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10 장
4
아지끝에서 조마구손같이 귀엽게 피여나는 애잎들은 그 무슨 애틋한 사연을 아뢰이는듯 소리없이 한들거리였다. 신철웅은 가슴이 저려 기여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드신
《동무생각엔 왜 이런 사태가 빚어진것 같소?》
신철웅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평양에서 이곳까지 나오며 곰곰히 생각했던바를 떠듬떠듬 말씀올리였다.
《이제야 저는 그때
저는
《그렇소. 동무는 잠업부문지도에서 과학을 집어던지는 무모한 행동을 했소. 그러나 실책은 거기에만 있는게 아니요.》
《계응상선생은 조금전까지 산등성이에 지켜서서 불타는 누에를 내려다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소. 아마 동무들은 죽은 누에를 두고 그렇게도 슬퍼하는 계박사의 심정을 만분의 일도 짐작하지 못할것이요.》
…1946년 마가을 어느날 아침, 계응상박사가 해방산기슭의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청사에서 사업하시는
《바쁘시겠는데 어떻게 이른아침에 찾아오셨습니까?》
계응상은 세상에 이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어디에 있겠느냐는듯 한 그런 황겁한 기색으로 말을 꺼내는것이였다. 나라의 누에고치가 당하는 피해를
《인민의 재산을 그렇게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단 말입니까?》
《왜놈들도 재산관리를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런데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살림살이를 그렇게 한다는건 정말 가슴아픈 일입니다. 며칠후에 저와 같이 그 공장에 나가봅시다.》
《예, 대단히 바쁘시겠지만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계응상은 희색이 만면하여 고맙다는 말씀을 거듭 올리며 돌아갔다.
특히 박사가 바쁘지만 같이 나가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까지 청을 댄것이 더 마음에 드시였다. 오직
며칠후
황송하여 어쩔바를 모르며
계응상은 승용차가 교외에 나서도록 깊은 감회에 잠겨 밖을 내다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그는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논벌에서 시선을 거두며 젖은 음성으로 말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렇지만
계응상은 일제시기 중국 광동에서 누에알을 가지고 귀국하던 길에 윁남, 홍콩 등지에서 방황하던 일이며 난바다우에서 눈물을 머금고 피마주누에알을 수장하던 일을 터놓았다. …
갈리신 음성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그러니 생각해보오. 계응상박사야말로 누구보다 먼저 피마주누에를 조선의 누에로 만들고싶지 않았겠소. 하지만 그는 자기의 과학적신념에 어긋날 때에는 내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당장 피마주누에를 칠수 없다고 대답했소. 당과
하기에
철웅은 이때에 이르러서야
철웅국장은 숙연한 생각에 잠겨 계응상박사가 죽은 누에들을 후환이 없게 처리하려고 달려간 이웃농업협동조합으로 차를 재촉하여갔다.
저녁해가 소잔등같은 산릉선에서 해발을 거두고있을무렵 계응상은 어느 기와집사랑채의 잠실에서 손수 소독뽐프를 들고 병이 옮지 않은 누에에 약물을 뿜어주고있었다. 새까맣게 탄 그의 입술에는 허연 거스러미가 돋혀있었다. 그는 그간 연구소에서 시험제조한 약으로 최종실험을 하고있었던것이다.
불쑥 나타난 신철웅을 띠여본 그는 반색하며 말했다.
《이것 보시오. 때가 좀 늦긴 했지만 승산이 보이오.》
그는 이전의 어성버성했던 일들은 안중에도 없고 눈앞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누에의 거동에만 매혹되여있었다.
신철웅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말없이 계응상의 손을 꾹 잡고 놓지 않으며 젖은 음성으로 말했다.
《난 오늘
두눈을 지그시 감고 신철웅의 젖은 음성을 새겨듣는 계응상의 눈가에 구슬같은 눈물이 맺혀 소리없이 흘러내리였다.
X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났다.
그간 계응상박사는 어슴새벽부터 자정이 넘을 때까지 단 하루도 쉬임을 모르고 새로운 누에육종에 일심정력을 다해왔다. 마침내 계응상박사는 염색체수가 서로 다른 누에들의 성질을 한데 모아 원산지의 피마주누에에서는 찾아볼수조차 없는 번데기로 겨울나이를 하는 새로운 누에를 육종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