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하늘과 땅, 바다
정기종
( 제 1 회 )
《… 현재 시험통신위성 〈광명성-2〉호를 운반로케트 〈은하-2〉호로 쏘아올리기 위한 준비사업이 함경북도 화대군에 있는 동해위성발사장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있다. 이 위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우리 나라의 우주과학기술은 경제강국을 향한 또 하나의 큰걸음을 내딛게 될것이다.》(《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대변인 담화》 2009. 2. 24)
《… 적들이 분별을 잃고 우리 위성에 대한 요격행동으로 넘어간다면 우리 혁명무력은 주저없이 투입된 모든 요격수단들뿐아니라 요격음모를 꾸민 미일침략자들과 남조선괴뢰들의 본거지에 대한 정의의 보복타격전을 개시하게 될것이다. … 우리의 평화적위성에 대한 요격은 곧 전쟁을 의미한다.》(《조선인민군 총참모부대변인 성명》 2009. 3. 9)
1
오전 11시.
쾌속으로 달리던 승용차가 산자드락에서 멎었다. 떨기나무숲에서 새들이 우짖었다. 밋밋한 등성이우에 암팡지게 둘러앉은 철쭉꽃나무들이 바람에 설레였다. 추위를 밀어낸 따스한 볕아래에서 봄이 숨쉬고있었다.
차에서 내리신
언제였던가. 봉긋봉긋 망울이 지는 철쭉꽃나무가지를 도자기꽃병에 꽂으며 어머님께서 하시던 말씀! …
잊을수 없는 그 말씀… 어머님께서는
《어머니!
미소를 떠올리시는 어머님의
기쁜 일이 생겨도 괴로운 일 있어도
언제나 제일먼저 찾는 어머니
…
《어머니, 적들이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고있는 이때
자식들이 몸바쳐 조국위해 하는 일
평생의 자랑으로 아는 어머니
《어머니! 제 이제 놈들이 우리 인공지구위성을 향해 단 한방의 총포성이라도 울린다면 놈들의 본거지까지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고말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 꼭 승리의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어머니! …》
이윽고
2
오후 6시.
승용차의 앞창턱에 놓인 작은 꽃병에서는 가느다란 철쭉꽃나무가지가 률동적으로 흐느적이고있었다.
갑자기 승용차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강기슭으로 뻗어간 도로에 들어섰다. 여전히 바람과 같은 속도였다.
《아니, 왜 이 길로 가십니까?! …》
《여기까지 왔던김에 제503항공련대에도 좀 들렸다 갑시다. 한세웅동무도 만나볼겸.》
《?! …》
김하천은 뭉툭한 손가락으로 허연 관자노리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무엇때문인가? 전쟁을 눈앞에 둔 이 시각 항공 및 반항공사령부라면 또 몰라도 사령부관하의 한 항공련대에로 차를 달리시는 까닭은?…
김하천은 심기가 불편했다. 은근히 속을 썩이지 않을수 없는 그였다.
지금
김하천은 멋따기나 좋아하는 한세웅이 이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습니까?》
《아까부터 계속 머리를 기웃거리고있는데 혹시 그 무슨 자연의 음악이라도 몰래 엿듣고있는게 아닙니까?》
롱조로 하시는 말씀이였다. 따뜻한 미소가 환히 불을 켜고있는
《자연의 음악 … 말입니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리듬이라 할가.… 아, 저길 좀 내다보시오. 저 하늘을 덮고있는 시꺼먼 구름장들과 설레이는 숲과 들판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 … 이 모든것이 다 각이한 음향과 리듬으로 충만되여있지 않습니까.》
《?!…》
그는 새삼스럽게 차창밖을 눈밝혀 내다보며 귀를 귀울이였다. 하늘가득 덮고있는 구름장들, 희끗희끗 강우에 번져가는 잔물결 … 이제 한바탕 비가 쏟아질것만 같다. 그런데 저 례사로운 자연풍경에서 그 무슨 음향과 리듬을 들으신다는 말씀일가? …
《그래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려서 전… 그저 전쟁에 대한 생각밖엔 …》
《그러니 암만 애써도 전쟁과 헤여질수가 없다? …》
김하천은 두눈을 슴벅거렸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 얼굴에 다 씌여져있는데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야, 한세웅 이녀석, 인젠 제정신을 가지구 살구있어?!〉하고 속으로 욱박지르고있지 않습니까.》
그는 저도모르게 얼굴을 붉히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를 만난다는 생각만 해도 목줄띠가 막 풀떡풀떡합니다.》
《그건 너무하는게 아닙니까? 왕별을 달고있는분이 오래전에 있었던 일을 아직도 속에 품고 삭이지 못하고있다니 …》
《할수 없습니다.
《그렇다? …》
어느덧 승용차는 구배진 령길을 오르고있었다.
《내가 왜 오늘 음향과 리듬에 대해 말하는가 하면 … 사실 세상만물은 다 리듬으로 충만되여있습니다. 그것을 들을줄 아는가, 모르는가 하는 차이가 있을뿐…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지휘관들은 언제 어느때나 자기 전사들의 가슴속에서 울리는 미세한 음향과 리듬까지 죄다 가려들을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래야만 큰것에서 작은것을, 작은것에서 큰것을 보고들을수 있지 않겠습니까.》
《?! …》
그는 두눈을 슴벅이고있었다. 남달리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오래전에 있은 일이다.
《별로 새로운것이 없단 말이지. …》라고 하시는
이어
《우리
너무도 격하신
《제가 … 군사예술에 대한 개념조차 똑똑히 모르는 주제에 그만 허튼 소리를 하였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어떻게 용서할수 있단 말인가? … 비록
《이녀석! 네가 뭐길래 감히 그런 소릴 할수 있는가, 엉?! 너 어느새 그렇게 교만방자해졌느냐? 무엄하고 불손하기짝이 없는 이녀석! 우리 군대엔 너같은 녀석이 있을 자리가 없다!》
《…》
한세웅은 머리도 들지 못했다.
《야 이놈, 이게 어디 상상이나 할수 있는 일이냐. 엉?!》 그는 돌덩이같이
꽉 부르쥔 주먹을 푸들거렸다. 《그래도
사실 한세웅은 자고있지 않았다. 잘수가 없는 그였다. 하건만 그로서는 달리 변명할 말도 없었다. 혀를 깨무는듯 한 신음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여나왔다.
《잘못했습니다, 아버님.》
《아버님?!》 김하천이 사납게 되받아웨쳤다. 《아니, 나한텐 너같은 사위가 없다!》
목갈린 부르짖음, 그렇게 부르짖는 김하천의 가슴은 모진 아픔에 갈기갈기 찢기고있었다. 잘난 사위라고 그저 자랑스럽기만 했던
《다신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아! 내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 알겠느냐? …》
격노한 심장이 토해낸 처절하고 무시무시한 울부짖음이였다.
그때로부터 여러해가 흘러갔다. 안해가 가끔 조심스럽게 기분을 돌려보려고 했지만 단마디로 밀막았다. 딸이 찾아와 울고불고할 때에도 소리쳐 쫓아버리군 했었다. 그런데 그 딸이 얼마전부터 앓기 시작했다. 이틀전엔 조선인민군 륙군종합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상태가 몹시 위중하다고 했다. 조만간 심장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었는데 …
얼마전 안해가 조심스럽게 한 말이였다.
《여보, 그 앤 지금도 하나만 바라고있어요. 이제라도 당신이 애아버지를 용서해주면 병이 뚝 떨어질것 같다구요.》
《안돼, 그 일만은 절대 용서할수 없소.》
용서할수도 없거니와 용서해도 안되는 일이였다. 군인은 말로써가 아니라 싸움터에서 자기 목숨으로, 피로써 죄를 씻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이 시각까지도 김하천의 심장속 밑바닥에 깔려있는 그 얼음은 녹지 않고있다. 영구동토대였다. …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
얼마후였다. 승용차가 부대에 들어서자 직일관의 보고를 받은 련대정치위원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련대장은 어데 갔소?》
《련대장이 직접 편대를 지휘한다?!》
《그렇습니다,
《음 … 》
김하천은 거의나 숨을 죽이고있었다. 련대장이라면 당연히 지상에서 전투를 지휘해야 한다. 대대들과 중대들의 수많은 전투기들을 단 하나의 구령, 하나의 박동과 의지에 따라 멸적의 궤도만을 날도록 하는것이 항공지휘관이다. 국경도 차단물도 엄페호도 없는 하늘에서 항공지휘관의 영웅심리는 절대금물이다. 그런데 한세웅은? …
그때 지휘감시탑에 있던 련대참모장이 내려와 이제 곧 편대가 착륙한다고 보고드렸다.
《알겠소.》
이윽고 기수를 낮추고 급강하하는 전투기의 신호등이 바라보였다. 비행기의 동음이 커졌다. 드디여 대기를 써는 아츠러운 굉음이 귀청을 찢더니 비행기가 활주로우를 미끄러져갔다. 편대의 다른 비행기들도 하나둘 차례로 규칙적인 간격을 두면서 착륙하였다.
한세웅이 달려왔다. 감시탑의 불빛에 반사된 그의 얼굴은 기쁨으로 환히 빛나고있었다. 목소리도 쩡쩡했다.
《그래 오늘은 무엇을 기습했소?》
《옛, 우리 련대가 맡고있는 적진지들을 모의기습하였습니다.》
역시 멋쟁이 한세웅다운 대답이였다.
《저렇게 잔뜩 구름이 끼였는데도 목표물을 정확히 찾아 타격할수 있소?》
너무 지나치다! 하고 김하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도 멋부리기 좋아하는 그
성미는 못 고쳤구나!… 그러나
《알았습니다.
《그럼 지휘소로 안내하시오. 련대정치위원과 참모장도 같이.》
《어떻게 생각합니까. 거기 가서 이 동무들이 지금 어떻게 작전하고 준비했는지 들어보는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예, 그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올리면서도 김하천은 웬일인지 등어리가 뻐근해나는것을 느끼고있었다. 과연 한세웅 저녀석이
김하천은
하여 그는 한세웅에게 그것을 암시해주고싶었다. 자기를 너무 과신하지 말라고 경고해주고싶었다. 그러나 한세웅은 그의 경고하는 의미의 눈빛을 전혀 느끼지 못한척 했다. 범같은 성미인 김하천과 눈길이 마주칠가봐 무던히도 조심하는것이 알렸다.
…
한세웅은 자기 련대의 작전반경뿐아니라 남조선 오산의 미제7항공군사령부소속 35, 51전투기련대와 군산의 8전투기련대, 일본 오사까의 미제5항공군사령부소속 전투기련대들은 물론 나아가서 일본항공자위대의 6항공단(고마쯔), 3항공단(미사와), 4항공단(마쯔시마)의 움직임에 대해서까지 연구하고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은근히 자랑하고싶어하는것이 알리였다.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군사과학사전》으로 불리울만 하였다. 그러나 김하천은 그가 열을 올릴수록 그 말마디들이 귀안에서 벌떼처럼 웅웅거리는것을 느꼈다. 입이 쓰거웠다. 아니다, 지금 우리는 군사지식시험을 치는것이 아니라 진짜전쟁을 준비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옳소, 항공련대장이라면 응당 사단과 사령부의 작전반경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것도 다 알아야 하오. 그래야만 하늘과 땅, 바다전체를 한눈에 굽어보면서 싸울수 있지.》
넘치는 기쁨과 행복으로 하여 환히 빛나는 한세웅의 눈빛… 그는 가슴을 쭉 펴고 힘주어 말씀드렸다.
《그렇다?》
한세웅이 머밋거렸다.
《물론 동무 혼자서 그 많은 적들과 맞서싸우는것은 아니요. 우리에게 항공 및 반항공사령부만 있는것도 아니구 … 하지만 적들이 전쟁을 몰아오고있는 이때 우리 지휘관들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것이 무엇이겠소? … 기회를 놓치지 않는것이요. 적들에게 강타를 안길수 있는 타격의 기회를! …》
《?! …》
한세웅은 물론이고 련대정치위원과 련대참모장도 숨을 죽이고
《한동무도
《옛, 알겠습니다!》
《기회를 꽉 틀어쥐여야 하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우린 언제나
《알았습니다!》
《그럼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명령을 기다리시오.》
《알았습니다.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