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60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8 장


1


계응상박사가 원산농업대학에 나갔다가 열흘도 못되여 되돌아왔을 때 시험장에서는 천만뜻밖의 사태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상급의 지시에 의하여 중앙잠업시험장을 순천원잠종제조소로 옮기고 채령동에는 여라문명의 시험공들과 계박사만 남겨두게 되였다는것이였다. 명색은 잠업중심지에 가까운 평양근처로 중앙잠업시험장을 옮긴다고 하고있지만 계박사를 장장직에서 제거하기 위한 조치라는것은 너무도 뻔했다.

누에해부실험실은 해산되고 원종부며 시험부는 사람은 말할것도 없고 실험설비들까지 몽땅 순천으로 이관시키게 되여 모두들 손털고 나앉아 계박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있었다.

순천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통솔하게 되였다는 리덕겸만이 양복우에 작업복을 덧입고 분주히 돌아치고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것은 계응상이 가장 사랑하던 명길동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고향집으로 가버렸다는것이였다. 그제서야 응상은 근래에 명길동이 그와 리덕겸사이에 끼워 난처한 처지에서 헤매이던 일을 상기했다.

《길동이, 똑똑히 제정신을 가지구 살라구.

장장이 하라구 하는 일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예예 했다간 큰코 다쳐. 동무는 벌써 그의 은밀한 거미줄에 걸려 버둥질하는 가련한 잠자리의 신세로 되고있단 말이요.》

리덕겸은 시험부에 들려 이렇게 을러대군 했다.

시험장에는 계응상의 연구조수들이 적지 않았지만 리덕겸부장장은 문문한 땅에 말뚝 박는다고 명길동을 누구보다도 엄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그는 그 무슨 착오가 생긴것이라고 짐작하고 온갖 불쾌한 일들을 꾹 참고있었다. 계박사는 이런 사정을 무관하고 그에게 복잡한 누에교잡실험을 맡기고 내밀었다. 하나 길동에게는 그의 말들이 전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장장의 말을 고분고분 집행하면 덕겸부장장이 불러다가 반동적인 연구방법을 마련없이 받아문다고 시비하고 부장장의 말을 좇으려 하면 계박사가 화를 냈다.

새틈에 끼인 길동은 좌왕우왕하였다.

그런데 덜컥 계응상박사를 등지고 순천으로 나가라는 지시를 받았으니 은인을 배반하기에는 그의 량심이 너무도 깨끗하였으며 상급의 지시를 거역하자니 후환이 두렵기도 했다.

차라리 이렇게 말썽많은 연구사업을 하느니 고향마을로 돌아가 년로하신 어머니와 손을 맞잡고 틈틈이 누에를 치는것이 나으리라 생각한것이다.

계응상이 이 모든 자세한 내용을 다 알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은 별로 어긋나본적이 없다. 명길동의 처사를 미루어 짐작한 그는 침통한 기색을 지었다.

방안에는 숨막힐듯 한 고요가 깃들어있었다.

책상 한쪽에 올려놓은 회중시계의 초침소리만이 변함없이 걸음을 재촉하고있었다.

《면회사절》

과학탐구를 위해 스스로 만들어놓은 엄한 질서마저 이 시각만은 그 자신을 질식시키는 함정으로 되고만듯싶었다.

어느 한 순간도 감상에 잠겨 연구사업을 중단해본적이 없는 그였건만 이날만은 지혜롭고 주의깊은 선량한 눈매에 헤아릴길 없는 슬픔을 담고 오래동안 정원을 거닐었다.

스무나무의 잔가지들에서 참새떼가 우짖고 아찔한 백양나무우듬지에서 까치가 깍깍 울었다.

(뭇새들은 다 사라지고 향촌의 정다운 새 너만이 어느때도 이 땅을 버리지 않는구나.)

산란한 마음의 한갈피를 무심한 새에 붙여보기도 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