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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 1 장. 귀신바람(가미가제)


4


비행기는 바다우를 날았다.

조선의 동해는 푸르고 맑았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러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가려볼수 없었다.

비행장에는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마중나와있었다.

일본질소비료공장 흥남지구 대변인들과 관계자들은 물론 《조선총독부》에서 산업국을 대표하여 내려온 관리들, 도경찰부와 헌병 그리고 일본해군기지 관계자들이 적지 않았다.

겐따는 반갑지 않았다. 겐따의 이번 출장은 소문없이 조용히 해야 할 일들이였다. 사람들의 얼굴을 익혀야 하지만 알아서 안될 사람들한테 자기의 신분을 필요없이 로출시키지 말아야 했다.

겐따는 해군성 군수2과장이 사복차림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았다. 겐따는 흥남에 있는 일본해군기지사람들로 보이는 해군복차림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군수2과장이 걸음을 옮기는 때에야 비행기에 놓인 사다리를 짚고 땅에 내려섰다.

점잖게 생긴 신사풍의 한사람이 겐따곁으로 다가섰다. 나이가 많아보이지만 신사는 머리우에 올려놓았던 중절모를 벗어 손에 든채 겐따에게 례의를 표하였다.

《제 동해제약 야마나까 다까도입니다.》

낯이 설었으나 이름은 귀에 익었다. 키가 늘씬하고 체격이 름름한 그한데서는 함부로 얕잡아볼수 없게 하는 당당한 위풍이 느껴졌다. 남을 얕잡아보고 자존자대하는데 관습된 겐따였으나 일종의 위압감을 느끼며 앞에 다가서는 신사를 바라보았다.

《저… 하나꼬이모와 같이 갔던…》

겐따는 이미 오래전 일이였으나 어제 있은 일처럼 순간에 모든것이 떠올랐다.

《저… 저를 치료해주신 의사선생님이 아니십니까?》

겐따의 물음에 신사는 빙그레 웃었다. 겐따는 하나꼬이모와 같이 나타나 자기 병을 치료해준 고마운 의사를 잊을수 없었다.

다까도는 다리병으로 불구가 되는줄 알았던 겐따를 자리에서 일어서게 해주었다.

《선생님, 어디에 계시다 이렇게 나타나셨습니까?》

일본사람들은 대체로 악수를 하지 않는것을 관례로 삼았으나 겐따는 악수를 청하는것으로 자기의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하였다.

다까도는 사람좋게 빙그레 웃기만 했다.

겐따의 아버지는 누에고치와 도자기로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도꾜일판에서 손꼽히는 부자의 한사람으로 되였다고 할수 있다.

명치유신이후 일본에서 외화획득의 기본원천은 누에와 도자기였다. 아버지네 공장들에서 나오는 차잔과 주전자를 비롯한 각종 고급도자기들은 유럽에까지 널리 팔리였다.

겐따 아버지네 도자기가 유명해진것은 임진전쟁때 끌려온 조선도자기공들과 그 후손들의 덕이였다. 그중에서 기능높은 가고시마의 고려도자기공과 그가 양성해낸 기술자들이 겐따 아버지네 공장에서 기술핵심을 이루었다.

고려도자기기술에 맛을 들인 겐따의 아버지는 해외출장을 갔다가 도자기에 넣어 빛갈을 내는 연록색의 쪼각을 기념품으로 가져왔다. 네데를란드의 광주가 아프리카에 갔다가 가져왔다는 그 돌을 그곳 광산에서는 버럭으로 내버린다는 말을 듣고 겐따의 아버지는 기업가의 호기심을 버리지 못했다. 파란빛이 도는 그 옥색쪼각은 네데를란드광주가 우라니움광석을 가공처리하여 기념품삼아 보관해두었던것인데 겐따의 아버지는 도자기에 그런 빛을 내지 못할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네데를란드광주가 운영하는 꽁고의 광산에서는 당시 우라니움광석을 버럭으로 버리고있었다. 그 버럭을 가져다 파란빛의 옥색효과를 도자기제조에서 내게 한다면 한밑천 볼수가 있었다. 새 돈구멍을 뚫러볼가 하여 겐따의 아버지가 가져온 파란 기운이 도는 옥색쪼각은 아들에게 치명적인 후과를 가져왔다.

겐따의 다리에 생겨났던 방사선화상을 아물게 하여준 최덕보가 야마나까 다까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야마나까 핫꾜(산중의 흰다리)라고도 하였다.

일본의 한다하는 의사들이 근 10년이나 속수무책으로 내버려두었던 겐따의 다리병을 다까도가 완치시켜주었다.

《선생님, 오래간만입니다. 그사이 건강히 지내셨습니까?》

조선사람을 눈아래로 보는 겐따였으나 다까도를 그렇게 대할수 없었다. 겐따의 얼굴표정에서는 거만기가 순간에 가셔지고 절망에 빠져있는 환자가 유능한 의사앞에 서는 처지로 되고말았다.

《상처가 일없습니까?》

다까도는 점잖게 물었다. 의젓한 몸가짐에서는 의사라기보다 재벌다운 냄새가 풍기였다. 그는 백금테안경을 끼고있었고 입고있는 신사복에서는 은시계줄이 번쩍거리였다. 미색중절모를 쓰고 당시 조선에서 개화장이라고 불리우던 지팽이를 들고있었다.

하얀 지팽이손잡이는 상아로 만든것이였다.

겐따는 자기 아버지가 아들의 병을 고쳐준 다까도에게 인디아산 상아로 손잡이를 만든 고급지팽이를 선물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일본의 좀부자들은 지금 다까도가 하고있는 차림을 흉내내기 어려울것이다.

《선생님덕분에 이렇게 군복까지 입지 않았습니까.》

겐따는 어깨우에 소좌견장을 단 일본해군장교임을 뻐기듯 말했다.

《저는 스승들이 만든 약을 몇번 발라드리고 복용시켰을뿐입니다.》

다까도는 자기에게 약의 비방을 알려준 스승들에게 경의를 드리듯 머리를 약간 숙여보이고나서 그때까지 손에 들고있던 중절모를 머리우에 올려놓았다.

사치를 배격하는 전시하 일본땅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차림이고 허세였다. 조선에서도 일본법이 적용되고있지만 다까도처럼 막강한 권력의 배경을 갖고있고 범한테 달아준 날개처럼 재부까지 겸비한 그한테는 전시법도 통하지 않을것이다.

《저를 치료해준 선생님의 약들은 정말 귀신도 흉내낼수 없는 신비로운 명약입니다.》

다까도가 가져온 약과 신비로운 치료비방이 없었더라면 겐따의 다리상처에서는 지금도 진물이 나왔을것이고 아픔때문에 다리를 절뚝거리였을것이다. 다까도는 다른 외용약들처럼 상처전면에 바르지 않고 중심에 한방을 떨구었으며 먹는 법도 신비로왔다.

약은 꼭 자기 전 하루에 한번만 먹었다. 약을 먹고나서는 15분정도 죽은듯이 누워 움직이지 말아야 했다. 일정하게 시간이 흘러 뒤치닥거릴수 있지만 복용후 인차 몸을 움직이면 무효가 된다고 하였다. 치료기간은 고통스러웠으나 그 효과는 기적적이였다.

《저에게 비방을 가르쳐준분들은 리제마선생한테서 직접 배운 수제자들이였습니다.》

겐따는 다리상처때문에 오래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박사, 교수, 이름난 의사들을 만나는 과정에 어려서부터 적지 않은 의학상식을 가지였다. 생활에서는 오래 앓으며 치료받은 사람이 햇내기의사보다 나은 법이다. 다까도의 치료를 받는 과정에 겐따는 조선의 허준이나 동의보감에 대하여 들었고 리제마의 사상의학에 대한 귀동냥도 하였다.

리제마가 태여난 곳이 《노구찌공업지구》가 꾸려진 여기 함흥이였다.

겐따는 다까도를 통하여 조선의 리제마가 사상의학을 체계화하고 제자들을 키워낸 본거지가 바로 여기 함흥일대라는 말을 어렸을 때 들어 아직 기억이 생생했다. 하지만 내선일체를 부르짖고 창씨개명마저 강행한 때여서 조선것을 자랑하고 내세우면 일본국책에 위반되였다.

《선생은 지금도 치료사업을 하십니까?》

겐따는 말머리를 돌리였다.

《뭐 별로… 지금은 크지 않은 제약상회일을 좀 봅니다. 춘부장이랑 장교님의 이모분께서 도와주고 이끌어주셔서…》

겐따는 지팽이손잡이를 짚고 선 다까도의 왼손에 끼워진 묵직한 금반지를 보았다. 짝으로 된 금반지는 값이 비쌀것이였다.

백금테안경이며 금반지, 은시계줄, 상아손잡이가 달린 지팽이… 큰 부호가 아니면 가질수 없는 치장거리들이였다. 옷차림과 치장거리가 신분을 나타내고 부와 권세를 상징하던 세월이였다.

전시하 비상시국의 국책마저 뻐젓이 무시하려는 다까도의 당당한 태도와 차림에서 겐따는 일종의 위압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오늘의 사회적지위와 점유하고있는 재부, 지난날에 입은 은혜 그리고 나이로 보아 겐따는 다까도를 존대해주어야 일본남아로서의 무사도를 유지할수 있음을 깨달았다.

다까도는 겐따와 마주서 몇마디 인사를 나누고나서 머리를 돌리였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관 한사람이 경계근무를 서고있었다. 다까도는 그를 향하여 가볍게 손짓하였다. 검은 제복의 경관이 겐따를 향해 뛰여오더니 거수경례를 하였다.

《히멜신부가 부탁한 경관입니다.》

해군성 군령부차장은 겐따더러 흥남에 가서 히멜신부를 만나게 되면 인사를 전하라고 말하였었다.

《히멜신부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신부님은 도이췰란드로 가셨습니다. 떠나면서 이 경관을 좀 돌봐달라고 장교님의 이모님께 부탁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이 경관의 교부이시고 후견자이십니다.》

히멜신부의 후견을 받는다는 경관은 다까도보다 키가 컸고 잘생기였다. 숫진 눈섭아래에서 두눈이 부리부리하게 빛났고 귀바퀴가 큼직한 귀는 복스러웠다. 날이 우뚝 선 코아래 인증은 길었고 턱은 무척 단단해보이였다.

겐따는 히텔신부가 부탁했다는 경관을 보는 순간 하나의 생각이 번개쳤다.

생소한 이곳에 뿌리를 내리자면 심복들이 있어야 했다. 지혜로와보이면서도 힘꼴이나 씀직한 경관을 자기의 손발로 써먹고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겐따는 내색하지 않고 거만한 반말투로 물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

《도이췰란드신부님들 덕에 전문학교와 경찰학교를 나왔습니다.》

조선의 경찰들중에 전문학교까지 나온 사람은 몇이 안된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가?》

겐따는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만 했다. 경찰관제복을 입었지만 조선사람으로 고등계에서 일하기는 힘들것이고 감옥간수노릇을 하든가 심부름을 할것이다.

겐따는 도이췰란드신부가 부탁했다는 조선인경관을 선보고나서 그를 등지고 돌아서며 다까도에게 비밀을 귀띔하듯 나직이 말했다.

《료해해보고 고등계형사로 키워보겠습니다.》

조선사람으로 고등계형사는 얼마 안된다. 사상범들을 다루는 고등계형사라면 형사중에서 으뜸이고 모두가 고양이앞의 쥐로 되고만다.

《전 도이췰란드신부님들과 자별한 사이입니다. 신부님의 부탁을 전했을뿐인데 부탁을 중히 들어주시겠다니 저도 고맙게 여기겠습니다.》

다까도는 감지덕지해하며 자식벌인 겐따에게 머리를 숙여보이였고 경관도 온몸이 꼿꼿해지였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히멜신부의 부탁이 아니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여도 무시못할 제가 아닙니까. 입은 은혜에 보답할줄 모르면 사무라이후예가 아니지요.》

겐따는 무척 례절있게 말하였다. 본심은 가리우고 겉치레를 하라는 일본속담대로 하려는 겐따였다.

겐따는 자기와 도꾜에서 같이 온 군수2과장이 서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군수2과장은 흥남의 비밀해군기지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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