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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7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5 장


2


채령동에는 일제때 조선총독부 수원농사시험장 잠사부 산하기관으로서 채령동잠업출장소가 있었다. 시부야 사이찌소장아래 5명의 고원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일본 잠사전문졸업생들이였다. 이 잠업출장소는 서선, 서북선지방(평안남북도지방을 이르는 말)에 뽕나무묘목과 원잠종을 생산하여 각 도잠종제조소들에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왔다.

해방후 북조선림시인민회의 조치에 의하여 채령동출장소가 국립중앙잠업시험장으로 개편되자 그아래에 정주가둑누에시험장, 재령저잠시험장을 두었으며 본장인 국립중앙잠업시험장은 중앙잠업연구기관답게 꾸리기 위한 대대적인 개축사업이 벌어졌다. 계박사의 설계에 의하여 시험장정면에 2층으로 된 연구실을 짓기 시작했고 빨간 벽돌로 지은 잠실뒤쪽의 둔덕우에는 새로운 실험잠실을 2층으로 일떠세웠다.

이 잠실은 누에의 생육조건을 고려하여 잠실들을 건물 한복판에 두고 좌우켠에 마루를 깐 긴 복도를 두었으며 매 방마다 습도와 온도를 조절할수 있는 통풍구를 두었고 잠실바닥도 외계의 영향을 막기 위하여 지하실을 파서 공간을 조성하여 지면과 차단시켜놓았다.

시험장으로 들어오는 길 량옆에는 가슴노리를 치는 스무나무를 두줄로 죽 심고 그뒤에는 잣나무를 심었으며 시험장구내에는 가중나무, 참나무, 수양버들, 노가주나무들을 빼곡이 떠다심었다. 가중나무는 몇그루, 수양버들은 몇그루…

수종은 물론 대수까지 일일이 찍어서 지시를 하기때문에 시험장사람들은 계장장이 깐깐해서 그런가부다 했는데 실은 그 나무들이 모두 누에의 천연사료가 아니면 구충제로 쓰이는것임을 알고 구내에 심은 나무 한그루도 소홀히 여길수가 없었다.

아침조회가 끝나고 장원들이 모두 자기방으로 흩어져가자 키높은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찬 정원에서는 구슬주머니를 흔드는듯 한 새소리만이 울리였다.

《뻐꾹 뻑뻑꾹…》

전에 없던 뻐꾹새까지 날아들어 구성진 소리를 냈다. 아침안개가 걷힌 대낮에 정원의 나무숲속에서 울리는 뻐꾹새소리는 류다른 정서를 자아냈다.


뻐꾹새야 뻐꾹새야 바쁜 일손 재촉 말아

네 목소리 고운줄 모를리 없다만

우리네 장원들 눈팔새 없단다


시험장에 지혜롭고 똑똑한 총각들이 많이 모여들었다는 말을 듣고 시험공으로 들어왔던 눈매고운 처녀가 누에밖에 모르는 총각들때문에 애태우다못해 《파랑새》의 노래곡조에 담아 지어불렀다는 노래도 이무렵에 나온것이다.

스무살에 애아버지가 된데다가 원종부장이 된 정현수는 더 말할것 없고 1년제 재령잠업기술원양성소를 1등으로 졸업하고 시험장에 찾아와 계박사의 특별신임을 받고 19살에 일약 시험부장이 된 명길동이며 석달째 두문불출하고 누에해부를 하는 해부실이며 재정부, 서무부 할것없이 전국각처에서 모여든 시험장 장원들은 낮에는 더 말할것 없고 밤에도 밤참을 해다 먹으며 시험사업에 몰두하고있었다.

원종부에서는 수천개의 잠박에 각양각색의 누에들을 갈라놓고 그 성질들을 고정시키느라고 잠박마다에 이른바 누에의 《리력서》와 같은 사육일지를 매달아놓고 누에를 관찰하고있었으며 해부실에서는 계박사가 가장 세심하고 관찰력이 있다는 사람들만 선발하여 배치했는데 계박사는 그들이 진행하는 가둑누에와 가잠해부는 세계적인 의의를 가지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누에의 눈을 따서 샤레우에 올려놓고 현미경으로 수천개에 달하는 수정체모양의 누에를 하나하나 그려놓고 누에숨구멍의 털을 세고 그리는것이 어떻게 세계적인 의의를 가지는것인지는 모르나 그들은 해부실험실에서 먹고 자고 가위로 서로 장발이 된 머리를 깎아주면서 실험사업을 계속하고있었다.

그날 저녁에도 해부실벽에 달아놓은 신호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야 녕변내기 연구사는 밤 열시가 되였다는것과 하루동안 해부관찰하고 도면우에 그려놓은것을 가지고 계박사방으로 건너가서 총화를 지어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벌써 한주일째 누에의 눈을 관찰하여 도면우에 그려넣고있었다. 누에의 눈은 수정덩어리와 같아서 한개의 눈이 수천개로 이루어져있었다.

며칠째 같은 모양의 눈을 들여다보니 이제는 그것이 이것 같고 이것이 그것 같은게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그는 계박사앞에 앉아 그려가지고온 해부도를 내놓고 설명했다. 두눈을 감고 녕변내기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있던 계박사는 조용히 눈을 뜨고 물었다.

《그러니 각모사이에 있는 그것두 눈이구만.》

《예.》

녕변내기는 얼떠름하였지만 큰소리로 대꾸했다.

《흥, 그래. 그런데 이 사람아, 다시 가서 보라구. 그건 눈이 아니라 각모사이에 돋아나는 돌기일걸세.》

《아닙니다. 그건 틀림없는 눈이였습니다.》

녕변내기는 가끔 이렇게 계박사앞에서도 제 고집을 부려보군 한다.

그렇게 뻗대볼만 한 확실한 근거가 있어서 그러는것이 아니라 설마 계박사가 엎치고덮친 누에눈덩이속의 어느 한 갈피에 박힌 한개의 눈을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니라고 할수 있겠는가 하는 배심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이때 막내딸이 미닫이문을 조심스레 열고 계박사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네모난 종이장이 한장 들려있었다.

《아버지!》

막내딸은 눈물이 글썽하여 목메여 불렀다.

《가만, 내 일을 방해하지 말어라.》

계응상은 딸의 얼굴을 피꿋 한번 쳐다보고는 녕변내기에게 잘라말했다.

《수고스러운대로 다시한번 가서 보게.》

그리고는 잇달아 들어온 원종부의 새 조수에게 앉으라고 눈짓을 하고 실험보고를 들었다. 눈두덩이에 잠이 실린 연구조수는 보고를 빨리하고 나가려고 말을 번지였다.

《208호 잠박에서는 300개의 금황색고치를…》

《어째서 그 잠박의 누에가 300마리밖에 안되나?》

계박사는 젊은 연구조수의 말을 중둥무이하며 따졌다.

《3마리는 어디루 갔나?》

노상 부은상을 하고있는 젊은 조수는 낯이 벌개서 중얼거렸다.

《3마리는 변변치 못한것들이드라니…》

《그렇지만 100마리중에서 한마리를 집어던지면 몇퍼센트가 축나나. 그 한두마리가 중요해…》

이렇게 하루동안 실험결과를 보고받는 계박사를 원망에 차서 바라보던 막내딸은 《흑》하고 흐느끼며 《아버지!》하고 목메여 불렀다.

그의 손에서 네모난 종이장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젊은 조수가 무심코 종이장을 집어들었다.

순간 그 연구조수도 눈물이 글썽하여 중얼거렸다.

《선생님, 사모님이…》

《?!》

두눈을 흡뜨고 딸애와 연구조수를 번갈아 쳐다본 계응상은 손에 들고있던 펜대를 들여다보고 산화되지 않게 펜촉에 묻은 잉크를 닦아 필갑에 넣고 말없이 연구조수가 내미는 네모꼴의 종이를 받아쥐였다. 종이장을 눈바투 가져다대고 들여다보는 계박사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17일 모친 재령에서 병으로 사망. 맏아들》

응상은 돌연 귀가 멍멍하여 방구석을 바라보며 까딱하지 않았다.

부지불식간에 눈앞이 캄캄하게 흐려오고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그럴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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