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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7 장


3


밤사이 눈이 흠뻑 내렸다. 길에는 무릎이 빠지게 눈이 푹 덮였다. 응상은 버선 신은 고무신을 눈길에 묵묵히 잠그며 대학정문으로 들어섰다. 그는 본관 2층에 자리잡고있는 잠학부교원실로 올라갔다. 젊은 교원들은 전에없이 공손하게 일어나 인사를 하고는 책장조차 소리나지 않게 넘기며 숨들을 죽이고있었다. 응상은 입가에 쓰거운 빛을 띠우고 누구에게라 없이 물었다.

《누에해부생리학은 누가 강의를 하오?》

《못합니다.》

《가잠학은?》

《…》

《유전학은?》

《…》

교원들은 뻔히 마주보기만 하며 한숨들을 내쉬였다. 응상은 밖으로 나섰다. 복도를 따라 소리없이 걸었다. 웅성웅성하며 첫시간부터 자체학습을 하는 교실들이 적지 않다. 그가 담당했던 잠학부에서 정수과목이라고 할수 있는 과목들이 쑥 빠졌으니 잠학의 래일을 담당해야 할 이 사람들의 운명은 어찌될것인가. 계응상의 눈에서는 섬광과 같은것이 번뜩이였다. 그는 성급히 교원실로 되돌아가 두루마기를 벗어 옷걸개에 걸어놓고 결연히 복도로 걸어나갔다. 교원들속에서 수선수선하는 소음이 일어났다. 그의 등뒤에서 바삐 내닫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하급학년교실앞을 지나 상급학년학생들이 들어있는 마지막교실로 불쑥 들어섰다. 교실은 떠들썩했다. 코가 뾰족한 한 학생이 교탁앞에 나서서 그 무슨 우스개소리를 하고있었다. 쉬쉬하는 소리가 나면서 학생들이 황망히 자리들을 정돈하고 교탁앞에 나섰던 코뾰죽이도 머리를 움츠리며 제자리로 달아갔다. 응상은 이 모든것을 못 본체하고 교탁앞으로 걸어나갔다. 학생들은 조심스레 응상의 거동만을 살폈다. 귀가 멍멍할 지경으로 고요했다. 응상은 분필을 들어 칠판에 제목을 크게 썼다.

《누에고치색의 유전에 대하여》

그리고는 연탁 량모서리를 꽉 그러쥐고 교실을 둘러보았다. 한데 놀랍게도 학습장을 펼쳐놓고 강의제목을 쓰는 학생이 한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찌된 일이요?》

《…》

응상은 맨 뒤줄에 앉은 학급장 최필호에게 물었다.

《사실대로 말해보오.》

《선생님!》

자리에서 일어선 최필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으나 인차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앞줄에 앉은 코가 뾰족한 다혈질의 청년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계박사를 빤히 쳐다보더니 불쑥 일어나 말했다.

《사실은 선생님의 강의가 잘못된것이라고 하면서 이미 받아쓴 학습장까지 없애버리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후에 선생님의 강의에 대한 시정강의까지 있었습니다.》

계응상의 낯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끓어오르는 격분을 진정하지 못하며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거친 숨소리만이 팽팽한 교실의 공기를 흔들어놓았다.

응상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의를 그만두겠습니다. 그러나 명실공히 진리를 체득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물은 우에서 아래로 흐르기마련입니다. 인간이 인공적인 힘을 가하지 않는 이상-이것은 어쩔수 없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콩심은데 콩이 나지 팥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는 격한 마음으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으나 곧 그러기를 그만두고 교실을 나섰다.

《선생님.》 등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울리였다.

뒤따라 교실을 나선 최필호학생은 눈물이 글썽하여 중얼거렸다.

《제가 방학기간에 잠업시험장을 찾아갔던것은…》

《다 알고있네. 계박사의 연구사업이 참인가 거짓인가를 남몰래 확인해보려 했다, 그 말이지!》

계응상이 앞질러 말했다.

최필호는 얼굴을 확 붉히며 말을 이으려 했으나 계박사가 팔을 들어 제지시켰다.

《나는 달리 생각지 않네. 진리를 탐색하는 청년들속에서 흔히 있을수 있는 일이지. 부디 앞으로도 나의 강의내용을 원쑤의것처럼 무자비하게 검토하여 편달해주기 바라네.》

말을 마친 계응상은 홱 돌아섰다.

《선생님.》 최필호는 또다시 곡진한 어조로 불렀다. 《저는 강원도내 잠업농가들도 돌아보고 왔습니다.》

《그래서.》

《중앙잠업취체소에서 선생님의 연구방법이 유해로운 결과를 빚어낸다고 례증한 그것이 완전히 허위라는것을 밝혔습니다.》

흥분하고 격동된 최필호는 격정에 넘쳐 말했다.

《군이? 놀라운걸. 그렇지만 한번의 현지조사로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는건 참다운 과학자의 태도가 아닐세. 그렇게 하는건 나를 도와주는것이 아니야. 열번, 스무번 반복실험하여 얻어낸 결과라 할지라도 그와 반대되는 견해를 가지고있는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그런 완전무결한 결과를 얻기 전에는 함부로 결론을 하지 않는것이 과학연구사업이란 말일세.》

말을 마친 계응상은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긴 복도 한복판을 총총히 걸어갔다. 최필호는 경탄과 련민이 넘치는 뜨거운 눈길로 로교수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계응상은 곧장 학장실로 내려갔다가 거기에서 학장과 함께 성지도그루빠가 들고있는 맞은켠방으로 건너갔다.

배운권과 마주앉은 계응상은 날카롭게 물었다.

《당신은 엄연한 자연의 리치를 대학생들에게 가르칠수 없게 한 이 전례없는 폭거에 대하여 시대와 력사앞에 책임질수 있습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봄비를 맞은 새싹과 같이 싱싱하게 움터오르는 새 조선의 농업과학을 참혹하게 짓밟아뭉개버린다는걸 아는가 말입니다.…

나는 절대로 새 민주조선의 농업과학을 목졸라죽이려고 하는 당신들의 야만적인 행동을 용서하지 않겠소. 평양에 올라가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겠소. 그분의 결론이 있기 전에 절대로 나의 강의를 중단시킬수 없단 말이요.》

불을 토하는듯 한 계응상의 열변에 그루빠성원들은 당황망조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궤변을 그만두지 못하겠소?》

교육성 부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엄청난 소리를 질렀다. 그는 《자연》특간호를 한손으로 집어들어 응상의 코앞에 대고 마구 흔들었다.

《당신도 이것을 보았지요? 아무리 계박사가 도고하고 교만하다 해도 이 모든것을 전면거부할수 있겠소? 당신의 론거대로 한다면 거기에선 온통 멍텅구리들만 모여서 과학원총회를 하는줄 아오?

당신의 강의를 중단시킨데 대해서는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겠소. 그리고 미리 언명하는데 래일 당장 학생들에게서 당신의 강의를 받은 공책들도 몽땅 회수하겠소. 그대신 당신은 수백명의 학생들앞에서 아니, 당과 국가의 신임을 리용하여 농림수산국학보를 통하여 공공연히 유전학리론을 선전하고 수많은 과학도들을 희롱한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하오.》

교육부상 배운권이 쩡쩡 울려나오는 목소리로 뇌까렸다. 한동안 방안에는 진공상태가 조성된듯 그루빠성원들도 계응상도 까딱하지 않았다.

동안이 흐르도록 정적이 지배했던만큼 숨소리가 높아지자 교육부상은 종이 한장을 계응상앞으로 밀어놓았다.

《공교로운 자리이긴 하지만 진리를 귀중히 여기는 선생이기때문에 까밝히지 않을수 없소. 당신은 학부장의 직책에서 해임되였소.》

계응상은 운권부상이 밀어놓은 종이장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교육성 령으로 발급된 해임통지서였다.

곁에 앉았던 리원설학장이 긴손을 뻗쳐 나꾸채듯이 그 해임장을 집어쥐더니 우람찬 체구를 흔들며 말했다.

《계응상박사선생은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남반부에 사람을 띄우시여 우리 대학 교수로, 국립중앙잠업시험장 장장으로 임명한분이기때문에 김일성동지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를 해임시킬 권한이 없다고 봅니다. 나는 이 해임장을 인정할수 없습니다.》

리원설학장은 해임장을 좍좍 찢어서 그루빠책임자앞에 집어던졌다.

우람찬 체구의 원설학장이 사생결단하고 나서자 방안의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감히 누구앞에서 삿대질이요, 응?》

단단한 체구에 눈꼬리 하나 잡히지 않는 배운권의 걀죽한 눈이 빼빼해졌다.

계응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원설학장도 따라 몸을 일으키였다.

휭하니 밖으로 나선 계응상은 원설학장과 눈인사를 나누고는 터벅터벅 교정을 지나 대학정문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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