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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제2장


10


저녁녘 김일은 병원의 입원실에 누워있는 허창숙의 머리맡에 앉아있었다. 허창숙은 가슴에 파편이 박혔었는데 수술을 하여 생명에는 위험이 없었다. 그러나 허창숙에게 부상보다 더 큰 타격으로 된것은 어린 아들애가 죽은 사실이였다. 하여 허창숙은 지금도 정신적인 허탈상태에서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아들애가 죽은것은 김일에게도 큰 아픔이고 슬픔이였다. 동북에 두고온 아들 박용석의 생사를 모르는 형편에서 뒤늦게 태여난 그 아들애가 때없이 허전해지는 그의 가슴을 위안해주었던것이였다. 그러나 이시각 김일은 자신이 참기 어려운 고통에 허덕이기 전에 우선 허창숙을 위로해야 할 더욱더 고통스러운 절박감을 느끼고있었다.

조국해방을 위해 피바다, 불바다를 헤쳐온 혁명동지 허창숙이 해방된 조국땅에서 부상을 입은데다 귀중한 아들애마저 잃었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김일의 가슴속에는 반동놈들에 대한 증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있었다. 하지만 도당위원장인 그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마음이 약해지는 그런 순간에 그에게 의지가 되고 용기를 주는것은 장군님이시였고 그이의 가르치심이였다. 장군님께서는 학생사건이 일어난 직후 신의주에 오시였을 때 김일에게 적들이 제아무리 발악을 해도 부강한 새 민주조선을 건설하려는 우리의 앞길은 막지 못할것이라고, 동무는 도공산당의 책임적인 간부로서 각계각층 인민들을 당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빨리 슬픔을 털고 일어나 장군님의 말씀을 관철하여야 한다. 혁명의 원쑤들을 제압하고 장군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세워야 한다.)

김일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허창숙을 내려다보았다. 안해에 대한 동정심은 그냥 가슴을 쓰리게 하였다. 안해가 아무리 투쟁속에 단련된 빨찌산출신이라고 해도 녀자가 아닌가. 아들을 잃은 모성의 보이지 않는 몸부림을 어떻게 달래이면 좋단 말인가.

《창숙동무, 울지 마오. 오늘보다 더한 시련의 고비들을 넘어온 동무가 아니요. 이쯤한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지 않소?》

김일은 이렇게밖에 말할수 없는 자신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 차라리 내가 부상을 입었더라면 이 괴로움이 좀 덜어질수 있지 않을가? 차라리 우리사이에 아들애가 태여나지 않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상실의 아픔을 몰랐을게 아닌가. 아니, 비관적인 생각은 그만두자. 장군님을 믿고 래일을 믿으며 살아야 한다.

《내 걱정은 마십시오. 난 인차 일어나겠습니다.》 허창숙이 눈물을 씻으며 하는 말이였다.

김일은 어쩐지 고마운 생각이 치밀어 안해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이겨냅시다. 우리는 자식을 또 볼수 있을거요. 아직 우리야 젊지 않소.》

《동지의 마음을 알겠어요. 내 다시는 울지 않겠어요. 빨리 일어나 일을 하고싶어요. 동지가 바빠 돌아가는데 난 이렇게 병원침대에 누워있군요.》

역시 안해는 강의한 녀자였다. 안해의 얼굴에 비오듯 흐르던 눈물은 깨끗이 씻기워졌고 비장한 각오가 푸르게 비끼였다. 몸매는 자그마해도 속은 강철처럼 단단한 투사였다.

《동무는 우선 몸을 추세워야 하오. 더 입원치료를 받소.》

김일은 다시한번 안해의 손을 잡아주고나서 일어섰다.

창문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이 어쩐지 강렬한 자극으로 안겨왔다. 김일은 그 노을속에 아름다운 래일이 약속되여있는것만 같았다.

김일은 승리를 굳게 믿으며 입원실을 나섰다.


다음날 아침 김일은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것은 림산호가 도당접수실에 가져다주며 전해달라고 부탁한 편지였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줄이 씌여져있었다.

《도당위원장동지, 죄많은 림산호가 하직인사를 드립니다. 도당위원장동지의 집에 큰 피해를 준 악한을 형으로 둔 불행을 하소연하고저 이 글을 쓰는것은 아닙니다. 제가 본의아니게 이번 악행의 공모자로 되였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장종학아저씨에게서 구체적으로 들을수 있을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자신을 처벌하려고 합니다. 저를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진정으로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공산당을 따르고싶었음을 믿어주기를 바랍니다.》

림산호, 자기 집에 수류탄을 던진 범죄자의 동생. 그런데 그가 림의호와 공모하였다는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리고 자기를 스스로 처벌한다는건?… 어쨌든 편지를 통하여 산호의 극도에 달한 고민의 세계를 엿볼수가 있었다.

김일은 장종학을 방에 불러 산호의 편지를 내보이였다.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요?》

장종학은 편지를 보고나서 한숨을 내쉬였다.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산호가 그런 자식일줄은 모르고 파견원동지에게 소개까지 했는데…》

종학은 어제 산호가 자기 집에 찾아왔던 이야기를 하였다.

《일인즉 그렇게 되였구만. 하지만 산호에게는 죄가 없소. 아직 각성되지 못한 17살 소년이 아니요. 친형이라고 찾아온걸 내쫓는다는게 그로서야 쉽지 않은 일이지. 난 산호를 믿고싶소.》

김일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계속하였다.

《그런데 스스로 자기를 처벌한다는건 무슨 뜻일가? 혹시 이 애가 극단적인 생각을 한게 아닐가?》

《극단적인 생각이란건?…》 종학은 자기 생각을 굴리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자살할수도 있다는거지. 고민이 극도에 달하면 자포자기끝에 그런 길로 갈수도 있소. 어쩐지 이 편지에서 그런 냄새가 나오.》

《그까짓거 맘대로 하라지요.》

《장종학동무.》 별안간 김일의 목소리가 엄해졌다.

종학은 속이 찔리여 김일을 쳐다보았다. 김일의 준엄해진 눈길이 또렷이 종학을 응시하고있었다.

《그게 진정으로 하는 소리요? 아니면 그저 한번 해보는 소리요?》

《사실말이지… 난 의호는 말할것도 없고 이제는 그 동생인 산호까지도 곱게 보이질 않습니다. 파견원동지의 부인이 부상을 입고 아들애까지 잃은 이 시각에 와서…》

《그만두시오.》 김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앞에서 파견원소리를 하지 마오. 지금 장군님을 따르는 한사람의 운명문제를 두고 말하고있지 않소? 장군님께서 신의주에 오셨을 때 그이를 뵙겠다고 역전호텔앞에 왔던 산호가 잊혀지지 않소. 민족의 태양이신 장군님을 따르는 사람은 언제나 우리와 한편이요. 그 형은 제갈데로 가라고 합시다. 그러나 우린 산호까지 구렁텅이에 밀어던져서는 안되오.》

김일은 화가 나는듯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리고 멍히서있는 종학을 지켜보다가 담배 한대를 내밀어주었다.

《자, 어서 한대 피우오. 혁명하는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하오. 차디찬 심장으로는 혁명을 할수 없소. 림산호네 부모들을 봐서도 산호를 잘 이끌어주어야지. 그렇지 않소?》

장종학은 김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가서 머리를 수굿하고 담배를 피웠다. 그는 언젠가 김일에게 림산호네 부모들에게 신세를 진 일에 대해 이야기한적이 있었다.

그것은 해방전 종학이 요시찰인의 딱지가 붙어 왜놈경찰에게 쫓길 때의 이야기였다. 종학은 징병호출장을 받고 다음날까지 경찰서에 출두하게 되여있었다. 몸을 피해야겠는데 집밖에서는 형사가 감시하고있었다.

생각다못해 안해를 시켜 이웃집에 사는 림산호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림산호네는 국수집을 운영하고있었다. 반일사상이 강하였던 국수집주인은 장종학을 구원하기 위해 형사를 청하여 술을 먹이였다.

그새 종학은 자기 집을 빠져나와 산속으로 몸을 숨길수가 있었다. 그때부터 종학은 해방의 날을 맞을 때까지 깊은 산속에서 숯구이를 하며 살았는데 그동안 종학의 안해와 맏아들을 림산호네가 많이 돌봐주었다. 산호의 아버지는 왜놈경찰서에 끌려가 매를 맞고 놓여나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런 사연이 있기에 장종학은 산호를 각별하게 대하였고 해방후에는 홀로 남은 산호 어머니를 돌봐주느라 제나름의 노력도 했던것이다. 보안서장과 같은자들이 림산호네 집을 친일파로 몰아대면서 국수집을 몰수하려는것을 장종학이 제지시킨 사실도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녀인에게는 자식복이 없었다. 맏아들 의호는 일찍부터 집을 나가 학교도 다니고 권투를 배운다고 하면서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아 부모들의 속을 태웠던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산호에게서까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줄이야…

김일의 말을 듣고 종학은 은근히 량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면서 자신이 왜소하게 생각되였다. 그리고 이미부터 가슴을 물어뜯던 산호의 운명에 대한 불안이 갑자기 커지면서 숨구멍을 막는것만 같았다.

《동문 산호를 빨리 찾아가봐야겠소. 그 애 하숙집을 알겠지?》

김일의 말에 종학은 흠칫 놀라면서 채 타지 못한 담배불을 재털이에 비벼껐다.

《제 이제 가보겠습니다.》

종학이 허둥지둥 산호의 집에 가보니 이미 일은 터졌다. 밤중에 산호는 하숙집창고에서 천정에 바줄을 걸고 목을 매달았다. 다행히 하숙집 딸이 발견하고 그를 구원해낼수가 있었다. 산호는 방에 누워 헛소리를 치며 앓고있었다. 종학을 보는 산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죽으려고 했으나 죽지 못했어요.》 산호는 가느다란 소리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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