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제1장
12
이날 밤도 한영덕은 민족보위성청사의 한 방에서
《영덕동무,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든
(그렇다, 나에게 그 어떤 처벌이 내린다 해도 그건 응당한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때 전화종소리가 울려 한영덕은 송수화기를 들었다. 다음순간 그는 후두둑 가슴이 떨리여 송수화기를 놓아버릴번 하였다. 수화기에서는
《한영덕동지,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영덕은 헉― 하고 숨을 들이긋고나서 송수화기를 두손으로 꽉 잡아쥐며 말씀올리였다.
《나같은 불충한 놈의 안녕이 뭐겠습니까.
《예,
《그럼 됐습니다, 그러면 되지요.
바로 며칠전에
《내 조직을 통해 한영덕동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화기에서 울리는
어느새 영덕의 두눈에 눈물이 그렁하니 고여올랐다.
(아
《
《영덕동지의 심정을 알만 합니다. 사람이 마음만 굳게 먹는다면 재생하는것은 문제없습니다. 그러나 영덕동지야 원래부터 군인이 아닙니까. 그대로 로동현장에 나가면 모를것이 많을것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인민경제대학에 가서 공부를 해서 경제를 좀 배우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그다음에 현장에 나가는것이 어떻겠습니까?》
《예?》
영덕의 홀쭉하니 여윈 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어쩌면 이다지도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신단 말입니까. 어떻게 이 사랑과 믿음에 보답한단 말입니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무슨 말을 할수 있겠습니까. 고맙다는 말밖에는… 보답하겠다는 말밖에는…》
《그럼 됐습니다. 인민경제대학에 가서 공부를 잘하기를 바랍니다.》
한영덕은 그냥 송수화기를 든채 멍하니 서있었다. 귀전에는 그냥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영덕은 덤벼치며 송수화기를 들었다. 그 누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오든 그에게는 반가웁게 생각되였다.
《한영덕동무요?》
상대방은 김일이였다. 영덕에게는 이 시각에
《1부수상동지, 지방에 나가셨다던데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내 지금 돌아오는 길이요. 오던 길에 설미를 만났댔소. 모란봉숲에서 혼자 모지름을 쓰는걸 현철이가 어떻게 발견하고 거리까지 데려내왔더구만. 그 애가 몸이 불덩이같길래 병원에 입원시키고 왔소.》
《설미가… 그 애가…》영덕은 가슴이 졸아드는것만 같아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소, 아마 감기를 소홀히 하여 페염이 온것 같소. 병원의사들의 말이 며칠 안정하면 일없을거라더군. 내 혹시 동무네 집에서 설미때문에 걱정할것 같아 이렇게 알려주는거요.》
《그렇습니까? 애를 돌봐주어 고맙습니다. 그 애가 요즘 저나름대로 고민에 빠져있는가본데… 하기야 다 이 애비가 구실을 못한탓이라고 할수 있지요.》
《내 보건대 설미가 좀 심한 성격인것 같소. 그런 처녀들이 또 독하기도 하지. 하여간 부모들이 그 애에게 관심을 돌려야겠소.》
《알겠습니다. 그런데 1부수상동지, 이제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내 할말이 있어서… 1부수상동지를 기다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소?》
《내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화상으로는 도저히 말을 다할것 같지 못합니다.》
잠시후 한영덕은 김일을 찾아 내각청사로 향하였다. 세찬 바람속에 우수수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여전히 가슴은 마냥 설레이고있었다. 불밝은 거리로 활기있게 오가는 수도시민들의 모습이 여느때없이 친근하고 정답게 안겨왔다. 그의 발걸음은 딸애가 입원하였다는 의학대학병원근처에 와서 우뚝 멈춰섰다. 그의 눈길은 병원의 불켜진 창문들을 하나하나 더듬어본다. 그 어느 방에 딸애가 누워있을것이다.
(애야, 안심하고 잠을 자거라. 이 아버지가 너에게 미안하구나. 하지만 너는 앞으로 보게 될것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
내각 제1부수상의 집무실에는 두사람의 뜨거운 숨결이 흘러넘치였다.
김일은 어느덧 지그시 눈을 감고 (사색이 깊어질 때 그는 눈을 감는 버릇이 있었다.) 한영덕의 격정어린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
《1부수상동지,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한영덕의 이런 말이 들려와서야 김일은 눈을 떴다. 영덕이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있었다.
《영덕동무, 난 우리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하고있소.
《그렇습니다.》
《동무도 기억하겠지, 원동의 훈련기지에서 백두광명성탄생소식을 듣고 만세를 부르던 그때의 일이…》
《그 일을 어찌 잊을수 있겠습니까.》
《우린
…그때
소백수의 맑은 물이 사품쳐흐르면서 군복바지의 아래도리에 각반을 쳐서 근육이 두드러져보이는 굵직한 다리에 물방울을 튕기였는데 덕산은 아무 감각도 못 느끼는듯 그대로 앉아 없는 재간으로 권총을 깎느라 이마에 땀발이 내돋았다.
한영덕이 다가와 의아하여 덕산이 하는 일을 여겨보았다. 말끔하니 면도를 하고 반일부대에 있을 때 왜놈들과 싸우다 부러져 빠져버렸던 이발자리에 새 이를 해넣어 이제는 별로 나무람할데가 없는 영덕의 얼굴에 싱긋 웃음이 어리였다.
《정치지도원동지, 뭘 깎고있습니까.》
조선인민혁명군 8련대 정치위원이였던 박덕산은 원동에서 국제련합군이 조직되면서 조선지대 정치지도원으로 활동하고있었다.
《보면 몰라? 권총을 만들지 않나.》
《그건 만들어 뭘하자구?》
《어리신
박덕산은 어리신
《그러니 장난감을 만드는군요. 그런데 어리신
《하나 더 있으면 좋은거지.
《하긴 그 말도 옳습니다.》
《그래서 내 손으로 깎아주고싶어 이러는거야.》
《그런데 솜씨가 서툴군요, 안되겠습니다. 내가 깎아보지요.》
영덕이 이리 내라는듯 손을 내미는것을 박덕산이 툭 쳐버렸다.
《동무 솜씨도 뻔한거야. 내가 깎는게 어드래서 그래. 이제 보라구, 어리신
《그럼 난 뭘 만든다? 그렇지, 쌍안경을 만들어야겠군.》
《어리신
《쌍안경도 두개면 좋지 나쁠게 없지요.》
《허, 한영덕동무의 머리가 지내 잘 돌아가는군. 좋은 생각이야. 그럼 빨리 가서 쌍안경을 만드오. 한영덕이 얼마나 잘 만드는지 두고보기요.》
박덕산은 부리나케 달려가는 한영덕의 모습을 미소를 띠우고 바라보다가 계속 권총을 깎아나갔다. 그는 어리신
지난날의 추억들을 되새겨볼수록 김일은 감개무량하였다.
《영덕동무,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백두광명성을 축복하며 나누던 그 기대와 소망이 오늘 현실로 꽃펴나고있지 않소.》
《맞습니다. 난 우리 군대의 요직에서 사업하면서
《나도 알고있소. 어찌 군사분야뿐이겠소. 지금
《그야 뭐 최근에 사람들의 심금을 틀어잡는 영화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것만을 보고도 알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 지금 문학예술인들은
이윽고 김일의 입에서 조용히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장백의 험한 산발 눈보라 헤치시고
혁명의 수만리길 걸어오셨네
김일은 노래를 그만두고 깊은 생각에 잠겨 말을 이었다.
《
《지당한 말씀입니다.》
김일은 한영덕과 더불어 혁명의 앞날을 두고 이야기하며 시간의 흐름을 잊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