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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5 장


1


1948년 2월초 어느날.

계응상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에서 제정한 규정에 따라 새 조선에서 발급한 박사증 제1호를 수여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이것은 진정 그가 마음속으로 바라마지 않던 오랜 숙망의 실현이였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두번째로 되는 박사칭호였으나 조국으로부터는 처음으로 받는 박사칭호였던것이다.

수여식장에 나오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김일성위원장께서는 계응상의 목에 박사메달을 걸어주시면서 그와 뜨겁게 포옹을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마치와 낫이 새겨진 박사메달을 다시한번 조심스레 만져보시며 말씀하시였다.

《〈농림수산연구보고 제1호〉로 출판된 선생의 첫 저작특제본을 감사히 받았습니다. 서문에서 저에 대하여 따뜻한 말씀을 해주신데 대하여 진심으로 사의를 표합니다.》

계응상은 들먹이는 가슴 한가운데서 번쩍이는 박사메달을 두손으로 꼭 그러쥐며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며칠전 저에게 박사칭호를 수여할데 대한 결정이 〈정로〉1면에 발표된걸 보고 큰 충동을 받았습니다.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해 뼈가 닳도록 일을 하고픈 열정만이 솟구칩니다. 장군님, 감사합니다.》

《저도 기쁩니다. 이것은 선생의 공적에 대한 마땅한 나라의 평가이기도 하지만 민족적절개를 송죽같이 지켜오신 선생의 순결한 량심에 대한 표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전국모범일군회의에서 수여해야 할것이지만 다망하신 선생의 사업에 지장이 될가봐 이 자리에서 함께 드리겠습니다.》

김일성위원장께서는 새 조선의 잠품종개량에서 특출한 공로를 세운 업적으로 계응상박사에게 자신의 명함이 새겨진 모범일군 1급표창장을 수여하고 백로지에 포장한 선물을 안겨주시는것이였다.

수여식이 끝나자 장군님께서는 휴계실에서 계응상박사를 따로 만나시였다.

《그동안 선생께서 많은 일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 일전에 삼석에 나갔다가 누에치는 농가에 들려 〈국잠43, 47〉이 어떤가고 물었더니 고치가 딴딴하고 크기도 하거니와 병에 견디는 힘이 강하여 옛날 조상들이 치던 누에가 월등한 누에로 되살아나온것 같다는 말까지 하는것이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만나뵈올 때마다 심신을 뒤흔드는 그이의 겸허하시면서 뜨거운 인간미가 응상의 마음을 걷잡을수 없이 사로잡았다.

《어떻습니까, 일이 힘에 부치지 않습니까.》

그이의 말씀에는 언제나 무엇이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큰 견인력이 있었다. 계응상은 자기가 생각하고있는것은 그 무엇이나 그이께 숨김없이 말씀드리고싶어졌다.

《맡겨진 일을 감당하기가 벅차긴 하지만 힘든줄은 모르겠습니다. 이젠 잠종유지체계도 정연하게 서고 병독검사체계도 엄격하게 섰습니다. 장군님의 말씀대로 시험장에서 육종하여 파악된 어미종자만을 원종장을 거쳐 농민들한테 보급하는 과학연구기관을 중추로 하는 잠종유일보급체계를 세우니 파악이 없는 잡탱이잡종들은 자취를 감추고 세력이 좋은 1대잡종누에들만이 농민들의 손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 참 잘되였습니다. 그러니까 박사선생이 만들어낸 우리의 누에가 밑에까지 쭉 내려가는 체계가 섰단 말이지요.》

장군님께서는 활기를 띠시였다.

《그렇습니다. 그럴수록 전보다 몇갑절 더 좋은 누에품종을 만들어내야겠다는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동안 저희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품종과 국내 각처에서 수집한 품종까지 합하여 근 200여종의 누에품종을 장만해서 순계로 분리하여 유지해놓았는데 이것을 밑천으로 삼아서 봄가을누에는 고치가 더 크고 실이 많이 나오는 품종을 만들고 여름철에 굳은 뽕을 먹고도 병에 걸리지 않는 생활성이 높은 누에품종도 만들고 참나무류의 잎을 먹고 고치를 트는 가둑누에품종도 새롭게 육종할 차비를 하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응상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있게 듣고계시였다. 계박사는 수령님곁에 무슨 긴요한 일때문에 부관이 초조한 표정을 짓고 다가선것도 보지 못하고 말을 계속했다.

《제가 일전에 야생누에수집차로 해주에 나갔다가 산누에라는 희귀한 산누에품종을 구해왔습니다. 실이 굵고 물감이 곱게 들어 산골사람들은 이 산누에고치를 따다가 비단을 짜서는 그 이름을 청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누에고치의 원색이 연한 풀색을 띤것이 아닙니까?》

《옳습니다. 잔치날 신랑이 해입는 조끼색을 띤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정색하시며 생각에 잠겨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산에서 일본놈들과 어려운 싸움을 벌리던 1937년 겨울 장백현에 있는 조국광복회회원들이 나에게 두툼한 비단조끼를 하나 만들어왔는데 그게 그렇게 따뜻하고 폭신했습니다. 그런데 그 비단조끼가 산누에고치를 따서 실을 뽑아 비단을 짠 파르스레한것이였습니다.》

《장군님, 그게 분명히 청주였겠습니다. 옛날에는 청주로 지은 옷은 나라의 왕만이 입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산누에는 수확성이 작고 생활력이 약한게 큰 결함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퉁경수라는 저잠과 산누에를 교잡하여 산누에의 고유한 성질을 살리면서도 수확성이 높고 생활력이 강한 아직 세상에는 없는 희귀한 누에품종을 만드는 연구사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을 성공하면 우리 인민들이 그 누구나 옛날임금이 입던 비단옷을 마음대로 해입을수 있겠군요. 참으로 훌륭한 생각을 하셨습니다. … 난 우리 인민들에게 비단옷을 입히는 문제는 선생님에게 전적으로 맡깁니다.》

장군님께서는 계박사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시였다. 급행차를 타고 채령동잠업시험장으로 돌아오는 동안 계박사는 장군님께서 주신 선물을 붙안고 두눈을 감고있었다.

시험장 한가운데에 자리잡고있는 일제때에 시부야 사이찌소장이 들고있던 집에 돌아와서야 장군님께서 주신 선물꾸레미를 펼쳐보았다.

그안에는 회중시계와 밝은 회색바탕에 목란꽃무늬가 돋힌 모본단치마저고리감 한감이 들어있었다. 계응상은 이런 뜻깊은 날에 안해가 손주를 보겠다고 재령 맏아들네 집에 나들이를 간것이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회중시계는 10여년전 중국에 있을 때 사 찬 손목시계가 수명이 다하여 가다말고 하는 형편이여서 참으로 때마침이였다. 항상 몸에 지니고다니면서 시계를 들여다볼 때마다 장군님의 은덕을 생각하며 분과 초를 앞질러 연구사업을 재촉해나가리라 속다짐을 했다.

그러나 회중시계도 시계려니와 은근하면서도 부드러운 모본단치마감은 볼수록 눈굽이 뜨거워졌다. 곁에 다가앉은 막내딸은 두손을 모아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야! 어머니가 이 비단천으로 옷을 해입으면 10년은 젊어보이겠어요. 장군님께서 우리 어머니한테 변변한 나들이옷 한벌 없다는걸 어떻게 아셨을가요?》

막내딸의 고운 쌍겹눈에는 눈물이 가랑가랑하니 고이였다.

응상의 가슴속에서도 뜨거운것이 뭉클하고 솟구쳐올랐다. 문득 재령 나들이를 갈 때 안해가 옷가지들을 꺼내놓고 이것저것 뒤적거리며 서글픈 표정을 짓던 광경이 얼핏 뇌리를 스쳤다. 정녕 박사의 안해랍시고 차려입고 나서자고보니 무명으로 지은 치마저고리조차 보임직한것이 별로 없었다. 하여 그는 남보기 쑥스러워 저녁차를 타고 아들네 집으로 갔던것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는 한뉘 비단실고치를 연구하면서 박사까지 되였지만 가정살림이며 자식들을 도맡아보면서 남모르는 고생을 많이 한 안해한테 언제 한번 비단옷 한벌 선사하지 못했다는것이 뼈저리게 뉘우쳐졌다.

비단옷감을 살 돈이 발라서 그런것만도 아니였다. 시집온 첫날부터 녀자들은 그저 참고참는게 미덕이라고 생각한듯 남편이 간다는 말도 없이 집을 나간 다음에도 죽었소 하고 지청구 한마디 하지 않았고 10년, 20년 객지에 나가있어도 묵묵히 자식들을 키우며 기다리기만 하였다.

그랬다고 언제 한번 안해가 무탈없이 뒤를 보아준 덕에 걱정없이 학문을 연구하여 성공할수 있었노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준적이 있었던가.

《장군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이 계시여 너희 어머니가 비단옷을 지어입게 되였구나. 어서 어머니한테 편지라도 하여 기쁜 소식을 알려드려라.》 전에 볼수 없던 부친의 다심한 목소리에 막내딸은 고운 눈매를 반짝 빛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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