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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신경찰서 고등계주임 히라오까 데루오는 흥 하고 코방귀를 뀌며 《동아일보》를 탁우에 홱 집어던졌다.

《그래 이번에두 박히택이가 주먹을 휘두르다가 되려 된방망이에 맞았단 말이지. …》

《예, 어느 고보생의 맵짠 주먹에 뻐드러졌다구 합니다.》

삼겨릅처럼 강마르고 키가 껑충한데다 광대뼈가 툭 불거진 형사 사이또 마스지가 가무잡잡한 얼굴에 비웃음을 담고 이렇게 대꾸했다.

《고보생?》

《변영근의 말에 의하면 그 란장판에서 그놈의 단서를 딱히 잡지 못했지만 학생복차림이니 고보생이 분명하다는것입니다.》

히라오까는 버릇대로 두팔을 앞가슴우에 틀어올리고 창가에 서서 수은같은 안경알을 번뜩이며 앞을 지켜보고있었다. 중키에 목이 앙바틈한 반고수의 중년인 그의 반들거리는 이마와 팽팽한 근육, 날카로운 코, 표정변화가 없는 목각같은 얼굴에서는 싸늘한 기운이 풍기였다.

사이또는 그가 그 고보생에 대하여 뜬금으로밖에 모르는것을 불만해하는것 같아 례사롭게 자기의 생각을 덧붙이였다.

《그까짓 고보생을 잡아내는것쯤은 식은죽먹기입니다. 전교생을 운동장에 줄세워놓구 박히택을 내세우면 즉석에 솎아낼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라오까는 그 말을 대번에 일축해버렸다.

《아니, 그런 얕은 수가 도리여 해로울수 있는거야. 그깐 반도인소사따위가 매맞은것쯤이야 무슨 대수겠나. 원래 그녀석이 전번에 내지인한테 주먹질을 했다가 혼을 뽑힌 놈 아닌가. 그때두 보라구, 두매두 아닌 단매에 길들이지 않았는가. 그런 무뢰한들은 매루 쉽사리 다스릴수 있지만 세상물계에 눈이 튼 지식층들은 함부로 마구 다루어선 안돼. …》

주임은 팔걸이의자에 와앉으며 심중하게 말을 이었다.

《1929년의 광주학생사건만 봐두 그렇지. 우리 일본학생들이 통학렬차안에서 녀고생 몇을 그저 히야까시쯤 한건데, 그야 생활에서 흔히 있을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런데도 그것이 도화선이 돼서 삽시에 조선반도의 194개 학교에 파급되구 6만여명의 학생들이 들고일어나지 않았나.》

히라오까는 사무탁서랍을 열고 미도리 한가치를 꺼내 입에 물고 성냥을 그어댔다.

《우리의 눈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 그것은 두뇌속에 배일사상을 화약처럼 다져넣는 바로 그 지식층이야. 나는 이번 소동에서 중요한건 지식청년들이 우리의 항구적인 〈색복장려〉시책에 도전하는 사상경향이라구 생각해. 우리는 이에 마땅히 주목하고 파고들어야 하네. 지금 함흥형무소에 복역중인 한무선두 여기 혜신출신이라는걸 똑똑히 명심해야 돼. …》

본시 히라오까는 헌병출신으로서 연선일대의 경찰력량을 보강할 때 고등계주임으로 기여든자였다. 그는 《고명》한 선배들이 반도인은 깨는것보다 차라리 잠자는것이 다스리기에 편리하다고 한 말을 《금언》으로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황국신민화》 를 목적으로 장려해오는 교육이 오히려 거치장스럽고 위태로운것으로 되였다. 워낙 그는 헌병노릇을 할 때부터 한때 《총독부》 정무총감이였던 미즈노가 부임하자마자 《조선의 정치는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정치》라고 뇌까리며 내세운 조선어장려에 적극 호응하여 남먼저 조선말에 정통한자였다. 그래서 그는 조선어시험에 선참으로 합격되여 《조선어장려수당》을 받고있었다. 그는 자만심이 남달리 강할뿐더러 도경찰부장인 삼촌의 등을 믿고 우직한 경찰서장쯤한 존재는 헌신짝처럼 여겨오는터였다. …

《…그건 그거구 요즘 그 변영근이 어드래?》

히라오까의 불의적인 물음에 사이또는 어떨떨해있다가 그를 신통치 않아하는듯 한 어감을 포착하였다.

《글쎄 뭐랄지, 한창때는 변장술에두 능하고 꼬리잡이에두 펄펄 날았댔는데 지금은 나이탓인지.…》

그러나 히라오까는 자기의 생각과 빗나가는 얼빤한 그의 말을 부정하듯 왕청같은 소리를 했다.

《그렇지두 않아. 늙은 말이 길을 안다고 요긴한 대목을 맡기는데서는 아직두 그만한 재목이 쉽지 않아. …》

이때 출입문에 조심스러운 손기척이 있었다.

사이또는 닁큼 일어나 문을 열더니 주임에게 얼굴을 돌리며 바로 그가 왔다고 눈짓으로 알리였다. 그리고 그는 곧 나가며 변영근을 들여보냈다.

어지간히 기분이 잡치여 형사실에 돌아온 사이또는 앉을념도 않고 방안을 오락가락하였다. 그는 주임이 신문에까지 소개된 소요의 도전자를 색출하자면 즉석에 자기의 방안에 호응할줄 알았었다.

그랬으면 당장 고보생전원을 몰아내다 세우고 범인을 솎아냈을것이였다. 그런데 그는 대번에 일축하며 광주학생사건에 대한 장광설만 늘어놓지 않는가. 사실상 사이또는 히라오까의 《관록》쯤은 속으로 우습게 여기는 터였다. 그는 워낙 일제가 1920년 3월 《사상범》을 전문취급하는 고등경찰을 새로 내올 때 살인광 기질로 하여 20대에 고등계형사로 뽑힌 후 사람잡이를 도락으로 삼아온자였다. 그는 일제가 1934년 한해동안에 《사상범》의 명목으로 6만 6천 55명의 애국자들을 마구 검거, 투옥, 학살할 때에도 맨 앞장에서 날치던자였다. 놈은 심지어 제손으로 직접 학살한 반도인수가 제 나이의 세곱과 맞먹는다고 으시대였다. …

오늘 주임이 갑자기 변영근을 슬그머니 불러들이고 또 늙은 말이 어떻소 하는 수작을 보면 필시 무슨 꿍꿍이를 하려는게 분명했다. 물론 영근이가 렴탐질이 골속에 밴 검질긴 구렝이기는 하지만 반도인이 아닌가. 무슨 꿍꿍이를 할적마다 영근을 잔뜩 옆구리에 끼고도는 주임이 아니꼽고 눈에 거슬리였다.

몸이 앙바라진 변영근은 주춤거리며 주임의 방에 들어와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히라오까는 느슨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앞탁에서 좀 떨어진 의자를 턱질했다. 영근은 버릇대로 대머리를 수굿하고 주임의 일거일동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치떠보았다.

히라오까가 입을 열었다.

《변상이 늘 수고하는거야 내가 알구두 남는거구… 그런데 오늘 부른것은 좀 시끄러운 일을 맡기자는건데. …》

변영근은 번쩍 대머리를 들었다.

《무슨 일인지?…》

주임은 움쭉 일어나서 방안을 천천히 거닐며 말하였다.

《내가 필요한 때에 한 젊은이를 집에 보내겠으니 그를 친조카로 받아들이는거요.》

영근은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서 히라오까의 얼굴을 멍청히 쳐다보았다.

《그 청년을 깊이 둔갑시켜두구 신변을 성심껏 돌봐주는 일은 변상이 앞에 나서서 하는 일과 같이 중요한거요.》 히라오까는 조선사람 찜쪄먹게 조선말에 능할뿐아니라 통속어도 곧잘 적중하게 섞어쓸줄도 알고있었다.

《그런 일쯤이야 딱소리나게 못하리까, 믿으십시오.》

《생활상문제는 따로 생각이 있으니깐. 그런데 안주인이랑은…》

《그 념련 마십시오. 좀 둔한데다 내 일에는 애당초 간참 안하는 성미니까 내 신칙하기탓이지요.》

변영근이 되려 제편에서 성수나 지껄이였다.

히라오까는 앞탁우에 팔굽을 짚고앉아 표표한 상판에 삵의 웃음을 띄우고 그의 지껄임을 건성 듣고나서 입을 열었다.

《…그리구 오늘 또 변상한테 특별히 줄 임무가 하나 있소. 이것이 기본이요. 》

영근은 귀가 번쩍 띄여 몸을 솟구며 웃몸을 바투 끌어다대였다.

《이미전부터 특별히 주목하고 감시망을 늘였지만 문흥철도공사장에 큼직한 공산빨찌산 정치공작원이 둥지를 틀고있는것 같소.》

《아니, 그 문흥지구야 지난 년초에두 공산빨찌산이 쥐도새도 모르게 도강하여 수백장의 삐라와 격문을 살포하구 일장연설까지 한데가 아닌가요?》

《거긴 원래부터 퀴퀴한데야… 지금 그 지하망이 공사장을 축으루 주변산간부락들에까지 가지를 뻗치는 판국이요.》

이때 전화종이 다급히 울렸다.

주임은 송수화기를 들더니 쐑소리를 질렀다.

《뭣이? 그래서… 음, 꼬리를 절대 놓쳐서는 안돼. 좋아, 좋아…》 그는 송수화기를 놓고 득의양양해서 지껄이였다.

《민형사인데 방금전에 백무선철도공사장으로 련락다니는자의 꼬리를 잡구 한창 미행중이라우. 어벌뚝지 꽤 큰자들이거던. 문흥서 거기가 어데우. 변상, 우리 잘하면 군경내만이 아니라 도적인 범위에서 노란자윌 들어낼지두 모른단 말이요. 그래서 변상이 여기 일도 보면서 문흥지구에 자주 다녀와야겠소.》

《하잇!》


*


원래 대장간집주인 변영근은 고등계특무로서 제 애비때부터 왜놈들의 아래도리에 감겨드는데 이골이 난 놈이였다. 그의 애비는 1890년 《고고학자》의 거짓탈을 쓰고 기여들어 세나라시기의 고분들을 닥치는대로 도굴한 왜놈의 길잡이였고 영근은 20년가까이 특무노릇을 해왔으나 아직은 그 누구도 그가 고등계특무라는 낌새를 채지 못하고있었다. 그는 우시장길모퉁이에 대장간을 꾸려놓고 농쟁기며 소철, 말편자, 우마차바퀴테 등을 벼림질하면서 읍내와 시골들에서 그침없이 찾아드는 사람들이 마음놓고 주고받는 말들을 빠짐없이 주어듣기도 하고 게슴츠레한 눈을 눈두덩밑으로 치뜨고서 그들의 색다른 동정을 낱낱이 살피기도 하였다.

한번은 한 덕담쟁이가 자랑삼아 사립대성학교 한무선선생이 조선력사에 아주 해박하다는 등 임진조국전쟁때 계월향과 론개에 대한 이야기도 어찌나 실감있게 했던지 녀학생들은 모두 울었다는등의 말을 했었다. 영근은 그 말에서 단서를 잡아 즉시 그곳에 갓 전임해간 특무 《조개턱》에게 알리여 종시 한무선은 불온교원으로 축출되게 만들었었다.

그에 앞서 10여년전에는 간도에 있는 독립군들이 군자금조달로 서촌일대에 몰래 드나든다는 통지를 받자 병을 핑게로 대장간문을 걷어 맨 다음 그들의 행처를 찾아 사냥개모양으로 눈에 달이 올라 싸댔다. 우편배달부로 변장을 하고 서촌일대를 샅샅이 훑기도 하였으며 때식을 넘기면서 줄창 길목에 잠복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동초평령을 넘는 독립군의 뒤를 밟기 시작했었다. 그는 서천파출소에 긴급통지하여 경관들과 함께 100여리길을 추적하다가 마침내 중흥리등판에서 그를 체포하였다.

그가 다름아닌 한해전에 서촌리공회청에서 《내선일체》선전을 하던 남석면면장을 륙혈포로 사살한 최성만이였다. 온 한해동안 수사진을 펼치고 악에 받쳤던 왜놈경찰대는 그를 중흥등판에서 총살해버렸다. 최성만의 안해는 남편의 피에 절은 옷을 받아안고 너무도 기가 막혀 경찰관주재소에 달려갔다.

《생때같던 내 남편을 죽인 악귀들아, 당장 남편을 살려내라.》

그는 사생결단하여 대들다가 놈들에게 매맞아죽고 세 아들은 뿔뿔이 자취를 감추었었다.

변영근은 그 《공로》로 《일본시찰단》단원으로 뽑혀 일본에 건너가 《교화단체》도 방문하고 교화강습까지 받으며 왜놈들의 경험도 청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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