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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5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10 장


4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낮의 불볕이 쏟아지는 둔덕우에 서시여 농장원들과 신중한 기색으로 담화를 하고계시였다. 산기슭에 차를 세우고 수령님께서 서계신 가중나무밑으로 급히 걸어올라가는 철웅국장의 얼굴은 창백했다.

수령님께서는 방금 도착했다고 인사를 올리는 신철웅을 물끄러미 바라보시였다. 그이께서 아프신 눈길을 떨구신 가중나무옆에는 방금전에 화장해버린 잠기구들과 누에의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점점이 널린 그것들에 눈길을 박은 신철웅은 천근의 무게로 가슴을 짓누르는 죄책감으로 하여 숨이 컥 막히는듯 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거운 안색으로 새풀이 듬성듬성한 야산등성이를 천천히 걸으시였다. 문득 걸음을 멈추시고 미풍에 하느적거리는 피마주아지를 휘여잡으신 그이께서는 야들야들하고 윤기흐르는 넓은 잎을 이윽히 내려다보시였다.

아지끝에서 조마구손같이 귀엽게 피여나는 애잎들은 그 무슨 애틋한 사연을 아뢰이는듯 소리없이 한들거리였다. 신철웅은 가슴이 저려 기여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령님, 제가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다가 그만에야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고개를 드신 그이께서는 신철웅을 내려다보시며 물으시였다.

《동무생각엔 왜 이런 사태가 빚어진것 같소?》

신철웅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평양에서 이곳까지 나오며 곰곰히 생각했던바를 떠듬떠듬 말씀올리였다.

《이제야 저는 그때 수령님께서 협의회를 마치시면서 무엇때문에 마지막으로 계응상선생과 의논을 잘하라고 힘주어 당부하셨는가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는것 같습니다.

저는 수령님께서 잠업부문에 세워주신 과학기술지도체계를 무시하고 자신의 주관적욕망을 그우에 올려세우는 한심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렇소. 동무는 잠업부문지도에서 과학을 집어던지는 무모한 행동을 했소. 그러나 실책은 거기에만 있는게 아니요.》

수령님께서는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계응상선생은 조금전까지 산등성이에 지켜서서 불타는 누에를 내려다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소. 아마 동무들은 죽은 누에를 두고 그렇게도 슬퍼하는 계박사의 심정을 만분의 일도 짐작하지 못할것이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피마주누에에 깃든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신철웅에게 들려주시는것이였다.

…1946년 마가을 어느날 아침, 계응상박사가 해방산기슭의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청사에서 사업하시는 수령님을 찾아왔다. 그는 이날 아침 수령님을 만나자고 찾아온 첫 방문자였다.

《바쁘시겠는데 어떻게 이른아침에 찾아오셨습니까?》

그이께서 자리를 권하시며 묻자 계응상은 격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떠듬떠듬 뇌이였다.

《장군님! 제가 해주에 갔다오던 길에 사리원방직공장에 들렸었는데 그 사람들은 농민들한테서 수매해들인 햇누에고치를 야적해놓고 비를 맞히고있었습니다. 너무 아까와서 장군님께 말씀드리자고 찾아왔습니다.》

계응상은 세상에 이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어디에 있겠느냐는듯 한 그런 황겁한 기색으로 말을 꺼내는것이였다. 나라의 누에고치가 당하는 피해를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사람만이 이렇게 찾아와 안타깝게 말할수 있는것이 아닌가.

《인민의 재산을 그렇게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단 말입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분개해하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왜놈들도 재산관리를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런데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살림살이를 그렇게 한다는건 정말 가슴아픈 일입니다. 며칠후에 저와 같이 그 공장에 나가봅시다.》

《예, 대단히 바쁘시겠지만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계응상은 희색이 만면하여 고맙다는 말씀을 거듭 올리며 돌아갔다. 수령님께서는 계응상박사가 이렇게 허물없이 찾아와 시급히 바로잡지 않으면 안될 일들을 숨김없이 얘기해준것이 진정 고마우시였다.

특히 박사가 바쁘지만 같이 나가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까지 청을 댄것이 더 마음에 드시였다. 오직 수령을 자신처럼 믿는 사람만이 이렇게 말할수 있는것이다.

며칠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승용차를 타시고 종합대학으로 가시여 계응상박사를 찾으시였다. 계응상이 봄외투의 단추를 채우며 바삐 마당으로 나왔다.

황송하여 어쩔바를 모르며 장군님께 인사를 드리는 계응상을 수령님께서는 따뜻이 맞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몸소 승용차뒤문을 여시고 《어서 먼저 오르십시오.》라고 하시며 계응상박사를 앞세워 태우시고 자신께서도 그와 나란히 앉으시였다.

계응상은 승용차가 교외에 나서도록 깊은 감회에 잠겨 밖을 내다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그는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논벌에서 시선을 거두며 젖은 음성으로 말했다.

《장군님! 조그마한 벌레를 다루는 학자가 지내 외람되게 행동한다고 나무러워 말아주십시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닙니다. 장군님께서 백두설령에서 왜놈들과 혈투를 벌리실 때 저는 해외에서 과학연구밖에 한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해방직후에는 세상형편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남조선에서 〈미군정청〉산하기관인 수원농사시험장 장장노릇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장군님께서 이 하치않은 학자를 가까이 불러주시고 믿음을 주시니 가슴속에 품었던 진정을 쏟아놓지 않을수 없습니다.》

계응상은 일제시기 중국 광동에서 누에알을 가지고 귀국하던 길에 윁남, 홍콩 등지에서 방황하던 일이며 난바다우에서 눈물을 머금고 피마주누에알을 수장하던 일을 터놓았다. …

갈리신 음성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수령님께서는 준절하게 이르시였다.

《그러니 생각해보오. 계응상박사야말로 누구보다 먼저 피마주누에를 조선의 누에로 만들고싶지 않았겠소. 하지만 그는 자기의 과학적신념에 어긋날 때에는 내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당장 피마주누에를 칠수 없다고 대답했소. 당과 수령앞에 진정만을 바칠줄 아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짜배기애국자인것이요.》

어버이수령님의 감회깊은 이야기를 받아안은 철웅국장은 깊은 자책감에 휩싸여 머리를 들수조차 없었다.

하기에 수령님께서는 계박사의 그 절절한 소망을 잊지 않고계시다가 어느 한 외국의 벗에게 부탁하시여 피마주누에종자를 구해오셨고 그것을 손수 저택의 한 방에서 키우시여 고스란히 살려서 연구사업에 쓸수 있도록 하신 다음에야 연구소에 보내주셨던것이 아닌가.

철웅은 이때에 이르러서야 수령님께서 계응상박사를 대하실 때마다 그를 각별히 존대하여주시고 내세워주시는 깊은 뜻이 뜨겁게 헤아려졌다.

철웅국장은 숙연한 생각에 잠겨 계응상박사가 죽은 누에들을 후환이 없게 처리하려고 달려간 이웃농업협동조합으로 차를 재촉하여갔다.

저녁해가 소잔등같은 산릉선에서 해발을 거두고있을무렵 계응상은 어느 기와집사랑채의 잠실에서 손수 소독뽐프를 들고 병이 옮지 않은 누에에 약물을 뿜어주고있었다. 새까맣게 탄 그의 입술에는 허연 거스러미가 돋혀있었다. 그는 그간 연구소에서 시험제조한 약으로 최종실험을 하고있었던것이다.

불쑥 나타난 신철웅을 띠여본 그는 반색하며 말했다.

《이것 보시오. 때가 좀 늦긴 했지만 승산이 보이오.》

그는 이전의 어성버성했던 일들은 안중에도 없고 눈앞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누에의 거동에만 매혹되여있었다.

신철웅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말없이 계응상의 손을 꾹 잡고 놓지 않으며 젖은 음성으로 말했다.

《난 오늘 수령님의 말씀을 듣고야 선생의 심정을 깨달았습니다…》

두눈을 지그시 감고 신철웅의 젖은 음성을 새겨듣는 계응상의 눈가에 구슬같은 눈물이 맺혀 소리없이 흘러내리였다.


X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났다.

그간 계응상박사는 어슴새벽부터 자정이 넘을 때까지 단 하루도 쉬임을 모르고 새로운 누에육종에 일심정력을 다해왔다. 마침내 계응상박사는 염색체수가 서로 다른 누에들의 성질을 한데 모아 원산지의 피마주누에에서는 찾아볼수조차 없는 번데기로 겨울나이를 하는 새로운 누에를 육종해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응상박사가 이룩한 이러한 귀중한 연구성과를 보고받으시고 못내 기뻐하시며 피마주누에를 대대적으로 칠데 대한 내각결정 제18호를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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