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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9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9 장


4


카바이드등빛이 가물가물 사그라지고있는 방공호 한쪽구석 침대에 옷을 입은채 누워있던 도당위원장은 끊을락이을락 아득히 먼 곳에서 울려오는듯 한 신호종소리에 간신히 눈을 떴다.

자정이 넘은지도 이윽한 때였다. 가까운 농가에서 첫닭의 울음소리가 고즈넉이 울려왔다. 눈을 좀더 붙이려고 솜덧저고리를 머리우에 들쓰던 그는 흠칫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앙당과 련결되여있는 전화기가 신호종을 길게 울리는것이 분명했다.

그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마른 세면을 몇번 하고는 책상앞으로 다가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우렁우렁하면서 몹시 갈린 목소리가 저쪽에서 울려왔다.

도당위원장은 황급히 자세를 바로하고 송수화기를 두손으로 쥐였다.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 거시는 전화였던것이다.

《제 도당위원장입니다. 그만 깜박 잠이 들었댔습니다.》

《미안하오, 단잠을 깨워서. 그사이 일시적인 후퇴를 조직하느라고 수고많았소. 그런데 한가지 긴급히 묻고싶은게 있어서 이렇게 전화를 거오. 잠업시험장 계응상박사선생은 어디로 후퇴를 시켰소?》

《예?》 도당위원장은 외마디소리를 하듯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동안이 흐른 다음에야 《제 미처 그 일을 조직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을 드리였다.

《계응상박사를 잊다니?!》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걱정이 실린 음성으로 뇌이시더니 계속했다.

《계응상박사선생은 절대로 잃어서는 안될 귀중한분이요. 일시적인 후퇴사업을 조직하면서 그런 인재를 첫자리에 놓지 못한것은 대단히 잘못되였소. 시급히 알아보시오. 그 선생이 마가을이면 원산농대에 나가 대학강의를 하군 했는데 만약 그가 이 준엄한 때에 적구에 남아있다면 어떻게 되겠소. 인차 그 선생의 행처를 알아보고 나한테 보고하시오.》

귀전에서는 전류 끊어지는 소리가 울린지 이슥했으나 도당위원장은 송수화기를 쥔채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지난 9월 27일 평양에서 긴급히 소집된 각 도 도당위원장협의회에서 전략적일시적인 후퇴를 성과적으로 보장할데 대한 김일성동지의 교시에 접한 후 근 한달동안 일시적인 후퇴사업을 빈틈없이 조직하느라고 애썼지만 계응상박사와 같은 귀중한 인재들을 먼저 안전한 지대로 후퇴시킬데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준엄한 시련을 겪고있는 이때에 조국의 운명을 두고 누구보다도 걱정을 많이 하시는분은 김일성동지이시다. 오죽이나 많은 문제들이 그이의 량어깨에 실려있으랴. 아마도 적들을 소멸하기 위한 전략전술을 짜시는 한가지 일만으로도 하루를 열흘맞잡이로 보내고계실것이다.

그런데 그가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하여 김일성동지께 자기 도에서 사업하고있는 한 과학자의 운명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드리게 하다니.

아니, 손이 미치지 못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짧아 그런 중대사를 념두에조차 두지 않은데 문제가 있는것이다.

그는 즉석에서 의주군 군당위원장한테 전화를 걸어 삼봉리에 소개되여 가있는 잠업시험장 사람들에게 계응상박사가 건재하여있는가를 알아보도록 했다. 새벽녘에야 의주군당에서 전화가 올라왔는데 잠종이며 시험중에 있는 누에들은 모두 안전하게 소개되였지만 계박사는 원산농업대학으로 강의를 하러 떠난지 열흘이 지났다는것이였다.

그는 즉석에서 최고사령부를 찾아 김일성동지께 이 사실을 보고드렸다.

《수령님! 잠업시험장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계응상박사는 열흘전에 원산농대로 나간다고 하면서 채령동역에서 밤중에 군용렬차를 타고 남쪽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열흘전이라, 그러니까 청천강철교가 적들의 폭격에 끊어진 때가 아니요? 기껏해야 운전이나 맹중리까지밖에는 더 나가지 못했을거요.

그 다음에는… 계박사가 안주와 순천사이에서 적들에게 포위된게 틀림없소. 일이 참 잘 안되였소.》

《수령님!》 도당위원장은 깊은 자책감에 휩싸여 무엇이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알지 못했다.

열흘전이면 그가 전략적인 후퇴사업을 조직한 때로부터도 무려 반삭이나 된 때였다.

순전히 그자신의 무관심과 무책임한 태도에 의하여 한 귀중한 인재를 적구에 내던진 결과를 빚어내지 않았는가. 도당위원장의 이런 심정을 환히 꿰뚫어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걱정만 하고있을 때가 아니요. 동무생각엔 이제 어떤 대책이 필요할것 같소?》라고 물으시였다.

도당위원장은 그제서야 숙였던 머리를 들고 미리 궁리했던 생각을 터놓았다.

《9월 27일 협의회때 수령님의 말씀대로 정주군에도 빨찌산을 조직하여 xx산에 들어가있게 하였습니다. 곧 련락을 띄워 그의 행처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가 원산으로 나가다가 적들이 침입해들어오는것을 보고 돌따서서 어느 산골마을에 숨어있을것 같습니다.

그가 정주태생이기때문에 산을 타고 정주 어느 외진 산골에 들어가있지 않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럴듯 하오. 십분 그럴수 있소. 결심대로 하시오…》

시간이 촉박했다. 이 순간에도 고립무원하게 적구에 떨어져있는 계박사의 신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겠는가. 도당위원장은 도내무국장을 급히 불러 믿음직한 전투원 몇명을 적구에 파견하도록 했다. 흐릿한 하늘에서는 첫눈이 푸실푸실 내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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