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25회


제2장


13


회의가 있어 평양에 왔던 김일은 합숙에서 정두환과 마주치게 되였다. 한달반전 어두운 얼굴로 김일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던 정두환은 싱글벙글하는 웃음을 띠우고 김일에게 인사하였다. 정두환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것때문에 미안함을 품고있었던 김일은 그의 손을 잡고 대뜸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군복천은 구했습니까?》

《예, 김일성장군님께서 다 해결해주시였습니다.》

정두환은 감격에 겨운 어조로 말하였다.

《오늘로 물자들을 전량 인수하였습니다.》

정두환은 받아안은 사랑을 털어놓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듯 김일을 합숙구내의 정향꽃향기가 진동하는 야외의자에로 이끌었다.

《글쎄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김일은 정두환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정두환이 군복천을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자 길동분구 사령부에서는 김일성장군님께 요청편지를 드리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정두환을 만나주시고 벌써 찾아올것을 그랬다고 하시며 우리도 천이 매우 긴장하지만 싸우는 동무들을 위해 요구대로 보장하여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연변의 형세를 일일이 알아보시고 군복천을 빨리 해결해주도록 해당 부문의 책임일군들에게 지시하신데 이어서 그들이 의약품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것을 헤아리시고 최현에게 한차량분의 의약품을 해결해줄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런데 군복천을 해결할 과업을 받은 일군이 폭도 좁고 질도 좋지 못한 토목천을 마련해놓은 사실을 아시게 된 장군님께서는 못내 서운해하시며 국내형편이 어렵더라도 다른것으로 해결해주라고 이르시였다. 하여 수천여필의 군복천과 다량의 의약품이 마련되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래도 무엇인가 부족하신듯 따로 천여벌의 군복을 보내겠으니 길동분구 사령부의 경위대와 지휘부성원들이 입도록 하라고 하시였다.

중국 동북에서 싸우는 전사들에 대한 장군님의 깊은 관심은 물자해결에만 머무르는것이 아니였다. 장군님께서는 보름전에 평양에서 물자가 해결되기를 기다리고있던 정두환을 급히 동북에 보내여 강건을 청진까지 데려내오게 하시고 청진에서 그를 만나시여 동북해방작전을 토의하시였다는것이였다.

정두환의 이야기를 듣는 김일의 가슴은 끝없이 격동되였다.

우리는 얼마나 위대한분을 수령으로 모시고있는가. 장군님의 령도와 사랑의 손길은 조선땅만이 아닌 광대한 중국대륙의 혁명에까지 미치고있었다. 김일은 장군님께서 작년도 11월 신의주에 오시였을 때 료동분구 사령원 소화의 긴급요청으로 적아간의 치렬한 공방전이 벌어지고있는 안동에 건너가시여 작전협의회에 참가하시였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후 장군님께서는 중국공산당의 원조요청을 받아들이시여 10만정의 무기를 넘겨주시였다. 그리고 오늘은…

(아, 이 우직한 놈아. 너는 언제 가면 그이의 심원한 정신세계를 헤아려볼수 있을것인가.)

《나는 동북에서 장군님께서 길림에서 조직지도하신 길회선철도부설 반대투쟁과 일화배척투쟁의 영향하에 투쟁의 길에 나선 사람입니다. 길림에서 타오른 반일투쟁의 불길이 연길현에도 파급되여 일떠선 청년학생들의 시위대렬속에 나도 서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김일성장군님을 동경하면서 그이의 지도를 받으며 투쟁해왔지만 정작 만나뵈옵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고 정두환은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였다.

《김일동지, 내가 얼마나 장군님을 뵙고싶어했는지 압니까. 정말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이 풀리고 크나큰 사랑을 받아안으니 꿈만 같습니다.》

김일은 자신이 장군님이 그리워 찾아오던 1936년이 돌이켜졌다.

《나는 10년전부터 장군님을 모시고 싸워온 복받은 전사입니다. 장군님께 충실하자고 언제나 마음을 쓰고있는데 그이의 뜻을 미처 받들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번에도 결국은 그렇게 됐지요. 난 무능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자신이 막 밉습니다.》

김일은 자책에 잠겨 경황이 없이 정두환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정두환동무, 장군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싸워주시오. 이제 승리하고 조국에 돌아오면 이 김일이 꼭 동무에게 진 빚을 갚겠소.》

정두환이 떠나간 후에도 김일은 계속 자책속에 모대기였다.

장군님께서 중국혁명을 위해 막대한 량의 물자들을 아낌없이 보내주시고 작전문제에까지 관심해주시는 사실에 접하여 김일은 자신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였다고 뉘우치고있었다.

그날 밤 김일은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장군님께 드리는 편지를 썼다.

《장군님, 불민한 전사 김일이 편지로 자신의 죄를 아뢰이고 처벌을 기다립니다. 오늘 저는 동북민주련군 길동분구 공급부 부부장 정두환동무를 만나 그가 장군님으로부터 크나큰 사랑을 받아안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군님의 대해같은 세계에 경탄함과 동시에 저는 죄책감을 금할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정두환동무는 군복천을 마련하기 위해 한달반전에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김일은 자기가 확보해놓았던 군복천을 정두환에게 내주지 못한 사연을 쓰고나서 계속하였다.

《제가 구실을 못하여 장군님께서 군복천을 해결하시느라 많은 로고를 바치시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장군님을 따라 10여년간 혁명을 하였지만 아직 그 뜻을 따르자면 멀고 멀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평북도에서 장군님의 명령지시관철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겠습니다.》

다음날 김일은 그 편지를 장군님께 꼭 전해달라고 경위대장에게 부탁하고 평양을 떠났다.

후날 김일이 보관하였던 군복천들은 인민군대의 창건을 앞두고 귀중하게 쓰이였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