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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4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4 장


1


농업대학 각 학부에서 대학생들에게 가르칠 과목을 확정하는 사업은 학장밑에 갓 조직된 교수협의회에서 진행하였다. 유전학을 농학부의 중요한 학과목으로 결정하는 문제를 놓고는 한동안 론의가 분분했다.

농학부의 기초과목을 정하는 차례가 되자 협의회 의장은 계박사에게 먼저 발언권을 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계응상은 학부교직원들과 여러차례 론의한 끝에 락착지은 과목들을 죽 렬거하고나서 유전학에 대해서는 오금을 박아 한마디 강조하지 않을수 없었다.

《현대생물학에서 유전학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있습니다. 발전된 나라들에서는 금세기초부터 유전학을 중고등학교이상의 해당한 교육기관들에서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있다는 사정을 고려할 때 이 분야의 학문을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가르쳐주는것이 더는 지체할수 없는 절박한 문제라는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고 봅니다.》

교수들은 동감이라는듯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도 계응상교수보다 한주일 먼저 북반부에 들어온 한수민교수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였다. 다재다능한 그는 남쪽에 있을 때에도 리론유전의 권위자로, 생물학자로 혹은 식물분류학자로 알려졌었는데 종합대학에 초빙되여온 후에는 철학교수로서 자연철학을 담당하고있었다.

그는 응상에게 낯을 돌리며 알릴듯말듯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제 생각에는 유전학을 강의한다면 어떤 유전학을 강의하겠는가 하는것이 문제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생물학계에서는 두가지 생물학 즉 멘델-모르간의 정통유전학과 급속히 대두하여 생물학계의 지배적인 학설로 되고있는 〈신유전학〉간의 론쟁이 점점 더 열기를 띠고있는 조건에서 대세의 추이를 지켜보다가 만인이 정설로 인정하는 그러한 유전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보는데요.》

모임에 참석한 교수들은 어리둥절하여 계응상교수와 한수민교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들의 대부분은 생물학계에서 이러한 론의가 있다는것조차 모르고있었던것이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계응상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런데 이때 반백의 수의학박사가 엄한 기색으로 한마디 했다.

《최근에 내가 수입한 외국의 근간잡지를 본데 의하면 어떤 나라 유전학자들은 유전자의 구조를 화학적으로 분석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고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그러한 학문의 필요성을 갑론을박한다는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가요?》

론의하는 문제의 진실여부는 여차지하고 발언자의 학적권위가 크게 작용했다. 모임참가자들은 이름있는 두 박사의 주장일진대 그것이 타당한 일에 틀림없다고 인정했다.

그리하여 유전학을 농학부의 모든 강좌들에서 필수적인 과목으로 가르칠것이 결정되였다. 교수협의회 의장격인 중년의 생화학교수가 한수민쪽으로 눈길을 보내며 너그럽게 말했다.

《한수민교수가 제기한 문제도 류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의 과학발전추세를 민감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제때에 받아들이는것은 우리 과학자들이 한시도 소홀히 할수 없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한수민은 주위의 분위기를 간파하고 제꺽 수긍해나섰다.

교수협의회는 날이 어두워서야 끝났다. 천천히 밖으로 나선 그들은 인사들을 주고받으며 뿔뿔이 흩어져갔다.

맨 나중에 방을 나선 계응상과 한수민은 잣나무며 야합수가 묵직한 그림자를 드리우고있는 어둑시그레한 정원길을 나란히 걸었다.

한수민은 《후유.》하고 소리내여 한숨을 내쉬였다.

계응상은 한수민의 월북처사에 대하여 새삼스레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계응상이 북으로 들어온것은 예상치 않던 뜻밖의 일이였고 한수민이 북으로 찾아온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인듯이 보였다.

한것은 한수민이 8. 15해방후 남반부에서 처음으로 《동아일보》에 릐쎈꼬의 《신유전학설》을 소개하면서 그의 과학적업적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킨 사람이고 계응상으로 말하면 정통유전학을 완고하게 주장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있었기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지난날의 생활을 파고들어가 보면 계응상이 팔달산중턱에서 고독하게 생활하고있을 때 한수민은 《총독부》산하 중앙잠업취체소 계장으로까지 등용되여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일본사람들의 우대를 받으며 잘살았고 해방후에는 제꺽 방향전환을 하여 좌익적인 경향이 농후한 자연철학론문들을 쓰고 반《국대안》운동에 나선 대학생들에 동조하는 교수들의 진영에 들어섬으로써 진보적인 계층의 호감을 샀다. 그러나 적들의 눈밖에 날만큼 좌익계의 앞장에 서지도 않고 그렇다고 뭇사람들의 눈총을 받을만큼 적들편에 가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학식이 깊고 뜻이 있는 학자들이 앞을 다투어 소문없이 북으로 찾아드는 바람이 일자 그도 때를 놓치지 않고 북반부로 들어왔다.

어쨌든간에 한수민은 암초가 무수한 험악한 배길도 유유히 헤쳐나가는 선장과 같이 자기의 운명을 능숙하게 조종해나가는 현명한 인간이였다.

그러나 응상은 그렇지 못했다. 왜정때에는 일본사람들의 눈밖에 나서 아무 죄도 없이 옥밥을 먹기가 일쑤였으며 연구사업도 그들의 배척을 받고 도외시되다싶이 하였었다. 하다면 8. 15해방후에는 마땅히 당국의 지지를 받고 그의 방조를 받으며 연구사업을 해야 온당한 일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남쪽에서 미국사람들이나 리승만이 같은자들로부터 일제때보다 더 가슴아픈 모욕과 천대를 받았다. 그러니 그가 북에 와서까지 인민의 의사를 대변한 당과 정부와의 관계까지 튄다면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것인가. 한수민은 이 점을 진정으로 우려해서 그에게 충고를 주고있는것이 아닌가.

남쪽에 있을 때 그는 응상에게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과연 자네가 만족해할 당국자가 있을수 있을가. 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수 없다고 장담하네. 식자우환이란 말이 있지 않나. 자네를 지배하자면 박사보다 월등한 지식을 소유한 제왕이 있어야겠는데 그런 일은 불가능한 일이라네. …

그런즉 나라는 인간은 그 어떤 통치자의 지배도 원치 않는 유아독존적인 존재란 말인가.

계응상은 혼자속으로 이렇게 자문자답하고있었다.

한수민은 두눈을 내리깔고 입을 꼭 다문채 땅바닥만 내려다보며 터벅터벅 걸음을 내짚었다.

어둠이 깃들어 그의 눈매를 여겨볼수는 없었으나 분명 그는 내리깐 두눈을 재게 깜박이고있을것이다.

이것은 그가 가장 못마땅해하고 심각한 생각에 잠겨있을 때에만 짓는 표정이였다. 그들은 전차정류소까지 아무 말도 건늬지 않고 걸어갔다.

퇴근시간이 지난 뒤여서 정류소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외투자락을 제끼고 양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여 피워문 한수민은 두눈을 쪼프리고 조용히 물었다.

《여보게, 내 자네한테 진심으로 한마디 물을테니 심사숙고해서 대답을 주게, 그렇게 하겠나?》

《언젠 내가 실없는 소리를 하던가?》

《하긴 그렇네. 그렇지만 내가 묻자고 하는것이 너무도 신중한 문제여서 그러네. 여보게, 그래 자네는 끝내 전체 농학부학생들앞에서 고전유전학강의를 할셈인가?》

그들 두사람과 얼마간 사이를 두고 서있던 젊은 교원이 책에서 눈길을 뗐을만큼 그의 어조에는 자못 심각한것이 있었다.

《그렇네. 그거야말로 내가 일생을 두고 연구한 학문일진대 이제 그것을 포기하라는거야 나의 생명을 내놓으라는거나 다름없지 않나. 나는 벌써 대학용유전학교과서까지 집필해놓았네.》

계응상의 대답소리는 나직했으나 그것은 대포의 발사소리보다도 더 큰 충격을 수민에게 준듯싶었다. 수민교수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또다시 긴한숨을 내쉬고는 정색하고 말했다.

《나는 갓 출판되기 시작한 대학학보에 〈두개의 유전학〉이란 론문을 써내겠네. 정확히 말하면 이런 유전학도 있고 저런 유전학도 있다는 식의 객관적인 소개를 하겠네.》

《좋도록 하게. 그건 자네의 결심여하에 달린 일이 아닌가.》 계응상은 짧게 응대했다.

언제부터인지 꼭 짚어말할수는 없으나 그들은 상대방에게 자기의 설을 납득시키려는 시도를 그만두었다. 그러기에는 그들이 견지하고있는 견해가 제나름으로 확고부동했던것이다.

그러나 단지 인생철학에 대해서만은 한수민이 항상 선배연하는 립장에 서있었다. 응상의 허점에 대하여 과연 그 누가 깨우쳐주겠는가. 한수민은 귀중한 벗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이 《고귀한 사명》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역시 더는 어떻게 할수도 없다는것을 깨달은듯 슬픈 표정을 짓고 팔을 맥없이 저었다.

(지어진 운명인걸 더는 어쩔수 없지.)

한수민은 계응상이 탄 궤도뻐스가 로타리 저쪽으로 사라진 다음에야 휘적휘적 자기 집쪽으로 가는 뻐스를 타려고 걸음을 재촉했다.

한수민의 론문 《두개의 유전학》은 공교롭게도 계응상이 대학합동강의실에서 농학부 학생전원을 상대로 유전학에 대한 원론강의를 하기로 되여있는 월요일을 이틀 앞두고 대학학보에 발표되였다.

계응상의 책상우에도 한수민의 론문이 실린 대학학보가 놓여있었다. 그는 애당초 과학적론쟁에 귀를 기울이는 성미가 아니였으나 유전학강좌에 새로 인입된 젊은 교원들이 《심상치 않은 론문》이라느니, 유전학에 대한 원론강의를 코앞에 두고 이러한 론문이 나왔다는것은 확실히 계박사의 고전유전학강의에 찬물을 끼얹는 소행이라거니 하고 소란스레 떠들어대기때문에 조용한 틈을 타서 대학학보 2호를 펼쳐들었다.

…무릇 새로운 과학리론의 정당성은 자연을 향하여 검토될 때에만 참다운것으로 인증되는것이다. 만일 과학자가 발견한 어떤 법칙을 자연에 적용해도 생산에서 은을 나타내지 못하면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를 반성해보아야 할것이다. …

의미심장한 이런 말로 시작된 한수민의 론문은 쏘련생물학계에서 정통유전학을 대신하여 《신유전학》이 대두한 력사적경위를 밝히고 계속하여 그 나라 농업과학자들이 새로운 과수품종이며 집짐승의 육종에서 달성한 성과들에 언급하면서 《그런데 정통유전학자들은 농업분야에서 무엇을 해놓았는가.》고 반문했다.

《멘델-모르간주의자들은 렌트겐선, 자외선, 암모니아, 포름알데히드 등이 갑작변이의 유발물질로 된다는것을 확증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올린 실제적인 성과의 총결산이다. 그런데 유감스러운것은 이렇게 유발되는 갑작변이체는 모두 〈병신〉이고 우리들의 생활에는 전혀 무용한것이였다.

그들은 이러한 갑작변이가 무방향적이라는데로부터 생물체의 변이는 예측할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생물학에서의 목적론이며 형이상학적인 견해이다. 유물론철학의 립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유전성의 가변성을 확신하며 또 이 변이를 인간이 희망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수 있다고 보고있다.》

대학학보를 덮어놓은 계응상은 두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때 방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젊은 조교원이 발끝걸음으로 조심스레 다가왔다. 여전히 계응상은 눈을 감고있었다.

《선생님, 요구하시는 화학시약들을 구해왔습니다.》 조교원이 말을 떼자 천천히 눈을 뜬 응상은 《수고했네, 거기 놔두게.》 했다.

《알겠습니다.》

시약이 든 갈색유리병을 책상우에 놓고 학부교원실로 돌아가자 강의가 없어 책상에 무료하게 앉아있던 교원들의 눈길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어제오늘 농학부교원들의 화제는 온통 대학학보에 발표된 한수민의 론문에 집중되였다.

그 론문의 어느 한 대목에도 우리 나라 정통유전학자들에 대하여 언급한 대목은 없었으나 구체적으로 말해서 대학내에서는 계응상을 념두에 둔것이라는것을 짐작키 어렵지 않았다. 우리 나라 정통유전학의 대표자라고 하면 계응상을 첫째로 꼽을수 있었기때문이다. 대부분의 교원들과 학생들은 론의점에 오른 두개의 유전학의 깊은 내용을 잘 몰랐으며 그것을 실험을 통하여 확증해본 일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학보에 발표된 한수민의 론문을 통하여 생물학계에 심각한 사상적대립을 이루고있는 두개의 학파가 존재한다는것만은 명확히 알수 있었다.

(수민교수가 론문에 언급한것들이 사실이라면 정통유전학이라는것이 사상적으로 미타미타한 학문이 아닌가.) 론문을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했기에 자연 그 론문에 대한 계박사의 반응에 대해서 학부교원들의 관심이 예민해지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조교원이 교원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의 움직임을 따라 일제히 시선을 돌리고있던 교원들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며 랑패한 기색을 지었다.

젊은 조교원이 아무 말없이 옆구리에 두툼한 강의참고록을 끼고 도로 밖으로 나가려고 하기때문이였다.

《한선생.》

눈까풀이 얄팍한 식물분류학교원이 일동의 심리를 대표하여 말을 걸었다.

《계선생한테서 무슨 말이 없었소?》

조교원은 두눈을 지그시 감고 턱수염을 조용히 내리쓰는 시늉을 해보이고는 머리를 휘휘 저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침묵이라.》

영문을 알수 없다는듯 대학학보에 발표된 한수민의 론문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농학부에 부속되여있는 부업농장 잠업시험장에 나가 자신이 직접 실험잠실의 도면을 그리고 이미 있던 건물을 개조하는 사업을 지도하고 그 건물곁에 잇달린 한칸의 방을 초파리실험실로 꾸렸다.

보름후에는 벌써 실험잠실에 가제로 만든 도롱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누에나뱅이들의 교잡실험을 시작했다. 대학교무부학장과 한수민이 잠업시험장을 돌아보기 위하여 실험잠실에 들렸을 때 계응상은 그들이 잠실로 들어서는것도 모르고 잠박을 한가운데 놓고 학생들에게 갈림현상을 설명하고있었다.

반짝이는 세루직대학생복우에 흰 실험복을 걸친 대학생들은 누에를 갈라놓고 턱방아를 찧으며 세기도 하고 수첩에 적기도 했다. 그때에야 인기척을 느낀 계응상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늘씬한 키에 의젓하게 생긴 한수민과 그에 비해서는 초라할만치 호리호리한 몸매에 모난 얼굴을 한 교무부학장이 엄한 표정을 짓고 우뚝 서있었다. 갑자기 무거운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대개 다 그러하듯이 표날 정도로 틀스럽게 구는 교무부학장은 턱을 약간 끄덕이며 알은체를 하고 듬직한 체구에 여유있는 태도를 지닌 한수민은 량입귀에 깊은 주름살을 지었다.

《선생은 실험잠실에서 대학생들에게 초등수학을 가르치고있는셈인가요?》

교무부학장의 무뚝뚝한 질문이였다.

《그렇소.》

계응상은 상대를 지그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응상은 배움의 길에 때늦게 들어선탓으로 규슈제대에 입학하여 29살에 나서야 이러한 실험을 처음 제 손으로 해보았었다. 그런데 이들은 갓 스물에 나서 갈림유전실험을 하게 된것이다.

현재 발전된 나라들에서는 이러한 실험을 중학교에서 가르치고있다. 서둘러야 했다.

하기에 그는 대학용유전학교과서를 집필하면서 실험에 중점을 두고 3년동안에 금세기초부터 현재까지 근 반세기동안 세계유전학자들이 달성한 성과를 속성방법으로 체득시킬 목표를 세웠던것이다. 잊지못할 그날 김일성장군님께서 나라의 잠업을 세계적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인재양성에 힘써야겠다고 각별히 힘주어 말씀하신 일을 생각하면 하루가 1년맞잡이로 귀중하게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전실험실에 온돌을 놓고 사철 누에와 초파리를 키우면서 실험실습을 하도록 만들어놓았다.

그는 한수민이 《대학학보》를 통하여 고전유전학을 《공격》해나섰을 때에도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았다. 진리란 아무리 짓뭉개버리려 해도 도무지 말살시킬수 없는 존재인것이다. 그는 한수민을 낯선 사람처럼 이윽토록 건너다보았다.

잠박에서 꿈틀거리는 누에를 내려다보고있는 학생들의 신경도 바싹 긴장되여있었다. 계응상은 침착한 태도를 조금도 잃지 않고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나는 자네의 좌우명을 지침으로 삼아 그걸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있네. 〈무릇 새로운 리론의 정당성은 자연을 향하여 검토될 때에만 참다운것으로 인증되는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네는 규칙적인 갈림비를 나타내는 누에만을 실험자료로 제시하고 그렇지 못한 누에들은 내놓지 않았는가. 그에 대해서는 왜 수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나?》

한수민은 상대방의 약점을 예리하게 찌르고든다고 생각하고있었지만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의젓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념려하지 말게. 자네는 최근의 나의 저작을 전혀 보지 않은 모양이구만.》

《그렇게 억지로 아귀를 맞추려고 하지는 말게.》

한수민의 두눈에 엄한 빛이 번뜩이였다. 그러나 계응상은 더는 그의 말에 응대하지 않고 학생들이 주의를 돌리고있는 잠박으로 다가갔다.

교무부학장과 한수민은 심한 모욕을 느낀듯 낯이 벌개서 계응상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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