날 저녁 강로인이 미옥을 업구서 참외구럭을 들구 왔더구나.》

철림은 속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당장 한달음에 달려가 정가놈의 황소덜미같은 목대를 부러뜨려 요정을 내고싶었다.

《내 오늘 갖구온 비용두 거의 네 동생이 산나물도 캐구 콩나물도 길러 마련한거란다.》

《그래 외할아버진 그놈을 그냥 내버려뒀나요?》

《그 성미에 그냥 둘게 뭐냐. 그길로 씽- 달려간 할아버지의 범같은 기상에 넋살을 먹은 정가놈은 땅바닥에 넌떡 엎드려 벌벌 떨며 제가 착오를 범하고 죽을 죄를 지었노라구 손이야발이야 싹싹 빌어서 배겨났지. …》

순간 철림의 뇌리에는 미옥의 갸름한 얼굴에 별빛같은 가느스름한 눈이며 야무진 모습이 방불하게 떠올랐다.

유영은 한참동안 무슨 생각에 골똘해있다가 정색을 하고 말을 꺼냈다.

《듣자니 네 그 어간에 또 소동을 피웠다면서?》

철림은 어머니의 말에 대뜸 짐작이 갔으나 우정 심드렁하게 대꾸하였다.

《소동이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아까 길에서 만난 경태한테서 다 들었다. 네 객지에서 그러다 큰 재구를 칠려구 그러니?》

《어머니, 솔직히 내 잘못은 없어요. 다 들으셨겠지만 그런 험악한 행위를 보고 어떻게 참아낼수가 있어요.》

철림은 경태가 어머니에게 무어라고 일러바쳤는지 모르겠으나 이제는 그 소리만 나와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는 마음이 무거워야 한다. 마음이 얕아가지구서는 자기를 망치구 무슨 일이든 그르치기 쉽다. 난 네가 울뚝하면 물불을 모르는게 큰 걱정이다.》

철림은 어머니의 다심한 잔걱정에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 싱검둥이가 제 생각까지 보태여 있는소리, 없는소리 다 불어댄거군요. 》

《경태야 저나 다름없는 네 일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겠지. 보태기까지야 했겠니.》 …

철림은 몇달만에 만난 어머니앞에 그사이 마음속의 고독으로 모지름을 쓰던 막막한 심정을 속시원히 털어놓고싶었다.

본시 철림의 집에는 얇은 표지들에 붉은색, 파란색갈로 장정한 책들이 한궤짝이나 있었다. 긴긴 겨울밤이면 유영은 사립소학교시절에 읽은 《박씨부인전》, 《전우치전》, 《홍길동전》과 같은 이야기를 어린 철림에게 조용조용 들려주군 했었다. …

철림은 누워서 전등불을 바라보며 범상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어머니, 난 요즘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요.》

유영은 아들의 생뚱같은 말에 흠칠 놀라며 아들쪽으로 돌아누웠다.

《네 그건 무슨 소리냐? 왜서, 하숙생활이 고달파서?》

《그래서가 아니예요. 어머니를 그렇게 고생시키면서 이따위 공부나 해서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 막 잠이 오지 않아요.》

《이 에미 고생스러울 생각은 애당초 그만두거라. 제 자식의 뒤바라지를 고생으루 여기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느냐. 네가 오랜 객지생활에 진이 난 모양이구나. 졸업두 멀지 않았는데 딴 생각은 말구 배우는데 착심하거라.》

철림은 진저리가 나듯 한숨을 푹 꺼지게 내쉬며 자기주장을 세웠다.

《어머니, 이젠 정말 일본교육이란게 독약처럼 싫어졌어요. 가만 새겨보면 전탕 우리를 〈황국신민화〉하자는 흑심이 뻔하단 말이예요.》

《그렇기는 하다마는 배우는 과학지식이야 어디 가겠니. 제정신만 똑똑히 가지구 배워두면 밑질거야 있겠니. 이담에 고생스레 배운것을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써먹는가 하는게 중하지 않겠니?》

철림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보니 자기가 지내 외곬으로만 생각을 몰아가고있는것 같은 회오가 들었다.

《어머니는 확실히 학식이 깊어요. 난 아직 그렇게 생각을 돌려보지는 못했거던요.》

《원, 애두. 고보생이 그런 말을 다 하니? 학식이 깊어서가 아니라 세상리치가 그렇잖니. 배워서 손해날건 없다. 군생각일랑 말구 눈을 지써 감구서 너한테 필요한것만 배워들이려무나. 속에 든게 없어가지구는 사람이 제구실을 못한다. 그래서 이 에미두 네 비용을 마련하는 일을 락으로 여긴다.》

철림은 새삼스럽게 어머니를 바라보며 속으로 어머니의 그 다심한 인정에 마음이 찌르르해왔다.

《어머니는 오늘 정말 좋은 말씀만 하시는군요.》

《참 애두, 별난 소리를 다…》

유영은 정겹게 웃었다. 한참후에 유영은 보다 더 심중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두 네 앞일을 두고 두루 생각을 굴려보군 한다. 네또래의 젊은 이들속에 장마당같은데 와서두 돈뭉테기를 옆차기에 넣고 다니며 돈을 물쓰듯 하는걸 자랑스럽게 보일려는 사람들두 더러있더라만 나는 그게 마음이 싸지 않더라. 그렇게 풍청대는걸 사는 멋으루 아는 젊은것들이 배우는 일은 뒤전에 놓구 돈줄을 쥘 구멍수만 눈이 새빨개 찾더구나.》

철림은 어머니의 분석에 놀라와 제풀에 성수가 나서 말했다.

《청년들이 술판을 벌려놓구 떠들썩하게 싱갱이질을 하는 말을 들은적 있어요. 한 사납게 생긴 청년이 〈야, 너희들이 나보구 돈벌거지라구 뒤에서 손가락질을 한다는데 야, 뭐니뭐니해두 돈이면 다야. 돈이면 이 세상에 못하는짓 없어. 알기나 해? 나는 돈을 실컷 벌어서 돈낟가리우에 앉아 내 대에 풍청거리며 실컷 살아보자는거야.〉라고 하더군요. 그 사납게 생긴 청년이 또 〈뭐, 꿈, 희망, 뜻… 난 그따위 말라빠진건 몰라. 자기 당대에 실컷 풍청거리면 극락인게지 죽은 다음에야 그따위것을 누가 알기나 한대? 개뿔같은 소리. 야, 술맛이 없어지겠다. 자, 부어라.〉하고 코웃음을 치더군요.》

그 놀라운 론조에 황당한 생각이 들었는지 모자는 한참동안 잠자코 있었다.

《어머니, 피곤하시겠는데 이젠 쉴가요?》

《괜찮다. 오늘 밤은 어쩐지 잠이 들것 같지 않다. 어쩌다 만났는데 네 속마음을 실컷 들어보자꾸나.》

《어머니, 나두 한때 속으로 돈벌이에 나서볼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요. 그런데 돈을 벌려면 시정배, 협잡군, 거간군, 공금절취자가 돼야 하겠더군요. 그러니 결국 돈이란 그것 없이는 잘살지는 못해두 더러운것이지요.》

《더럽다마다. 부모를 박대하는것두 돈버러지자식들이구 자기 처를 헌신짝같이 버리고 뺀뺀한 계집을 갈아대는것두 돈많은 사람들이더라. 그리구 돈을 갈퀴루 긁어들이는 사람들일수록 하나같이 린색하더구나. 지내보니 옛날에 부자놈이 염꽁치를 대들보에 걸어놓구 음식이 싱거우면 그걸 쳐다보며 손가락을 빨았다더니 그 말이 실말인것 같두나.》

《어머니, 그렇게 치사하게 살아 무엇할가요? 풀죽을 먹으면서두 마음을 굽히지 않구 무엇인가 해놓는게 있어야 하지 않겠나요.》

《네 말이 옳다. 이젠 너두 다 자랐구나. 할아버지두 너더러 뜻을 갖구 그 뜻을 굽히지 말아야 한다구 늘 말씀하시지 않던. 사람이 한번 세상에 나서 한번은 죽는 법인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었던지 없었던지, 언제 왔다간지도 모르게 살아서야 그게 무슨 사람답게 사는거겠니. 낳은 에미나 알구 저의 머리속에나 남아있게 살아서는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철림은 눈이 휘둥그래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이제 보니 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철학가이시군요.》

《얘얘, 너 점점 별난 말을 하는구나. 난 철학이란 말두 모른다.》

《철학이란 별다른건가요? 어머니처럼 세상을 해부해서 깊이 들여다 보구 바른 주견을 세우는것이지요.》

《얘, 참 아까 보니 책꽂이에 있는 〈사회주의대의〉요, 무슨 〈자본론〉이요, 〈레닌주의 기본〉이요 하는 책들이 있던데 그런걸 막 내놓구 봐두 되느냐?》

《순경들이 오는 기미만 채면 도배지속이나 이불속에 감추어요.》

《아니다. 네 학교에 간 틈에 놈들이 와두 그래 보구는 깊이 감추어라.》

《어머니, 명심하겠어요. 어머니는 그새 상당히 조심스러워졌군요.》

《난 그런 놈들을 썩살만큼두 여기지 않는다만 긁어 부스럼을 만들거야 있니.》

철림은 어머니의 이번 걸음이 천만다행으로 생각되였다. 단순히 학비나 하숙비를 들고오신게 아니라 마음속에 우중충하게 서렸던 온갖 의혹과 좌절, 때없이 조여드는 구속과 속박감으로부터 건져주기 위해 오신것만 같았다. 더우기 참다운 삶에 대한 심오한 진리가 담긴 어머니의 소박한 생활철학에서 받은 충격은 자못 강하였다. 고보졸업기에 이른 자기의 세계보다 어머니의 세계가 비할바없이 높고 현실적이였다. 특히 어머니가 떠나시면서 하시던 진중한 당부는 한시도 그의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네 좀 불편하더라두 절대루 정을 잃지 말거라. 사람이 정을 잃으면 속모양도 달라진다. 부자놈들처럼 정을 등지고 사는것들이야 어디 인간이냐. 사람의 금새두 정으로 달아본다. 사람이 정을 잃으면 자기를 잃구 나중에 친지들두 다 잃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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