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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제2장


9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며칠후 평북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신의주를 떠나시였다. 그러나 그이를 모시였던 그 감격의 여운은 오래도록 시민들의 가슴속에 남아있었다. 특히 림산호는 동중학교 마당에 빼곡 들어찬 시민들앞에서 연설하시던 장군님의 그 모습을 언제든지 잊을것 같지 않았다. 산호는 그 대회장에서 장군님을 따르는 길에 진리가 있다는것을 다시금 굳게 절감하였던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모르게 죄책감에 시달리고있었다. 자기의 형 의호가 공산당을 반대하는 반동행위를 하다가 정체가 드러나 남조선으로 도망쳤다는 그 사실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학생사건은 바로 형과 같은 반공분자들이 순진한 학생들을 꾀여 조작했던것이였다.

그런데 산호가 저주하던 그 형이 다음해 봄에 불쑥 산호의 하숙집에 찾아왔다. 밤중에 두억시니처럼 불쑥 들어서는 의호를 보고 산호는 깜짝 놀랐다.

《형이 어떻게 된 일이예요?》

온몸에 엄습하는 불안과 공포감으로 산호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떨려나왔다.

《하루밤 자고는 가겠으니 떨건 없어.》 의호는 위협하듯 권총을 방바닥에 꺼내놓았다.

《난 남에서 장사일때문에 왔다. 거래만 끝나면 다시 갈판이야.》

산호는 의호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으나 그가 다름아닌 형이라는 혈연의 감정때문에 가까스로 자신을 억제하고있었다.

《형은 담도 크군요. 체포되면 다예요. 어서 가라요.》

《누구도 본 사람이 없으니 안심해. 그런데 넌 아직도 공산당간부들을 따라다니니?》 의호는 산호를 흘겨보았다.

《그건 형이 상관할바가 아니예요. 공산당이 뭐 어쨌다고 한사코 해보려드는거예요?》

《자식, 너 죽자고 함부로 그따위 소리를 하는거야?》

의호는 권총으로 산호의 무릎을 쿡 찔렀다.

《공산당에 속지 말아. 공산당이란건 다 로스께들의 앞잡이들이야. 너 나와 남으로 함께 가지 않겠니? 내 너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테다.》

《형이나 빨리 사라지라요. 난 형때문에 여기서 머리를 들고 살수 없어요.》

《그렇다? 그러니 이 형의 말은 기어코 듣지 않는단 말이지?》

의호는 산호의 목깃을 틀어잡아당겼다. 의호는 산호보다 몸집도 컸고 팔힘도 보통이 아니였다. 권투를 배우면서 늘 육체단련을 하였기때문이다.

산호는 주먹을 떨며 의호의 관골이 두드러진 넙적한 얼굴을 쏘아보았다. 너 죽고 나 죽고 해보자고 달려들고싶었다.

《그래 어쩔테예요?》

의호도 지그시 산호를 마주 쏘아보았다. 그러다가 목깃을 틀어잡았던 손을 놓고 얼굴을 돌렸다.

《네가 내 동생이기때문에 오늘은 참는다. 그러나 앞으로 잘 생각해봐, 내 다시 올수도 있으니까. 우선 배가 고프니 뭘 좀 먹을걸 내놓아라.》

산호는 의호를 상대하고싶지도 않고 못된 형을 둔 자기자신의 운명이 기막히고 가련하게 생각되여 자포자기하듯 벌렁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러자 의호는 방을 여기저기 뒤져 먹을것을 꺼내 게걸스럽게 먹어대는것이였다.

그날 밤 산호는 한잠도 못 자고 엎치락뒤치락하며 밤을 새웠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도무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장종학아저씨에게 찾아가고싶었으나 밤중이라 단념하는수밖에 없었다. 이제 바랄것은 형이 누구도 모르게 자기의 곁에서 또 이 신의주에서, 나아가서는 이 밝은 세상에서 흔적없이 사라져버리는것이였다.

의호는 코까지 드렁드렁 골며 자더니 아직 캄캄한 새벽에 벌떡 일어나 간다는 소리도 없이 나가버렸다.

다음날 오후 산호는 학업이 끝나자 장종학을 찾아갔다. 장종학은 산호가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는 사람이였다. 종학이 도당에 없기에 저녁에 다시 그의 집으로 찾아가니 종학은 침통한 낯으로 산호를 맞아주었다. 어쩐지 그의 얼굴에는 자기자신에 대한 경원의 감정이 섞인듯싶어 산호는 인사말도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왔느냐?》 종학은 지치고 시름겨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전과는 다른 종학의 태도를 산호는 의아히 지켜보았다.

《아저씨, 무슨 일이 있었어요?》

《오늘 새벽에 파견원동지의 집이 반동놈들의 습격을 받았다.》

《그게 정말이예요?》 산호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흡떴다.

산호는 그때에야 왜 종학이 낮에 사무실에 없었으며 또 그의 낯빛이 전에없이 침통했는가를 짐작할수가 있었다.

《그럼 파견원동지는 어떻게 되였어요, 예?》 산호는 숨이 차서 부르짖었다.

《파견원동지는 다행히 그 시각에 집에 없었으니 화는 면했는데 허창숙동지가 부상을 입고 어린 아들애가 죽었다.》

《예?》

산호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자기가 안아본적이 있는 바로 그 애가 죽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리고 애의 어머니 허창숙은 부상을 당했다고?… 눈앞에서 거대한 돌산이 와르르 소리내며 허물어지는것만 같았다. 어떤 놈이, 과연 어느 악당이 그처럼 잔혹한짓을 했단 말인가.

《그 악행을 저지른 놈들을 잡았어요?》

《한놈은 붙잡고 한놈은 놓쳤다. 그런데 그 놓친 한놈이 누군지 아느냐?》

산호는 머리를 싸쥐며 주저앉았다. 장종학의 다음말이 무서워 달아나버리고싶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여들어가고싶은 심정이였다.

(제발 형이 아니였으면… 아저씨, 말을 그만두세요.)

그러나 종학은 주저앉은 산호를 동정어린 눈길로 내려다보며 동을 달았다.

《그놈이 바로 산호의 형인 의호란다.》

산호의 머리우에서 천둥벼락이 치는것만 같았다. 아,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내가 살인악당을 내 방에서 자게 하고 먹을것도 주다니…

산호는 저도 모르게 와락 종학의 두다리를 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저씨,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어제 밤 형이 내 하숙집에 왔댔어요. 내 방에서 자고 새벽에 나갔습니다.》

《뭐라구?》

종학이 산호의 어깨를 틀어잡아 일으켜세웠다.

《다시 말해봐. 그게 사실이냐, 응? 네가 그놈을 받아들였단 말이냐?》

《예, 형이 그런 악행을 저지를 흉심을 품고있는줄은 모르고…》

《에끼, 이 후레자식들같으니…》

장종학의 손바닥이 산호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산호는 허양 나가넘어졌다. 그는 다시 일어나 종학에게 매달렸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흙으로 매닥질되였다.

《날 더 때려주세요. 아니, 차라리 날 죽여주세요. 난 더 살고싶은 생각이 없어요.》

《썩 사라져라, 보기도 싫다.》

종학은 그 어떤 더러운것을 내버리듯 산호를 홱 뿌리쳐버렸다. 갓난애기를 안은 안해가 나와서 장종학을 말리였다. 안해는 얼마전에 둘째아들 현철이를 낳았던것이다.

《여보 현철이 아버지, 진정하세요. 그래도 산호 아버지나 어머니를 생각해서 당신이 참으세요.》

《이걸 어떻게 참아. 어디서 전탕 쓰레기같은것들이 아닌가. 내 그래도 산호만은 사람구실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종학의 격분에 떠는 소리를 들으며 산호는 허둥허둥 발걸음을 내짚었다.

눈앞에는 자기가 안아줄 때 해해거리며 웃던 애기의 발기우리한 얼굴이 떠오르는가 하면 자기의 팔굽에 난 별치 않은 상처를 입김을 호호 불면서 약을 발라주던 허창숙의 살뜰한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김일의 슬픔에 찬 얼굴이 다가와 자기를 꾸짖는것만 같은 환각이 눈앞에 그려지기도 했다.

어느 사이엔가 그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있었다.

어디로 갈것인가? 그는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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