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66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9 장


1


시험장구내의 잎나무들이 한껏 무성하고 꾀꼬리들이 부르며 화답하는 소리가 유난스럽던 7월 중순 어느날 갑자기 쌕쌔기 석대가 염주 룡골산쪽으로부터 곧바로 채령동거리로 급강하하는가싶더니 놀랍게도 무성한 숲속에 잠긴 시험장으로 달려들어 로케트탄을 퍼붓고 기총탄을 들부었다. 포탄에 맞은 두동의 잠실이 불시에 불길에 휩싸이고 계박사가 들어있던 사무실에도 기총탄이 뚫고들어와 미처 대피하지 못한 계박사의 책상우에 총알구멍을 내놓았다.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재가루가 되여버린 두동의 잠실에는 각 도의 원종장들에 보내려고 알을 깨워 대지에 붙여놓았던 새 품종의 누에원종이 들어있었다.

손실은 도저히 회복할수 없는것이였다. 실험잠실과 원종부에 남겨놓았던 연구용원종을 내놓고는 원종장들에 보낼 원종이 한장도 남김없이 말짱 타버렸다.

군에서의 첫 폭격대상이 누에를 키우는 잠업시험장이였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때로 말하면 놈들의 폭격이 중요군사대상들인 군수공장, 비행장, 주요철도 등에 국한되여 선택적으로 감행될 때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적들은 소위 저들의 1차폭격대상에 누에연구소를 넣었는가. 비행사들의 우연한 실수에 의한 폭격인가. 하지만 실무성과 타산을 으뜸으로 삼는 미국놈들이 아닌가. 절대로 그럴수는 없다.

수수께끼같은 이 사건은 넉달후에 전혀 바라지 않았던 불의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비로소 밝혀졌다. 놀라운것은 적들의 군용지도에 시험장이 중요한 《타격대상》으로 되여있다는 그것이였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는 일이였다. 만약 원종잠실에서 불과 100여메터밖에 떨어져있지 않는 원종유지실에 폭탄이 명중됐다면 어떻게 될번 했는가. 계박사가 일생을 두고 마련해놓은 천금보다 더 귀중한 나라의 재부가 순식간에 재가루로 될번 하였다. 그건 그렇다치고 사무실로 뚫고들어간 기총탄이 반메터만 앞쪽에 맞았다면 계응상박사의 존재를 영원히 빼앗겼을것이다.

소잃고 외양간고치기이지만 더 큰 희생을 미리 막기 위하여 시험장에서는 서둘러 소개를 시작했다.

원쑤들은 멀리 있었지만 웬일인지 그자들이 여기서 벌어지고있는 일들을 집요하게 주시하면서 지금도 불붙는 잠실에 대한 사진촬영자료를 들여다보며 너털웃음을 치는것만 같았다.

불안한 생각을 금치 못한 계응상은 만약경우를 생각하여 원종을 두질로 나누어 각각 달구지에 실어서 한질은 의주군에서도 제일 깊은 삼봉리 막바지의 외진 마을로, 다른 한질은 피현군 월탄리 매바위골로 실어보냈다. 웬일인지 그의 마음속에서는 시간을 다투어 누에원종들을 소개시키라고 속삭이는것이였다.

실험설비들과 부피가 많은 잠기구들은 화물자동차에 실어 삼봉리로 내다가 리민주선전실이며 현물세창고들에 옮겨놓고 갓 준공한 본청사는 지붕을 뜯어내여 폭격을 맞은것처럼 해놓았다. 정작 시험장재산을 소개시키자고보니 해방후에 재산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게 알리였다. 군인민위원회에서 10여대의 달구지를 동원시켜주어 련사흘 소를 갈아메우며 밤낮으로 날라냈지만 한창 자라는 수천잠박의 누에들까지 옮겨갈수는 없었다.

소개하기로 한 재산을 실은 마지막달구지들을 떠나보내고 남아있는 여름누에를 키우면서 비여있는 건물들을 관리할 사람들이 어수선한 시험장에서 첫날밤을 자고났을 때였다. 해가 퍼지자 또다시 달려든 미군비행기가 새로 건설한 2층잠실에 소이탄을 들부었다. 흥송을 켠 비게같은 백자를 차판으로 실어다가 얼마나 정성스레 지은 건물이였던가. 채령동사람들은 고급가구재를 실어다가 품들여 짓는 그 집을 보고 무엇에 쓸것이냐고 묻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시험장사람들은 그 집에서 색고치며 닭알만 한 누에고치를 만들게 된다고 자랑했었다. 비행기가 사라진 다음에 숱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모래를 뿌리며 불을 껐지만 2층잠실은 페허로 되고 그안에서 한창 자래우던 20여장의 여름누에들도 몽땅 타버리고말았다.

정거장과 역근처에 있는 광산기계부속품공장도 같은 시각에 폭격을 맞긴 했지만 읍내 민간기관들중에서는 또다시 시험장만이 폭격을 맞은셈이였다.

이제 와서는 적들이 국립중앙잠업시험장을 군용지도에 표시해놓고 의도적으로 폭격하고있다는것이 명확해졌다.

무엇때문에 적들은 전쟁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잠업연구기관을 소멸해버리기 위해 저토록 집요하게 날치는것인가. 북의 수백만의 누에가 제놈들의 목을 조일 무서운 신형무기들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대학에서 곧장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전선으로 나간 최필호한테서 보내온 편지는 계응상의 의문을 풀어주는 한가닥의 실머리를 주었다. 그것은 군사우편함번호로 계박사한테 보내온 첫 편지였다.

그는 편지에 썼다.

《선생님, 우리 졸업반학생들은 20일간의 군관학교 단기강습을 마치고 모두 포병소위칭호를 받았습니다. 새로 편성된 소대를 인솔하고 38도선을 지나 경기도 화성군 x면에 당도하여 훈련을 하고있습니다.

누에를 다루던 손으로 76미리직사포를 다룹니다. 얼마나 상징적인 일인가요? 우리는 꼭 미국놈들을 타승하고 개선하여 선생님이 쥐여준 유전학의 무기를 틀어쥐고 수백만누에의 대군을 거느린 〈장군〉이 될것입니다.

선생님, 우리가 주둔하고있는 마을에서 수원농사시험장까지는 불과 30리밖에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전번 휴일날 저는 대원 한명을 데리고 아침 일찌기 떠나 수원농사시험장에 찾아갔댔습니다.

언젠가 선생님이 우리한테 말해준적이 있는 정태연실장선생이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제가 계응상선생님한테서 잠학을 배우던 학생이였다고 소개하자 그가 어찌나 반가와하던지요.

정태연선생은 서대문감옥에 감금되여있다가 인민군대가 서울을 해방하면서 감옥에서 풀려나왔다고 합니다. 그가 림시 농사시험장사업을 책임지고있습니다.…

선생님이 인간쓰레기라고 했던 안상길이놈은 패주하는 미군을 따라 남쪽으로 줄행랑을 놓았다고 합니다. 그놈은 선생님이 북을 향해 떠났다는것을 알고 사냥개같은 깡패 네댓명을 직접 지휘하여 개성까지 추격하도록 했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게 되자 앙앙불락했다고 합니다.

어찌나 악한 놈인지 졸개들이 선생님을 붙잡지 못하고 돌아온 성이 풀리지 않아 집에서 나흘이나 몸살을 하고야 시험장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리승만이가 미국놈을 등에 업고 〈북진〉나발을 불어대자 그놈은 어디서 무슨 기미를 챘는지 이제 불원간 이북땅을 수복하게 될것이다, 그때에는 계박사도 뛰여야 벼룩이지 갈데가 있는가, 기어이 때가 되면 이북땅 한끝까지 찾아가서라도 계박사를 붙잡아다 사는 법을 가르치고야말겠다고 흰소리를 치군 했답니다.

그리고 그 제임스농산기사란 놈은 내내 시험장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돌아치다가 얼마후 서울주재 미국대사관의 모모한 부서에서 종사했는데 그의 주되는 관심사는 북반부의 군사시설들과 경제, 과학기술 등 광범한 분야를 포괄하고있었다고 합니다. 그 제임스란 놈이 그 무슨 흉악한 꿍꿍이를 하고있은것만은 분명한데 그것이 어떤것인지는 자세히 알길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들로 미루어보아 국립중앙잠업시험장에 대한 적들의 야만적인 폭격이 그자들의 꿍꿍이와 련관되여있는것만은 틀림없었으나 무엇때문에 그들이 그처럼 집요하게 시험장을 노리고 타격을 가하는가 하는것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어쨌든 시험장에서 하고있는 사업이 예상외로 중요하다는것, 때문에 이전과는 달리 각자가 고도의 경각성을 높여야 하겠다는것을 날카롭게 자각케 했다.

마지막으로 대피호의 금고에 간수했던 연구자료들이며 현미경이며 빙고에 간수했던 시험용누에알들을 싣고 월탄리 매바위골로 들어간 계응상박사는 리에서 내준 외진 농가 한채를 차지하고 단 하루도 번짐이 없이 연구사업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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