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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3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3 장


4


며칠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농림국 농림연구부에서 사업한다는 한 젊은이가 계응상을 찾아왔다.

그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이번에 경애하는 김일성위원장의 지시에 의하여 농림수산국에서 연구론문을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사업을 진행하게 되였는데 농림수산연구론문 제1호에 아직까지 발표되지 못한 계응상선생의 박사론문을 수록하려고 한다는것이였다.

서재에 앉아 대학농학부 학생들에게 하게 될 첫 강의안을 쓰고있던 계응상은 책상우에서 시선을 떼고 안경을 낀 젊은이의 둥실한 얼굴을 뻔히 쳐다보았다. 그는 책상우에 얹어놓은 낡은 트렁크를 내리워놓고 색누른 원고지를 꺼내여 묵묵히 굽어보았다. 그가 박사의 학위를 지닌지도 어언 6년, 제 나라가 없는탓으로 완성된 원고를 발표하지 못하고 묵여둔 사이에 다른 유전학자들의 저작들에서 그가 집필한 론문에서 확증한 문제들을 새로운 탐구의 결실처럼 들고나오는것을 볼 때 그는 애달픈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되자 그자신도 지난날의 그 원고묶음을 애매하게 생매장당한 자식처럼 서글프게 내려다보기만 하였었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과학자의 낡은 트렁크속에 들어있는 불행한 원고의 운명까지 헤아리시여 그것이 빛을 보도록 세심한 관심까지 돌려주시는것이 아닌가.

이튿날 아침 또다시 찾아온 연구부의 젊은이에게 그는 밤새워 새로 검토하고 가필한 원고를 넘겨주었다. 그러나 고생을 많이 한 자식이 성장하여 어엿한 일군이 된걸 보면 부모의 심정도 더 감회가 깊듯이 그 역시 생각이 깊었다. 그저 원고만 주어서 보내기에는 웬일인지 속이 허전하여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연구부의 젊은이를 불러앉혀놓고 책상앞에 앉아 자기의 저작 첫페지에 써넣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소신을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그것이 후날 북조선인민위원회 농림연구부 농림수산연구론문 제1호, 해방후 우리 나라 농학부문의 첫 과학론문으로 출판된 《가잠의 유전에 관한 연구》에 실린 《본 연구론문을 발표하면서》였다.

그는 그 글에서 이렇게 썼다.

…본 가잠연구에 대한 실험에 착수한지 십유 삼년, 원고를 탈고하고 6년을 경과한 금일 저자는 남달리 감개무량하도다. 과거 일제마수에 쫓겨다니며 연구자료를 어깨에 메고 국외를 류랑하며 나라없는 설음에 그 얼마나 흐느꼈던고…

우리는 위대한 김일성위원장께서 과학기술인에게 전반적인 우대와 직접적인 격려를 주시니 우리 과학도야말로 민주국가의 리상적인 환경속에 분투하게 된것을 내 어찌 영광으로 아니 생각하랴. …

잠업부문도 나라의 주인이 된 우리 인민자체의 힘으로 얼마든지 운영해나갈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하신 영명하신 김일성위원장의 말씀은 앞으로 조선의 잠업발전에 여생을 바치려는 나에게 큰힘을 돋구어주었다.… 만약 독자들중에서 해방직후 출판된 우리 나라 과학자의 첫 론문인 이 단행본을 볼 기회가 있다면 그 첫페지에 계응상박사가 정중히 모신 수령님의 교시에 주의를 돌려주기 바란다. 그 글발은 숨결없는 종이우에 찍혀지기 전에 계박사의 심장속에 깊이 아로새겨진 금문자였던것이다.

이무렵 계응상박사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농학부가 따로 떨어져나와 원산농업대학으로 개편되자 이 대학에 새로 조직되는 잠학부 학부장의 중책을 맡게 되였다. 하여 그는 채령동과 원산에 각각 살림집을 두고 봄부터 마가을까지는 채령동에서 중앙잠업시험장사업을 지도하고 겨울에는 원산에 나가 잠학부사업을 맡아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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