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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제2장


12


《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자살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에도 림산호는 하숙집의 방에 누워 끝없이 쉑스피어의 비극 《햄리트》의 대사를 중얼거리였다. 문학을 사랑한 그는 세계문학사에 등장한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들에 자신을 비추어보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였다. 지어 그는 자기를 이 세상에 낳은 어머니를 원망까지 하였다. 하여 그는 자기의 고뇌의 심정이 담긴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내였다.

그날 아침 그는 어머니에게서 온 회답편지를 받았다.

불쌍한 어머니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었다.

…네가 형때문에 그런 고통에 시달릴줄은 몰랐구나. 다 이 어머니 잘못이니 나를 원망하거라. 나도 살고싶은 생각이 없구나. 왜 너희들형제를 함께 낳아 키웠는지 나도 자신의 불행을 저주한단다. 하지만 산호야, 난 너를 사랑한다. 아버지는 이미전에 돌아가시고 네 형도 악행을 저지르고 남조선으로 달아나버렸다니 이제 나에게 남은것은 너 하나뿐이구나. 네가 나를 어머니로 생각하고 사랑한다면 여기로 오거라. 네가 그런 정신상태에서 공부는 어떻게 하겠느냐. 나도 외롭고 고독하니 중하의 집으로 와서 의지해살아가는게 어떻겠느냐…

온통 눈물이 얼룩진 그 편지를 보면서 산호는 뉘우침의 눈물을 흘리였다. 아, 내가 무엇때문에 애꿎은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했단 말인가.

그때에야 그는 자신이 너무나 어머니에게 무관심하고 어머니를 잊고 살았음을 사무치도록 깨달았다. 자식들을 무한히 사랑한 어머니였다. 의호도 산호도 차별없이 사랑했었다.

의호가 소년시절부터 망나니질을 많이 하여 부모들의 속을 태웠다. 아버지는 소가죽혁띠로 죽어라고 의호를 조기면서 서슴없이 말하였다.

《이 독사같은 놈의 자식… 차라리 내 손으로 죽여버리고말테다.》 무섭게 매질하는 아버지를 붙들고 말리면서 어머니는 부르짖었다.

《여보, 차라리 나를 때려요. 나를 죽여요.》 그런 밤이면 어머니는 산호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산호야, 너는 착한 애지. 너는 나를 울리지 않겠지?》 산호는 머리를 까딱이며 말하였다. 《난 형이 싫어. 난 아빠, 엄마가 바라는 좋은 사람이 될래.》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자기가 되려는 그 좋은 사람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스스로도 똑똑치 않았다. 좋은 사람이란 남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인것만은 명백했다. 그러나 다 자란 오늘에 와서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지금은 새 조선이 일떠서는 격렬한 투쟁의 시대였다. 진보와 반동간의 처절한 싸움이 벌어지고있었다. 이속에서 산호는 허둥거리고있었다. 자신이 따르고싶고 주위의 대다수 사람들이 뭉친 공산당편에는 형으로 인하여 죄를 지어 따돌림을 면할수 없다는 생각이 온몸을 압박하는듯 했고 그렇다고 형이 서있는 반동의 편에도 설수 없으니 그자들에 대한 증오와 멸시의 감정이 나날이 더해가는 산호였다. 자살하려다가 하숙집 딸에 의해 구원되여 누워있던 날 장종학아저씨가 찾아와 위로하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장종학아저씨의 본심은 자기를 때리며 사라지라고 소리치던 그날에 드러났다고 생각하였다. 지금은 다만 자신을 동정하고있을뿐 시끄러운 존재로 여길것임이 틀림없을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어머니만은 틀림없이 믿을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금 자식들때문에 슬픔과 고통에 시달리고있을것이다. 산호는 어머니를 찾아가리라 결심을 내렸다. 어머니와 함께 조용히 살면서 세상을 관망하리라 생각하였다.

산호는 트렁크에 자기의 짐들을 쌌다. 짐들을 정리하다가 시를 쓰느라 끄적거린 습작집이 나타나자 그것들을 마당에 내다가 불질러버리였다.

(사라지거라, 도대체 무슨 시를 쓴다는거냐. 원체 재목도 아니거니와 그런 랑만적인 사고도 당치 않거니…)

방으로 들어와 트렁크를 다 싸고나서 그는 햄리트의 대사를 외웠다.

《포악한 운명의 팔매돌이나 화살을 가슴에 품은채 참고 견디여야 하는가, 아니면 바다처럼 밀려드는 고난을 박차며 끝까지 대적하여 싸움이 슬기로우냐.》

싸움이 슬기로운것은 명백하였지만 어떻게 싸워야 할는지는 알길이 없었다. 어쨌든 어머니를 찾아가자. 어머니의 품에서 지친 몸을 쉬고보자.

《가지 말아요!》

산호가 가자고 방을 나섰는데 하숙집 처녀가 달려들어 무작정 트렁크를 빼앗았다.

《어쩌면 그럴수 있어요? 도망치듯 말도 없이 그렇게 간단 말인가요?》

산호는 어리뻥해서 처녀를 보았다. 처녀의 두눈에는 눈물이 글썽하였다. 그 눈물을 보니 산호는 별안간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였다.

《사실 인사는 하고 떠나자고 했댔어.》

《가지 말아요.》

처녀는 야무지게 말하고 돌아서서 눈물을 닦았다. 처녀에 대한 동정과 사랑이 산호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죽으려던 자기를 구원해준 처녀, 만약 이 처녀가 아니였다면 자기의 목숨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을것이였다. 그리고 얼마나 정성다해 자기를 간호하였던가. 자기가 심장을 가진 사람일진대 어떻게 이런 처녀의 정어린 요구를 쉽게 거절할수 있단 말인가.

산호가 대답이 궁하여 서고만 있는데 옆구리에 권총을 찬 군인이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산호와 처녀는 다같이 놀란 눈으로 낯모를 군인을 쳐다보았다.

《지나가던 사람인데 물 한그릇 좀 먹읍시다.》 군인이 히죽 웃으며 말하였다.

그 군인은 한영덕이였다. 영덕은 밖에서 얼핏 소리를 듣고 산호가 어디론가 떠나갈 작정을 하고있음을 짐작하였다. 영덕은 처녀가 떠다주는 물그릇을 들고 마시면서 슬쩍 트렁크를 보았다.

《총각이 어디 나들이를 가려는가보군.》

산호도 처녀도 말할 기분이 나지 않아 꿀먹은 벙어리처럼 서고만 있는데 영덕은 그냥 말을 붙이였다.

《그래 어디로 가려는거요?》

《내가 어디로 가든 당신이 무슨 상관입니까?》 산호가 시답지 않게 영덕을 보며 말하였다.

《허, 이거 총각이 속이 뒤틀렸군. 그래, 처녀와 싸웠나?》 영덕은 하숙집 처녀에게 눈을 끔벅이였다.

《동무네는 내가 물이나 먹고 갈것이지 싱겁게 논다고 생각할거요. 하지만 내가 이러는데는 다 까닭이 있는거요. 실은 이 총각동무가 흠뻑 마음에 들어서 그래. 군복을 입고 총을 메면 영낙없이 영웅감이란 말이야.》

산호는 어이없어 제풀에 웃어버리였다. 그러나 영덕의 치사가 싫지는 않았다.

《날 놀리는겁니까?》

《놀리다니?… 내가 왜 동무를 놀리겠나. 난 보는 눈이 있소. 사람을 척 보면 이 사람이 군인감인가, 아니면 선비형인가 척 안겨오는게 있거던. 그런데 말이야. 남자로 태여났으면 군복입고 나라를 지키는데 한몸 내대는게 당당한거지 다른게 있나.》

《한데 난 언제한번 자신이 군인이 된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난 원체 싸울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동문 아직 자기를 잘 모르고있소. 뒤골목싸움질이나 잘하는 사람은 군사복무를 잘할수 없소. 성실하고 담이 있으면 군사복무에 제격이요. 그런데 동무에겐 그런게 엿보이거던.》

산호는 영덕의 말에 귀가 솔깃해져 금시 군사복무쪽으로 마음이 쏠리였다.

《아니예요.》 하고 처녀가 끼여들었다. 《산호동문 군대가 맞지 않아요. 책이나 뒤적일 사람이예요.》

처녀의 말에 산호는 자존심이 상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도 총을 메면 남처럼 할수 있소.》

《옳소, 동무가 이제야 제정신이 드는것 같구만. 난 국경경비대에 있는 군인이요. 한영덕이라고 하오.》

영덕은 산호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정말 나를 입대시킬수 있습니까?》

《난 일구이언하지 않아. 래일 국경경비대 지휘부로 날 찾아오라구. 정문에 와서 이 한영덕을 찾으면 돼.》

한영덕이 대문을 향해 몇걸음 옮겼을 때 장종학이 들어섰다. 한영덕과 장종학은 서로 지그시 마주보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서로 얼싸안고 돌아갔다.

《영덕동무, 이게 얼마만이요?》

《장종학동무가 여기에 와있을줄이야… 내 김일동지에게서 동무에 대한 말을 다 들었소. 지금 본때있게 일을 제낀다면서? 하하하.》

《나도 김일동지에게서 영덕동무 이야기를 들었지요. 헌데 평양학원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긴 어떻게 왔는가요?》

《신의주 국경경비대에 파견되여왔소.》

그다음 그들은 문득 산호와 처녀가 생각났는지 돌아보았다. 영덕이 먼저 종학에게 묻는다.

《종학동무는 이 집과 무슨 인연이 있는게 아니요?》

《이 애는 내가 조카처럼 여기는 애지요. 헌데 영덕동무는?…》

영덕은 산호를 슬쩍 쳐다보더니 껄껄 웃어댔다.

《종학동무에게야 뭐 숨길 필요도 없지. 실은 김일동지의 말을 듣고 이 산호를 찾아온거요.》

그리고 영덕은 뚜벅뚜벅 산호에게 다가와서 다정하게 한손을 어깨우에 얹었다.

《도당 파견원동지가 동무에 대해 얼마나 걱정하는지 모르오. 동무를 군대에 입대시켰으면 좋겠다고 해서 내가 우정 찾아온거요.》

《도당 파견원동지가요?》

산호는 눈굽이 뜨겁게 젖어들어 머리를 숙이였다.

(나같은 놈이 뭐라고 이렇게 생각해주는가? 나야 그분의 가정에 피해를 준 악한의 동생이 아닌가?)

《산호, 군복을 입고 내 나라를 지키는데 나서겠니?》

산호는 눈물어린 얼굴을 번쩍 쳐들고 영덕에게 말하였다.

《예, 절 데려가주십시오.》

장종학이 다가와 산호를 와락 껴안았다.

《산호야, 잘 생각했다. 내가 뭐 잘못한게 있거든 용서해라. 나에겐 뉘우쳐지는 점이 참으로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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