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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7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9 장


2


10월 초순 어느날 야간폭격을 받은 채령동역에서는 밤새 불길이 타오르고있었다. 선로반원들이 필사적인 로력을 다하여 한개선의 선로를 복구하여놓았을 때 신호등도 없는 역구내로 군용렬차 한대가 쾅당거리며 들어섰다.

이때 반나마 무너진 휑한 역장실에 불쑥 계응상박사가 들어섰다. 차광막을 드리운 창밑의 남포등앞에 앉아있던 늙수그레한 역장은 두눈을 쪼프리고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잠시후 상대방을 알아본 역장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사선생님이 어떻게?》

흰자위가 많은 역장의 두드러진 눈망울이 뒤집힐듯 재게 껌벅이였다.

《역장선생, 난 기차를 타러 왔습니다.》

침착하게 알리는 말이였다.

《예, 기-차를요?》

역장은 말꼬리를 길게 끌며 계박사의 갸르스름한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채령동에 국립중앙잠업시험장이 생기고 계응상박사가 시험장 장장으로 사업하게 되자부터 이 역에서는 기차편을 리용하는 계응상박사에게 언제나 특별봉사를 제공해왔다.

당시 이 역에서는 침대권을 취급하지 않았지만 계박사의 서기가 나와서 박사의 차표를 요구하면 부랴부랴 출발역에 전화를 걸어 침대표를 부탁하여 미리 내놓은 자리에 그를 태워보내군 했다. 그러나 계응상박사는 번번이 양복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채 기차가 역구내에 들어선 다음에야 나들문을 빠져나와 자욱을 떼는 기차승강대우에 올라서군 하는것이였다.

한번은 방금 기차를 출발시키려고 하는 때에 계박사가 역구내로 달려나오는 바람에 출발신호를 늦추고 그를 기차에 태워보낸적도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역장은 시험장 서기에게 계박사가 기차편을 리용할 때에는 적어도 5분전에는 역에 나와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계박사는 노상 차시간이 다 될 때까지도 잠실에서 누에를 정신없이 들여다보고있거나 해부생리실 현미경앞에 한정없이 머물러있군 하여 서기가 그를 찾으러 드달려다니고 역안내원까지 안달이 나서 역사를 들락날락하는 일이 되풀이되군 하였다. 그런데 계박사는 려객렬차의 운행이 중지된지도 달포가 지난 이때에 불쑥 역장실에 나타나 예전과 다름없이 침대권을 청하는것이나 아닌가. 역장은 짧게 응대했다.

《선생님, 유감스럽지만 요새는 려객렬차가 다니지 못합니다.》

《알고있네. 난 지금 대학강의를 나가는 길일세. 이달 스무닷새날까지 대학에 도착하라는 통지를 받았다네. 그만 일에 몰리다보니 날자가 며칠 남지 않았네. 어떻게 도와줄수 없겠나?》

《이 란리통에 대학강의를 나가신단 말입니까?》

역장은 도무지 리해할수 없다는듯 계박사를 쳐다보았다.

《빽빽-》

구내에 서있는 군용렬차가 출발을 재촉하는 기적소리를 새되게 울리였다. 고개를 돌려 기적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눈길을 보낸 계박사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난 꼭 가야 하오. 저 군용렬차라도 탈수 없겠소?》

《군용렬차요? 그건 안됩니다. 저 렬차에 무엇이 실렸는지 아십니까? 요새 미국놈들의 비행기들이 여간만 날치지 않습니다. 어제 밤 통과한 군용렬차도 정주 못미처에서…》

역장은 말끝을 얼버무리였다.

《역장선생.》

계박사는 한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나라의 장래를 떠메고나갈 인재들을 키우라는건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이라오. 그런데 미국놈들이 저렇게 날친다고 내가 장군님의 분부를 어겨서야 되겠습니까?》

김일성장군님께서요?》

역장의 눈이 커다래졌다.

《빽-》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가 또다시 길게 울리였다. 안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여 불빛에 비쳐본 역장은 단호하게 언명했다.

《알겠습니다. 나가십시다.》

역장은 계응상박사를 앞세우고 기관차를 향하여 꼿꼿이 걸어갔다. 잠시후 자욱을 떼는 군용렬차 기관사의 옆자리에 앉은 계응상박사는 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채 두눈을 지그시 감고있었다. 무뚝뚝한 기관사 역시 말이 없는 사람이였고 기관조사 또한 책임기관사가 말문을 열기 전에는 입을 열지 않는 침착한 젊은이였다.

군용렬차를 끌고 질풍같이 달리던 기관차는 선천역을 얼마 벗어나지 못하여 야간폭격기와 맞다들렸다. 석대의 쌍발기는 달리는 방향에 조명탄을 걸어놓고 련달아 급강하하여 폭탄을 퍼부었다.

철길 좌우켠에서 1톤짜리 폭탄이 쉴새없이 폭발했다. 룡주역을 떠난 이후로는 대피할 굴도 더는 없기에 속력을 내여 달리는 길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기관사실 차창은 폭풍에 산산이 부서져나가고 보이라가 폭탄파편에 몇번째나 구멍이 뚫렸는지 몰랐다.

다행히도 관통부위가 크지 않아 매번 나무쐐기를 해박고 운행을 계속했다. 그러나 군용렬차는 운전역에 멎어선채 더는 앞으로 나갈수가 없었다. 초저녁에 있은 야간폭격에서 청천강철교가 끊어졌다는 련락이 왔던것이다.

운전역 역장실에 앉아 기차가 떠나기만을 고대하고있던 계응상박사는 더는 군용렬차신세를 질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기관사가 서있는 구내 2번선으로 걸어가 철란간을 잡고 기관사실로 올라갔다. 쇠벽에 기대인채 깜빡 잠이 들었던 기관사와 조사는 인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였다.

계박사가 바닥 한쪽에 내려놓았던 낡은 가죽가방을 조심스레 집어들자 책임기관사가 말을 건네였다.

《내리실렵니까?》

계응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페를 많이 끼쳤소. 난 내려서 걸어가야 할가보오. 자, 수고들 하오.》

꺼칠한 기관사의 손과 기관조사의 손을 차례로 잡아흔든 계응상은 가죽가방을 집어들고 말없이 걸어갔다.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던 책임기관사는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였다.

《길이 급한 모양이구만.》

《최고사령관동지의 분부를 받고 가는 길이라니 잠시도 지체할수 없겠지요.》

애젊은 기관조사도 신중한 기색으로 맞장구를 쳤다.

계박사가 구안주의 여울목을 건너 안주에서 원산쪽으로 빠지는 큰길에 나섰을 때 행길에는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의 길에 오른 사람들의 무리가 길을 메웠다.

처음에는 적들의 폭격이 심한 지대에서 피난해가는 사람들이겠거니 심상히 여기고 내친 걸음을 계속했다. 그런데 마주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를 의아스레 쳐다보며 후퇴가 시작되였는데 어디로 가는가고 묻는것이였다. 그가 원산농대에 강의를 하러 나간다고 하자 저마다 그 대학도 후퇴했을것이라고 말하며 어서 되돌아서라고 권유하는것이였다. 그러나 계응상은 그 말들이 좀체로 믿어지지 않아 걸음을 계속했다. 그가 순천에 가닿기 전에 숙천과 개천에 미군락하산부대가 투하되였다. 퇴로를 차단당한 대렬은 산으로 올랐다. 계박사도 허름한 가방 하나를 손에 든채 그들속에 끼여 소나무며 보섭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선 수림속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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