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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제4장


1


나라의 중부에 위치한 영천시는 큰 공장, 기업소들이 많이 집중되여있는 도시였다. 도시의 중심부엔 현대적인 건물들과 주택들, 극장과 영화관, 상업봉사기지들이 구색에 맞게 일떠서 시민들의 생활상편리를 보장해준다. 영천시의 상업봉사활동에 대한 료해지도차로 이 도시에 온 상업부 지도원(당시) 한설미는 즐겁고 만족한 기분으로 거리를 걸어가고있었다. 평양시의 어느 한 구역상업관리소에서 일하던 설미는 1년전에 상업부에 소환되였다.

몸집이 실하면서 균형이 잡힌 처녀는 한여름철에 맞게 아름다운 함박꽃을 수놓은 흰색달린옷을 입었는데 경쾌한 걸음걸이에 따라 치마자락이 실팍한 다리에 감겨들기도 하고 펄럭이기도 하였다.

(그만하면 깨끗하고 발전된 도시야. 주민들에 대한 상업봉사도 원만하게 진행되고있으니 이만한 정도면 괜찮지 뭐.)

반짝반짝 윤기도는 숱많은 검은 머리채를 목뒤에서 댕기로 묶어 흰목이 상큼하니 드러난 처녀의 흰 얼굴에서 가장 볼만 한것이 쌍까풀지고 억실억실 빛나는 두눈인데 그윽해보이는 그속에서는 미소가 남실거리였다.

처녀의 머리속에는 17일전에 현철이와 헤여지던 일이 떠올랐다. 2년전에 평양도시설계사업소로 조동된 현철은 당창건 30돐을 맞으며 본격적으로 벌어진 평양시건설사업에서 공로를 세웠다. 기업소의 혁신자들에게 금강산휴양권이 내려왔는데 현철이도 동무들과 함께 휴양을 가게 되였다. 설미는 휴양을 떠나는 현철이를 바래주기 위해 평양역에 나갔었다.

그들은 렬차시간을 기다리며 역전공원에 앉아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에 겨운 웃음꽃이 피여있었다.

현철이와 설미가 사귄지도 이제는 퍼그나 세월이 흘렀고 또 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지도 3년이 된다. 바로 3년전 대성산혁명렬사릉건설이 한창 진행되던 그때 현철의 가슴속에 자신도 모르게 싹터자란 사랑은 뜻밖의 리별이 닥쳐든 정황에서 세차게 솟구쳐올라 설미를 따뜻이 감싸안았다. 설미의 사랑도 리별이 참기 어려워 울었다. 그런데 일은 다시 뒤집어져 지방에 배치받은 부모를 따라간다던 설미는 끝내 그들에게 설복당하여 평양에 남게 되였다. 결국 쓰라린 가슴을 안고 평양역으로 나왔던 현철은 사랑하는 처녀와 함께 그의 부모를 바래워주게 되였다. 얼핏 보면 일이 괜히 맹랑하고 엉뚱하게 불거졌던것 같았지만 이 청춘남녀를 위해서는 참으로 유익한 시험이였으니 그들은 품고있던 사랑을 어쩔수없이 폭로하였고 드러난 그 사랑을 서로 기껍게 받아들이였던것이다. 이제 더 무슨 사랑의 고백이 필요하랴.

하지만 그들은 결혼을 서두르지 않았다. 이 자랑할만 한 청춘들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결혼할것을 약속하였다. 하여 그들은 지성을 다 바쳐 힘껏 일하였다.

그후 현철이가 먼저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고 설미도 뒤따라 입당하게 되였다. 현철이는 값높은 위훈을 세워 신문에도 소개되였다.

설미의 아버지 한영덕이 이해(1976년) 6월에 남쪽지역의 도행정경제위원회(당시) 위원장으로 임명되였다. 그것은 아버지일로 적지 않게 고심을 한 설미에게 더없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마침내 그들은 서로의 부모들과의 합의하에 결혼식날자를 정하였다.

현철이 휴양을 끝내고 돌아오면 인차 결혼식을 하게 될것이다. 휴양기간은 보름이였다.

렬차를 기다리면서 설미는 현철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미남자이지만 어쩐지 몸이 약해보이는것이 눈에 거슬리였다.

《너 왜 그렇게 보니?》 하고 현철이가 물었다.

《오빠, 내 하나 간절하게 하고싶은 말이 있어요.》 설미는 새물거리며 웃었다.

당장 결혼을 앞둔 이 시각에도 그들은 여전히 오빠, 동생처럼 지내던 그 시절의 말투를 버리지 못하였다. 이제는 너무나 습관된탓에 달리 부른다면 퍽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울것이였다.

《오빠, 지금 몸무게가 얼마예요?》

《61키로야.》

《나보다 도제 3키로가 많군요, 호호… 아무래도 몸무게를 늘궈야 하겠어요. 키에 비해 너무 말랐단 말이예요. 배가 사흘이나 굶은것처럼 훌쭉해가지고… 안되겠어요. 그래서 내 오빠에게 중요한 임무를 하나 주자는거예요.》

《아니, 동생이 오빠에게 무슨 임무를 준단 말이야. 버릇없이…》 현철은 웃으면서 큰소리를 쳤다.

《아이구, 무섭게는 구네. 그럼 부탁이라고 하자요.》

《어디 말해봐라.》

《심각히 들어야 해요.》

《응.》

《내가 주는 임무가 무엇인가 하면… 아니, 부탁이라고 해야지. 안됐어요. 정말 까다롭게는 군다니까. 내 부탁이 무엇인가 하면 이제 휴양가서 몸을 부쩍 내야 한다는거예요. 알겠지요?》

《그거야 뭐가 어려울게 있니. 네가 몰라보게 살이 피둥피둥 쪄서 오겠다, 하하…》

《좋아요. 한 10키로는 불어야 해요. 총화를 단단히 짓겠어요. 이 동생이 짓는 총화는 간단한게 아니예요.》

《부탁이라면서 총화는 무슨 총화야?》

《오빠가 동생에게 얼마나 성실한가 판결을 내리겠다는거예요.》

《그 판결은 어떻게 내리니?》

《10키로가 불어나지 않으면 결혼을 포기한다는거.》

《네가 날 막 위협하는구나. 에이, 내가 동생에게 져야지. 하긴 동생이라는것도 이젠 낡은 말이지. 이제야 미래의 안해가 될 녀자가 아니야. 설미가 그렇게도 간절히 부탁하니 내 결사적으로 몸을 내겠다. 금강산의 맑은 물이 날 도와주겠지. 그런데 10키로까지는 좀 힘들겠는데…》

현철은 웃으면서 슬쩍 설미를 보았다.

《언제든지 희망을 잃어선 안돼.》 하고 설미는 엄숙하게 말하였다. 《이게 누구의 격언이지요?》

《글쎄…》

《이게 바로 저명한 설계가이신 장현철선생의 격언이지요. 생각 안나요? 내가 대학입학시험 잘못 치고 울 때 슬그머니 다가와 그림에 이런 격언을 써주었지요. 〈언제든지 희망을 잃어선 안돼〉 호호…》

《내가 그랬던가? 하하…》

현철은 뻔히 기억하고있으면서도 모르쇠를 하였다.

《그런데 난 몸이 자꾸 나서 고민이예요. 처녀가 이렇게 몸이 나면 어쩌나.》

《그럼 나는 몸이 더 나고 넌 몸을 좀 까겠다는것을 약속해야지. 몸매가 날씬해지게…》

《노력해보겠어요. 한 5키로는 까야겠는데… 그런데 자신이 없어요. 뭘 먹지 말아야겠는데 자꾸 입에선 당기지요 뭐.》

현철은 속상해서 입술을 삐죽 내미는 설미를 사랑스럽게 여겨보았다.

《언제든지 희망을 잃어선 안돼.》 현철은 설미의 말투를 흉내내며 말하였다.

《그래요, 언제든지 희망을 잃어선 안돼. 호호…》

《하하하…》

역전공원에서 현철이와 나눈 대화를 상기하노라니 설미의 입가에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실리였다.

(현철오빠가 이젠 돌아왔을거야. 몸이 좋아졌을가. 몸이 좀 나면 정말 보기 좋을거야. 내가 평양에 없다는걸 알면 아마 조바심이 나겠지. 내가 그렇게 그를 그리워하는데 그야 뭐 나보다 더하겠지. 현철오빠, 좀 기다려요.)

설미는 눈앞에 떠오르는 현철을 향해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그렇게 얼굴을 찌프리지 말고 하루만 참고있으라요. 난 래일 돌아갈거예요.)

이날 설미는 출장의 마지막일정인 영천시 백화점에서의 료해사업을 마무리하였다. 그는 백화점지배인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 지도원동무가 내려와서 우리에게 큰 방조를 주었어요. 앞으로 자주 내려오세요.》

몸집이 뚱뚱한 녀인인 지배인은 밝은 인상으로 머리를 숙이였다.

《나야 당의 상업정책이 어떻게 집행되는가를 료해하는건데 방조랄게 있어요? 앞으로 기업관리에서 보다 큰 성과를 거두기를 바랍니다.》

판매원복장을 한 녀인이 지배인방에 들어왔다.

《지배인동지, 아무래도 시간을 받아야겠습니다. 집보수공사를 해야겠는데 세대주는 출장을 가서 없으니 나라도 들어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울상을 한 판매원은 갑자기 설분을 터쳐놓았다.

《이거야 어디 살겠어요. 시행정위원장이란 사람은 도대체 뭘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이렇게도 인민생활에 무관심하니… 그래가지고서도 우쭐해서 승용차만 타고다니니 녹아나는건 우리같은 주민들이예요.》

지배인은 옆에 설미가 있는데서 말하는것이 딱한듯 판매원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됐어요. 여기서 말해야 뭘하겠어요. 어서 집에 들어가봐요.》

판매원이 나가자 설미는 지배인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지배인은 설미를 외면하고 책상을 내려다보다가 말하였다.

《지도원동무에게 뭐 숨길것도 없지요. 시행정위원장이 자기가 책임진 시민들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소리예요. 영천시는 최근년간에 일군들을 잘못 만나 시민들이 좀 고생을 한답니다. 지도원동문 지금 영천려관에 들어있겠지요? 시간이 있으면 그앞에 있는 아빠트 4층에 한번 가보세요. 4층짜리 아빠트니까 만장이지요. 이자 시간을 받겠다고 왔던 판매원이 그 4층에 살고있는데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새서 야단입니다. 그러나 행정위원회에선 제기를 받고도 꿈만해하지요. 위원장이 책임지고 제때에 대책을 세워야 할게 아닙니까.》

이날 오후 설미는 지배인이 대준 아빠트에 가보았다. 며칠째 비가 자주 내리고있었다. 설미는 우산을 쓰고 차색외장재를 바른 아담해보이는 아빠트를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겉보기엔 별로 나무랄데가 없어보이였다. 설미는 지배인이 대준 집주소를 찾아들어갔다.

《아이, 지도원동무가 어떻게 여기에 왔어요?》

오동통한 몸집에 얼굴이 귀염성스러운 판매원녀인이 놀라면서 설미를 맞아들이였다.

《예, 집구경 한번 해보고싶어서 왔습니다.》

《집구경을 한다구요? 아이구, 어서 들어와요.》

집에 들어가니 비가 새서 어느 방에는 소랭이들을 여기저기 놓았고 어느 방에는 천정에 비닐박막을 쳐놓고있었다.

《밖에서 보기엔 아빠트가 괜찮아보이던데…》

설미는 혼자말처럼 말하였다.

《빛좋은 개살구지요. 우리 집의 꼴이 바로 괜찮아보이는 아빠트의 실태랍니다.》

《왜 이렇게 살고있어요? 간부들에게 제기를 단단히 해야지요.》

《그 사람들이 우리같은 사람들을 왼눈으로나 쳐다본답니까? 아빠트를 지어놓고 만세를 부르면 그만이지요. 그후의 일은 주민들이 해결하라는거예요. 그러니 어떤 집들에선 자체로 지붕공사를 다시 하지만 우리같은 집에서야 비가 올 때면 하기 싫어도 샤와를 해야지 별수 있어요? 우린 그래도 비물을 가득 받아놓아 다른 집들보다 물고생을 적게 하니 그건 또 하나의 유리한 측면이라고 할수 있지요. 다른 집들엔 수도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물을 길어먹느라 고생이랍니다. 그래도 행정위원회에선 〈좀 참으라, 대책을 강구하고있다.〉는 말로 굼때군 하지요.》

설미는 생각이 깊어져서 아빠트의 층계를 내리였다. 어쩌면 우리 일군들이 이렇게도 인민생활에 무관심할수 있단 말인가. 설미는 의분이 치밀어올라 견딜수가 없었다.

그는 즉시 시행정경제위원회를 찾아갔다. 접수실에 앉아있는 사람이 위원장이 없다고 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로 위원장동지를 만나러 왔는가요? 아는 사이인가요?》

《난 출장을 왔던 사람인데 그저 위원장동지를 만나 제기할 문제가 있어서 왔습니다.》

《후날에 오십시오.》

벼르고 왔는데 당사자가 없다니 설미는 맥이 풀리였다. 그가 멍히 서있는데 누구인가를 만나러 와서 기다리던 사람이 한마디 하였다.

《위원장을 만나기가 쉬운줄 아시오?》

성미가 퍽 늘어진듯 기다림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담배를 피우고있던 그 사람은 설미를 놀리듯 히물히물 웃었다.

《위원장을 아세요?》 설미는 깔끔하게 물었다.

《영천시사람이 자기 위원장을 모르겠소? 일을 하겠다는 열성이 높은분이지요. 그러니 무사분주하게 다닌단 말이요.》

《그런데 사람들이 말하는걸 보면 평이 좋지 않던데요?》

《간부가 어떻게 모든 사람들의 비위를 다 맞추겠소? 더러 싫다는 사람이 있어도 할수 없는거요. 그래 무슨 제기를 하려고 하오?》

《동지는 누구세요?》

《영천시사람이라지 않소?》

《그럼 됐어요.》

설미는 기분이 나빠서 행정위원회를 나섰다. 어쩐지 행정위원장을 두둔하던 그 사람이 얄밉게 생각되였다.

(뭐 간부가 어떻게 모든 사람들의 비위를 다 맞추는가구? 더러 싫다는 사람이 있어도 할수 없다구? 저게 진정한 인민의 목소리일가? 하긴 위원장을 긍정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건 좋은 일이다. 위원장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흰쌀에 뉘섞이듯 보잘것없을수도 있지. 하지만 인민의 고생을 외면하고 무슨 일을 한다고 무사분주히 돌아친단 말인가. 영광스러운 당중앙에선 일군들이 낡은 사업방법, 사업작풍과 결별하고 일본새에서 혁신을 가져올것을 요구하고있지 않는가.)

어느덧 비가 걷히여 거리는 다시 활기로와졌다.

려관으로 돌아오던 설미는 려관근처의 아빠트에서 물을 긷는 사람들의 모습을 띄워보게 되였다. 여러명의 녀인들이 바께쯔와 비닐통들을 들고 아빠트층계를 오르내리고있었다. 아이들까지 자그마한 비닐통들을 들고 땀을 빨빨 흘리며 어머니를 따라 종종걸음을 치고있다.

설미는 늙수그레한 녀인에게 다가가서 물바께쯔를 받아들었다.

《제가 좀 도와드리지요.》

《저… 누구신지…》 녀인이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난 평양에서 출장온 사람인데 려관에 들어있어요. 일을 다 보고 시간이 좀 있길래…》 설미는 물바께쯔를 들고 걸음을 옮기며 말하였다.

《그럼 좀 쉬여야지 이러면 미안하지 않나. 어서 바께쯔를 이리 달라구.》

《괜찮아요.》

《원 고맙기도 해라.》

《물을 길어먹자니 얼마나 고생많겠어요?》

《수원지에 물이 얼마 없어 그런다는데 이제 대책을 세운다는구만.》

《물을 어디서 길어오는가요?》

《가까이에 우물이 있다오.》

설미는 물바께쯔를 들고 녀인의 집에 올라갔다. 위생실에 들어가보니 물탕크에 약간 물이 깔려있는데 빨래줄에는 어린애기저귀가 가득 널려있었다.

《우리 며늘애가 갓 애기를 낳다보니 빨래감들이 많아서 다른 집보다 물을 많이 써요.》 녀인은 변명처럼 말하였다.

방에서 얼굴이 부석부석한 애젊은 녀인이 애기를 안고나왔다. 그는 시어머니에게 죄송스러워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내가 물을 긷겠어요.》

《아서라, 산모가 찬바람을 맞으면 안돼. 산후탈에 걸리면 온 집안이 고생이야.》

설미는 한숨을 내쉬며 물바께쯔를 들고 그 집을 나섰다. 아빠트에서 한 백여메터 떨어진 곳에 우물이 있었다. 우물가에 여러명의 녀인들이 모여 드레박질을 하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있었다.

《이건 언제까지나 물고생을 해야 하는지…》

《언제 해결되기나 하겠어요. 우리가 사는 아빠트에는 간부들이 살지 않으니 해결될 전망이 없는거예요.》

《간부들도 물을 좀 길어봐야 해요.》

그래도 리해력이 있는 녀인들도 있는지 반박하는 소리도 들린다.

《간부들에게 무슨 사정이 있겠지요. 아무렴 그들이 변학도가 되겠나요.》

설미가 물바께쯔를 들고 다가가자 녀인들이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낯이 선데다가 옷차림과 자태에서 자기들과는 다른 체취가 풍기는것 같았기때문이였다.

《안녕하십니까?》 설미는 례의를 차려 인사를 하였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녀인들중의 한명이 물었다.

뒤에서 따라온 례의 그 늙수그레한 녀인이 설미를 대신하여 대답하였다.

《출장을 와서 려관에 든 손님이라누만. 우리가 물고생을 하는걸 보고 도와주겠다고 나섰구려. 고맙기도 하지.》

설미는 녀인들과 어울려 드레박질을 하였다. 그러면서 녀인들에게 물었다.

《이렇게 물고생을 하는지 오래되였는가요?》

《새 아빠트에 입사한 후 한 몇달은 수도물을 받아써본것 같애요. 그 다음부터…》

《만장에 있는 세대들은 비가 오면 물이 새서 고생하는것 같더군요.》

《어떻게 잘 아는구만요. 정말 말이 아니예요.》

설미는 두팔이 뻣뻣해지도록 땀을 흘리며 물을 길어 날랐다.

힘이 들면 들수록 격분의 감정은 더욱더 강해진다.

(이 실태를 어떻게 참을수 있겠는가.)

그의 머리속에는 얼마전의 명절날에 김일의 집에 갔다가 들은 말이 떠올랐다. 그때 김일과 그의 아들 박용석이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박용석이 수령님을 모시고 인민생활문제를 토의하는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의 회의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 회의에서 수령님께서는 장판지 한평방에 종이가 몇그람 들어가는가를 물으시였는데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박용석에게도 물었는데 그도 대답을 못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일군들이 이렇게 인민들의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따지고드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인민생활이 올라가겠는가고 못내 서운해하시였다는것이다.

박용석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김일은 감심어린 얼굴로 말하였다.

《우리는 수령님의 사업방법을 배워야 한다. 수령님의 머리속엔 어떻게 하면 인민들을 잘살게 하시겠는가 오직 그 한생각뿐이시란다. 그리고 너희들은…》 하고 김일은 그 자리에 있던 설미를 보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자기들이 인민의 충복이 되기 위해 노력할뿐만아니라 인민생활에 무관심한 관료주의자들을 반대해서 강한 투쟁을 벌려야 한다.》

설미의 귀전에는 그날 김일이 하던 그 당부가 울리는것만 같았다.

(…강한 투쟁을 벌려야 한다.)

이날 설미는 물긷기를 끝마친 후 여러 아빠트의 주민들을 만나 실태를 상세하게 료해하였다.

다음날 평양으로 돌아오는길에 시행정위원회에 다시 들리였는데 역시 행정위원장을 만날수가 없었다.

평양행렬차를 타고오면서 시종 그의 눈앞에는 비물이 새서 불평을 늘어놓던 백화점판매원이며 물을 긷던 사람들, 자그마한 물통을 들고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만 얼른거리였다. 그와 함께 김일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것이였다.

《인민생활에 무관심한 관료주의자들을 반대해서 강한 투쟁을…》

(뭐 간부가 어떻게 모든 사람들의 비위를 다 맞추는가구? 더러 싫다는 사람이 있어도 할수 없다구? 설사 인민들속에 좋게 리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간부들로선 원칙적으로 이런 견해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 설미는 입속으로 중얼거리였다.


×


설미는 저녁녘 장현철을 만나 함께 걸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거리를 걸어가는 설미에게는 눈에 보이는 모든것이 그대로 즐거움이였다.

키꼴이 후리후리하고 잘생긴 현철의 모습도 기쁨을 주었고 거리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도 까닭없이 흥그러움을 자아낸다. 엄마손을 잡고 걸어가는 귀여운 어린애도 설미의 들뜬 감정을 자극하여 그는 괜히 걸음을 멈추고 어린애의 볼을 쓸어주었다.

《아이, 고와라.》

현철이가 느슨한 웃음을 짓고 설미를 놀리였다.

《설미가 빨리 아이를 낳고싶은게 아니야?》

설미는 부끄러워 귀뿌리가 달아올라 현철이의 손을 꼬집었다.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군요.》

그들의 노는 모양을 재미있게 보며 애어머니가 말하였다.

《빨리 결혼식을 하세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가봅니다.》

현철이가 숫기좋게 받아넘기는데 설미는 기겁하여 현철의 팔을 잡아당겼다.

《가자요. 정말 망신스럽게는 노네.》

현철은 껄껄 웃어대며 설미를 따라걸었다.

설미도 입을 싸쥐고 웃었다. 그는 현철의 롱지거리가 싫지 않았다.

《내 부탁을 성실히 집행했겠지요?》 설미가 물었다.

《부탁도 집행했다고 말하나? 부탁은 들어준다고 말해야 해.》

《오빠는 정말 성격이 못됐어요, 참 까다롭거던요.》

《내 성격이 못됐다고 말하는건 설미 한사람뿐이야.》

《오빠가 못됐으니까 오빠에게 말하기 싫어하는거예요.》

《그런가? 허허… 내 좀 생각해봐야지.》

《그래 내 부탁은?》

《무슨 부탁을 했던가?》

《날 놀리겠어요?》

《아참, 그렇지. 몸무게 불구는것 말이지?》

《잊진 않았군요. 아주 좋아요. 그래 어떻게 실천하였나요?》

《응, 그건 그닥 어렵지 않더구만. 공기좋고 물좋은 곳에서 휴식하는데 몸이 안 날수가 있나. 어디 한번 봐. 굶주린 승냥이배처럼 훌쭉하던 배가 쑥 나오지 않았나?》

현철은 싱글벙글하며 자기 배를 손으로 쓸었다.

가로등빛속에서도 현철의 얼굴이 번들번들 윤기가 돌았다.

《10키로 불었어요?》

《몸무게를 떠봤더니 정확히 10키로가 불어났더구나. 결혼식에 당당히 나설수 있어, 하하하…》

《거짓말을 잘도 하는군요. 정확히 10키로가 불었다구요? 어처구니가 없군요, 호호…》

《정말이라니까. 넌 어떻니? 몸이 좀 깠니?》

《난 몸무게를 달구어보지 못했어요. 오빠처럼 거짓말은 안해요.》

《뭐 저울에 올라갈 필요까지 있겠니? 그렇게 하지 않고도 간단히 잴수 있는데.》

《어떻게요?》

《그건 말이야. 내가 한번 들어보면 알수 있어. 난 정확히 무게를 가늠하는 재간이 있거던. 한번 안아볼가.》

현철이 다가서자 설미는 기겁을 했다.

《미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보는데…》

《뭐라니, 1초면 충분하겠는데… 하하.》

그들은 즐겁게 웃으며 걸어갔다.

《설미는 출장갔댔다지? 어디 갔댔니?》

《영천시에 한 3일간 갔다왔어요.》

《영천시에?》 현철이 놀라면서 설미를 바라보았다.

《난 영천시 상업봉사정형을 료해했어요.》

《그래, 어떻던?》

《그만하면 원만해요. 그런데 거기 행정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참 한심하더군요.》

설미는 영천시에 가서 목격한 일들이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격분이 치밀어올랐다.

《도대체 자격이 없는 사람이예요.》

《무슨 일이 있었니?》 현철은 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미는 목격한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난 그래서 돌아오는길로 중앙인민위원회에 찾아가 낱낱이 제기했어요.》

《뭐라구?》 현철이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거 야단났구나. 그 제기를 취소할수 없을가?》

《아니, 왜 그래요?》

《영천시행정위원장은 산호라고 내가 친삼촌처럼 따르는분이야.》

《산호라구요?》

설미의 쌍까풀진 눈이 장난감토끼의 눈처럼 동그래졌다.

《그래, 너도 알수 있을거야. 설미 아버지와도 친분관계에 있는분이지.》

그렇다, 설미는 산호를 알고있었다. 비록 만나본적은 없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하여 잘 알고있었다.

《설미, 제발 부탁하는데 래일 중앙인민위원회에 찾아가서 그 제기를 취소해줘.》

《그걸 어떻게 취소한다는거예요?》 설미는 절망적으로 부르짖었다.

《네가 잘 알지 못하고 그런 제기를 했다고 하면 될게 아니야?》

《아…》

설미는 고통스럽게 한숨을 내쉬였다.

《어떻게… 그걸 어떻게…》

《그렇게 해야 해. 문제가 제기되면 큰일이야.》

현철은 심각한 얼굴로 단호하게 말하였다.

《그렇게 하지?》

《정말 이건 뭐가 뭔지…》

《그렇게 하지?》

현철의 목소리는 어느덧 애원조를 띠고있었다.

《생각해보겠어요.》

《생각해본다는게 뭐야? 제기를 취소해놓고 생각해보잔 말이야.》

《…》

설미의 우유를 바른듯 희고 뽀얗던 얼굴이 해쓱하니 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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