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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제3장


9


김일은 효자였다. 그는 퇴근하면 꼭 어머니에게 들려 인사를 하고 잠간이나마 어머니와 마주앉았다가 자기 방으로 가군 하였다. 어느날 밤 김일이 어머니에게 들렸는데 어머니 강정순이 섭섭한 소리를 하였다.

《내 용석이 애비가 일이 몹시 바쁜 사람이라는걸 모르지 않아. 하지만 그렇게도 자식에게 무관심할수가 있나.》

어머니가 박씨문중의 외독자인 용석이를 끔찍이 애지중지함을 잘 알고있는 김일은 묵묵히 어머니의 푸념을 들었다.

《지금 용석이 나이가 스물아홉이야. 옛날같으면 애를 서넛은 거느려야 할 나이가 아닌가. 아버지가 관심이 없으니 용석이가 저 혼자 장가갈 생각을 하는가보네.》

김일은 찔금하니 놀랐다. 그제야 김일은 용석이가 장가들 때가 되였음을 깨닫게 되였던것이다.

《용석이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군요. 내 미처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강정순은 사진 한장을 꺼내놓았다.

《글쎄 용석이가 이 처녀를 생각하고있구만. 뭐 외무성 타자수라나.》

김일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처녀가 곱게 생겼군.》

《헌데 난 마음에 들지 않아. 사내들의 혼을 빼는 가인이 이 집에 들어와서는 어쩐단 말인가.》

김일은 어머니에게 무슨 생각이 있을것이라 짐작하면서 물었다.

《어머니가 용석이의 대상자로 작정하고있는 처녀가 있는가요?》

《정금순이라고 있지? 개천에서 살 때 우리 이웃에 살던 처녀 말이야. 아버지이름이 정두환이던가…》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김일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알만 합니다. 정금순이를 본 생각이 납니다.》

정두환은 해방후 동북민주련군의 군복천을 해결하고저 평북도당위원장으로 사업하던 김일을 찾아 신의주에 왔던 사람이였다. 그후 정두환은 강건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왔는데 보안간부훈련소 제1소에서 후방부소장을 했다.

아직 정규군이 아니여서 지휘성원들이 모두 사복을 입고 다니였는데 정두환은 동북에서 입고온 군복을 그대로 입고있었다. 겨울이 가까와오던 때 김일은 정두환에게 옷을 한벌 해주었다. 정두환이 받지 않겠다고 하자 김일은 말하였다.

《동무가 군복천을 해결받자고 왔을 때 내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그에 대한 갚음이라고 여기고 어서 입소.》

그후 정두환은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평양에 소환되여 김일성종합대학 총경리장의 직무를 수행했고 후에는 민족보위성 재정부문에서 사업하였다. 전쟁시기에는 최고사령부에서 사업했고 지금은 당중앙위원회에서 부장으로 사업하고있었다. 김일이와 너무도 잘 아는 사이였다. 그의 딸 정금순은 별로 대상은 해보지 못했으나 옆집에 살던 처녀여서인지 김일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였었다. 당시 김일이나 보안간부훈련소의 지휘성원들을 만나면 인사를 깍듯이 하여 례절이 밝은 처녀로 주위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던 처녀였다.

《그런데 용석이는 금순이가 싫다는거야. 뭐 처녀가 군복을 입고 권총을 찼는데 거만하다나.》

강정순의 주름살이 얼기설기한, 이제는 탄력이 풀어지는 늙은 얼굴에 안타까운 표정이 가득 어려있었다.

《용석이에게 금순이 말을 비쳤댔습니까?》

《말했지. 그런데 그저 도리질이더구만.》

《알겠어요. 내 좀 알아보지요.》

며칠후 김일은 퇴근하여 용석이를 불렀다. 자기 방에서 무슨 설계도면들을 놓고 열심히 일을 하던 용석은 한손엔 제도연필을 들고 다른 손에는 자막대기를 들고 방에 들어왔다.

《바쁜 모양이구나.》

《예, 일감이 자꾸 쌓이는걸요.》

용석은 뒤더수기를 긁으려고 손을 쳐들다가 그제야 자기 손에 들려있는 연필과 자막대기를 보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도면에 정신을 팔다보니…》

《누가 뭐라냐? 일에 묻혀 사는 때가 좋은 때란다. 요새야 모든 사람들이 두몫, 세몫씩 일하면서 뛰여다니고있지. 더구나 너야 조국이 어려운 전쟁을 치르고있을 때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외국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느냐.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그 보답을 해야 하는거야.》

《알겠어요.》

김일은 머리를 수굿한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너 요즘 외무성처녀를 따라다닌다지?》

《무슨 소리를 하는거예요?》

용석은 놀란 표정으로 김일을 보았다.

《내 네가 가지고다닌다는 그 처녀의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은 친구가 주었는데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어요. 일이 바쁜데 언제 처녀를 따라다닐새가 있나요.》

용석의 말은 사실이였다. 그는 전후복구건설에서 제기되는 설계도면들을 그리느라 눈코뜰새가 없어 자꾸 처녀를 만나러 가자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고있었다. 집에 와서까지 도면을 그리는 판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럼 됐다. 그 외무성처녀 생각은 머리속에서 싹 지워버려라.》

김일은 정금순의 말을 꺼냈다.

《…내 생각엔 정금순이가 괜찮을것 같구나. 생김새도 삐여나고 또 부모들을 봐도 그래… 그만한 처녀가 없을것 같다.》

용석의 가느스름한 두눈이 커지고 입이 약간 벌어지더니 못마땅한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정금순이는…》

《왜, 싫다는거냐?》

《저… 뭐라고 할가…》

용석은 머밋머밋하다가 말하였다.

《녀자가 차고 거만해 보이더군요. 군복차림을 하고 권총을 차고있는걸 피뜩 만나본 일이 있습니다. 내 친구는 정금순이 권총을 뽑아들가봐 혼났다더군요.》

《너희들이 무슨 오해를 했겠지. 금순이는 그런 처녀가 아니다. 그 처녀는 전쟁시기에 군복을 입었는데 지금 부대의 참모로 있는거란다. 내 알아보았는데 파악있는 좋은 처녀다.》

김일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혼자소리처럼 나직하게 동을 달았다.

《너같은건 오히려 짝이 기운다고 할수 있다.》

아버지를 어려워하면서 그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데 습관된 용석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었다.

《가장 중요한건 정금순이가 우리 수령님께서 아시고 사랑하시는 처녀라는 그 사실이다.》

《예?》

용석은 눈길을 들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김일은 정금순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였다.

용석은 얼굴을 외로 돌리며 자신없는 소리를 하였다.

《그 처녀가 나를 좋다고 하겠습니까?》

사실 용석이는 금순이 정 마음에 없는것이 아니였다. 다만 처녀가 곁을 주지 않으니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것이였다. 그는 금순이 자기를 하찮게 본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글쎄 금순이가 너를 좋아하겠는지 싫다고 하겠는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여간 처녀의 집에 통혼을 해보자.》

몇달후에 박용석은 정금순과 결혼하게 되였다.

혼사가 일사천리로 결실을 본것이였다.

결혼식날 아침 김일은 수령님께서 계시는 집무실로 들어갔다. 수령님께서는 원고를 쓰고계시였다. 책상우에는 그이께서 밤새 쓰신 친필원고들이 몇장씩 여러갈래로 펼쳐져있었다. 수령님께서는 피로하신 안색에 미소를 지으시며 김일을 맞이하시였다.

《마침 잘 왔소. 그렇지 않아도 내 동무와 의논을 해보자던 문제가 있었소.》

《수령님, 또 밤을 지새우신것 같습니다. 그렇게 일하시면 무쇠라도 견디여낼수 없습니다.》

《난 지금 글을 하나 준비하고있습니다. 헌데 낮에는 회의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 어디 글을 쓸 시간이 있습니까. 그러니 밤시간을 효과적으로 리용해야 합니다. 어제 밤엔 생각이 집중되여 글의 기본골격을 세울수 있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책상우의 원고들을 순차대로 모두어 한옆에 놓으시였다. 그 원고들이 다음해 4월에 발표되여 《4월테제》로 불리워질 사회주의에 관한 글의 초안이라는것을 김일은 미처 알수 없었다.

《우리는 새해 1955년도를 우리 혁명에서 새로운 거대한 전환의 해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글을 쓰고있는데 동무의 생각을 좀 들어보고싶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김일에게 담배를 권하시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우리 나라에 조성된 오늘의 정세를 보아 이제는 우리가 사회주의혁명에 본격적으로 들어설 때가 되였다고 보고있습니다. 동무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물론 지금 협동조합문제를 놓고도 시비하는자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자들은 나라가 통일되지 못했는데 북반부에서만 사회주의를 하겠는가, 그러면 조선혁명이 절름발이가 되지 않겠는가, 공업화를 하지 못했는데 협동화를 하는것은 또 무엇인가고 잡소리를 줴치고있습니다. 그러나 인민들은 사회주의혁명이란 말은 잘 몰라도 다 수령님을 지지하고 수령님께서 내놓으시는 정책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릅니다.》하고 김일은 자신의 견해를 말씀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김일과 마주앉으시여 시간가는줄 모르시고 나라의 전망문제를 놓고 심중한 토의를 하시였다.

담화가 끝났을 때 김일은 수령님께 아들의 결혼식에 대한 말을 꺼내였다.

《수령님, 오늘 아들 박용석이 결혼식을 합니다. 결혼식에 참석해주시였으면 합니다.》

《저런… 용석이가 벌써 장가를 든단 말이요? 며느리감으로 누굴 골랐소?》

김일의 말을 듣고 수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김일동무의 집에 경사가 났구만. 아무리 바빠도 가서 축하를 해주어야지. 우리 후대들의 창창한 앞날과 행복을 축복해주잔 말이요.》

이날 오후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들을 데리시고 김일의 집을 찾아주시였다. 좌중을 일별하시던 수령님께서는 정금순을 바라보시며 환히 웃으시였다.

《새색시가 누군가 했더니 우리 선생님이였구만.》

수령님의 말씀에 좌중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신부가 선생님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그 사연을 알고있는것은 몇사람뿐이였다. 정금순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약 1년간 수령님의 자제분들이 다니시던 유치원 교양원을 했던것이였다. 그때 정금순은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사랑을 받았다.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용석이와 금순이 부어올리는 술잔을 받으시였다.

《일본놈 세상에는 헐벗고 못살았지만 이제야 우리 세상인데 얼마나 좋소. 아들딸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사시오. 앞으로 일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해서 전후복구건설에서 한몫 단단히 해야지. 부디 행복하기를 바라오.》

수령님께서는 술잔을 쳐들면서 말씀하시였다.

《자, 축배를 듭시다!》

신랑, 신부도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감격하여 술잔을 들었다.

수령님을 모시고 환희로운 시간이 흘렀다.

김일부부는 정두환부부와 나란히 앉아있었다. 김일은 곁에 있는 정두환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난 수령님께서 지금처럼 환히 웃으시는 모습을 뵈올 때가 제일 행복한 때요. 그때는 정말 사는 보람을 느끼게 되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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