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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40 회


후 편
보석은 빛발을 받다


제 3 장


1


매골시누이네 집 웃간에 몸을 붙인 계응상의 처자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이제나저제나 남편한테서 소식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응상의 안해는 세상형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이웃사람들이 전해주는 말을 들어보면 동리에서는 그의 집 땅을 몰수하는것때문에 론의가 분분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쪽에 갔다오는 사람마다 계응상이 《미군정》산하 수원농사시험장 장장으로 출세하여 그곳에 눌러있을 작정이라고 하는것이였다.

《시험장이 가지고있는 땅만 해두 몇십정보인지 모른다우. 그러니 만석군지주 찜쪄먹게 된셈이지.》

《〈미군정〉직속기관의 책임자가 되여 택시를 타구 다니는데 웬간한 사람들은 곁에 범접두 못한대요.》

이 사람, 저 사람이 찾아와서 쉬쉬하며 전하는 말들은 종잡기 어려운것이였지만 그가 적기관에서 복무하고있는것만은 틀림없는것 같다는것이 마을사람들의 한결같은 견해였다. 그래서 계응상을 친미분자로 인정하고 동리에서는 그의 땅을 몰수해버렸던것이다.

마을사람들은 벼가을 마무리를 하느라고 분주했다.

《왱 왱 왱-》 발로 밟는 탈곡기소리가 집집마다에서 겨끔내기로 신명을 돋구었다.

응상의 안해 윤덕녀는 수건을 푹 내려쓰고 시누이네 논에 나가 가을한 벼단을 지게로 져들이였다.

《쿵챙 쿵채쿵, 쿵챙 쿵채쿵…》

동리 한가운데서는 잽이군들이 들뛰며 돌아가는 소리가 건드러지게 울려왔다.

덕녀는 처마밑에 세워놓은 살에다 벼춤을 쥐여서 걸어놓고는 힘을 주어 이삭을 훑고있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일손을 놀리던 그는 불현듯 벼춤을 살에 걸어놓은채 가스스한 눈매로 먼 하늘귀를 견주어보고있었다.

매골사람들은 그의 집일이 말밥에 오르면 저마다 무어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그러다가 《저 집에서는 겨울이 눈앞에 다가오는데 어쩔려구 그냥 시누이네 집에 얹혀지내나.》하고 한마디씩 걱정해주는것이 고작이였다.

밤사이에 무서리가 허옇게 내리고 우물가에는 첫 살얼음이 잡혔다.

아직껏 푸른 잎을 잃지 않고있던 우물가의 수양버들도 밤사이에 후줄근해졌다. 해살이 퍼지자 집집에서는 배추를 치고있었다.

이해에는 례년에 없이 배추와 무우가 푸지게 잘되였다. 농량이 푼푼해진 농가들에서는 김장을 맛있게 담그려고 젓갈이며 조미료를 구해들이고 고추물망질을 하느라고 분망했다. 탐스럽게 익은 박을 따려고 지붕우에 올라갔던 조카애가 이마우에 손채양을 하고 행길을 내다보다가 겁먹은 소리를 질렀다.

《아지미, 우리 집으루 웬 양복쟁이가 와.》

《지나가는 행인이겠지. 어서 바늘루 찔러보구 굳은 박부터 따내려보내려무나.》

덕녀는 심드렁해서 재촉했다.

《안야, 곧장 우리 집쪽으로 와.》

조카애는 목을 움츠리며 가재걸음으로 지붕에서 기여내렸다. 대문짬으로 밖을 내다본 윤덕녀와 막내딸이며 짚신짝을 끌고 방안에서 달아나온 시누이는 아연실색하였다. 검은색양복우에 밤색봄가을외투를 입은 계응상이 대낮에 큰길을 따라 뻐젓이 이쪽으로 걸어들어오는것이였다.

집안식구들은 숨을 죽인채 마당으로 달려나가 마중해들일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계응상이 문을 활짝 열고 뜨락으로 들어선 다음에야 그의 누이동생이 두눈이 휘둥그래서 기여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라버니, 대낮에 이렇게 찾아와두 일없어요?》

《허허, 왜들 이렇게 놀라나.》

계응상은 집안식구들을 둘러보며 껄껄 웃었다.

그제서야 다소 마음을 놓은 집안식구들은 응상을 앞세우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그가 이렇게 나타난것이 믿어지지 않는듯 마른침들을 꿀꺽 삼키며 멀거니 마주보기만 했다.

《여기선 당신이 남조선에서 큰 벼슬을 하며 발바리를 타고 다닌다고 소문이 짜하게 났어요.》

안해가 저고리고름을 매만지며 말을 꺼냈다.

《그래서 우린 겁이 나 어쩔바를 모르고있어요.》

누이동생이 나직이 곁들었다.

《하긴 남에서 벼슬노릇을 하긴 했댔소. 그렇지만 북으로 들어온지 벌써 반삭이 가까와오는걸.》

《원 저런, 그럼 아주 북으로 들어왔어요?》

누이동생이 다급히 물었다.

《그렇게 됐어. 난 지금 평양에 집까지 잡아놓았다. 집사람과 막내는 래일 나하구 평양으로 나가야겠다.》

《그렇게 빨리요?》

《그렇다.》

응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이 집마당에는 여러 사람들이 급히 모여와 웅성거리고있었다.

그중에는 팔에 《자위대》완장을 두르고 9.9식 보총을 멘 젊은이도 두 셋이 눈에 띠였다. 마을어구에서 계응상을 얼핏 띠여본 사람들중에서 누군가가 황황히 자위대사무실로 달려가 서울에 가있던 미국놈의 앞잡이가 동리에 나타났다고 고아대는 바람에 급히 달려온것이였다.

이때 관골이 두드러진 상이 넙적한 세포위원장이 숨을 혈떡거리며 이쪽으로 달려오고있었다.

그는 멀찍이서부터 다급하게 소리쳤다.

《가만, 거기 좀 서게.》

자위대원은 물론 그뒤에 엉거주춤 서있던 사람들도 웬일인가 하여 걸음을 멈추었다. 헐금씨금 가쁜숨을 내쉬며 달려온 세포위원장이 팔을 내저었다.

《썩들 물러가게, 물러가.》

부은 상의 자위대원이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위원장동무, 이 집에…》

《알만하네, 가서 제 볼일이나 보게.》

세포위원장은 이렇게 말하며 조심스레 대문을 열고 안뜨락으로 들어갔다. 서로 의문에 차서 눈길을 마주치던 자위대원들은 헤식적은 표정을 지으며 문짬에 얼굴을 들이밀고 안뜨락에서 울려나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계응상은 방문을 열고 퇴마루에 나와있었다.

《계응상선생!》

《아, 자넨가. 그새 어떻게 지내나?》

《방금 도에서 내려온 전권위원의 말을 듣고야 선생이 북으로 돌아오신지 벌써 여러날 되였다는걸 알았습니다.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세포위원장은 벗어든 모자를 한손에 거머쥐고 떠듬떠듬 힘겹게 말을 꺼냈다.

《큰일을 하느라면 그런 일두 있을수 있지요.》

응상은 대범하게 응대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 생각이 짧았댔습니다. 그저 풍문에 들려오는 소리만 믿고… 이제라도 아주머니와 자녀들이 농사를 짓겠다면 원래 부치던 땅을…》

《괜찮네. 난 래일 집에사람과 딸애를 데리고 평양으로 올라가겠네.》

안뜨락에서 계박사와 매골세포위원장이 주고받는 말을 엿듣고있던 자위대원들은 저마다 뒤더수기를 긁으며 멋적은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 얼마후 매골에는 계응상박사가 평양에 새로 설립된 종합대학교수가 되여 처자를 데리러 내려왔다는 소문이 짜하니 퍼졌다.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어렸을 때 입을게 없어서 일곱에 나도록 통주의를 입고 너들거리며 서당에 다니던 사람이 어떻게 부자놈들편이 되겠나.》

《그러게 사람이란 제 타고난 근본을 잊지 못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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