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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0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6 장


1


시험장에 종잡기 어려운 어수선한 공기가 떠돌고있는 가운데 불쑥 농업성 잠업국 국장 최택민을 책임자로 하고 대학교수 겸 중앙잠업취체소 소장인 한수민을 부책임자로 한 검열그루빠가 시험장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표면상 시험장신축정형과 연구사들의 과학연구정형을 료해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한낱 구실에 불과하고 계응상이 시험장에 퍼뜨려놓은 멘델-모르간식 《반동학설》의 진상을 밝혀내는데 목적이 있었다.

리덕겸부장장은 성지도그루빠가 내려왔다고 급히 룡골산에 사람을 띄워 알리였으나 계박사는 그 인편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한동안 산에 머무르지 않을수 없으니 그들과의 사업을 맡아서 처리해달라고 쪽지편지 한장을 보내여왔다.

보통키에 도수높은 안경을 끼고 지어낸 엄한 기색을 한 최택민은 반동학설의 본거지를 단번에 격멸소탕해버릴 태세로 검열사업에 달라붙었다.

일제시기 해외에서 공산당운동을 하다가 귀국하여 감옥살이도 몇해 한 그는 자신을 가장 철저한 사회주의정수분자로 자처하고있었다.

그는 계응상박사를 제외한 시험장전원을 신축중인 본청사의 빈방에 모여놓고 검열취지를 발표했다.

《에, 일전에 부장장동무가 장원들에게 쏘련에서 있은 농업과학원총회 회의정형을 알려주었다니까 구태여 다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멘델-모르간주의는 세계혁명의 적인 파쑈도이췰란드나 미일제국주의자들이 채용하고있는 학문입니다. 새로운 인민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하고있는 우리 나라에서 과연 이런 반동학설을 용납할수 있겠는가? 그런데 중앙잠업시험장이야말로 발족한 첫날부터 멘델-모르간주의를 100%로 채용하고있는 기관이요.

여기에는 자기도 모르게 교묘하고 악랄한 반동학설을 무조건 받아들임으로써 과학의 순결한 발전을 저애하는 사상에 마취된 사람들도 있으며 개별적인간들의 학적권위에 맹종맹동하여 과오를 범한 동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동학설의 독소를 뿌리뽑는것이 아직 늦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최택민은 그렇지 않느냐는듯이 옆에 앉은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풍채좋은 한수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수민은 무게있게 턱을 끄덕였다.

최택민은 흘러내리지도 않는 안경을 추슬러올렸다가 바로잡으며 좀더 엄한 목소리를 지어냈다.

《에, 어떤 동무들은 그래도 이 시험장에서 새로운 잠품종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고 하면서 고개를 끼웃거릴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검정자료를 보시오.》

택민국장은 중앙잠업취체소에서 조사한 자료를 얼음우에 박밀듯이 주르르 내리읽었다.

《…유럽종과 중국종과의 교잡에 의하여 육성되였다고 하는 라원형 백견종은 장고형과의 교잡1대에서 생산성이 높은것으로 인정되여 장려품종으로서 춘잠기사육에서 50%나 차지하고있다.

그런데 〈국잠43〉, 〈국잠47〉을 보급한 강원도와 황남도 잠업농가들에 미립자병이 발생하여 무수확을 낸 농가들이 적지 않다.… 상술한 발병자료가 보여주는바와 같이 이 품종들은 생활력이 약한것으로 하여 품종적가치를 상실하고있다. 주되는 원인은 품종육종방법에 있다고 보는바 두 품종이 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그대로 채용하여 소위 교잡1대에서 잡종세기를 노렸다는 점이다.…》

이른바 품종검정자료란것을 내리읽은 택민국장은 엄하게 오금을 박았다.

《그러니까 각자들은 이번 기회에 심각하게 자기반성을 하고 더 엄중한 사상적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지기 전에 과오를 시정해야 하겠단 말이요. 》

쥐죽은듯 조용하던 장내에서는 갑자기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끼웃거리며 옆의 사람과 나직나직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번에 부장장이 《특집호》를 가지고 독보를 할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장원들은 그것이 시험장사업과는 크게 관계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몇몇 연구사들을 내놓고는 유물변증법에 어긋나는 관념론이요 형이상학이요 뭐요 하는 어려운 말들은 잘 리해하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것이 다름아닌 계박사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라는것만은 누구를 막론하고 짐작했다. 장원들의 얼굴마다에는 경악에 가까운 의혹의 빛이 짙게 떠돌았다. 다른 말은 막연하고 추상적인것들이여서 리론쟁이들이나 알 일이라고 돌려놓았으나 시험장에서 육종한 《국잠 43, 47》이 유해로운 품종이라고 하는데는 가만있을수가 없었다.

해방전에 왜장장의 잡부노릇을 하며 그 누구에게나 깝삭깝삭 인사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하여 《갑삭이로인》이라고 별명까지 붙었던 류지성아바이조차 큰소리로 말했다.

《원참, 난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군.》

왜냐하면 《국잠 43, 47》은 시험장사람들의 큰 자랑거리였던것이다.

아무 농촌으로 나들이를 가도 국립중앙잠업시험장에서 왔다고만 하면 저마다 《그럼 거 왜놈들거보다 월등한 좋은 누에품종 만들어낸 거기서 왔단 말이요?》 하면서 치사를 했다.

그러면 그들은 의례히 시험장의 자랑인 계박사얘기를 했고 장차로는 고치크기가 닭알만 한 새로운 가잠품종은 말할것 없고 집누에보다 더 고치가 단단한 가둑누에품종, 울긋불긋한 색고치까지 만들게 된다고 자랑해마지 않았다.

인심이 후한 때라 고향농촌에 다녀온 장원들은 례외없이 시험장에서 새로 육종하는 누에얘기며 계박사얘기를 들려달라고 온 동리의 음식초대를 받다못해 이웃동리에까지 가서 접대를 받고왔다는 소리들을 했다.

또한 누에치는 수입이 약차한 때여서 시험장장원네 집들에서는 한집도 빠짐없이 누에를 쳤는데 그들은 모두 《국잠 47, 43》만을 받아다 길렀다.

누에를 많이 쳐본 사람들에게는 사육감이라는것이 있는데 누에먹성이 좋다든가 거동이 활달하다든가 몸이 강건하다든가 하는 오랜 사육과정에 감득하는 느낌만 가지고도 그들은 누에품종이 좋은지 나쁜지를 정확히 알아맞힌다.

그런데 시험장장원들은 거개가 한뉘 누에를 쳐온 사람들이다. 그만큼 누에에 대해서는 이름없는 《박사》들이다.

류지성아바이 역시 자칭 누에사육《박사》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계응상이 새로 육종한 두가지 누에품종만 가지고도 과시 박사칭호를 받을만 한 사람이라는것이다.

그런데 이런 누에품종을 가지고 타발하다니. 체소하고 정수리까지 이마가 홀랑 벗어진 류지성로인이 발딱 일어났다.

《한가지 물어봅쉐다. 난 무식해서 다른건 모르겠시다만 국잠 47 하구 43이 병퉁이구 사상이 나쁜 누에라구 하는데 그건 참 모를 소리웨다.》

하자 여직 입을 다물고있던 장원들속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높아졌다.

《에, 그 점으로 말하면》

위엄있게 누긋이 앉아있던 한수민이 뜨직뜨직 설명했다.

《유능한 전문가들로 무어진 검정그루빠에서 과학적으로 판정한 결과가 그렇습니다.》

《그렇단 말이요.》

모임이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왕청같은데로 흘러가는데 바싹 신경이 돋은 최택민은 날카로운 눈찌로 좌중을 휙 둘러보았다.

《령감!》

그는 대뜸 반말로 나오며 위협조로 물었다.

《왜정때 뭘 해먹었는가?》

상이 새파래진 류지성의 눈에서 갑자기 불꽃이 튕기였다. 그러나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앉아있었다.

《왜출장소장 시부야 사이찌상의 〈꼬쯔까이〉노릇을 했지요.》

이마가 반질반질하고 두눈이 참새눈같이 또릿또릿한 최병달이 뇌까렸다.

《그럴줄 알았소.》

최택민의 량입귀가 아래로 축 처졌다.

《야, 이 알건달 놈아, 내가 시부야놈의 〈꼬쯔까이〉를 해먹었으면 어쨌단 말이냐.》

류지성로인이 발딱 일어나 최병달을 잡아먹을것처럼 노려보았다.

《쳇, 과따대긴. 그래 령감이 왜정때 버릇을 고치지 못하구 계장장만 나타나면 십리밖에서부터 깝삭깝삭한건 뭐요. 일제잔재가 째질째질한 령감태기가 뭘 알건달이라구 내 원참.》

《이눔아, 존경할 사람을 존경했는데 뭐이 어쨌단 말이냐.》

《령감, 계박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나 그러시오. 반동사상이 머리에 꽉 들어찬 인테리란 말이요.》

최택민이 저력있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쪼아박듯이 말하자 장내는 된서리를 맞은듯 잠짓해졌다.

쉬쉬하는 소리가 났다.

《계장장이 반동이라니.》

최택민은 장내가 쥐죽은듯이 조용해지길 기다렸다가 지어낸 어조에 더욱 힘을 주어 말했다. 《이번에 상급기관에서 중앙잠업시험장사업을 검열하러 나온것은 다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것이요. 그러니 이번 기회에 멘델-모르간주의자들이 시험장에 퍼뜨린 해독성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밝히고 그 뿌리를 애전에 뽑아던져야겠단 말이요. 알겠소?》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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