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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14회


제2장


2


밤이 깊었으나 대낮처럼 불빛이 환한 만수대언덕우에서는 선동차에서 불어대는 노래소리가 우렁차게 울리고 돌을 가공하는 기계소리, 망치질소리, 삽질소리, 활기찬 롱담소리, 웃음소리 등이 가락맞게 어울려 장엄한 건설의 대교향악을 창조하고있었다.

장현철은 충성의 야간지원돌격대에 속하여 작업에 참가하고있었다. 충성의 야간지원돌격대란 낮에는 자기가 속한 기업소들에서 일을 하고 퇴근시간후에 자발적으로 건설장을 찾아와 일손을 돕는 사람들이 속한 집단이였다. 처음에는 자연발생적으로 찾아와 지원로동에 참가하던 사람들이 점차 자기의 정연한 조직체계를 구성하여 중대들과 대대를 만들었다. 인원의 구성을 보면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많은 대학생들과 지어 중학생들도 포함되여있었다. 그들은 야간지원돌격대에 참가하면서 생의 보람을 찾고있었다.

야간지원돌격대에는 각양각색의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보충되기도 하였다.

장현철은 지난해에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시원림건설사업소에 기사로 배치되였다. 그는 낮에 기업소에서 맡은 일을 책임적으로 해제끼고 밤에는 어김없이 야간지원돌격대에 참가하였다.

오늘 야간지원돌격대는 지대정리작업을 하였다. 작업을 마무리하자 사람들은 저마끔 인사들을 나누었다.

《수고했습니다.》

《래일 또 만납시다.》

그들은 이 친근하게 오가는 인사말속에서도 가슴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각기 자기의 집들로 헤여져간다.

야간지원돌격대에는 자체의 규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밤이 깊어 집으로 헤여져갈 때 남자들은 꼭 녀자들을 집에까지 데려다주어야 한다는것이였다. 젊은 청년대학생인 중대장은 대단히 섬세한데가 있어 집이 한방향에 있는 남자와 녀자들을 조를 짜서 붙여주군 하였다. 누구도 그에 의견을 가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껍게 받아들이였다.

장현철의 눈길은 몸집이 실하고 얼굴이 훤하며 눈이 억실억실한 한 처녀를 더듬어찾았다. 그 처녀는 늘 함께 일하던 짝패처녀와 작별인사를 하고있다.

《은희언니, 잘가. 래일 또 만나요.》

《래일 만나자. 오늘 수고많았어.》

그 처녀들은 다름아닌 한영덕의 딸 한설미와 김일의 딸 박은희였다.

은희와 헤여진 설미가 현철에게 뛰여왔다.

《오빠, 이젠 가자요.》

《응, 가자.》

현철이와 설미는 한중대에서 일했다.

원래 한설미를 집까지 데려다주게 되여있던 사람은 나이지숙한 사무원이였는데 현철이가 설미와 한조가 되도록 해달라고 중대장에게 제기하였다.

중대장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보자 현철은 대담하게도 《우린 사촌형제지간입니다.》하고 말하였고 설미도 긍정하듯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하여 그들은 만수대대기념비건설장에 지원로동을 나오면서 언제나 함께 일하고 함께 집으로 가게 되였다.

장현철은 한설미와 나란히 밤의 거리를 걸어갔다.

거리는 퍼그나 한적하였다. 가로등빛속을 걷고있는 청춘남녀들의 모습이 더러 보이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투명한 공기속에 짜랑하니 흘렀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설미가 손에 들었던 우산을 펴들었다.

《넌 어떻게 우산을 다 가지고 다니니?》

《일기예보를 들었지요 뭐. 오늘 밤 비가 내린다고 했어요.》

《넌 참 빈틈이 없구나.》

현철은 설미와 한우산을 쓰고 걸어갔다.

어둠속을 내리는 보슬비로 하여 마치 밤안개가 낀것처럼 앞이 뽀얗게 보이였다.

《설미야, 춥지 않니?》

《일없어요, 오빤?》

《나야 건강체가 아니냐.》

《피―》

설미는 입술새로 혀를 내밀어보이였다. 사실 현철은 군살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마른 몸이였던것이다.

《오늘 힘들었지?》

《예, 어제 밤 일끝내고 집에 가서 시험공부를 하느라 잠을 좀 설쳤더니 막 피곤해요.》

설미는 별로 어려워하지 않고 현철을 따랐다. 그에게는 현철이가 친오빠처럼 정답고 살뜰하였던것이다. 특히 고마운것은 어찌된 일인지 자기가 정신적으로 시련을 겪을 때마다 그가 나타나서 힘을 준것이였다.

설미는 결코 지난날들을 잊을수가 없었다.

현철이도 설미를 친동생처럼 여기고있었다.

현철은 어린시절에 아버지 장종학을 따라 몇번 설미의 집에 놀러 갔던적이 있었다. 그러나 소년의 뇌리속에 설미라는 소녀는 《심술꾸러기계집애》라는 인상밖에 준것이 없었다. 그들은 별로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후 모란봉기슭의 숲에서 우연히 대학입학을 위한 첫날시험을 잘못치고 울고있는 설미를 만나게 되였었다. 현철은 사연을 묻지도 않고 절망에 빠진 처녀애에게 힘을 주려고 제나름으로 노력했었는데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의리적인 감정과 인정에 기인된것이였다. 그는 자기의 별치 않은 노력이 설미에게 그처럼 큰 힘을 주었다는것을 아직도 잘 모르고있었다.

현철이가 모란봉기슭의 고요한 숲에 정이 들어 자주 찾아가고 설미 또한 그 숲을 좋아하여 자주 찾아가게 된것으로 하여 서로 만나게 되면서 리해를 두터이하게 되였고 또 3년전 설미가 아버지의 철직으로 인하여 정신적시련을 겪을 때도 그 장소에서 만난것을 보면 그들의 인생에서 모란봉이라는 평양의 명산은 신비로운 산이라고 할수 있었다.

현철이는 3년전 급성페염에 걸린 설미를 김일의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간 그날에야 설미의 가정에서 있은 일을 알게 되였다. 그때 현철은 설미를 동정하였고 처녀를 오빠처럼 돌봐주어야 하겠다는 감정적인 충동에 사로잡히였다. 하여 그는 병원에 입원한 설미를 자주 찾아갔고 그후에 여러가지로 설미를 사심없이 도와주군 하였다. 일단 가까와지자 설미는 허물없이 현철을 대하였는데 그러한 생활은 현철에게 설미가 천성적으로 대단히 쾌활하고 활동적인 처녀라는것을 느끼게 하였다.

비발이 굵어지기 시작하였다. 현철은 우산이 설미쪽으로 더 씌워지도록 왼심을 쓰다보니 한쪽어깨와 팔이 다 젖어 축축해졌다.

《그러지 말고 똑같이 쓰자요.》

설미가 우산을 또 현철이쪽으로 기울이였다.

《난 일없어, 비를 좀 맞는게 얼마나 시원하다구. 헌데 넌 몸이 좀 약해서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리기십상이야.》

《내가 몸이 약하다구요? 사람 웃기네. 난 뚱보인데요 뭐. 똑똑히 알아둬요, 나야말로 건강체란걸.》

《그런데 넌 3년전에 감기에 걸렸다가 페염을 앓았지?》

《또 그 소리… 내 걱정은 말고 재미있는 얘기나 해줘요.》

《뭘 말할가? 참,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글쎄 우리 직장장아바이가 슬그머니 날 부르지 않겠니. 이것저것 묻더니 불쑥 하는 말이 처녀를 보지 않겠는가 하지 않겠니.》

《그래서요?》

《그래서 모르는척 하고 〈어디 처녀가 있어요?〉했지. 그러니까 자기 동생네 집에 있다는거야. 뻔하지, 날 자기 조카에게 장가들이려는거지 뭐.》

《그래서요?》

설미는 어찌나 긴장했던지 우뚝 멈춰서며 현철을 보았다.

《왜 서니? 빨리 가자.》 하고 현철이 계속 걸음을 옮기자 설미는 제정신이 든듯 따라걸었다.

《난 직장장아바이에게 아직 처녀 선을 보러 다닐 생각이 없다고 했지. 청춘시절에 뭔가 큰일을 해놓고 장가가겠다고 했어.》

《정말 잘했어요. 역시 오빤 선이 섰단 말이예요.》

설미는 손벽을 치며 깔깔 웃었다.

《정말 우습지, 내가 대학을 졸업한지 1년밖에 안됐는데 벌써 장가간다는게 말이 되니? 직장장아바이도 내 말이 리해되는지 머리를 끄덕끄덕하며 말하더구나.

〈자네말도 옳으이. 하지만 장가는 천천히 간다쳐도 처녀를 친해둬서 나쁠게 없어.〉》

《아니, 그 아바이 참 한심한 사람이예요. 남이 장가가든말든 제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거예요.》

설미는 화가 난다는듯 토달거리였다.

《직장장아바이야 날 생각해서 그러는거지 뭐.》

《아니예요, 자기 조카를 오빠에게 시집보내려고 안달아하는거예요.》

《허, 이거 설미가 되게 신경이 예민해졌는걸.》

현철은 설미가 뾰로통해지는 바람에 어지간히 어리둥절해져서 처녀를 보았다. 그러다가 설미를 놀리고싶은 생각이 들어 말하였다.

《내가 직장장아바이 조카딸과 사귈수도 있는거지 그게 무슨 큰일이라구.》

《그럼 뭐…》

설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라요. 내가 상관할거야 없지요.》

설미는 새뜩해져서 쌔근거리며 걸음을 빨리하며 앞서갔다. 우산을 현철이가 들고있었기에 설미는 우산에서 벗어나 비를 맞으면서 그냥 걸어가는것이였다.

그 순간 현철은 자기가 동생처럼 여기는 한설미도 다름아닌 다 자란 처녀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였다. 그와 함께 설미가 현철이 자기를 남다르게 생각지 않는가 하는감이 들었다.

(그럴수 없어, 우리야 오누이처럼 친한 사이일따름인데…)

현철은 피씩 웃음을 머금고 설미를 따라잡았다.

《넌 괜히 신경을 쓰는구나. 비에 옷이 젖은걸 보렴. 꼭 철부지애 같애.》

《난 오빠를 생각해서 말하는데 오빤…》

《네가 싫다면 직장장아바이 조카딸과 사귀는걸 그만두자.》

《왜 그만둔다는거예요. 맘대로 하세요. 난 그저… 괜히 그래본거예요.》

설미는 아닌보살을 하며 웃었다.

어느새 설미의 집이 있는 아빠트까지 다 왔다. 이제 현철은 자기 집이 있는 곳까지 한참이나 걸어가야 하였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있었다.

《우산을 쓰고 가라요.》

《자, 그럼 잘 자라구. 래일 다시 만나자.》

현철은 현관에 서있는 설미에게 손을 흔들고 걸어갔다.

(참, 처녀들의 속심은 모르겠다니까.) 하고 생각하며 현철은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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