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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6 장


3


성지도그루빠성원들인 최택민과 한수민은 어마어마한 총화보고서를 작성해놓고 계응상을 기다리고있었다. 그 총화보고서를 보면 국립잠업시험장은 가장 악랄하고 집요하게 멘델-모르간주의를 전파하고있는 반동소굴이며 시급히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어떠한 사태가 빚어질지 모를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보기에 충분했다.

《좋소!》

총화보고서를 다시한번 읽어본 최택민은 한쪽무릎을 탁 쳤다.

《케케묵은 낡은 인테리를 잔뜩 어루만져주다보니 이 지경이 되였단 말이요.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겠소.》

그는 흥분하여 방안을 왔다갔다하였다. 최택민은 오직 자기와 같은 정바른 혁명가만이 이런 어망처망한 사태를 바로잡을수 있다고 확신했다.

택민은 방안으로 들어선 리덕겸부장장에게 매서운 눈초리를 던졌다.

《어떻게 된거요, 응?》

계응상박사를 어째서 아직까지 산에서 끌어내려오지 않느냐고 추궁이였다.

《헛참, 거기서도 오늘 가둑누에사육실험에 대한 그 무슨 총화를 한다고 합니다. 〈돼지포〉인지 〈가스포〉인지 하는것까지 설치하구 소란을 피우는것 같습니다.》

《왕청같이 〈돼지포〉란 또 무슨 소리요?》

부장장을 사납게 노려보던 최택민은 다시한번 《좋소.》하고 뇌까리며 벽에 걸어놓은 봄가을외투를 벗어들었다.

《룡골산에 올라가 결판을 지읍시다.》

최택민과 한수민은 부장장과 함께 털털거리는 일본제 낡은 승용차에 몸을 싣고 룡골산으로 향했다.


4


이날 계응상은 하늘귀가 열리기 전에 사육공들을 앞세우고 가둑누에판으로 올라갔다. 무성한 이슬숲을 헤친 그들의 하반신은 어느새 강물을 헤쳐온 사람들처럼 후줄근해졌다.

가둑누에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릉선에는 계박사가 새들을 쫓기 위해 구새먹은 나무통으로 만들어놓은 가스포가 설치되여있었다. 사육공들은 카바이드가스로 폭발시키는 이 가스포가 돼지주둥이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돼지포》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계응상은 키높이로 그쯘하게 자란 가둑나무들에 탐스럽게 매달린 가둑누에들을 대견스레 굽어보았다. 그간 그는 산중의 초막에 머무르면서 집요하게 관찰을 진행한 결과 가둑누에에 가장 큰 해를 입히는 쉬파리구데기의 기생경로를 밝혀냈다. 누에들을 요정내는 산새피해방지대책도 완성되여가고있었다.

새옷을 말쑥하게 갈아입은 가둑누에들은 미구하여 고치를 틀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가둑누에판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가장 높은 수확을 낸 가둑누에사육지로 될것이다.

날이 활짝 밝자 참새떼가 제일먼저 가둑누에판에 달려들었다. 새들도 누에가 탐스럽게 무르익은것을 민감하게 감촉한 모양이였다.

처녀사육공들이 《우여-우여-》하고 이쪽저쪽에서 소리를 지르며 참새떼 내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교활한 묵은 참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밑으로 뚫고들어가 악착스럽게 누에를 먹어대는것이였다.

몸이 실하고 키가 늘씬한 처녀사육공은 새총을 어깨에 바싹 대고 참새를 겨누어쏘았다. 어찌나도 영악스러운 놈들인지 제 동료가 곁에서 연알을 맞고 죽어떨어져도 《포르륵》 옆나무로 옮겨앉을뿐 멀리 달아날념을 내지 않았다. 사육공이 한어깨에 메고다니는 망태기가 그들먹해져서야 참새들의 성화는 뜸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까마귀떼들이 낮추 떠서 전날 새 가둑나무에 옮겨놓은 누에한테 달려들고있었다.

《박사선생님, 빨리 불을 다십시오.》

쨍쨍한 처녀사육공의 다급한 웨침소리가 울렸다. 계박사는 때를 놓칠세라 돼지포아구리에 물병을 기울였다. 뭉툭한 아구리로 파르스레한 연기가 기여나왔다. 재빨리 거기에 불을 그어대자 《꽝-》하고 산발을 들었다놓는 폭음이 터졌다.

날개를 접고 작잠판으로 내려꼰지던 까마귀떼들은 기겁을 하여 맞은켠 산릉선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뒤따르던 한무리의 늙은 까마귀들은 쫓겨가는척 하다가 가까이에 있는 아름드리참나무에 내려앉았다.

굼뜨게 느릿느릿 날아다니는 늙은 까마귀들은 《돼지포》소리가 요란하지만 아무런 위험도 없이 빈 대포소리라는것을 낌새챈 모양이였다.

《꽝!》

계박사가 《돼지포》에 다시한번 불을 지른것과 때를 같이하여 몸이 실한 처녀사육공이 돌멩이를 재운 망채를 휘둘렀다.

《꽝》하는 소리와 함께 까마귀가 앉은 참나무로 주먹같은 돌멩이가 날아갔다. 그제서야 까마귀들은 훨훨 멀찍이 날아가버리였다. …

해는 쨍쨍 내려쪼이고 수십만 가둑누에들이 가둑잎을 먹어대는 소리만이 솔바람소리인양 정겹게 울려오는데 저쪽 단풍나무밑에서 처녀사육공이 부는 피리소리가 은은히 울려온다.

계응상은 홀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산을 내리였다. 그의 눈앞에는 미구하여 온 나라의 가둑나무림에 가둑누에가 주렁지게 될 황홀한 광경이 선히 떠올랐던것이다.

그런데 초막앞에서는 손님들이 지켜서서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계선생! 한사코 우리를 외면할 작정입니까?》

코트를 어깨우에 걸친 최택민은 시틋하여 말을 걸었다. 응상은 손님들에게 통나무의자를 권하고 자기도 도끼모태우에 앉았다.

《내 일이 늘 무사분주하다보니 그렇게 되였소.》

그리고는 할말이 있으면 어서 하라는듯 눈을 감고 턱수염을 내리쓰는것이였다.

두사람은 어이가 없는듯 마주보며 쓰거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도 한수민은 눈시울을 내리깐채 덤덤히 앉아있고 최택민은 여느때없이 더 엄엄하게 느껴지는 지어낸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장장동무!》

응상은 눈을 뜨고 최택민의 모난 얼굴을 조용히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자연〉특집호를 보셨겠지요?》

《글쎄, 한주일전엔가 서기동무가 요약 번역한걸 가져다주었는데 일이 분주해서 아직 보지 못했군요.》

《뭐요?》

최택민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고 한수민의 눈꼬리는 더욱 뾰족해졌다.

《어찌 그럴수 있습니까, 그에 대해서는 이미 시험장장원들까지도 다 알고있는것으로 알고있는데요.》

《그래요?》

계응상은 눈을 떴다가 또 감았다.

최택민은 계박사의 그러한 태도에서 참을수 없는 모욕을 당한듯 낯이 벌개졌다.

《유감스럽습니다. 그 〈특간호〉에는 계선생의 연구사업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매우 절실한 문제가 담겨져있는데요.》

《그런가요? 나는 다른 나라 과학계에서 있은 회의문건이 어떻게 나의 연구사업과 밀접한 련관이 있는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의 의견을 쫓아 시간을 내여보기로 하겠습니다.》

계응상은 눈도 뜨지 않고 턱수염 몇오리를 왼손약지와 엄지손가락으로 배배 꼬면서 응대했다.

《틈을 내서 볼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당장 보는것이 좋을것입니다. 거기에는 장장동무가 주장하는 학설이 용납할수 없는 매우 유해로운것이라고 명확히 밝혀져있으니까요.》

택민은 예리한 눈초리로 계응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제야말로 갑속에서 살고있는 이 사나이도 놀라지 않을수 없을것이라는듯.

계응상의 눈시울이 바르르 떨렸으나 그의 대꾸는 맵짰다.

《내가 알고있건대 릐쎈꼬를 둘러싸고 벌어지고있는 론쟁은 그닥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것 같은데요.》

《그건 도대체 무슨 말본새입니까. 안하무인도 분수가 있지.》

최택민은 어성을 높였다. 응상은 조용히 대답했다.

《당신곁에 앉아있는 한수민교수도 잘 알고있겠지만 그 나라 학계에서 두개의 유전학이 론쟁을 벌리기 시작한것은 20년전부터이지요.》

《그럼 계선생은 북조선에 들어올 때부터 그런 일이 있었다는걸 알고있었단 말인가요?》

최택민은 계박사에게라기보다 한수민에게 묻는듯 그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한수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어, 그렇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뭐 보자기에 감싸놓고 말할 필요도 없겠군요. 툭 털어놓고 말해서 이번에 농업성에서는 8월총회에 관한 문건을 받아보고 우리 나라에도 크나작으나 차이는 있겠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그루빠를 조직하여 중앙잠업시험장사업부터 료해검열하기로 결정했던겁니다. 실제로 나와서 실태를 료해해본즉 우에서 우려한 문제가 공연한 일이 아니였다는것을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최택민은 말을 멈추고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그는 암만해도 중대한 담화를 하고있는 순간에도 눈을 꾹 감고있는 이런 사람에게 말을 계속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였다.

그런데 이제는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있는것이 자는것인지 아니면 그런체 하고있을뿐인지 도무지 가려보기가 어려웠던것이다.

한수민이 관계치 말고 어서 말을 이어나가라고 눈짓을 했다.

괴벽하기 그지없는 이 사람은 원래 그런 인간이니 별수 없다, 그리고 내가 지내본바에 의하면 저렇게 자는것처럼 눈을 꾹 감고있을 때야말로 주의깊게 말을 듣고있는 기미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귀띔하는듯 수민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계응상이 무익한 일에 시력을 소비하지 않고 정화된 감정으로 주의를 집중하기 위하여 눈을 감고있다고 한것은 옳은 말이였다. 그러나 이때 계박사를 세심히 관찰하였다면 그의 량입귀와 눈꼬리에 알릴듯말듯 경련이 일고있는것을 엿볼수 있었을것이다.

도끼모태우에 앉은 순간 계박사는 손등이 뜨끔뜨끔하는것을 느끼고 얼핏 내려다보았다. 산에서 내려올 때부터 이런 감촉을 느꼈댔으나 쏠쐬기한테 쏘였는가부다 하고 저고리소매로 문대버리고말았었다.

그런데 비로소 유심히 내려다보니 찰진드기 한마리가 손등에 박혀있었다. 피를 빨아먹고 통통해진 그것이 살속으로 파고든 자리는 벌써 벌겋게 통세가 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혹시 전년에 젊은 연구사를 해친 그 무서운 병균의 매개자가 아니겠는지.

언젠가 어느 한 의학잡지에서 쏘련의 씨비리지방에 뇌염을 발생시키는 진드기가 있다는 글을 본 생각도 떠올랐다.

아니 그럴수 없다. 도마뱀이 누에를 먹는걸 관찰한 그날에도 진드기한테 장딴지를 물리지 않았던가. 그것이 그렇게도 살인적인 독을 지니고있는 해충이라면 병은 이미 시작되였을것이 아닌가.

계박사는 진드기를 그냥 놔두기로 했다. 이것이 그 병을 발생시키는 장본인이라는걸 확인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는 어금이를 꾹 깨물고 두눈을 지그시 감고있었다.

그러나 최택민은 계박사의 이러한 태도야말로 자기 그루빠에 대한 명백한 반발과 모욕의 표시라고 단정했다. 그는 판결문이라도 읽듯이 틀스럽게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그동안 우리가 국립중앙잠업시험장 사업을 조사검열한데 의하면 이곳에서는 공공연히 멘델-모르간주의를 선전보급하고있을뿐만아니라 원종유지로부터 시작하여 품종육종, 해부생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고전유전학적방법을 채용하고있습니다. 매주 두번씩 시험장선전실에서는 계박사의 주관하에 유전학에 대한 이른바 통속강의를 진행하고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야간학교형태를 띠고 벌써 근 1년나마 진행되고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지요?》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있던 계응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우리는 시험장부속 야간전문 비슷한것을 운영해온 셈이지요. 농업성에 제기해서 수업을 마친 장원들에게 잠사기술원양성소졸업증과 같은 자격증까지 주자고 했댔습니다.》

《자신이 인정한다니 더욱 좋습니다. 이렇게 장원전체를 반동적 멘델-모르간주의자로 빈틈없이 무장시키려고 하였을뿐만아니라 연구사업은 전형적인 반동적, 형식적, 수학적방법으로 진행되고있습니다.

〈신유전학〉에서는 원종유지에서 순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험장에서는 품종내에서 자가수정을 계속하면 품종의 순수성을 보장한다는 미명하에 근 30명의 로력을 두고 수백종의 품종을 순수한 품종으로 분리하는 사업을 끈덕지게 진행하고있습니다.》

턱수염을 소리없이 내리쓸고있던 계응상이 조용히 눈을 뜨고 나직하나 격분에 떠는 목소리로 물었다.

《말씀도중에 미안하오만 한가지 물어봅시다. 그럼 품종유지를 어떻게 하라는건가요?》

최택민은 량미간을 찌프리였다. 그러나 계응상이 자기의 말에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것으로 생각하며 화를 내고있던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 그렇겠지. 한즉 손님과 담화를 하면서 눈을 감고있는것은 전례없는 실례로 되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를 집중하여 듣는데는 그럴듯 한 방법인것 같군.)

《알만합니다. 이제 멘델-모르간주의를 털어버리기 위한 명백한 방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최택민은 자기의 특기인 지어낸 엄한 어조를 멋들어지게 살리면서 활기있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 문헌을 보면 잘 알겠지만 현시기 사회주의자들앞에는 종래의 객실적인 과학을 혁명에 적극적으로 복무하는 과학으로 만들것을 요구하고있지요. 특히 민주건설의 장엄한 행진이 진행되고있는 벅찬 시기에 초파리를 사육하면서 그의 번식과정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는데 십여일씩 소비하며 그 몸뚱이에 난 수백개의 숨구멍과 그 구멍마다에 돋아난 솜털모양이 주걱형인가 바늘형인가를 밝히면서 다섯명의 재능있는 연구사가 달과 해를 보내고있다는것은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계박사는 옆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여 내려다보았다. 최택민이 총화보고자료를 읽기 시작하여 벌써 한시간이 지났으나 이제야 겨우 실태자료분석을 끝마치고 이른바 획기적인 대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있었다. 이른아침부터 잡힐듯말듯 머리에 떠돌던 흥미있는 가둑누에교잡법은 멀리 사라져버리고 귀에서는 웅웅소리만이 높아갔다.

이렇게 연구사업과 관계없는 무익한 일에 말려들 때면 분과 초를 따져가며 세워놓았던 연구계획이 틀어져나간다는 아쉬운 생각이 앞서면서 마음이 초조해지고 정신적안정이 여지없이 깨여져나간다.

그는 꺼냈던 회중시계를 줌안에 쥐고 매만지면서 잃어진 시간을 어떻게 만회할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모지름을 써보지만 그것은 헛된 일로 되고말았다. 귀에서는 종소리와 같은 집요한 잡음이 울리기 시작한것이다.

그가 가장 참기 어려워하고 격분을 터뜨리지 않을수 없어하는것은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는것이다.

그런데 그는 벌써 시간반나마 그 무서운 고통을 참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는 두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났다.

《이젠 다 끝났소?》

《웬일이십니까?》

최택민이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아무래도 오전 한겻은 잡아먹어야겠습니다.》

《그만하면 됐소. 다 알만 하오. 그런즉 당신들의 대책적의견이란건 해부생리실도 해산해치우고 원종유지실도 몇사람이서 품종들을 갈라놓고 잘만 먹여키우면 되고 육종사업도 관리에 최우선을 부여하기만 하면 된다는거요?》

계응상의 턱수염은 후들후들 떨렸다.

《옳게 말했습니다. 요점을 잘 알고계시는구만요. …》

최택민은 비양조로 응대하며 응원을 청하듯 한수민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한수민은 여전히 깍지껴쥔 살찐 두손을 배우에 얹은채 이 모든 일에 무관심한듯 하기도 하고 깊은 관심을 돌리는듯도 한 신중한 태도로 두눈을 지그시 내리깔고있었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던 응상은 최택민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잘라말했다.

《나는 일을 해야겠소. 그러니 미안하지만 제발 이 산에서 내려가주기를 바라오. 제손으로는 단 한번의 누에교잡도 실험도 해보지 않고 남의 나라 학계의 소식을 가지고 소동을 피우는 당신들하고는 론쟁을 할수가 없소.》

최택민은 적의에 차서 응상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응상은 더는 그들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고 초막안으로 들어가 책상앞에 다가앉았다.

어느새 그는 다른 사람은 리해할수도 헤아리기도 어려운 복잡한 도식의 세계에 잠겨버렸다. 모름지기 그 심원한 도식의 뒤에는 그만이 감득할수 있는 그 어떤 매혹의 세계가 황홀하게 펼쳐져있는듯 하였다. 이미 그의 안중에는 이야기를 나누던 《손님》들의 존재가 까마득한 세계로 밀려가버린듯 하였다.

억이 막혀 계응상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던 《손님》들은 들쳤던 문장을 와락 내리우고 산을 내리였다. 그들은 사태가 하도 한심하고 엄중하여 지도그루빠의 결심으로써는 도저히 어떻게 할수 없기때문에 상급기관의 결론을 받기 위하여 부장장을 데리고 급급히 평양으로 올라갔다.

이른바 《지도그루빠》가 시험장에서 한 일을 돌이켜본 계응상은 최택민의 소행도 그렇지만 한수민의 태도에 몸서리가 쳐졌다. 이번에도 그는 겉으로는 마지못해 끌려온 태도를 취했으나 나타난 사실들로 보아 그가 뒤에서 전에없이 랭정하게 행동했다는것을 감득했던것이다.

그가 아무리 릐쎈꼬설에 공명해나섰다 해도 고전유전학이 실천에서 유용하다는것을 모르는 인간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그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있을뿐더러 문제의 본질을 알아도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그는 그의 연구방법을 말살하는데 그렇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있는것인가.

그는 의도적으로 대드는 무서운 적수이상으로 집요하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함으로써 얻게 된 결말을 가지고 그의 행동의 동기를 분석하면 그는 어떤 인간인가?

설마 그럴수가 있단 말인가?

이제는 벗이라고 할수 없으나 의연히 벗으로 자처하는 수민의 존재방식을 두고 응상은 골똘히 생각해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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