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45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4 장


2


이때 누에실험일지에 매달린 연필을 들고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남달리 긴장해하고있는 한 학생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최필호, 함남도 덕성군 후치령 령밑에 있는 삼거리라는 산골마을에서 소학교선생을 하다가 대학에 입학한 젊은이이다.

농학부를 지망했던 그가 다름아닌 잠학과에 들어온것은 전적으로 그 과에 박사학위를 지니고있는 계응상과 같은 교수가 있기때문이였다.

처음으로 설립된 대학에 와서 공부를 하게 되는만큼 학적권위가 있는 우수한 교수들이 있는 과에 들어가야 배울만 한것이 있다고 여겨졌던것이다.

대학에 와서 만난 중학시절의 은사인 최부교수도 그의 결심을 만족스럽게 여겼다.

《계응상선생이야말로 세계적인 학자라고 할수 있네. 어떤 젊은이들은 일정때처럼 의사나 변호사가 그저 좋은줄 알고 의학부요, 법학부요 하는데로만 가겠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

계응상박사선생이 하는 잠업이 전망이 크네.》

해방직후처럼 박사란 말이 그렇게도 위엄있고 매력있게 들린 때가 언제 또 있었으랴. 그때에는 박사가 옷은 무엇을 입고 음식은 무엇을 먹는가 하는것도 학생들의 각별한 관심을 자아냈다.

계응상박사는 교단에 나설 때면 쥐색두루마기에 삼으로 삼은 초신이 아니면 고무신을 신군 했다. 해방이 되여 저마다 신식으로 깃이 넓은 제낀 양복에 가랭이가 넓은 나팔바지를 입고 다니지 않으면 레닌모에 닫긴옷깃의 단정한 양복을 입는것이 류행처럼 되고있고 대학생들도 반짝거리는 곤색세루직양복에 흰 와이샤쯔, 화려한 넥타이를 매고 다니며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고있는 때에 고집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교단에 서는 계응상박사는 그자체로써도 무엇인가 류다른데가 있었다.

《고루하고 완고한 표현이외에 다른게 아니야.》

루바슈까에 긴 장화를 번쩍거리며 다니는 청진내기는 단정하듯이 말했다. 그럴 때마다 최필호는 자기가 모욕을 당하듯이 화를 내였다.

《산골에서 살아온 내게는 그런 차림새가 더 친근한 느낌을 주네. 계박사선생이 공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에는 양복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중산모를 쓰고 나서는걸 보지 못했나. 그걸 고루한 표현이라고 보는것은 편견일세. 일정시기에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민족적지조를 지키며 살아오던 습관의 연장이 아니면 소박하고 겸손한 표현의 상징이라고 보는게 옳다고 생각하네.》

계가성을 가진 칠복이라고 하는 북청에서 온 학생은 성씨가 같다고 해서 계선생집에 드나들며 부인의 음식대접까지 받군 한다. 그는 학급학생들에게 계응상박사의 식성에 대한 상세한 《보도》를 하군 하였다.

《계응상박사선생께서는 26살때부터 고기를 잡숫지 않고 22살에 금연단주하였다. …》

고기는 26살때부터 먹지 않고 술과 담배는 22살부터 절대로 입에 대지 않았다는것이다.

《아침에는 당콩이나 팥을 두고 쑨 죽을 좋아하며 정오 곁두리에는 끓는 물에 닭알을 풀어두고 사탕가루 한숟가락을 친 음료를 한고뿌 마시고 매끼 시래기를 둔 구수한 된장국에 반그릇의 밥, 이른봄에는 냉이국에 달래무침, 봄, 여름에는 시금치나 오이와 같이 신선한것을 좋아하여 속이 항상 가벼우니 머리는 언제나 이른아침처럼 맑고 청신하네. 자네들도 이런 식사료법을 써보게. 당장 수재가 될걸세.》

《흥, 평생 몸이 나보긴 글렀군. 닥치는대로 먹고 마시며 때로는 포식을 하여 배집을 늘쿠기도 하는것이 민주건설시기에 마음껏 먹을 권리를 가진 일하는자의 멋이란 말일세.》

깍쟁이를 증오하고 네것내것없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집단주의를 긍지높은 계률로 인정한 대학기숙생들은 한결같이 계응상박사의 지나친 절제를 리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필호만은 참다운 과학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산만성을 적으로 선포하고 규칙적인 생활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우선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동무를 많이 사귀는 사교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면 과학자가 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모처럼 찾아오는 친척친우들과도 끼때이외에는 절대로 만나지 않는 계응상박사의 생활질서야말로 얼마나 정당한것인가? 최필호는 생활조직으로부터 일거일동에 이르기까지 계박사의 본새를 따르기 위해 애썼다. 계응상교수의 강의는 여느 교원들이 하는 강의와 질적으로 달랐다. 다른 교원들은 강의내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고말지만 계응상교수는 강의를 하다가도 가끔 《계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라는 자기의 견해를 덧붙인다. 자신의 눈으로 발견하고 수천수만번의 실험을 통하여 확증한 사실을 가지고 강의를 하기때문에 마디마디에서 진실이 느껴진다.

《누에의 해부생리》시간에는 다른 사람의 책을 소개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수년동안 관찰하고 집필한 론문을 가지고 강의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이렇게 문제를 던지기도 한다.

《가둑누에에 대한 해부관찰문헌은 아직 미지의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누에의 유전 및 육종의 기초로 되는 이러한 연구야말로 학생들이 맡아 수행해야 할 큰몫의 하나라고 봅니다.》

《산누에나 가둑누에, 가잠과 같이 종이 다른 누에들간의 교잡도 현재까지는 미해결로 되고있습니다. 세계생물학계에서 미지로 남아있는 이러한 종간교잡도 반드시 새 조선의 과학자들이 해결해야 할것입니다.》

최필호학생은 이러한 강의를 받을 때마다 조선의 생물학은 계응상박사가 도달한 과학적높이가 있기때문에 그 어떤 과학부문보다도 빨리 발전하리라는 확신이 가면서 잠학을 전공과목으로 택한 긍지감이 가슴뿌듯이 차오르는것이였다. 고향 삼거리에서 악질반동들의 책동을 물리치며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그는 당에도 남먼저 들었다. 그가 한개 반밖에 없는 잠학과의 학급반장으로 된데는 이러한 경력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대학학보에 발표된 《두개의 유전학에 대한 론의》라는 한수민의 론문을 읽어본 최필호는 어리둥절해졌다. 그 론문의 어느 한 대목에도 정통유전학을 반동학설이라고 찌르고든 대목은 없지만 신유전학자들이 가치가 없는 학문으로 인정하는것을 보면 심상히 여길 일이 아니였다.

때를 만난듯 청진내기는 억양이 드센 북관사투리를 써가며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박사의 말이라고 덮어놓고 받아들였다간 개코망신할수 있당이.》

《쓸데없는 소리 말어. 우리는 이런 일을 처음 당하여 놀라지만 학계에서 서로 자기 리론이 옳다고 론전을 하는건 례상사래.》

계칠복이 공연히 낯이 벌개서 한마디 했지만 북청내기는 그의 말을 단마디로 일축해버렸다.

《계박사가 같은 성씨라고 두둔해나서는건가?》

최필호는 계박사가 강의를 할 시간이 되면 매번 그의 방으로 찾아와 강의를 받을 준비가 다되였다고 교수를 직접 모셔오군 했다. 그렇게 하는것이 자기의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게 하고는 있지만 그럴 때마다 일부 학급생들이 자기에게 비난의 눈초리를 돌리는것만은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두루 생각을 거듭하던 그는 삼촌벌되는 교무부학장을 찾아가 알아보기로 결심하고 토요일 저녁에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마침 삼촌의 방에는 한수민교수가 와있었다. 상을 물리고 나앉아 담소를 하고있던 그들은 최필호가 나타나자 반색을 하며 맞아들이였다.

《인사해라! 너도 보았겠지만 대학학보에 유전학에 대한 론문을 쓰신 생물철학교수 한수민선생이시다.》

최필호는 학생의 신분으로 뛰여들지 말아야 할 곳에 주책없이 들어선것만 같아 가뜩이나 옹색하여 어쩔바를 모르던 몸가짐이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차츰 마음이 가라앉자 그는 두번다시 차례지기 어려운 기회에 자기가 의문을 품고있는 문제를 해명해보고싶은 욕망을 누를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구태여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였다. 계응상박사에 비하여 훨씬 부한 체구에 얼굴이 둥실한 한수민교수는 호기심을 품고 먼저 말을 걸었다. 《학생은 어떻게 잠학과를 지망하게 됐나?》

최필호는 머밋머밋하다가 《전 농촌태생입니다. 공부를 해도 나서자란 고장을 위해 이바지할수 있는 그런 학문을 배우고싶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

한수민은 필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재촉했다.

필호는 얼떠름하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상대방이 예상외로 그이상 파고들며 묻는것이 의아하기도 했거니와 이 사람앞에서 그러한 진실을 터놓는다는것이 어쩐지 멋적은 일로 생각되였던것이다.

《허허허, 뭐 숨길게 있니? 한선생, 이 애는 사회경험도 적지 않은 당원대학생이라오. 학적권위가 없는 교원들한테서는 별로 배울게 없다는것쯤은 알고있었소. 그래서 계응상박사와 같은 권위있는 교수가 지도하는 학과에 들어간거라오.》

교무부학장은 조금도 꺼릴게 없다는듯 툭 터놓고 말했다. 한수민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였다.

《신중하게 전도를 정하는 태도는 좋은것이지요. 별로 걱정할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미리 앞질러 훈시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활을 통하여 진실을 알게 될테니까요.》

《그건 무엇을 념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신지요?》

최필호는 조심스럽게 교수의 번들번들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말해주시구려. 우리 조카애는 풋내기가 아니니까.》

교무부학장이 옆에서 곁들었다.

《흥.》 두팔을 가슴우에 겨루어 얹은 한수민은 미간에 두갈래의 주름살을 지었다.

《동무는 고향마을에서 토지개혁에도 참가하고 소학교교원도 했다니 〈맑스-레닌주의 기본〉을 통독했겠지? 세상만물은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부단히 변화발전한다, 이것이 변증법적유물론의 알맹이라고 할수 있소. 그런데 정통유전학은 생물체들에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겐이라는 신기한 존재가 있어 그것이 전대에서 후대에로 유전된다는것이네.

겐이란 다름아닌 천지조화를 신이 부린다고 하는 선험적인 관념론의 산물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네.》

《복잡하게 생각할게 없다.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새 인민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하는데 가지 착수하다보니 교육내용에서는 아직 과거의 낡은것이 적지 않다고 본다. 불가피한 일이지. 그러나 교육분야에서도 계급적선을 날카롭게 세워야 할 때가 올것이다. 너도 당원인만큼 순진한 열정을 기울여 배움에 열중하는것은 좋지만 권위있는 학자들이 배워주는것이라고 하여 덮어놓고 받아무는것은 혁명적인 학습태도라고 볼수 없다.》

늘 그런것처럼 우정 뜨직뜨직 말하는 교무부학장의 얼굴에는 자못 엄엄한 빛이 떠올랐다.

최필호의 길둥근 얼굴과 커다란 두눈에는 착잡한 빛이 얼른거리였다. 그의 눈앞에는 강의때마다 자기의 가슴속에 차있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쪼아박듯이 또박또박 론리정연하게 들려주던 계응상박사의 모습이 확 안겨왔다. 특히 대학합동강의실에서 농학부학생전원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한 계응상박사의 첫 강의는 잊을수 없는 격동적인 장면이였다.

연탁 량모서리를 두손으로 꽉 그러잡은 계박사는 흥분된 심정을 가라앉히려는듯 한동안 고개를 반쯤 수그린채 까딱하지 않았다. 강의실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이윽고 천천히 머리를 든 계박사는 열정에 타는 수백쌍의 눈동자들을 정겹게 바라보며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이였습니다. 본인은 남중국 중산대학 농학부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유전학 원론강의를 처음으로 하게 되였습니다. 넓은 강당에는 낯설은 이국의 학생들이 꽉 들어차있었습니다. 나는 웬일인지 눈앞이 뿌옇게 흐려오고 목이 꽉 메여와 입을 열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시뻘건 두주먹을 부르쥐고 고학의 길에 나선 후 근 15년동안 한치한치 과학의 봉우리를 톺아올라 마침내 신성한 교단우에 나서게 된것은 얼마나 큰 영광이였겠습니까!

그러나 그때 나의 가슴은 터질듯 한 비애로 꽉 차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내 나라, 내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젊은이들이 앉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오직 그 하나의 념원을 안고 살아온 내가 어찌하여 고국에서 수륙만리 떨어져있는 이국땅에 자기의 지혜를 쏟아붓지 않으면 안되였는가 하는 그것때문에 나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는듯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비로소 내 나라 한복판에 세워진 어엿한 종합대학의 높은 연단에서 바라고 고대하던 강의를 하게 되니 무량한 감개를 어찌 다 피력할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영국과 프랑스, 로씨야와 이딸리아에서는 벌써 지금으로부터 수백년전에 대학이 세워졌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자료들을 들어 언급하고 그 나라들의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밑바탕에는 일찌기 훌륭한 고등교육기관을 창설하여 재능있는 인재들을 키워냈기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을 해방하시고 민족간부를 양성하기 위한 종합대학을 창설하는 사업에 첫째가는 주목을 돌리심으로써 마침내 이처럼 기쁜 날을 맞이하게 되였다고 감동에 차서 이야기하였다.

《그러니 해방조선의 첫 대학생들인 학생들의 책임이 얼마나 큽니까. 학생들의 어깨우에는 남들이 몇백년동안 해놓은 일을 한세대에 이룩해야 할 무거운 과업이 지워져있습니다. …》

계속하여 그는 멘델시기로부터 시작하여 모르간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 70년동안 세계생물학이 달성한 성과들을 중심적으로 개괄하고나서 3년동안의 대학기간에 이러한 선진과학을 자기의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디디고 올라서서 조선의 생물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둘지도 않고 차근차근 강의를 하였으나 그의 말은 학생들에게 그 어떤 열정적인 강의보다 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강의를 받고 나온 학생들은 한결같이 가슴이 뿌듯하고 어깨가 높아져서 복도에 두셋씩 모여 격동된 심정을 나누느라고 다음강의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는것도 미처 듣지 못했었다. 그런데 과연 그의 강의에 그 어떤 불순하고 정치적으로 모호한것이 있다는게 웬 말인가. 과학발전과정도 계급투쟁을 동반하는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말에 수긍이 되면서도 그는 도무지 리해할수가 없었다. 그는 용기를 내여 힘겹게 말을 꺼냈다.

《저는 교수선생님이나 삼촌의 말씀이 다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계응상박사선생의 강의가 나쁜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 선생의 강의는 자신이 수차례의 실험을 통하여 확증한 자료만을 가지고 하기때문에 믿음성이 있습니다.》

《헛참, 벌써 대단한 숭배자가 됐구나. 그런데 넌 그 학문이 릐쎈꼬의 〈신유전학〉에 의하여 매장되고있다는걸 생각이나 해보았느냐?》

《…》

《아무튼 제 주견을 가지고 사는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야 앞으로 옳고 그른것도 갈라볼수 있는 눈을 가질수 있는거니까. 그러나 때가 때니만큼 각성을 높여야 해.》

삼촌은 오금을 박듯이 엄하게 말했다. 한수민은 동감이라는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밤이 깊어 기숙사로 돌아오는 최필호의 마음은 구름이 밀려드는 밤하늘과 같이 무겁고 침울했다.

오래동안 수중에 귀중히 간직했던 보물이 가짜였다는 말을 들은 때처럼 마음이 허서분해지였다.

하나 그처럼 크나큰 기대를 가졌던 그것을 일순간에 가슴속에서 몰아내기에는 그에 대한 미련이 너무도 컸다.

최필호는 자기의 눈으로 계응상박사의 학설이 진리인가 허위인가를 밝혀내리라고 굳게 속다짐했다. 그 어떤 학적권위에 대해서도 환상을 가지지 말고 각성을 높여 진상을 밝혀내리라.

《최필호군, 군은 반달무늬가 있는 누에와 무늬가 없는 흰 누에를 가지고 직접 실험을 해보시오.》

계응상박사는 유전의 기본법칙을 강의한 후에 매 학생들에게 실험재료를 제시해주었다. 청진내기한테는 고치색갈이 누른것과 흰것의 나뱅이를 교잡하여 알을 깨워서 분리비률을 확증해오라는 과제를 주었다.

유전의 제1법칙을 확증해보는 초보적이면서도 가장 단순한 이 실험여부에 의하여 고전유전학설의 진실여부가 완전히 밝혀지는것은 아니지만 잠학과 학생들은 대단한 열성을 가지고 누에교잡실험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신유전학자》들이 생물현상을 초등수학적방법으로 계산하는것을 형이상학적인 태도라고 비난하는 조건에서 이것도 두 유전학의 진리성을 대비적으로 고찰하는데서 중요한 실험이라고 여겼던것이다.

한수민은 이에 대하여 생물철학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생물학적연구를 형식적-수학적연구로 바꾸어놓은 이것은 생물학이 아니라 순 통계학적인 리론이다.》

《흥미있는걸, 서로 다른 누에를 교잡하여 얻은 누에에서 생긴 고치가 규칙적인 비를 나타낸다는건 아무래도 모를 소리야.》

성급한 청진내기는 도롱이에 나뱅이를 넣고 쌍을 붙일 때부터 빈정거렸다.

《첫 과학실험을 하면서 점을 치진 말게. 한달만 참으면 사실여부가 명백해질게 아니겠나.》

실험잠실에는 전문관리공이 붙어있었지만 학급생들은 하루수업이 끝나면 앞을 다투어 대학농장 뽕밭에 나가 뽕을 한배낭씩 따가지고 잠실로 달려가군 했다.

필호가 맡은 실험잠박의 누에가 첫 잠을 자고나자 어미아비가 지니고있던 무늬는 육안으로도 감별할수 있을 정도로 뚜렷해졌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손을 대지 못하게 하고 누에들을 살펴보았다.

1대교잡종(Fl)에서는 신통히도 계응상박사가 말한대로 몽땅 반달무늬누에만이 나왔다. 북청내기의 잠박에서도 Fl(1대교잡)에서는 전부 누른빛누에고치만 나왔다.

그러나 1대교잡종에서 나온 누에들끼리 교잡하여 나온 2대에서는 약속이나 한듯이 정확한 3:1의 비률을 나타내는것이였다.

한두 학생의 실험잠박에서만 이런 수학적비률이 나타났다면 혹시 계박사가 그 어떤 수를 쓰지 않았겠는가 하고 의심할수도 있겠지만 학급생모두가 맡은 실험잠박이 한결같이 똑같은 결과를 나타냈다. 그런데 그 누에들은 나뱅이때부터 학급생들이 제 손으로 골라서 도롱이에 넣고 교잡을 하고 알을 받아 깨워서 고치를 지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은 아예 범접을 하지 못하게 하고 실험을 진행하여 얻어낸 결과인것이다.

이때 한가지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잠실이 비좁아 초파리실험실 한쪽구석에 당반을 매고 올려놓았던 두 잠박의 누에들은 왕청같은 비률을 나타냈다. 이 사실을 계박사에게 알리자 그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턱수염을 내리쓸면서 담당학생에게 물었다.

《누에가 첫잠을 자고난 이후에 뽕잎을 제때에 주지 않은적은 없나?》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그렇다. 그런즉 유전의 갈림법칙이 의심된단 말이지? 어디 잠실에 나가보세.》

흥미있는 현상에 맞다들린 학급생들은 줄레줄레 계박사를 따라나섰다. 문제로 된 잠박앞에 쪼그리고앉은 그는 누에를 척척 집어서 빈 잠박우에 골라놓았다. 그는 초조한 표정을 짓고있는 관리공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사실대로 말해보십시오. 언젠가 누에한테 뽕을 적시에 주지 못하고 밤을 새운적이 있지요? 그래서 잠박밖으로 게바라나와 바닥에 흩어진걸 적당히 주어올려놓지 않았습니까?》

관리공아주머니는 그제서야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실토했다.

《정말루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관리를 소홀히 한다고 욕을 먹을가봐…》

관리공아주머니는 뒤말을 채 잇지 못했다. 계응상교수는 따로따로 골라논 누에들을 자기 잠박에 옮겨놓게 하고 누에들을 헤여보라고 지시하고는 자리를 떴다. 잠실에 남은 학생들은 잠박우에서 꿈틀거리는 누에들을 세여보았다. 두가지 누에의 비률을 계산해본 학생들은 혀를 털었다.

계응상은 이 첫 실험을 총화하면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걸 인정할수 있습니까.》

《예, 진실입니다.》

학생들은 입을 모아 힘있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과 한가지 약속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나는 앞으로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 실험유전학자들은 이 말을 과학적인 실험을 통하여 얻어진 결과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사실이면 사실, 결과면 결과를 가지고 벗이건 원쑤이건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명백한 자료에 의거해서만 리론을 끄집어내자고 말하고싶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하자는데 동의할수 있습니까?》

《동의합니다.》

《옳습니다.》

학생들은 즉석에서 떠들어댔다. 그런데 이마가 훤한 청진내기가 교실이 조용해지길 기다렸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선생님의 말씀은 진리를 추구하는데서는 철학도 필요없고 실증적인 사실만이 필요하다는 실증주의적견해를 표시한게 아닌가요?》

《물론 프랑스철학가 오규스트 콩트는 철학의 역할을 자연과학의 최후의 결론에 귀착시키면서 〈철학을 집어던지라〉는 구호까지 내돌렸습니다. 오규스트의 오유는 자연과학에서의 실증자료가 그대로 사회과학을 대신할수 있다고 본데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싶은것은 유물변증법의 창시자들이 자기의 리론을 천명하기에 앞서 엄연한 력사적사실들에 주되는 관심을 돌렸다는 그 점입니다.》

이마가 훤한 청진내기는 론쟁 그자체보다도 지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자기는 남달리 철학에 대해서까지 낯을 돌리고있다는것을 뽐내려는 의도에서 실증주의라는 말을 끄집어냈던것이다.

또한 박사의 권위를 지닌 교수의 무게에 대해서도 《지레대》로 교묘하게 떠보려는 《학문탐구》의 화신으로 자처하는 대학생의 기지를 발휘해본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유전학자인 계응상교수가 유물변증법은 물론 각종 철학류파들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은 학자라는것이 드러나 청진내기는 목을 움츠리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잠학과학생들이 감히 《지레대》로 계응상박사를 떠보려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학학보》에는 잇달아 한수민이 릐쎈꼬의 발육계단설을 소개한 론문이 발표되였다. 이 론문은 먼저번에 발표된 론문과는 달리 정통유전학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릐쎈꼬설에 대해서 그것이 농업실천에서 《희한한 성과》를 거두는 열쇠라는데 대해서만 상세하게 서술하였을뿐아니라 실은 전번 론문보다도 더 은밀하게 정통유전학을 후려친것이다. 왜냐하면 《신유전학》의 진리성을 강조할수록 고전유전학이 무색해지는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였던것이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계응상박사는 《대학학보》에 고전유전학을 소개하는 자그마한 론문조차 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음번에 진행할 실험유전실습때문에 계응상박사의 방으로 찾아간 최필호는 용건에 대한 토론이 끝난 다음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자리에 서있었다.

필호가 자리를 뜬줄로만 알고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놓고 그 무슨 복잡한 수자들을 깨알처럼 적어넣고난 계응상은 머리를 들었다. 그제서야 여전히 책상앞에 우뚝 서있는 필호를 발견한 그는 두눈이 둥싯하여 물었다.

《어째서 그냥 거기에 서있나?》

《선생님.》

최필호는 간청하듯이 말했다.

《잠학과 학생전원의 심정을 대표하여 한가지 말씀드릴것이 있습니다. 〈대학학보〉에 선생님이 저희들에게 가르치시는 유전학이 어떤 과학인가 하는것을 소개하는 론문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왜?》

계응상은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최필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과연 이다지도 계박사는 대학내 교직원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고있다는것을 감감 모르고있을수가 있단 말인가.

대학내에서 벌어지고있는 과학적론쟁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대학생들이다. 《대학학보》에 발표된 《두개의 유전학에 대한 론의》는 학부의 범위를 벗어나 전교적인 관심사로 되고있었다.

《선생님!》

최필호는 보풀이 일고 겉가위가 너들너들해진 《대학학보》를 계박사의 책상우에 내놓았다.

《새로 생긴 대학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과학적론쟁이여서 그런지 전대학이 두개 유전학에 관한 론의에 귀를 기울이고있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두번째 론문을 내놓은 후에도 선생님이 침묵을 지키자 마치나도 정정당당하게 반박해나설만 한 론거를 찾지 못해 그러는것처럼 인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주위에서 이렇게 소란스레 떠드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을수가 없습니다.》

필호가 내민 때묻고 보풀이 인 《대학학보》를 집어들고 책장을 천천히 번지는 계응상의 도두룩한 입가에 쓰디쓴 조소의 빛이 어리였다. 그는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며 책상우에 무둑히 쌓인 원고무지에 시선을 던지였다.

필호는 그 원고우에서 《뽕누에의 알형 몸색 및 몸형의 특수유전》이란 글발을 띠여보았다.

그리고 그옆에는 겉등에 《고등잠사기술원양성소강의안》이라고 쓴 원고가 두툼하게 무져있었다.

또한 그의 손바투에는 계박사의 비준을 기다리는 원종보존체계도이며 병독검사체계 등의 문건이 널려있었다.

불현듯 필호는 이 방이 단순한 교수의 방이 아니라 나라의 복잡한 잠사기관을 과학적으로 지도하는 두뇌가 긴장하게 활동하는 곳이라는것을 강하게 느끼였다.

그는 서글픈 눈매로 필호를 건너다보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동무 말이 옳소. 우선 지성인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글도 쓰고 모임에서 론전도 벌려야 하오. 그렇게 하는것이 필요하구말구, 왜 가만있겠소. 그래서 난 어제밤까지 대학용유전학교과서 집필을 끝냈소. 그런데 이미 입소식을 한 고등잠사기술원양성소에서는 매일 사람이 와서 기다리고있다가 밤새워 한강의분씩 원고를 탈고해놓으면 어뜩새벽에 교열도 채 끝내지 못한 원고를 그대로 걷어안고 달아나군 하네. 평양에서 재령까지 매일 자전거를 타고 원고를 가져가군 해.

〈대학학보〉에 나온 론문들에 대해서까지 잔신경을 쓰며 공담을 할새가 없단 말이네. 그래서 난 그들에게 착실한 답변을 줄 준비를 하고있네. 래일부터는 잠업시험장으로 출근을 하거던. 그들이 고전유전학리론을 가지고는 도무지 생산실천에 도움을 줄수 없다고 도리머리를 치고있으니 말싸움을 해서 판결을 내릴수는 없을게 아닌가?》

계박사의 말을 정심해들은 필호는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선생님, 금년 여름방학에 저는 잠업시험장에 찾아가서 선생님의 연구사업을 돕고싶습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필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손에 집어든 문건에 가필을 하고있던 계응상은 거기에서 시선을 뗐다.

《첫 방학인데 집에 가보지 않구?》

《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좋두룩 하게. 그렇지만 그 기회에 그 무엇에두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우리가 하는 연구사업의 진가를 가려보는것두 잊지 말게. 순결한 초학도일수록 편견에 사로잡힐 우려가 적은 법이니까. 그런 다음에 두개의 유전학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세우는게 어떤가?》

《알았습니다.》

필호는 계응상박사와 같이 랭정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대꾸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