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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7 장


2


려객렬차는 날이 어슬어슬해서야 덕원역에 들이닿았다. 차에서 내린 응상은 안해를 사택으로 들여보내고 꼿꼿이 대학으로 향했다. 정문에 앉아있던 젊은 교원은 교문으로 거침없이 걸어들어가는 응상교수를 발견하자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는 황급히 달려나와 응상을 멈춰세우고 급급히 섬겨댔다.

《선생님, 지금 학장선생님은 성에서 내려오신 지도그루빠 성원들과 담화를 하고계시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편하신대로 수직실에 잠간 들어오셔서 몸을 녹이시면 좋겠습니다.》

계응상은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수직실로 들어갔다. 한 남학생이 급히 밖으로 달아나갔다. 잠시후 우람한 체구에 후덕스러워보이는 학장이 들어섰다. 학장은 넙죽한 얼굴에 당황한 빛을 그대로 드러내며 응상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저리 가십시다.》

그는 응상을 손잡아이끌었다.

밖으로 나간 학장은 어둠이 짙게 깔린 교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러가지 나무들이 촘촘히 들어서있는 도서관앞에 이르자 그는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제 편지는 받으셨겠지요?》

《받았습니다.》

고개를 주억인 학장은 침통하게 말했다.

《며칠전에 교육성에서 배운권부상을 책임자로 한 검열그루빠가 대학에 내려왔습니다. 선생님한테야 무얼 에둘러 말하겠습니까. 실은 계선생님이 하시는 강의내용을 정치적으로 문제시하고있습니다.》

《그들이 어데 있습니까? 내가 직접 그들을 만나보겠습니다.》

계응상은 달아오른 얼굴을 번뜩이며 몸을 돌렸다.

《계응상선생.》

학장은 응상의 팔소매를 부여잡으며 만류했다.

《제발 부탁입니다. 이제는 도저히 어쩔수 없을 정도로 형세가 기울어졌습니다. 선생도 다 알고계시겠지만… 나 역시 생화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그 리론에서 의문되는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마디 했더니 말도 마십시오.》

리원설학장은 우람찬 체구를 움츠리며 큰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해방직후부터 대학창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사람이였다. 정작 대학을 설립하는 사업에 달라붙고보니 걸리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청사는 말할것 없고 수만가지에 달하는 교구비품들도 령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허나 그것도 자금만 있으면 다 해결할수 있는 일이였지만 교원들을 꾸리는 일은 수월히 될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명망있는 박사, 교수가 없는 대학을 무슨 대학이라고 할수 있으랴.

수학부라든가 화학부, 력사학부 같은데는 그래도 좀 사정이 나았으나 농학부 같은데는 단 한사람의 교수도 초빙해올 길이 없어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하여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가르침을 받고 전국적판도에서 인재들을 탐문하여 38도선너머 남쪽땅에 있는 계응상박사에게도 종합대학 교수로 초빙한다는 위촉장을 보냈던것이다.

얼마후 계응상박사가 해주에 머무르고있다는 소식이 대학준비위원회에 전해졌다. 귀가 번쩍 뜨인 그는 그날로 밤차를 타고 해주에 나가 계응상박사를 만났다.

그러나 뛰는 사람우에 나는 사람이 있다고 거기에는 벌써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농림국 잠업처장이 나와있었다. 알고보니 그는 38도선에까지 나가서 계박사를 모셔다가 해주림시인민위원회에서 환영연을 베풀고 그에게서 국립중앙잠업시험장 장장으로 사업하겠다는 확답까지 받아놓았었다. 리원설이 계박사를 데리러 왔다는 말을 들은 잠업처장은 《허허, 좀 늦었소그려. 계응상박사선생은 우리네 중앙시험장사업을 지도하기로 하셨소.》라고 하는것이였다. 원설은 장군님의 명의로 계박사한테 전달했던 위촉장사본을 내보였다. 하자 잠업처장 역시 계응상박사에게 전달한 초빙장사본을 꺼내놓는것이였다. 두사람은 영문을 몰라 마주보기만 했다. …

며칠후 대학창립준비위원회에 나오신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온 자리에서 리원설은 이러한 사실을 말씀드리면서 계박사가 없으면 농학부는 말할것도 없고 그에게 직접 맡길 잠학강좌의 운영도 곤난하다고 보고드리였다.

《아무리 인재가 바르다고 해도 계응상박사만은 대학에 류임하도록 못을 박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계응상박사는 우리 나라 최초의 잠업연구기관인 중앙잠업시험장에도 없어서는 안될 과학자입니다.》

이렇게 찍어 말씀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용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 생각에는 계응상박사에게 두가지 사업을 다 맡기자는것입니다. 봄가을에는 시험장에서 연구사업을 하면서 대학생들의 실습도 지도해주고 겨울에는 대학에 나와서 교수사업을 진행하도록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듣고보니 그 방안이야말로 기발한 명안이다싶었다. 그렇게 되면 계박사가 힘에 부치기는 하겠지만 연구사업은 연구사업대로 내밀면서 교육사업도 그것대로 실천과 밀접히 결합시켜 진행할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릴것이였다. 이렇게 되자 저마다 제 욕심만 부리면서 계박사를 자기네 사람으로 만들려고 애쓰던 두 기관에서는 그것이 량쪽의 리해관계에도 크게 저촉되지 않으며 오히려 대단히 리로울것이라는 만족한 합의를 얻게 되였다.

그후 리원설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농학부가 독립적인 농업대학으로 승격분리되면서 우리 나라 첫 농업대학의 학장으로 되였다. 그때에도 일부 교육일군들속에서 계박사를 종합대학 생물학부장으로 천거하려는 기미가 보여 원설은 제꺽 새 농업대학에 잠학부를 내오고 계박사를 그 학부장으로 제기하였다.

《계박사야말로 우리 나라의 첫 농학박사이고 유일한 잠업과학자인만큼 잠학부가 있는 농대에 류임하는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하여 계응상을 원산농업대학 잠학학부 학부장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종합대학 생물학부에서 유전학강의에 계박사를 초빙할 때에는 기꺼이 보장해주겠다는 담보를 주지 않을수 없었다. 어쨌든 리원설학장은 이런 큰 학자를 자기네 대학에 데려온데 대하여 못내 대견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는 계응상이 겨울 한철에만 대학에 나와있지만 그에게 대학가까이에 있는 아담한 별장을 하나 내여 사택으로 쓰게 하고 시험장에 가있는 봄, 여름에도 가정관리인을 두고 그 집을 깨끗이 거두게 했다. 그러다가 그가 대학으로 나올 림박에는 미리 방도 덥히고 집안팎을 정갈하게 거두어놓았다.

또한 그에게는 늘 학생들의 주의가 산만해질수 있는 첫 시간 강의를 피하게 하고 오전 두번째 강의나 오후 첫번째 강의만을 하게 했고 눈이 내리여 길이 미끄러울 때는 집에서 강의실까지 멀지도 않았지만 학생들을 보내여 자택에서 강의하게 하였었다. 이런 학장이 계응상에게 강의를 하러 나오지 말라는 편지까지 내기까지에는 얼마나 큰 마음고생을 겪었으랴. 사실 그랬다.

교육성 배운권부상은 원설학장의 교육지도에서 나타난 엄중한 결함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지금 학장동무는 자기가 무엇을 두둔하고있는지 알고있소? 계응상은 일본에 건너가서 대학공부를 했고 자본주의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멘델-모르간주의자인 다나까 요시마로와 함께 다년간 연구사업을 했으며 지어는 해방직후 〈미군정〉에 속해있던 수원농사시험장에서 장장으로 복무한 일까지 있는 사람이요. 우리는 사실 그가 많은 누에원종들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온 사람이므로 그 모든걸 무시하자고 했지만…》

《알만합니다.》

원설학장은 그의 말을 참을성있게 듣다못해 격한 어조로 말했다.

《멘델이 승직에 있었던것이 그의 과학연구결과와 무관계한것처럼 계응상박사가 일본이나 남에서 연구사업을 한것이 그대로 그의 사상을 말해주는것으로는 되지 않지요. 그는 민족적지조가 강하고 량심적이며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있는 학자입니다.》

《그러나 멘델-모르간주의가 형식적수학적관념론으로 락인된 오늘에 와서는 그가 승직으로 있었던것도 문제시하게 된단 말이요. 이걸 보시오.》

부상은 계응상의 강의록의 어느 한 페지를 툭한 손가락으로 꾹꾹 찌르며 내뿜었다.

《… 생물체들에 존재하는 이 유전인자는 환경의 변화에는 본질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선조로부터 후대로 불변한 형태로 전달된다. … 이것은 결국 무슨 말이요. 여기에 그 어떤 비단보자기를 씌운다고 해도 이는 불변하는 령혼을 주장하는 신학학설의 생물학적변종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것을 여실히 말해주고있단 말이요. 고등인종은 영원히 약소민족을 다스릴 사명을 띠고 세상에 나왔다는거지. 생각해보시오, 그래 우리가 악독한 일제놈들에게 자그만치 민족적멸시를 받았소? 그놈들의 발굽밑에서 신음해온 40여년이 적다고 생각되는가 말이요.》

원설학장은 어기가 막혀 대꾸할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의 힘으로써는 풀길이 없는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문제였던것이다. 하긴 그 큰 나라에서 학자들 수백명이 대론쟁을 벌리던끝에 최종적으로 결말을 지은 문제가 아닌가. 한데 제한된 그의 지식을 가지고 어찌 그런 문제에 반기를 들어볼수 있으랴.

하지만 리원설학장은 도저히 계응상을 일제에 추종한 과학자로서는 볼수가 없었다. 계박사야말로 청렴과 결백의 상징이라고 할만큼 순결한 사람이다. 아직 변명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유년기의 어린애들에게서만 찾아볼수 있는 그런 정직성을 말년에 이른 오늘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있는 희귀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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