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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제2장


11


허창숙의 부상자리는 빨리 아물어갔다. 그럼에도 아직 일정한 시일의 안정치료가 필요되였으나 그는 자기가 맡은 녀맹사업이 마음에 걸린다면서 부득부득 퇴원하였다. 김일도 그것을 막을수 없었다.

김일이 잠시 속이 알찌근해서 앉아있는데 키가 후리후리하고 균형잡힌 미끈한 몸매에 눈과 코날이 예리해보이는 한사람이 찾아들어왔다.

《동북민주련군 길동분구 공급부 부부장 정두환입니다.》

손님이 자기 소개를 하였을 때 김일의 너부죽한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확 피여났다. 김일은 일어서서 정두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강건동무에게서 왔단 말이지요?》

정두환이 김일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옳습니다. 강건동지가 김일동지에게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김일과 강건은 다같이 김일성장군님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지휘관들로서 개인적으로도 남달리 가까운 사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조국으로 개선할 때 강건은 중국혁명을 도와주라는 장군님의 명령을 받고 최광, 박락권을 비롯한 유능한 지휘관들과 함께 동북으로 나갔다. 강건은 현지의 조선사람들로 무장부대들을 조직하였으며 동북민주련군 길동분구사령관이 되여 국민당 반동군대와 싸우고있었다.

《그래 지금 동북정세는 어떻습니까? 아직 형편이 어렵습니까?》

김일의 물음에 정두환은 가슴속의 괴로움을 토하듯 긴 한숨을 후 내쉬였다.

《지금 말이 아닙니다.》 하고 정두환은 중국 동북에서 벌어진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당시 중국 동북정세는 중국공산당의 편에 불리하게 번져지고있었다.

작년 1945년 11월 쏘련군대가 동북에서 철수하면서 국민당 반동세력이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대무력을 침입시킴으로써 중국공산당 군대는 피동에 빠지게 되였다. 강건을 비롯한 조선인지휘관들이 조직한 부대들은 물자공급부족에 직면하였다. 당시의 긴박한 정세로 하여 중국공산당 중앙에 손을 내밀수 없었던 길동분구사령부에서는 군복만이라도 어떻게 하나 자체로 풀어보기로 합의하고 정두환을 조선에 파견하였던것이다.

《여기 평북도에서 군복천을 좀 해결받을수 없겠습니까? 전장에서 한겨울을 난 대원들이 봄을 맞았어도 두터운 솜옷을 벗지 못하고있습니다.》

《얼마나 필요됩니까?》

《한 만벌가량은 있어야 합니다.》

김일은 머리를 수굿하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머리속에서 고패치는 여러가지 생각이 침침한 그림자가 되여 얼굴에 비끼였다.

사실 그가 쓰려고 건사하고있는 일정한 량의 군복천이 있었다. 강건이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는데 응당 내주는것이 혁명동지로서의 도리이고 의리일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런 생각을 억제하는 강렬한 지향이 있었다. 괴로운 사색속에 눈앞에 우렷이 떠오르는것은 장군님의 거룩한 모습이였다.

(후날 강건동무도 내 심정을 리해해줄것이다.)

김일은 솔직한 사람이였다. 그는 정두환이 자기를 좋지 않게 보리라 생각하면서도 말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두환동무, 이거 정말 미안합니다. 실은 여기에 군복천이 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천은 요긴하게 쓸 필요가 있어 건사해둔것이니 나로서는 줄수가 없습니다. 량해해주십시오.》

그는 담배를 피우며 가느다란 한숨을 내긋다가 말하였다.

《뭐 정두환동무에게 숨길것도 없지요. 우리가 조국에로 개선하기 전에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의 회의를 소집하시였습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건설에 대하여 연설을 하시였습니다. 지금 장군님께서는 새 조선을 일떠세우는 어렵고 힘든 분망한 사업속에서도 조선이 자주독립국가로 발전하자면 하루빨리 강력한 민족군대를 창설하여야 한다고 보시고 그 준비사업을 착실히 밀고나가고계십니다. 난 조만간에 있게 될 민족군대의 창설사업에 군복천이 꼭 필요되리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나라가 갓 해방되였고 왜놈들이 도망치면서 숱한 공장들을 파괴하였기때문에 군대창건을 앞두고 숱한 군복천을 갑자기 구하자면 그게 조련하겠습니까. 그래서 내 군복천들을 내주지 못하는겁니다.》

《민족군대창설사업을 위해서라면야 오히려 우리가 지원을 해야 할터인데…》 정두환은 느슨하게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쯤한것도 리해하지 못하겠습니까.》

《동무가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습니다. 강건동무에게 내 심정을 전해주십시오.》

정두환이 가겠다고 일어서는것을 김일이 붙들어앉히였다. 부탁은 들어주지 못하였어도 불원천리 찾아온 사람을 그냥 보낼수는 없었다.

김일은 정두환과 함께 식사를 한끼 나누었다. 정두환이 돌아갈 때 김일은 강건에게 전해달라고 한배낭의 담배와 물주리를 주었다. 강건은 김일과 더불어 항일투사들속에서 두드러지는 애연가였다.

김일은 강건에게 편지도 썼다. 그 편지에서 김일은 잊지 못할 동지인 강정익의 아들애에 대해서도 썼다.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시절 한영덕이 임무수행중 강정익의 아들애를 데려간 의원집며느리를 찾아갔던적이 있었으나 행처를 찾을수가 없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국에 개선하신 후 김일과 담화하시는 기회에 강정익에 대해 회고하시면서 그의 아들애를 꼭 찾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였다. 먼저간 혁명동지들과 그들이 남긴 자녀들에 대해 잊지 않으시는 장군님의 고결한 정과 의리에 미치지 못하는 자기자신을 두고 고민도 많이 하고 장군님을 따르려고 늘 애쓰는 김일이였다.

김일은 강건에게 진성봉이라는 소년도 찾아봐달라고 부탁하였다. 진성봉은 허창숙이 북만에서 함께 싸운 동지의 아들이였다.


김일은 정두환과 작별한 후 신의주국경경비대 지휘부를 찾아갔다. 국경경비대는 지난해말 장군님의 지시에 따라 김일이 책임지고 꾸린 부대였다. 지금 국경경비대는 신도로부터 후창군(오늘의 김형직군)에 이르는 국경연선의 시, 군들에 주둔하여 국경경비임무를 수행하고있었다.

국민당군대가 안동(오늘의 단동)에 침입한 작년말부터 국경일대가 편안치 않았다. 국민당군벌들은 압록강국경연선에서 빈번히 군사적도발을 감행해오군 하였다. 놈들을 제압하자면 국경경비대를 더욱 강화하여야 하였다.

김일은 경비대지휘부 마당에서 대원들의 제식훈련모습을 한창 지켜보면서 곁에 서있는 한영덕에게 말하였다.

《전투정치훈련에서 기본은 대원들을 장군님에 대한 충실성으로 무장시키는것이요. 영덕동무도 물론 그렇게 하고있으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로파심삼아 강조하는거요.》

《념려마십시오. 아무렴 이 한영덕이 장군님의 슬하에서 자란 사람인데…》

한영덕은 얼마전에 장군님의 지시에 따라 평양학원졸업생들을 이끌고 경비대에 파견되여왔다. 평양학원졸업생들이 국경경비대에 배치되여오면서부터 경비대는 각종 정규훈련을 제대로 받는 부대로 강화될수 있는 조건이 완비되였다고 할수 있었다.

《영덕동무를 믿겠소.》

김일의 말에 영덕의 검실검실한 얼굴에 미소가 어리였다. 이윽고 영덕은 깊은 감회가 깃든 어조로 말하였다.

《우린 또 함께 일하게 되였구만요.》

1936년 김일이 반일부대를 이끌고 장군님을 찾아올 때 고락을 같이 한 한영덕은 그후 8련대에 속하여 김일과 함께 싸웠다. 김일이 8련대 1중대 정치지도원을 할 때는 소대장을 했고 김일이 련대정치위원을 할 때는 중대장을 했다. 소조활동시기에는 김일의 소조에 망라되였던적이 많았었다. 해방과 함께 조국에 개선한 후 헤여지게 되였는데 영덕이 국경경비대에 파견되여옴으로써 또 가까이에 있게 된것이다.

《허창숙동지가 반동놈들에게 부상을 당하고 입원했다는데 어떻습니까?》

《퇴원했소. 몸집은 작아도 속은 남자들이상으로 강한 동무요. 아들애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이겨냈소.》

잠시후 김일은 대렬상태에 대해 묻다가 신대원을 한명 받아야겠다고 하였다.

《김일동지가 추천하는 사람이라면 물론 모든 면에서 합격일테지요?》

영덕은 롱을 섞어 말하였으나 김일은 정색한 얼굴표정을 조금도 흐트리지 않고있었다.

《17살난 청년이요. 사람은 괜찮아보이는데 정신적으로 좀 나약한게 탈이라고 할가… 글쎄 한창 앞길이 구만리같은 애가 자살까지 시도했더란 말이요. 아무래도 그를 우리 군대의 강한 군사규률과 화약내풍기는 전장에서 단련시킬 때만이 구원할수 있을것 같소.》

김일은 영덕에게 림산호의 하숙집주소를 대주었다.

《지금 하숙집에서 고독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있을거요.》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영덕은 차렷자세로 서서 힘있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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