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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1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6 장


2


지도그루빠는 완공단계에 이른 본청사의 한방을 꾸려놓고 사람들과의 담화를 시작했다. 턱이 뾰족하고 눈이 빼빼한 최병달이 맨선코로 지도그루빠실에 찾아왔다.

《앉으시오.》

최택민이 의자를 권하며 마주앉았다.

《동무가 사상이 흐리터분한 사람들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건 아주 좋소.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로부터 알건달이란 말을 듣소?》

한수민은 여전히 위엄있게 부처님처럼 앉아있고 최택민이 물었다.

《사실 난 건달이 되고싶어 그런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 시험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아십니까. 사람을 싹싹 가리면서 일을 시키는데 왜정때도 아닌 지금세월에 어찌 이런 일이 용납될수 있습니까?》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얘기하시오. 사람을 차별한다는건 매우 신중한 문제요.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차별했소?》

《계박사는 시험장에 새 사람이 오면 교묘한 방법으로 시험을 칩니다. 내가 배치장을 가지구 찾아가서 인사를 한즉, 밖에 나가서 꽃밭의 김을 매라고 하지 않습니까. 김을 매고 다시 찾아갔죠. 〈다 맸나?〉 〈예.〉 〈그래, 그런데 님자 그 꽃밭에 몇가지 꽃이 있던가?〉 〈글쎄요, 세보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 꽃밭에 있는 백일홍은 보았겠지?〉 〈보았습니다.〉 〈그 꽃 꽃잎이 몇개던가?〉 〈모르겠는데요.〉 이런 식이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란필로 쓴 원고 여러 문장을 주면서 원고지를 세주더니 깨끗이 필사해오라고 하더군요. 난 원래 글을 곱게 쓸줄 모릅니다. 그래두 성의껏 써바쳤지요. 한데 원고지를 세보더니 남은 원고지를 어쨌는가구 하더군요. 잉크를 쏟히는 바람에 종이를 배려서 꾸겨던졌다구 했더니 도리머리를 치면서 가보라구 하더군요. 그리구는 같이 갔던 명길동인 시험부에 배치했지만 전 서무부원으로 임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걸 가지구 어떻게 사람의 자격을 평가합니까. 그리구 해부실사람들한테 물어보십시오. 계박사는 사람을 로보트처럼 생각합니다. 스위치를 눌러야만 움직이게 되여있는 기계처럼 여긴단 말입니다.》

《어떻게 사람을 기계처럼 부린단 말이요? 자세히 말해보시오.》

《예, 그런 일은 부지기수지요.》

최병달은 장장방에서 누에해부실까지 선을 늘이고 사람마다 번호를 정하고 신호를 누르는데 따라 아무개아무개를 불러들여 보고를 듣는다는 사실을 분개하여 터놓고나서 계속했다.

《한번은 잠실에 처음 들어와 누에관리를 맡아보는 원종부장 색시가 누에관리에 경험이 없다보니 버려진 누에를 제 잠박에 골라넣을수가 없었지요. 그랬다구 제바루 데리고 일하는 부장색시를 인정사정없이 그 즉석에 관리공직책에서 해임시켜버렸지요.》

《그런데 부장은 아무 의견도 내지 못했단 말이요?》

《찍소리 한마디 할턱이 있습니까. 틀림없이 계장장은 그 녀자가 원종부장의 색시라는것도 전혀 모를겁니다. 누에밖에 모르니까요.》

《알만 하오. 어딘가 모르게 그의 행동에는 과거에 노복을 무제한하게 부려먹던 자본가의 행동을 련상시키는것이 있구만.》

최택민은 이마를 끄덕끄덕했다.

《물론 그런 점도 문제로 될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장 신중하다고 보는것은 원종부와 시험부에서 고전유전학에서 흔히 쓰고있는 유해로운 방법만을 쓰고있는 점이라고 봅니다.》

한수민이 뜨직뜨직 곁들었다. 그는 응상의 사업에 대하여 여느때없이 랭정하고 모진 태도를 취했다.

《옳소, 그런데 어째서 원종부나 시험부에서는 한사람도 얼씬하지 않소? 단단히 물을 먹었구만.》

최택민은 계박사밑에서 그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연구사들과 연구조수들을 한사람한사람 불러다가 담화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원종부장과 시험부장이 최택민의 호된 추궁을 받았다. 그러나 의젓한 체모에 누글누글한 원종부장은 《예, 예. 》하면서 《원종을 순계분리해놓은것이 반동학설을 받아문것이라는것을 아는가?》라고 추궁하자 《예,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고치겠습니다.》라고 성근히 대답했다.

《어떻게 고치겠다는건가?》

택민이 다우쳐묻자 이 담화가 끝난 다음에도 순계분리해놓은 원종들의 유지체계를 조금도 다르게 흔들어놓을수 없다는것을 알았지만 《예, 하라는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하여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각성을 높여 일해야 된다는 다짐은 받았지만 추궁은 더 받지 않았다.

그러나 시험부장 명길동은 한수민의 능청스러운 질문의 진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꼬박꼬박 정직한 대답을 한탓으로 혼맹이가 나가도록 추궁을 받았다.

《47호와 111호를 교잡한 1대는 수확성이 높단 말이지?》

《예, 그건 사실입니다.》

《그 다음대에서는?》

《신통히도 3 대 1의 비률로 갈라졌습니다.》

《그래 다른 품종의 누에들에서도 그런 규칙적인 비률이 나오던가?》

《그건 혼합유전현상으로 설명할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한수민의 홀림낚시에 걸려든 고지식한 명길동은 영문도 모르고 고전유전학의 전형적인 실험결과를 주장하는 실수를 빚어냈다.

이쯤 이야기가 전개되자 최택민은 책상을 《탕》하고 내리치며 길동의 요진통을 찔렀다.

《동무야말로 계응상의 마약에 완전히 중독된 한심한 사람이구만. 안되겠소. 가서 자기 사업을 다시한번 단단히 검토해가지고 오오. 아무래도 동무는 민주방맹이맛을 단단히 봐야 할것 같소.》

천진하고 순박하여 계박사의 지식을 절대적인 진리라고만 굳게 믿고 전적으로 그의 지시를 법처럼 여기며 실험사업을 진행해오던 명길동은 청천벽력같은 타격을 받고 얼이 빠져 돌아갔다.

이런 식으로 진행된 료해사업은 무려 한주일동안이나 계속되였다.

료해를 마친 최택민과 한수민은 문을 닫아걸고 총화보고서를 작성하고있었다.

이때 뜻밖에도 곤색대학생복을 단정하게 입은 최필호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학생모자를 벗고 꾸뻑 인사를 하는 청년을 찬찬히 쳐다본 한수민이 반색을 지었다.

《어, 자네가 어떻게?》

《전 여기 온지 벌써 반삭이 넘었습니다.》

《그래? 학생은 무슨 일루?》

《저두 계박사의 연구사업을 남몰래 검토해보는중입니다.》

어딘가 모르게 비양조가 풍기는것 같았으나 창백한 얼굴에는 엄한 빛이 흘렀다.

《허허.》

한수민은 허거프게 웃으며 옆에 앉은 최택민국장에게 최필호가 농대 교무부학장의 조카라고 소개하면서 대학에 있을 때 자기네를 찾아왔던 일이며 그에게 조언을 준 얘기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돼서 시험장에까지 찾아오게 됐나?》

최택민은 호기심을 품고 물었다.

《저는 당원입니다. 선생님들도 계박사한테는 시험장사업을 료해한다고 말하고 그의 연구사업을 검열하는것처럼 저도 그에게는 배우러 왔다고 말하고 속으로는 남몰래 그의 연구과정을 검토해보고있습니다.》

최필호의 태도는 나무랄데없이 의젓하고 침착했다. 두사람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고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그런즉 그때 한수민선생의 의견을 받고 완전히 새 출발을 한셈이구만.》

《그렇다고 볼수 있지요. 기성의 학적권위에 대한 환상의 면사포를 집어던지고 제눈으로 랭철하게 진실을 확인해보려고 작정했습니다.》

《엉뚱한 생각을 했구만. 그럼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곧장 여기로 왔소?》

《예.》

《어떤 방법으로 그의 연구사업을 검토하기 시작했소?》

《시험장에서 계박사가 제일 중시하는건 누에해부생리실입니다. 제가 해부실에서 실습을 하겠다니까 초파리까지 제공해주더군요.》

《여기에선 초파리까지 가지고있소?》

《그렇습니다.》

《흥미있소. 초파리라. 거 〈쏘련농업과학원총회〉에서 호되게 비판된 초파리 말이요?》

최택민은 활기를 띠였다.

《그럴겁니다. 실험유전학자들이 다루는 초파리야 다른것일수 없지요.》

《그래서, 그다음엔 어떻게 했소?》

《누에해부실에서 닷새동안 초파리며 가둑누에해부를 좀 해보고 이어 원종부와 시험부에 건너가서도 한 부서에서 댓새씩 머물러있었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밝혀냈소?》

《〈무릇 새로운 과학리론의 정당성은 자연을 향하여 검토될 때에만 참다운것으로 인증되는것이다.〉라고 한 선생님의 론문의 한구절이 얼마나 정당한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허허, 그렇단 말이지. 마침 잘 왔네. 그 어떤 기존학설에도 오염되지 않은 자네의 판단이야말로 우리들에게 대단히 귀중한 자료로 될거요. 동무가 남몰래 검토한 자료를 우리들한테 서면으로 제공해줄수 없겠소?》

최택민은 구미가 부쩍 동하여 필호를 쳐다보았다.

《뭐 제 의견이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요구하신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면으로뿐만아니라 구두로두 말입니다. 그렇지만 전 좀더 검토해보고싶은게 있습니다.》

《뭐요? 서슴지 말고 얘기하오.》

《시험장에서 새로 육종한 누에품종들도 현지에 나가서 료해해볼 생각입니다. 한수민선생님이 중앙잠업취체소에서 검정하시고 작성하신 자료들을 좀 보여주실수 없겠습니까?》

《허허, 이 친구 보통내기가 아니구만. 좋소, 어서 보시오. 그런데 동무는 언제까지 우리한테 서면보고를 제기할수 있겠소?》

최택민은 두툼한 보고자료를 선뜻 내주었다.

《우리는 그게 당장 요구되오.》

《유감스러운데요. 저는 이 자료에서 례증한 강원도 안변군 잠업농가들까지 돌아보고 보고서를 써낼 작정이였는데요.》

《안변군 잠업농가들까지?》

《예, 우연히 시작한 일이지만 어차피 끝장을 보자면 철저히 조사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안되겠군.》

기대가 어그러진듯 최택민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하자 《그렇게 조사해서는 어떻게 할 작정이요?》하고 한수민이 물었다.

《주제넘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전유전학에 대한 한 대학생의 견해를 표시하는 소론문을 써볼가 합니다.》

한수민은 미간을 찌프렸지만 무게있게 이마를 끄덕였다.

《좋은 일이요. 그럼 성공을 바라오.》

이날 오후 최필호는 방학기간이 끝나기 전에 안변군 잠업농가들을 돌아보기 위하여 서둘러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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