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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3 장


2


이튿날 계응상은 안해와 딸을 재촉하며 입던 옷가지나 꿍져서 보퉁이에 싸 이게 하고 정주역에 나가 기차를 타고 급히 평양으로 떠났다.

일행이 평양역에 내리자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농림부국장이 역홈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다. 장구한 체구에 어깨가 쩍 벌어진 부국장은 계응상박사를 정중히 맞이하며 말했다.

《기다렸습니다. 중요한 국사를 론할 일이 있어 선생님을 북조선공산당중앙조직위원회에서 부르십니다. 가족들은 우리 부원이 집에까지 모셔다드리겠으니 선생님은 빨리 가십시다.》

부국장은 웬일인지 몹시 흥분되여있었다.

역전에는 까만 승용차 두대가 나란히 대기하고있었다. 부국장은 연신 팔목을 내려다보며 계박사를 앞자리에 태우고 먼저 떠나고 윤덕녀와 막내딸은 다른 승용차에 몸을 싣고 젊은 일군의 안내를 받아 동평양 신리쪽으로 건너갔다. 승용차는 번화한 거리를 벗어나 방울나무들이 길 량옆에 름름하게 늘어서있는 조용한 길을 따라 한참 달리다가 벽돌담장을 탐탁하게 두른 대문앞에 멈춰섰다.

《어서 내리십시오. 이 집이 계응상박사선생의 집입니다.》

날씬한 몸매의 젊은 일군이 일깨워주는 말을 듣고야 윤덕녀는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하며 차에서 내렸다. 젊은 일군은 윤덕녀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보퉁이를 량손에 들고 성큼성큼 앞장서서 대문을 열고 정원으로 들어섰다. 햇락엽이 한벌 쫙 깔린 정원 한가운데에 아연도판을 물매 급하게 얹은 단층양옥집 한채가 자리잡고있었다.

윤덕녀는 꿈을 꾸고있는것만 같아 두눈을 슴벅거리며 주춤주춤 걸음을 내짚었다. 바깔대문에서 집현관까지는 포석을 깐 돌길이 곧추 나있었다.

미닫이출입문을 열자 그안에서 긴 복도가 가로 나있고 그앞에는 누비돗자리를 깐 살림방만도 여섯칸이나 있었다. 복도끝에는 부엌으로 나있는 새문이 있고 넓은 부엌칸에는 지하실이 곁달려있고 목욕탕까지 붙어있었다.

막내딸은 호기심에 타는 눈길로 사뿐사뿐 걸어다니며 이방, 저방을 돌아보았다. 그는 덕녀의 손목을 이끌어당기며 기쁨에 넘쳐 부르짖었다.

《어머니, 저걸 좀 봐요. 독마다 쌀이 가득가득하구 비누두 상자루 쌓여있군요. 그리고 저 벽장안엘 좀 보세요.》

모녀가 눈길을 보내고있는 벽장에는 눈같이 흰 솜이 가뿍 차있는것이였다.

《아서라, 다치지 말아.》

윤덕녀는 앞으로 걸어나가려는 딸애의 팔소매를 잡았다. 발끝걸음으로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르던 젊은 일군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어서 만져보십시오. 저 쌀이며 솜들도 김일성장군님께서 선생님댁에 보내주신것입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러한 혜택은 계응상박사뿐아니라 김일성장군님께서 새 조국건설에 참여하고있는 학자들과 작가, 예술인모두에게 베풀어주신 크나큰 배려였다.

그러나 모녀는 아무리 해도 창문이 수십개나 달린 이 으리으리한 집이 자기네 집이며 번쩍이는 가구들이 모두 자기네 소유라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주고받는 말소리조차 낮추었다.

《애야, 이게 정말 우리 집이 적실하긴 하냐. 혹시 그 젊은이가 잘못 알고…》

윤덕녀는 남의 집에 승낙도 없이 들어와 앉아있는듯 종시 옹색한 기분을 털어버릴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둑어둑해왔다. 이때 갑자기 《짜르릉, 짜르릉.》하는 종소리가 야무지게 울려왔다. 모녀는 두눈이 둥싯하여 두손을 마주쥔채 마주보기만 했다.

막내가 살며시 몸을 일으키며 소리나지 않게 방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보았다. 복도벽에 붙어있는 은빛쇠통에서 종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종소리는 멎고 집안은 조용해졌다. 이어 신발소리가 나더니 미닫이출입문이 좌르륵 하고 열리면서 재령 사는 맏아들이 불쑥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와는 달리 서글서글하고 활달한 맏아들은 집안팎을 한바퀴 돌아보고 떠들썩하니 말을 꺼냈다.

《난 아버님이 평양에 올라오셔서 집까지 잡았다구 하시길래 그런가부다 했더니 굉장한 집이구만요. 이만한 관사를 쓰구 살려면 평양주둔 헌병대장쯤은 했을겁니다.》

《그러게 말이다. 어쩐지 귀신한테 홀린것 같은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구나.》

윤덕녀는 세상에 이런 집이 있다는걸 상상도 하지 못했다. 땅을 사놓은 다음에도 돈이 없어 전에 쓰고살던 초가집을 면하지 못하고있다가 해방을 맞은 그였던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집에 있다는걸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농림국에 들렸더니 잠업처사람들이 대주더군요. 그런 기관이 있어요. 아버님은 평양에 올라오신 이튿날 종합대학 교수로 임명되시구 겸해서 북조선국립잠업시험장 장장의 사업까지 맡아보시게 됐답니다. 그게 이만저만 큰 사업이 아니예요. 그런데 이자 농림국사람들이 말하는데 아버님이 김일성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해방산기슭에 있는 북조선공산당중앙조직위원회루 가셨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무슨 일루 그분께서 너희 아버지를 부르셨단 말이냐?》

《글쎄요.》

맏아들도 엄숙한 표정을 지을뿐 더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윤덕녀는 해가 떨어질무렵부터 저녁밥을 지어놓고 남편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아들딸에게 먼저 밥을 들여다주고 상이 난 다음에 설젖이까지 해놓았지만 여전히 밖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그는 밥을 가마안에 들여놓고 방안에 들어와 앉았다가 다시 부엌으로 나가 아궁에 불을 지펴 솥전으로 눈물이 흘러내리는걸 보고야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다. 밤바람이 일 때마다 정원에 서있는 나무아지들이 우수수 설레이는 소리가 어수선하게 들려왔다. 어느 창문에선가 가볍게 덜겅거리는 낯선 음향에도 귀를 바싹 기울이였다. 윤덕녀는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였다.

그의 생활이 얼마나 길고긴 애마른 기다림속에서만 흘러갔던가. 남편이 서울과 규슈에 가있을 때는 기다리는것이 아무리 괴로운것이라고 해도 기어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안고있었기에 끝까지 기다려낼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수륙만리 머나먼 남중국으로 떠나간 후 수년이 흐르도록 소식 한장 보내오지 않아 애타는 기대는 싸늘한 환멸로 스러져버리였다. 그때는 밤마다 기구한 자신의 운명을 두고 그 얼마나 쓰라린 눈물을 많이도 흘렸던가. 그러나 그는 끝까지 기다려내고야말았다.

한데 이 저녁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가슴설레이며 남편을 기다리게 되는것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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