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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넋과 량심의 소명

 

주체69(1980)년 10월 위대한 수령님의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에 접했을 때의 감격을 나는 지금도 잊을수 없다.

나는 평양방송에 귀를 강구면서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의 높은 연단에서 수령님의 우렁우렁한 육성으로 울려나오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자자구구를 문자그대로 심장깊이 새겨놓았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온 민족이 단결하고 북과 남이 합작하여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고 조국을 통일하면 우리 나라는 5천만의 인구와 찬란한 민족문화와 위력한 민족경제를 가진 자주독립국가로서 당당한 존엄과 권위를 가지고 세계무대에 등장할것이며 삼천리강토우에 더욱 부강하고 번영하는 인민의 락원을 건설하게 될것입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이 교시에 접하니 통일의 앞길이 다시금 환히 눈앞에 열리는것만 같았다.

그 감격속에서 8년전 7. 4공동성명에 접하고 흥분을 금치 못하던 일이 삼삼히 떠올랐다.

그날 나는 군산시내의 어느 점포안의 TV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7. 4공동성명을 경청하였다.

방송원이 격조높은 목소리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천명한 공동성명의 랑독을 막 끝마쳤을 때 시민전체가 만세를 웨쳤다. 만세의 함성은 온 남조선천지를 진감하였다. 남녀로소, 《국군》장병, 순경들도 모두 만세를 불렀다.

굳게 페쇄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북의 고위급대표단이 평양과 서울을 서로 오갔다는것도 놀라왔고 외세의존과 반공을 일삼던 이남당국자들이 조국통일3대원칙을 받아들이고 통일대강인 공동성명에 수표한 사실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사람들이 더욱더 환희에 넘친것은 TV화면에 어버이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이 모셔졌을 때였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격정에 넘쳐 다시 만세의 함성을 터치고 박수를 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뿐만아니라 아는 사이건 모르는 사이건 관계없이 서로서로 그러안고 볼을 비벼대며 울고 웃었다.

《민족의 앞길이 활짝 열렸다.》, 《통일이 온다.》, 《이제는 살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웨치고 또 웨쳤다. 그때 이남민중은 반공일변도로 내닫던 남조선당국자들을 머리숙이게 하고 마침내 그들을 공동의 통일대강에 수표하게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위인상을 가슴깊이 새겨안았다.

그 이듬해 6월에도 남녘동포들은 어버이수령님의 위대성에 다시한번 감복하여 만세, 만만세를 웨쳤다. 그해 6월 23일 아침 남조선당국자가 그 무슨 《특별성명》을 발표하여 모처럼 열리고있던 통일의 길우에 불시에 차단봉을 내리워놓았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날로 발표하신 조국통일5대방침이 뢰성처럼 삼천리에 메아리치며 분렬성명을 휴지장으로 만들어버렸던것이다.

그날의 감격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또다시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천명하시여 조국통일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으니 그때 나의 가슴이 왜 격정으로 끓어번지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더우기 그때 《5공》패당의 유혹과 싸우고있었던 나에게 있어서 격정이 남달리 컸던것은 당연한 일인것이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자자구구 되새길수록 나는 끈질긴 유혹의 낚시를 뿌리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정당했는가를 더더욱 절감하였다.

물론 나를 낚아보려던 허문도의 행위는 매우 어리석은것이였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지 못하고 접어들었던것이 허문도의 실책이였다.

사실 나는 소양천이 흐르는 고향마을에서 퍽 어린시절부터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흠모의 정을 안고 살았던 사람이였다.

나의 옛 고향마을에는 만주에서 살다가 을유년을 얼마 앞두고 돌아온 최씨성을 가진 로인 한분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밤마다 그 로인네 집에 마실을 가군 했는데 그것은 로인에게서 김일성장군과 관련한 전설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나도 종종 어른들을 따라서 그 집에 가서 이야기듣기에 열중하였다. 그 과정에 나의 뇌리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존함 세 글자가 깊이 새겨지게 되였다.

조국해방전쟁의 제1계단시기에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정치를 꼭 3개월동안 체험할수 있었다. 그 짧은 기간에 나는 최로인이 들려준 전설의 진미를 실생활의 체험으로 느낄수 있었다. 비록 아직 10대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 3개월동안의 체험에서 뿌리내린 신념은 그 이후 암흑의 세상에서 내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회적부조리와 맞서싸울수 있게 한 커다란 힘으로 되였다. 이것을 허문도가 알래야 알수 없었던것이다.

안기부가 조밀한 감시망을 가지고있다고 하지만 남조선대학들에서 활동하고있던 숱한 리념써클들을 그네들의 잠망경은 포착하지 못하고있었다.

내가 학생들속에서 얻고있는 신망이 주요하게는 이런 의식화 활동의 결과임을 모르고 순수 실력있는 교수로서의 교육활동에 의한것으로만 인식하고있었던것이 바로 그네들의 착오였다.

청송회에서의 나의 의식화활동은 처음에는 이북바로알기운동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방법은 학생회원 각자가 이북방송을 청취하고 자본주의사회와 사회주의사회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하여 분야별로 토론하고 론쟁하면서 진리에 도달케 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 과정에 나자신부터 부지런히 배우게 되였다.

나는 더 잘 배우고 청송회의 움직임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평양방송이 운영하는 김일성방송대학의 열성수강자가 되기도 하였다.

나는 이 방송대학의 강의를 통하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명저 《주체사상에 대하여》의 심오한 사상리론을 깊이 체득할수 있었고 출로를 더욱더 명료하게 찾을수 있었다. 청송회에서의 의식화활동은 후에 전라북도의 전주를 비롯한 여러대학 리념써클과 련계되면서 한층 활성화되고 나중에는 호남지역련합써클을 뭇는데로까지 발전하게 되였다. 리념써클에서의 활동은 더 말할것도 없이 나를 북으로 이끌어가게 한 원동력으로 되였다.

이런 사실을 안기부도 허씨따위도 전혀 모르고있었으니 나는 나를 낚으려고 하는 그네들의 눈에 도리여 연막을 쳤다. 내가 자진하여 전주지방검찰청 청소년선도위원회 회원으로 된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수 있다. 나는 그 사회적직제를 위장물로 하여 파쑈광들의 마수에 걸린 적지 않은 청소년학생들을 《선도》의 명목아래 보호해주고 자유인으로 풀려나게 해주었다.

청송회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에 대한 학습을 심화시켜나갈수록 수령님의 품에 속히 안겨 조국통일위업에 이바지하고싶은 욕망이 걷잡을수 없이 커만 갔다. 그런 속에서 나는 전두환의 장기집권책동을 반대하는 남조선인민들의 거족적인 1987년 6월항쟁을 군산전문대학 교단에서 맞게 되였다.

제자들이 교정의 문을 박차고 반전두환구호를 웨치며 거리로 뛰쳐나갈 때 나는 내 방의 금고문을 열고 그안에 정히 보관해두었던 돌멩이를 품에 깊숙이 넣고 제자들의 뒤를 따라 거리로 나갔다. 그 돌멩이는 1960년의 4. 19항쟁때 고부국민학교시절의 제자 박성학이 흉탄에 맞아 숨지면서 나의 손에 넘겨준 돌멩이였다.

내가 수십년세월 정히 보관해두었던 그 사연깊은 돌멩이를 품에 넣고 거리에 나서게 된것은 어쩐지 이번 항쟁이 내가 남조선땅에서 마지막으로 맞는 항쟁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의 월북결의가 그만큼 굳어져갔던것이다.

그런데 항쟁의 마당에서 나는 그만 전투경찰대의 폭압에 중상을 입고 쓰러지고말았다. 무지막지한 전투경찰대의 폭압으로부터 제자들을 보호하려다가 타격을 받았던것이다.

나는 60일간이나 입원치료를 받게 되였다. 그때 육체적고통보다도 항쟁에 끝까지 참가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쓰러졌다는 절통함과 그로 인한 정신적압박감이 나의 온몸을 휘감았다.

항쟁에 떨쳐나선 민중은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선거》, 《지방자치제의 실시》, 《언론기본법의 페지》, 《김대중의 정치활동의 자유보장》을 요구하였는데 민정당의 《대통령》후보 로태우는 《6. 29선언》에서 그것을 수락하지 않을수 없었다. 항쟁이 제2의 4. 19로 번져질것이 두려웠던것이다.

그러나 남조선인민들이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완전히 승리하려면 아직도 먼길을 가야 했다.

나는 내가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찾아 떠날 시각은 마침내 왔으며 더는 지체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나의 넋과 량심의 소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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