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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혹과의 대결속에서 찾은 교훈

 

1980년 6월초 다시말하면 광주사태로 하여 온 광주시가를 뒤덮은 피비린내가 바람타고 산지사방으로 퍼져가며 남조선사람들을 괴롭히고 악몽속에 헤매이게 하고있던 바로 그때였다.

뜻밖에도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의 핵심인물의 하나인 허문도라는 사람이 갑자기 내앞에 나타나 추파를 던지면서 손을 내밀었다.

허문도라는자는 박정희역도가 키워낸 소위 《3허》의 한사람으로서 전두환《정권》하에서 《기둥감》으로 부상할것으로 지목되고있던 간단치 않은 인물이였다.

허문도의 출현은 나를 아찔하게 하였다. 이자의 출현은 무엇을 예고해주는것일가?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허문도는 군산시내에 있는 어느 큰 료정에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거기에서 나와 상면하였다.

그는 아주 점잖게 교육계와 체육계에서 벌린 나의 활동을 《애국적활동》으로 추어주던 끝에 돌연히 광주사태에 대한 고견을 듣고싶노라고 말하였다.

나는 서슴없이 그 고견을 털어놓았다.

지금 전국적판도에서 특히는 호남지역의 민중모두는 광주인민봉기가 끝났다고 보지 않고있다. 광주봉기를 촉발시킨 민중의 반《유신》감정이 여전히 온 강토에 사무치고있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

나는 그리 높지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지만 그것은 사실 도전성으로 꽉 들어찬 말이였다. 나는 령남지역과 호남지역에 대한 박정희《정권》의 차별정책을 성토하면서 앞으로 광주사태가 재발하지 않게 할 방도는 령, 호남지역 주민의 적대적감정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대구와 광주사이의 소백산줄기를 뚫고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두 지역 주민이 서로 래왕하며 친선을 도모케 해야 한다는 나의 소견도 피력하였다.(이때 그는 자기와 동행한 서기에게 내가 말한 내용을 기록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면서 이북의 무료교육제도를 찬미하고 남조선의 반인민적교육제도를 비평하는 말도 서슴없이 하였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허문도는 낯 한번 찌프리지 않고 덤덤히 듣기만 하면서 그 모든것을 《건설적인 의견》으로 접수하는 태도로 나왔다.

나는 다소 얼떨떨해졌다. 이 사람의 태도는 무엇을 시사해주는것일가.

이 의문은 곧 풀리였다.

식사후 허문도는 본심을 드러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이제 곧 《제5공화국》이 출범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뛰고있다. 《5공》을 위해서 첫째로 나서는 중요한 문제는 안정된 사회이다. 내가 탐문한데 의하면 리우갑교수는 대바르고 애국심이 투철한분이다.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그 헌신분투로 하여 대학생들속에서 인기와 신망이 높은줄로 안다. 그래서 찾아뵙게 되였다. 리우갑교수가 우리 《5공정부》와 손잡고 일하기를 권고하는바이다. 리선생이 민정당 전라북도 제2지구당 (군산, 옥구) 위원장으로 되여주면 《5공》을 위해 매우 리상적인 일로 되리라고 믿는바이다. …

허문도의 이 넉두리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내가 엄청난 유혹에 직면하고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격분하였으나 꾹 참았다.

사실 나는 이미 하나의 유혹을 박차고 나온 사람이였다.

그것은 자신의 이른바 자수성가에서 온 유혹이였다.

그 유혹으로 하여 나는 하마트면 안온한 가정의 울타리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책에만 파묻혀 사회적부조리앞에서 소경노릇을 하고 귀머거리노릇, 벙어리노릇을 하는 현실도피분자로 될번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 유혹을 이겨냈다.

《5공》의 유혹앞에서 나는 똑똑히 깨달았다. 내딴으로 나는 자신을 정의로운 사람으로 자부해왔고 또한 그렇게 살아오느라고 한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결국 오늘 이때까지 나는 반민중적제도, 부조리한 사회의 음침한것을 가리워주고 미화분식해주는 장식물노릇만 해왔다는 생각이 강하게 머리를 쳤던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나의 이른바 자수성가가 바로 그것이 아니란 말인가. 모르기는 해도 서울바닥을 비롯한 남조선 각지에서 헤매이는 수많은 독학생들속에는 나의 자수성가를 환상적으로 대하고 부조리한 사회와 반민중적제도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요행수의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었으리라는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제도를 감싸주고 미화하는 장식물노릇을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야 어떻게 허문도 같은 사람이 감히 내앞에 나타나서 갖은 감언리설로 회유하려들수 있겠는가.

《5공》의 사신인 허문도는 그 무슨 《5공》을 위한 《안정된 사회》요 뭐요 하면서 나에게 《국회》의원벼슬이 약속되는 지구당위원장자리를 미끼로 던졌다. 그는 내가 그 미끼를 덥석 받아물면 나만이 아니라 나를 따르는 숱한 대학생들, 나아가서는 나를 동정하는 교육계, 체육계, 사회계의 많은 인망있는 인사들이 저절로 민정당중앙당사마당의 늪속으로 끌려들어가리라고 타산하고있었던것이 분명하였다. 물론 그것은 어리석은 타산이였다.

나는 허문도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쳤지만 《5공》패당은 논판의 거마리처럼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허문도가 왔다간 때로부터 두달후인 그해 8월 안기부에서는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안기부연수원에 대학교수들을 상대로 한 그 무슨 연수회라는것을 조직해놓고 전역의 대학들에서 이른바 《대학생들로부터 신망이 높고 학생들이 잘 따르는 교수》 한명씩을 선발하여 거기에 참가시켰는데 군산전문대학에서는 내가 뽑혀서 거기로 갔다.

《국민의 일체화는 사회전반의 중요요소》라는 주제밑에 진행된 연수회가 교수들을 상대로 한 《5공》패당의 세뇌공작마당이라는것은 두말할것 없었다.

물론 여기서도 나는 도전적으로 나왔다. 입소 다음날 《책임추궁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밑에 열린 광주사태와 관련한 자유토론에서 나는 《〈유신〉독재를 유지연장하려는 전두환일당에게 항거하여 일어난것이 광주항쟁이였다. 지금 겉으로 볼 때에는 광주사태가 끝난것 같지만 광주시민들의 소망이 성취되지 않는 한 그것이 활화산처럼 언제 어떻게 다시 폭발할지 그것은 그 누구도 가늠할수 없다. 광주시민들의 소망이자 이남민중모두의 소망이다. 민주화되고 자주화된 새 사회를 건설할 때만이 민중의 소망이 이루어지고 광주사태로 하여 민중의 가슴에 맺힌것이 풀릴수 있다고 본다.》고 기염을 토하였다.

물론 나는 교수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박수갈채가 높은 속에 안기부의 요시찰자명단에서 나의 이름석자밑에 붉은 밑줄이 그어지리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것은 무섭지 않았다. 다만 우려되는것은 계속될 유혹이였다.

사실 허문도가 내앞에 나타난 다음부터 군사불한당에 대한 나의 인식에서 달라진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군사불한당이라고 해서 그저 칼부림밖에 모르는 망나니로만 보아서는 안되겠다는것이였다. 세상이 변해서인지 그들도 따라 발전하여 이제는 둔갑술도 곧잘 쓰고 신사처럼 미소도 지을줄 알며 미끼도 던지고 끌어당기기도 하는 보다 위험한 적수로 되였던것이다.

유혹은 고문보다 더 무섭다는것, 고문에서 입은 상처는 치료를 받으면 아물수 있지만 유혹에서 입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방법은 이 세상에 없다는것, 자칫 유혹에 빠지면 민중으로부터 리탈하여 자신을 파멸에로 이끌어갈수 있다는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유혹과의 심각한 대결속에서 나의 심장은 북을 향해 더욱 세차게 고동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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