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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제4장


9


강산호는 중앙인민위원회의 어느 한 방에서 수령님의 교시와 로작학습을 하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보았고 어떻게 되여 과오를 범하게 되였는가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마치 목적지를 향해 질풍같이 질주하던 기마수가 문득 자기가 길을 헛들었다는것을 깨닫고 달려온 길을 돌이켜보고 어디서 길을 잃었던가를 따져보는것과 비슷한것이였다.

그가 중견급간부로 사업한이래 이처럼 자신을 반성해볼 기회는 거의나 없었다.

아버지가 수령님께서 기억하시고 김일동지와 각별히 가까왔던 항일혁명렬사라는것을 알게 된 이후 산호는 반석같은 그 무엇이 자신의 뒤를 받쳐주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산호에게는 완강한 의지와 전개력이 있었다. 하여 그는 맡겨진 혁명과업들을 책임적으로 수행하였으며 당의 신임은 나날이 두터워져갔다. 그속에서 그는 자신의 힘과 영민한 재능을 자부하게 되였고 어언간에 자신의 존재를 더 높이, 더 널리 시위하고싶은 공명심이 싹트게 되였다. 그것은 영천시 행정경제위원장으로 부임된 후에 더욱 불타올랐다. 그는 온 나라에 소문내는 일군이 되고싶었고 하여 우리 수령님께서 사랑하시는 일군이 되고싶었다.

이러한 때 그는 영천시의 온천에 치료차로 내려왔던 전력공업부 부부장을 하는 간부와 가깝게 사귀게 되였다. 다문박식한 그 사람에게는 얻어들을 소리가 적지 않았는데 그는 산호를 위해 여러가지로 조언을 주기도 하였다. 나이지숙한 그가 어떻게 되여 산호에게 정을 느끼게 되였는지는 알수 없었으나 그는 진심으로 산호를 도와주고싶어했던것이다.

하루는 그와 산호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갔다.

《자네 이 온천지구를 잘 꾸려보게. 여기 온천은 유명하니 각지에서 별의별 사람들이 다 오지 않나. 눈이 번쩍 뜨이게 료양소와 휴양소를 일신시켜보라구. 누구나 이걸 해낸 사람을 두고 이야기할걸세.》

《사실은 아빠트보수에 대한 의견이 제기돼서 그 보수공사를 하자던 참이였습니다.》 하고 산호는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난 자네를 생각해서 조언을 주는거야. 사실 그건 별로 빛이 나질 않아. 그 아빠트를 자네가 건설했나?》

《아닙니다. 이전 위원장시절에…》

《그것 보게. 그 사람이 이른바 공을 세우고 물러난 다음 자네가 뒤치닥거리를 한다는게 좀 억울하거던. 온천지구를 꾸리는것도 인민을 위한 일이라는걸 명심하라구. 한개 군의 인민들보다 온 나라 인민들에게서 호평을 받으면 나쁠게 없지 않은가.》

전력공업부 부부장의 말에서는 진정이 느껴졌고 또 랭정한 진실이 깃들어있는것만 같았다. 그리고 산호의 공명심을 만족시켜줄 알맹이가 금도금처럼 번쩍이였다. 결국 산호는 주민들에게서 제기되는 의견들을 무시하고 자기의 낯을 낼수 있는 사업들에 더욱 열중하게 되였던것이다.

학습을 하는 동안에 자기를 꾸짖던 김일의 모습이 자주 눈앞에 떠오르군 하였다. 아, 얼마나 분노한 모습이였던가. 지난날에는 들을수 없었던 차디찬 그 목소리… 산호는 괴로운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였다.

(응당한 대접을 받는거지.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나는 또 나대로의 한 인간이니까.)

김일이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며 절절하게 말하던 말마디들은 마치 식지 않는 숯불처럼 그냥 가슴에 남아 불타면서 그의 깨끗치 못했던 정신세계를 환히 비쳐주는것만 같았다. 진실과 진리는 바로 김일이 가슴에 심어준 황황 타는 그 불속에 있었다. 그 불은 산호의 정신에 종양처럼 생겨난 불순한 야심을 아프게 지지면서 태워버리고있었다. 그것이 모진 진통을 동반하는것이여서 그는 속으로 신음소리를 내였다.

자신이 인민을 사랑하기보다는 자기자신을 더 생각하였고 인민의 머리우에 군림한 관료배처럼 되고말았다는 뉘우침이 몽둥이마냥 호되게 머리를 쳤고 자신에 대한 쓰디쓴 환멸감이 펄펄 뛰던 자부감을 죽여버리고 허우룩해진 그속에 돌덩이마냥 들어차는것만 같았다.

사람의 사상정신상태는 가변적인것이여서 그 누구도 앞날을 담보하지 못한다. 자기과신에 사로잡히고 도취되면 변질되는것은 순간이였다. 60년대말에 한영덕의 과오를 두고 가슴아파하던 바로 그 강산호가 수령님께서 그처럼 사랑하시는 인민을 무시하는 과오를 범한것이였다. 이에 대해 산호는 사무치게 뉘우치고 절감하였으며 하여 누구앞에서도 머리를 쳐들수가 없었다.

고통스러운 며칠이 흘러갔다. 산호는 퇴근시간이 되면 려관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휴식하군 하였다. 그는 저녁을 먹고싶은 생각이 나지 않아 려관방에 멍히 앉아있었다.

그는 자신이 인차 해임될것임을 각오하고있었다. 그런데 그 결정이 좀 늦어지는것만 같았다. 아픈 매를 기다리는것은 실지 매를 맞는것보다 더 참기 어려운것처럼 그의 고민도 한계점을 가까이하고있었다.

저녁식사를 앞둔 시각이여서인지 자기에게 밥을 차려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어린애였던 자기를 데려다키운 그 어머니를 사랑하였다. 산호에 대한 당의 신임이 두터워질수록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는것은 어머니였다. 녀인은 산호를 키운 보람을 느끼였고 산호의 눈부신 발전에서 지난날의 온갖 고뇌를 잊고있었다. 산호는 어머니의 대견한 웃음을 보는것이 기꺼웠고 어머니를 더 기쁘게 해드리고싶었다.

그런데 이제 자기가 과오를 범하고 해임되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머니는 얼마나 실망할것인가. 자기는 아무리 혹독한 처벌을 받아도 달게 감수할것이지만 어머니에게 타격이 가해질것이 무서웠고 그 생각은 가슴을 아프게 허비였다.

이때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산호는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출입문을 돌아보았다. 허룡이 방에 들어왔다.

《산호동지, 혼자 방에 앉아 뭘하고있습니까?》

《뭘하긴… 그저 고독에 잠겨있을뿐이야.》

《어서 일어나십시오. 1부주석동지가 부릅니다. 자, 갑시다.》

《무슨 일이요?》

《가보면 알게 아닙니까? 빨리 갑시다.》

(결판이 내려졌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산호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하기야 더 물을것도 없지. 가보면 알게 될테지.)

그는 허룡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갔다. 승용차는 뜻밖에도 김일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희여진 머리칼을 단정하게 빗어넘겨 뒤로 쪽진 허창숙이 비록 주름살들이 많긴 하지만 깨끗하고 부드러워보이는 얼굴에 밝은 웃음을 짓고서 산호를 맞이하였다.

《령감이 반가운 손님이 온다더니 산호였구나. 어서 들어가자.》

산호는 허창숙의 안내를 받으며 응접실에 들어가 쏘파에 앉았다. 벽에 붙어있는 폭이 큰 그림, 수령님께서 김일에게 보내주신 선물인 유화가 별로 의미깊게 산호에게 안겨왔다. 항일무장투쟁시기 김일성장군님께서 산중의 밀영에서 김일에게 임무를 주시는 장면을 형상한 유화인데 산호에게는 왜서인지 그때처럼 현재의 김일이 수령님앞에서 그 어떤 과업을 받고있는 모습이 그림우에 겹쳐서 떠오르는것이였다.

저도 모르게 마음이 숭엄해져서 앉아있노라니 장현철이가 들어섰다. 어쩐지 현철이는 풀이 죽어 시무룩해진 인상이였다. 산호와 현철은 놀라는 눈길로 마주 쳐다보았다.

《산호아저씨,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산호는 현철의 물음에 머리를 흔들었다.

《아저씨, 안됐습니다.》

현철은 미안한 어조로 말하면서 산호의 곁에 앉았다.

그런데 산호는 현철이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도저히 리해할수가 없었다. 하여 그는 의아한 눈길로 의기소침해진 현철을 바라보고있었다.

《네가 안될게 뭐 있니? 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탓인데…》

《그래도…》

이때 밖에서 승용차가 와멎는 소리가 들리더니 김일이 응접실에 들어왔다. 그는 덤덤한 눈길로 방안의 사람들을 휘둘러보더니 현철에게 물었다.

《왜 설미는 데려오지 않았느냐?》

현철은 고개를 숙이며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였다.

《설미는 나와 함께 오기를 거절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도깨비같은 소리야?》

《그저 그럴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김일은 속으로 짐작되는바가 있는지 더 캐여묻지 않았다.

《아버지는 뭘 하시냐?》

《아버지는 몸이 좀 불편해서 누웠습니다.》

김일은 어두운 안색으로 머리를 끄덕이였다.

잠시후 어둠이 깃든 저택마당에서 모닥불이 타오르고 그 주위에 김일과 허창숙, 허룡서기, 림병욱부관, 산호, 장현철이 앉았다. 그들속에 김일의 집에서 자라고있는 진성봉의 맏딸인 진수련이 끼여있었다.

모닥불속에 묻은 감자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있었다.

《산호가 오래간만에 평양에 올라오고 또 래일은 떠나가야 하기때문에 감자구이라도 함께 하자고 불렀다.》

김일은 여전히 소심하고 송구한 낯빛을 하고있는 산호에게 말하였다.

산호는 불시에 김일의 다심한 정을 느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야 이젠 다된 놈인데 이렇게까지 날 생각해주다니…)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현철이 아버지와 한설미도 불렀는데 다 사정이 있어 오지 못했으니 할수 없지. 현철이, 네가 좀 섭섭할수 있는데 후날 또 모여앉기로 하고 오늘은 우리끼리 감자구이를 하는수밖에…》

밤하늘에 금싸래기들을 쥐여뿌린듯 한 뭇별들이 정원에 타오르는 모닥불을 시샘하듯 반짝거리는데 모닥불은 그 뭇별들을 무시하듯 너울너울 타며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각이한 얼굴을 비쳐준다. 대체로 심중한 얼굴표정들인데 유독 좋아서 방실거리는것은 12살에 잡히는 진수련이였다.

김일이 분위기를 눙치고싶은듯 웃는 얼굴로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뜻밖의 질문이여서 누구도 대답을 못하고 서로 쳐다볼뿐이였다.

《산호가 한번 말해보게. 시위원장을 하면서 잘 먹었을테지? 아래사람들이 위원장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았을거란 말이야.》

산호는 얼굴을 붉히였다.

《뭐 특별하게… 난 뭐 이렇다 하게 맛있는걸… 난 그만하면 소박합니다.》

산호가 갑자르며 하는 말에 좌중의 사람들이 웃음을 터치였다.

《그러면서도 대감이란 소릴 듣는단 말인가?》 김일이 호방하게 껄껄 웃었다.

《난 아무리 봐도 산호동무에게서 대감같은데를 찾지 못하겠는데요.》 하고 허창숙이 말하였다.

《우리 시대의 대감은 옛날처럼 요란한 관모를 쓴것도 없으니 뭐 외형상에선 특별히 나타나지 않소. 그리고 나라에서 씌워주는것이 아니고 인민들이 일부 간부들에게 그런 모자를 씌워주는데 그땐 그 대감칭호를 받은 간부는 자신이 당의 신임을 저버렸다는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거지.》

김일의 말을 듣고 산호는 귀뿌리가 화끈 달아올랐다.

《전 행정위원장자격이 없습니다.》

《할아버지.》 하고 어린 진수련이 당돌하게 화제속에 끼여들었다.

《난 대감은 못되여도 무엇이 제일 맛있는지 알아요.》

《그래 뭐냐?》

《그건 바나나예요.》

그러자 좌중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아니, 고작 짚는게 바나나란 말이야?》 하고 현철이가 진수련에게 퉁을 주었다.

《왜, 바나나가 어때서요? 오죽하면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겠어요.


새빨간건 사과

사과는 맛있지

맛있는건 바나나


어때요?》

좌중에는 순간에 즐거운 화기가 흘렀다. 김일이 곁에 앉은 수련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우리 수련이가 아직 아이는 아이로구나.》

그러면서도 김일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유격근거지의 아동단원들이 혁명가요를 많이 불렀지. 참 듣기 좋았댔어. 우리 애들이 잰내비가 어떻고 바나나가 어떻다는 동요보다는 아동단원들이 부르던 혁명가요를 즐겨부르게 해야지. 교육부문과 사로청일군들에게 주의를 주어야겠어.)

이윽고 김일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난 가랑잎 타는 냄새가 제일 맛이 좋더구나. 수령님의 신임으로 높은 직책에서 사업하느라니 국가연회에도 많이 참가했고 또 외국방문시 그 나라 사람들이 자랑하는 여러가지 료리들도 맛보았다만 잊을수 없는건 이 가랑잎 타는 냄새야.》

김일은 장작가치 한개를 들고 모닥불을 헤집으며 감자들을 골라내였다.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가랑잎이라도 태우면 덥힌 물이라도 먹을수 있었지. 나무할 틈도 주지 않는 왜놈들과 싸우다나니 가랑잎을 모아가지고 짧은 시간에 피우던 그 불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산호는 김일의 말에 깃든 큰뜻이 리해되면서 머리가 숙어졌다. 그것은 항일의 혈전만리가 얼마나 간고했는지를 깨우쳐주는 말이였다.

《이젠 감자가 익었나부다. 모두 먹어보자구.》

김일은 익은 감자 한개를 산호의 손에 들려주었다. 자기도 한개를 들고 굵은 소금알을 뿌리면서 말하였다.

《감자구이에는 이런 소금이 제격이지. 소금의 진맛을 알아야 사람구실을 해.》

김일은 소금을 찍은 감자를 한입 베여먹었다. 그런데 산호는 어쩐지 목이 메여와서 감자를 제대로 먹을수가 없었다.

《산호가 비판서를 여러번 썼는데 그만하면 자기 결함을 찾았다고 본다. 그래 이제 내려가면 어떻게 하겠니?》

《문제로 된 아빠트들의 보수를 다그쳐 하루빨리 끝내겠습니다.》

《아니다. 우선 첫 공정으로 시민들에게 자신이 인민의 심부름군으로서 죄를 진데 대해 사죄해야 한다. 그렇게 할수 있겠느냐?》

《예. 시민들앞에서 자신의 결함을 비판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 넌 수령님께서 그처럼 아끼고 사랑하시는 그 인민을 우습게 여겼지. 그걸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들이 용서하고 개심할 기회를 줄 때라야만 넌 자기 사업에 착수할수 있을것이다.

내가 그동안 그 아빠트문제해결방도도 생각해봤는데 한번 들어봐라. 화를 복으로 만들어야 한다. 난 그 4층짜리 아빠트들을 증축하는게 어떨가 한다. 설계전문가들과 토론해봤는데 2층을 더 올려도 일없겠다고 하더라. 시민들의 주택문제도 해결하고 지붕공사도 새로 하면 좋지 않겠느냐. 물론 이건 내 욕심이고 네가 한번 전문가들과 구체적으로 타산해봐라.》

산호는 눈물이 절로 솟구치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난 그동안 자신의 처벌문제만 생각하고있었는데 김일동지는 아빠트문제를 풀 방도를 생각하고있었구나.

《현철이가 쟁쟁한 설계가이니 산호위원장을 따라내려가서 도와주거라. 네가 소속된 기업소에는 내가 토론해보겠다.》

모두 감동된 표정으로 김일을 보는데 그의 말은 계속되였다.

《산호는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우선 자신을 그 어떤 특수한 존재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과오의 시작으로 된다. 너희들은 어디 가든 자신이 혁명가유자녀라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신을 내세우려는것이고 그 어떤 인정을 받으려는것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털어놓고말해서 산호가 정익동지의 아들이 아니라면 이번에 범한 잘못을 그렇게까지 엄중시하지 않을수도 있었다. 장종학동무도 그런 제기를 했었지. 하지만 난 네가 다름아닌 수령님께서 아시는 항일혁명렬사의 후손이기때문에 더욱더 너를 관대히 보아줄수가 없었다.》

김일은 아직도 기세좋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이글거리는 모닥불속에 항일무장투쟁시기 산에서 숙영하던 유격대원들의 모습이 어려왔다. 장군님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조국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던 대원들, 장군님을 모시고 기어이 조국으로 가리라고 굳게 다지던 유격대원들의 그 맹세가 숙영지의 모닥불로 되여 타오르는것만 같았었다.

(내가 너희들에게서 바라는게 뭐겠니? 항일혁명투사들의 그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해가라는거지. 백두의 혁명정신을 잊지 말라는거지.)

김일은 모닥불에 장작가치를 덧놓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혁명가라고 해서 자식들이 저절로 혁명가가 되는것은 아니며 혁명가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해서 저절로 혁명가로 자라나는것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주체의 혈통이란 생물학적인 혈통이 아니라 사상의 혈통이며 주체형의 피라는것은 육친적인 피가 아니라 수령님께서 부어주신 사상의 피, 신념과 의지의 피이다. 이것은 언제인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명제이다.

오직 자각적이고 의식적인 사상수양과 혁명적인 단련과정을 거칠 때에만 부모들이 걸어온 충성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나갈수 있으며 주체의 혈통을 순결하게 이어나갈수 있다. 내가 너희들에게 바라는것은 바로 그것뿐이다. 덧붙여 말한다면 나도 수령님의 사상의 피를 이어받은 그이의 아들이고 전사이다. 난 지금껏 수령님께서 주신 이 혈통의 순결성을 고수하기 위해 투쟁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것이다.》

산호에게는 문득 몇년전인가 김일이라는 이름에 깃든 사연을 물었을 때 김일이 한 말이 떠올랐다.

《네가 알고있는것처럼 김일이란 이름은 수령님께서 지어주신것이다. 김이라는 성은 수령님의 성을 받았고 일이란건 하나를 의미하는것이다. 수령님께서는 내가 혁명 하나만을 알고 살라고 김일이라는 이름을 주신것이였다. 나는 자신이 김일로 불리우는것을 최상의 영광과 행복으로 여기고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수령님은 민족의 구세주이고 혁명의 수령이실뿐아니라 나에게 피를 주고 생명을 준 부모와 같은분이시다. 때문에 나는 수령님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산호는 사위여가는 모닥불빛이 얼른거리는 김일의 엄숙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가 자기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빛내이고있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였다.

(이분은 결코 다르게는 살수 없는 그런분이다!)

산호는 불냄새가 별로 구수하게 느껴졌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군감자가 다시 맛보기 어려운 진미처럼 여겨지는것이였다.

《내려가기 전에 장아저씨를 만나보거라. 그 사람이 산호를 관대히 봐주자고 하기에 내가 비판을 좀 했단다. 아마 지금 괴로워하고있을게다.》

김일은 이렇게 산호에게 말하면서 장종학의 여윈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고있었다.

(좀 아프겠지. 허나 그만큼 앓아보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것이다.) 하고 김일은 생각하고있었다.


한식경이 지나 김일의 저택을 나선 산호는 김일이 일러준대로 장종학의 집을 찾았다. 김일이 말하지 않아도 장종학을 만나보려는 생각은 이미전부터 하고있었었다. 자기때문에 되게 비판을 받았는데 모르는척 할수가 없는 산호였다.

(다 나때문이다. 내가 제구실을 못하여 장아저씨까지 신경을 쓰게 만들었지.)

현철이가 설미를 만나보겠다고 하는 바람에 산호는 혼자서 종학의 집으로 갔다. 종학을 생각하노라니 해방직후 림의호의 테로에 의해 허창숙이 부상당하고 어린 아들애가 죽은 다음 장종학이 산호가 의호를 집에서 재웠다는것까지 알게 되자 성이 나서 귀뺨을 후려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산호는 종학이 그때처럼 자기의 뺨을 후려갈겼으면 속이 후련할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철없던 지난날처럼 죽고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것이다. 오히려 《고마워요, 날 더 세게 때려주세요.》라고 빌것만 같았다.

산호가 집에 들어가보니 장종학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디 앓습니까?》 산호는 놀라서 침대맡에 앉으며 종학의 팔을 잡았다.

종학은 산호를 보자 놀란듯 벌떡 일어나앉았다. 그의 잘생긴 얼굴은 헐끔하니 살이 빠지고 창백하였다. 그동안 종학이 얼마나 고민하였는가가 잔주름투성이의 그 여윈 얼굴이 다 말해주고있었다.

《그래, 어떻게 처리를 받았나?》

《관대하게 용서를 받았습니다. 인민들에게 사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종학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의 얼굴에는 안심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럼 됐어. 다시 그런 결함을 반복하면 용서받지 못해, 알겠나?》

《이번에 심각하게 나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앞으로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인민의 참된 충복이 될 결심입니다.》

《좋아, 1부주석동지도 다 자네를 생각해서 더 크게 문제를 본거야. 강정익동지에 대한 의리를 그렇게 지키는거지.》

《알고있습니다.》

산호는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얼굴을 옆으로 돌리였다.

이윽고 그는 종학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디 앓고있습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 마음이 아파 앓는거야.》 종학은 시름에 겨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종학은 김일에게서 별도로 되게 비판을 받은 후에 중앙인민위원회의 당원들앞에 나서서 자기비판도 하고 당원들에게서 비판도 받았다. 지금까지 별로 큰 과오도 없어 큰 비판무대에 나서본적이 없었던 그로서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아저씬 혹시 1부주석동지를 원망하고있지 않습니까?》 하고 산호가 물었다.

《내가 왜 그분을 원망하겠나. 그분이야 원래 원칙이 칼날같은 사람인걸. 내 순간이나마 그걸 망각하고 얄팍한 인정을 기대하려 했으니 욕을 먹어도 싸지.》

산호는 김일의 집에서 감자구이를 하면서 오고간 이야기를 하였다.

《아저씨도 왔을걸 그랬습니다. 김일동지가 섭섭해하시더구만요.》

《섭섭해한다구?》

장종학은 미덥지 않은 눈길로 산호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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