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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9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5 장


4


이듬해 초가을무렵, 계응상박사는 염주, 룡골산 산중턱에 초막을 지어놓고 가둑누에연구사업에 힘을 기울이고있었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산들이 다 그러하듯이 룡골산에도 가둑누에들이 잘 먹는 가둑나무, 참나무, 개암나무, 분지나무와 같은 여러가지 잎나무들이 무성했다.

특히 산기슭으로부터 산중턱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는 가둑누에를 칠수 있는 가둑나무가 수백여정보나 펼쳐져있었다. 초보적으로 타산해본데 의하면 공화국북반부에서 가둑누에를 칠수 있는 면적만도 무려 수십만정보에 달하였다.

이 무진장한 천연의 자연사료를 리용하여 가둑누에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면 나라의 잠업이 얼마나 크게 번성할것인가.

우리 나라에서 가둑누에를 쳐온 력사는 가잠에 비하여 짧기도 하거니와 해충과 병균피해가 막심하여 간혹 가둑누에에 손을 댔던 사람들도 모조리 물러나고말았다. 하여 가둑누에사육은 해방전에 벌써 자취를 감추고 종자조차 남지 않았다.

계응상박사는 가둑누에의 자연사료를 어느때까지나 이렇게 썩여버릴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험장에서의 연구사업이 자리가 잡히자 며칠째 룡골산초막에 묵으면서 가둑누에에 해를 주는 여러가지 해충들을 조사하고 쉬파리에 의한 병충해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달라붙었다. 문헌을 조사해본데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가둑누에를 사료로 삼아 연구사업을 진행한 전적이 전혀 없었다.

이것은 가둑누에를 도태육종하는데서 변이의 가능성이 많으리라는것을 시사해주는것이기도 했지만 미지의 《황무지》를 개척하는 사업은 피와 땀을 바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전년에 선발대로 먼저 올려보냈던 젊은 연구사가 원인 모를 고열과 두통으로 신고하다가 갑자기 초막에서 숨을 거두었다. 산아래 동부락에 내려가 마을로인들에게 물어보니 이 고장에서는 해마다 봄가을에 이런 사망자가 한두명씩 생기군 했다는것이였다.

계응상은 문득 남중국에 있을 때 야생누에를 수집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일행중에서 몇사람이 급성뇌염에 걸려 목숨을 잃은 일을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후에 판명된데 의하면 그 사람들이 밤에 초막에서 자다가 살인적인 독침을 품고있는 모기한테 물린것이 발병원인으로 되였다는것이였다.

혹시 룡골산에도 미지의 독충이 기생하면서 사람을 해치는게 아닌가.

어쨌든 조상들이 수세기를 두고 털어버리지 못한 그것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것이여서 희생이 없이는 점령할수 없는것인듯싶었다. 숲속의 어디에선가 코브라와 같은 무서운 《적》이 잠복해있는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과제를 눈앞에 두고 뒤걸음을 칠수는 없었다.

소동을 피우는것을 좋아하지 않는 응상은 만일의 경우를 예견하여 가둑누에시험에 참가하는 성원들에게 뇌염혈청을 주사로 맞게 하고 직접 룡골산초막으로 올라갔다.

계박사는 벌써 두시간이 넘도록 가둑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나무가지에 살구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석잠누에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샤르륵 샤르륵.》

묵은 락엽우로 무엇인가 가볍게 미끄러져가는 소리가 귀가를 스쳤다. 불현듯 계박사의 눈매는 예리하게 번뜩이였다. 숨마저 딱 끊고 긴장하여 주위를 살피던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기손가락만 한 도마뱀이 분지알같은 눈알을 데룩거리며 가둑나무에서 떨어져내려 다른 나무로 기여오르는 가둑누에를 발견하자 살같이 미끄러져가 제 몸뚱이보다도 큰 누에를 순식간에 덥석 물어삼키는것이였다. 그리고보니 짐승치고 누에를 먹지 않는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까마귀, 까치, 참새들은 더 말할것 없고 오소리, 다람쥐, 꿩, 민충이까지도 가둑누에를 먹는것을 관찰했으나 도마뱀이 누에를 먹는것은 난생처음 본다. 자기를 방어하는 수단이라고는 보호색을 띤 몸색갈밖에 없는 누에를 어떻게 하면 해충들로부터 보호할수 있을것인가.…

점심을 먹으려고 초막으로 내려오던 계박사는 개울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정서기가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오는것이였다.

《웬일인가, 응?》

《선생님!》

숨을 태우며 이렇게 웨친 중년의 서기는 바삐 전하였다.

《시험장에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있습니다. 이걸 좀 보십시오. 여기서는 쏘련에서 정통유전학이 최종적으로 타도되였다고 대서특필되여있습니다.》

정서기는 떨리는 손으로 론문잡지 《자연》1948년 8월특집호를 내놓았다.

계박사는 의아한 눈길을 균형이 잡히고 단아한 서기의 모습에 주며 잡지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이 시각 계박사가 무심히 펼쳐든 그것이 그의 운명에 그리도 큰 충격을 주게 되리라는것을 어찌 상상이나 하였으랴.

두눈을 감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계응상은 조용히 말했다.

《알겠네. 차차 보기로 하지. 난 오늘 계획한 연구일정을 뒤로 미룰수가 없네.》

계박사의 침착한 태도에는 학계에서 그 어떤 폭풍우가 일어도 끄떡없이 자기의 주견대로 살아가려는 변함없는 결심이 력력히 드러나있었다.

정서기는 어수선한 심정을 눅잦히지 못하며 시험장에서 벌어지고있는 일들을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계박사가 룡골산으로 올라간 이튿날 《자연》특집호가 시험장에 배포되였다.

정서기 다음으로 시험장에서 로어에 능하다는 부장장 겸 과학서기인 리덕겸이 선고기 뜯듯이 그 단행본을 번역하였다.

《문제가 섰소!》

리덕겸은 범잡은 포수마냥 떠들어대며 시험장을 돌아쳤다.

《모두들 일을 중지하고 민주선전실로 모이시오.》

시험장성원들은 웬일인가 하여 선전실로 모여들었다.

《대낮에 급히 모이라고 한것은 동무들에게 지체없이 알려주지 않으면 안될 매우 중대한 소식이 있기때문이요.》

항상 닭잡아 겪을 일을 소잡아 겪듯이 부산을 떠는 리덕겸은 사뭇 준엄한 기색을 짓고 목청을 돋구며 특집호의 번역자료를 읽어나갔다.

그가 목에 피대를 세우며 특집호의 번역자료를 다 읽고나자 좌중에서 누군가가 불쑥 물었다.

《한데 그게 우리 일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요?》

《그렇게 묻는 그자체가 큰 탈이요. 그래서 이렇게 긴급히 모이라고 한거요. 이 특집호에서 규탄되고있는 정통유전학이란 다름아닌 우리 시험장의 일부 과학자들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있는 현상이란 말이요. 이게 얼마나 한심한 일이요.》

리덕겸이 엄하게 내지르자 장내에는 숨막힐듯 한 정적이 깃들었다.

《거 보라니. 내 계박사의 연구본새가 영 마음에 없다 했더니 쪼간이 있었구만.》

《박사면 박사지 누에해부실에 신호종을 달아놓고 갑돌이 부를 땐 〈찐찐〉, 천돌이 부를 땐 〈찐찐찐〉 …이게 뭔가 말야, 사람을 부르는데…》

누구보다도 시험부장과 같이 한날한시에 잠업기술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시험장에 배치되여왔다가 계박사의 눈밖에 나서 서무부나 창고 같은데 배치되여 일하는 최병달, 윤치호들이 내놓고 떠들어댔다.

《사람을 가려봐두 분수가 있지. 이건 일본놈때보다 더하단 말이야. 그게 다 고전유전학의 뒤받침을 받는 우생학자들이 하는 수작과 다른게 뭐냐 말야.》 …

정서기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난 계응상은 옆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여 들여다보았다. 쉼없이 자리를 옮기는 초침을 이윽토록 내려다보던 계응상의 얼굴에 침울한 기색이 떠올랐다. 소리없이 한숨을 내쉰 그는 정서기가 번역해가지고 올라온 특집호번역두루마리를 한쪽 주머니에 찔러넣고 초막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는 정서기가 다녀간 후 한주일이 지나도록 《자연》특간호 번역문을 들여다볼수가 없었다.

낮에는 가둑누에교잡시험이며 병해충기생근원을 밝히는 연구사업으로 잠시도 짬을 낼수 없었고 밤에는 밤대로 카바이드등빛밑에서 당장 필요한 문헌들을 조사하는데 바쳐야 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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