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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7 장


5


계응상을 해임시킨 날 저녁 대학에서는 뜻하지 않은 한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교육성지도그루빠에서는 각 학급에 계응상교수한테서 받은 유전학강의학습장을 회수해오라는 지시를 떨구었는데 잠학과 2학년에서는 학급장 최필호가 이를 단호히 거부해버렸다는것이였다.

교무부학장은 지도그루빠책임자 배운권의 전화를 받고야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는것을 알았다.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잔뜩 미간을 찌프렸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그의 집에는 필호의 아버지 즉 그자신의 친형이 대학공부하는 아들도 만나보고 원산구경도 할겸 해서 올라와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세가지 소원, 배우고싶고 바다를 보고싶고 도회지구경을 하고싶은것을 다 성취했다고 하면서 그리도 기뻐하던 조카가 아닌가.

그건 그렇고 대대로 부대기농사밖에 모르던 집안에 첫 대학생이 나왔다고 불원천리하고 찾아온 형한테는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옳단말인가?

그는 어떻게 되여 이런 사태가 빚어졌는지 알수 없다는듯 머리를 저었다.

이튿날 오후 3시무렵이였다.

대학종합강의실에서는 학부교직원, 학생 전원이 참가한 가운데 연구토론회가 벌어졌다.

명칭은 연구토론회라고 붙였지만 내용은 심각한 사상투쟁이였다. 주석단에는 배부상을 비롯한 교육성지도그루빠성원들이 주르르 나앉고 원설학장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한쪽에 앉아있었다.

먼저 주석단 한가운데 앉은 배부상이 최근 2년동안 농학부에서 《반동학설》을 공개적으로 강의한 내용을 구체적인 자료를 들어 지적하고 그 후과로 인하여 학생들속에서 나타난 불순한 경향을 폭로했다.

그의 대표적실례로 든 인물은 다름아닌 최필호였다. 첫 토론자로 필호학생이 지명되였다.

뒤자리에서 일어나 연탁앞으로 걸어나가는 그는 의외에도 배심이 든든한 기색이였다.

장내에서는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러나 정작 연탁앞에 나서서 종합강의실에 꽉 들어찬 교직원, 학생들을 내려다본 필호는 일이 상서롭지 못하게 되였다는것을 느낀듯 주춤거렸으나 곧 머리를 높이 쳐들었다.

그는 대학학보에 발표된 《두개의 유전학에 대한 론의》를 본 때로부터 자기가 받은 유전학강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것을 깨닫고 놀랐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엉뚱하고 무모한짓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때부터 제나름으로 계응상박사선생의 학문을 남몰래 검토해보리라 속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의도적으로 그의 강의를 많이 들었고 그가 조직하는 실습에도 열성적으로 참가하였습니다. …

그러나 아무리 날카로운 눈초리로 계응상선생의 실험교수과정을 살펴보았지만 유해로운것을 찾아볼래야 볼수가 없었습니다. …》

장내에서는 술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의장선생!》

한 학생이 불쑥 손을 쳐들었다.

회의를 집행하는 지도그루빠성원이 그에게 언권을 주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뼈대가 굵고 키 큰 대학생이 웅글진 목소리로 질렀다.

《최필호학생은 아직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헛소리를 치고있습니다. 도대체 이 회의를 어디로 끌고가자는겁니까. 토론의 뜻을 똑바로 알고 발언해줄것을 요구합니다.》

《옳소.》

《립장을 똑똑히 밝히시오.》

《발언을 중지시키지 말고 끝까지 들어봅시다.》

혈기에 넘친 대학생들이 저마끔 한마디씩 웨쳐대는 바람에 장내는 소란해졌다.

번쩍이는 눈매로 강당의 어느 한쪽 벽을 지그시 쏘아보던 최필호는 장내가 잠짓해지자 양복앞자락을 헤치고 내의를 활 걷어올리였다.

《자, 보시오.》

시뻘겋게 드러난 그의 동가슴에는 세로 째진 상처자리가 험상하게 드러나있었다.

필호는 갈린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난 토지개혁때 반동놈들과 싸움을 벌리면서 피도 흘려보고 죽을 고비도 한두번만 겪어보지 않았소.》

《필호학생.》

지도그루빠책임자가 날카롭게 꾸짖었다.

《여기는 동무의 과거업적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란 말요.》

그러나 최필호는 주석단쪽에는 눈꼬리도 돌리지 않고 당당하게 내뱉았다.

《알구있습니다. 나두 한푼어치도 안되는 내 지난 생활을 가지고 오늘의 과오를 속죄 받자고 이 자리에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나는 고동치는 심장이 뛰는대로 진실만을 터놓고싶어 이러는겁니다.》

잠시 말을 끊은 필호는 힘주어 계속했다.

《여름방학이 되여 동무들이 모두 선거선전대로 고향으로 떠날 때 나도 그들을 따라가고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기어이 국립중앙잠업시험장에서 하고있는 사업을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싶었습니다. 〈아니야, 절대로 그럴수가 없다.

강의실에서나 자그마한 실험실에서는 계응상선생님이 우리를 속일수 있어도 공화국을 대표하는 전국가적인 잠업연구기관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할수 없을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그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민주조선대학생의 생신한 눈으로 그 위험한 조선의 멘델-모르간주의소굴의 정체를 밝혀내리라.〉 이렇게 마음을 도사려먹고 채령동시험장으로 찾아갔습니다. 내가 맨처음 들어간 곳은 누에해부생리실이였습니다.》

어느덧 장내는 봄날 아침녘의 호수가처럼 고요해졌다. 하나의 자그마한 돌이 시내물의 흐름을 돌려세우듯이 불시에 토론회의 분위기가 달라지고있었다. 남이 웃는다고 해서 덩달아웃고 또 웃다가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 된 다음에야 무엇때문에 웃게 되였는가를 생각하게 된다는 한심한 우화의 주인공처럼 되지 말고 필호학생처럼 자기 눈으로 진리를 밝히는것이 마땅한 일이라는것을 느꼈던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그 자리에는 계응상박사의 강의를 받아보지 않은 학생이라곤 단 한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내남없이 그의 실제사업을 놓고 론하기 전에 그 누군가가 계박사의 리론이 《반동학설》이라고 한 말만 듣고 그런가부다 하고 덮어놓고 왁왁 떠들어왔던것이다.

그의 학설이 《반동적》이라는것이 적실하다면 자루속의 송곳을 감출수 없듯이 반드시 어느 구석에서나 흉상을 드러냈을것이 아닌가.

이렇게 그들은 허공에 뜬 기성관념으로부터 뚝 떨어져 현실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한것이다.

각자들의 두뇌는 맹렬한 활동을 개시했다.

이렇게 사고방향을 돌리자 그들은 대뜸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벌써 옹근 이태째 계응상박사의 이른바 《반동학설》을 강의받은 대학생들도 아무리 머리를 짜내여 생각해보아도 해독적인것은 찾아볼수 없는것이였다.

계응상박사의 사상을 멘델-모르간의 학설과 동일시해왔는데 강의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더듬어보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이 일생동안 다루어온 누에에서 끄집어낸 리론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리론을 덮어놓고 반동학설이라고 치부하겠는가. 그의 강의를 해를 두고 받아온 대학생들도 반동이 된것이 아니라 장차 그 흥미있는 리론과 실험방법을 활용하면 반드시 의의있는 생물체들을 육종해낼수 있으리란 신심이 굳어져갈뿐이였다. 최필호의 토론에서 이러한 깊은 의미를 느꼈다기보다 심장으로 체득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정심하여 귀를 기울이였다.

주석단 한가운데 앉아 토론회참가자들을 내려다보고있던 성지도그루빠책임자 배부상도 토론회분위기가 급변한것을 눈치채지 않을수 없었다.

《가만.》 펼친 두손으로 자중하라는 시늉을 해보인 그는 무게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세계생물학계에서는 신유전학과 구유전학간에 치렬한 투쟁이 벌어지고있습니다.

그 투쟁이 어떤 폭과 심도를 가지고 심각하게 벌어지고있는가 하는것은 지난 8월에 발표된 〈자연〉잡지 특간호에 실린 회의록 하나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리해하고 남을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진행하는 토론회도 그 폭넓은 투쟁의 일환이라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

배부상이 제때에 회의흐름을 목적한 방향으로 돌려세우려고 하였지만 일단 방향을 바꾼 강물의 흐름을 달리 어떻게 할수 없었다.

격동되고 흥분된 최필호는 열을 올려 시험장에서 자기가 보고 느낀 점을 숨김없이 터놓았다.

《나는 종합대학창립 한돐기념대회때인 재작년가을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 대학생들에게 동무들은 다름아닌 조선의 농사를 더 잘 짓고 조선의 공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손으로 부강한 우리 조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실제적으로 구현되고있는 현실을 거기에서 보았습니다.…》

최필호는 시험장 원종부에서 계응상박사가 해외에서 가져온 백수십종의 누에품종과 함께 남북조선 사처에서 수집한 백여종의 누에품종을 순수한 품종으로 분리하고있는 희한한 광경을 생동하게 이야기하고나서 말을 이어나갔다.

《누에고치색갈별로, 모양별로, 알색갈과 누에몸색은 물론 생활습성별로 갈라놓고 원종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존하도록 한 계응상선생이 착안한 우리 나라에서만 하고있는 독특한 교잡법을 보자 나는 그의 연구방법을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을 까맣게 잊고 오히려 그에 심취되고말았습니다. …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완전히 순종으로 분리한 누에들을 가지고 수백수천의 교잡을 하여 각양각색으로 분리되여나온 누에들을 2층으로 새로 지은 잠실의 수십개 방에 당반을 매고 잠박마다에 따로따로 키우는것을 보고는 더욱더 그에 매혹되고말았습니다.

…나는 동무들도 우리 학부장선생님이 운영하시는 국립잠업시험장에 가보고 계응상박사선생님이 반동인가, 애국자인가를 론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되자 지도그루빠성원들은 아연실색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술렁거리던 장내에서 대학생들이 불쑥불쑥 일어났다.

《저는 계응상학부장선생님한테서 〈가잠학〉과 〈누에해부생리학〉을 이태째 배우지만 그것이 무엇때문에 유해로운지를 도무지 리해할수 없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계응상교수선생님의 학문은 비단실고치를 과학적으로 짓도록 하는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고 보는데요.

이것이야말로 유물변증법의 견지에서 보아도 유물론이지 유신론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쪽에서 대학생들이 다투어 일어나 이렇게 떠들어대자 다른 패의 대학생들은 격분하여 갈린 목소리로 웨쳐댔다.

《당신들은 도저히 책임질수 없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고있다.

이것이야말로 인민을 위한 새로운 민족간부를 양성하는 대학에서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궤변이다.》

그러나 토론회는 목적했던바와는 달리 뜻밖의 사태를 빚어냄으로써 완전히 파탄이나 다름없이 되고말았다. 토론회가 끝나자 교무부학장은 최필호를 주석단휴계실 한쪽구석으로 불러댔다.

그는 성이 독같이 나서 지도그루빠책임자가 곁에 다가선것도 모르고 필호를 다불렀다세웠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너는 상급기관에서 조직한 중대한 토론회를 파탄시킨 장본인이란 말이다.》

《토론을 하라고 하기때문에 나는 사실을 말했을뿐이예요. 그래, 자기비판을 하란다고 해서 없는 죄를 만들어 자백을 해야 옳은가요?》

최필호는 머리를 들고 당당하게 응대했다. 이때 불쑥 교육성 부상이 이들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자기가 어떤 불순한 학설에 오염되였는가 하는것조차 가려보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당원대학생이라고 할수 있소?

부학장동무!

중요한 정치모임을 파탄시킨 이런 사람을 우리는 용납할수 없소. 당장 퇴학시키시오.》

최필호의 둥실한 얼굴이 백지장같이 질리였다.

교무부학장은 어금이를 꾹 다물고 일언반구도 하지 못했다.

다음날 대학정문게시판에는 성지도그루빠의 명의로 최필호학생을 퇴학시킨다는 공시가 나붙었다.


어슴푸레한 덕원역구내에는 찬바람이 배회하고있었다.

《꽥…》

려객렬차가 성난 소리를 지르며 정거장으로 들어서고있었다.

온몸이 꽛꽛하게 언 학장은 응상의 손을 두손으로 부여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럴수록 연구사업에서 더 큰 성과를 올려주기 바랍니다. 저도 일간 평양에 올라가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여기 사정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주시오.》

원설학장의 큰 손을 꽉 그러쥐고 놓지 않는 계응상의 갸르스름한 얼굴에는 애타는 갈망의 빛이 얼른거리였다.

《꽥꽥-》 갈린 소리를 내지른 기관차는 《칙칙폭폭》 기세좋게 역구내를 빠져나가고있었다.

계박사는 차창가에 석상처럼 까딱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이따금씩 회중시계를 내려다보며 숨가쁜 증기기관차의 호흡소리를 귀담아듣는 그의 볼편은 경련이라도 인듯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뜻하지 않은 변괴를 당하여 중지당한 교수며 부당하게 퇴학당한 최필호의 일을 모지름을 쓰며 쫓아버리려 해도 검질기게 달라붙는 착잡한 생각들로 하여 속에 불이 일었다.

때아닌 때에 잃어버리고있는 시간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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