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5회


제1장


5


한 여름의 해볕이 뜨겁게 내려쪼이는 밀영지의 훈련장에서 패장 한영덕은 자기가 거느린 병사들의 사격동작훈련을 봐주고있었다.

중키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한영덕은 꼭 맞는 누런 군복의 팔소매를 팔굽까지 걷어올리였고 목깃을 열어제끼였다. 구레나룻이 시커멓게 돋아나고 치째진 두눈을 매섭게 찌프린 그는 매끈한 얼굴에 엄격한 빛을 띄우고 꿇어사격동작을 하는 병사들에게 큰소리를 쳤다.

《똑바로 자세를 취하라. 훈련은 놀음이 아니다.》

그는 엉치가 땅에 붙은 한 병사의 말궁둥이처럼 큰 엉치를 발길로 가볍게 찼다.

《엉치가 무거워서 그래? 일어섯! 일어섰다앉았다 동작을 열번 반복할것! 시작!》

덩치가 큰 병사가 총을 한손에 쥐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어섰다앉았다 다시 일어나는 동작을 반복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보며 다른 병사들이 키드득거렸다.

《웃지들 말것!》

영덕이 성칼지게 소리치자 병사들은 찔끔해서 목을 움츠러뜨리였다.

이때 훈련장으로 박덕산이 걸어왔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뼈대가 굵은 체격에 늘쌍 심중한 빛이 둥실한 얼굴에 어려있는 덕산은 소박한 군복차림으로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고있었지만 어쩐지 닭무리속의 봉황처럼 표가 나는 존재였다.

영덕은 신뢰어린 눈길로 덕산을 바라보았다.

4년전에 덕산의 집에서 병든 몸을 추세우며 밥을 얻어먹을 때 벌써 영덕은 그가 그저 농사나 지어먹으며 사는 천덕꾸러기가 아님을 느끼였었다. 덕산은 하루종일 집을 떠났다가 밤에 들어오는적이 많았고 영덕에게 이 세상 리치에 대해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면서 조선사람들은 조국해방을 이룩하기 위해 일제놈들과 싸워야 한다고 강조하군 했었다. 덕산에게서는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그 어떤 기품이 엿보이는것이였다. 그런데 박덕산이 반일부대에 입대하겠다고 우정 찾아왔다는 사실이 영덕에게는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 동만에 왜놈들과 싸우는 조선인유격대도 있다지 않는가. 영덕이자신이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영림부대에 들어왔다치고 덕산이야 무엇때문에 중국인반일부대에 찾아온단 말인가.

박덕산이 사유를 털어놓지 않았지만 한영덕은 무슨 까닭이 있을것이라고 제나름으로 생각을 굴려보며 덕산을 주시하고있었다.

덕산은 벌써 자신이 보통 막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생활의 요소요소에서 드러내보이였다. 그는 붙임성이 좋은 소탈한 성격과 동료들을 형제처럼 도와나서는 의협심으로 대원들의 호감을 샀고 어느 사이엔가 주위에 사람들을 묶어세우고있었다. 더우기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나 중국의 력사, 일화들을 구수하게 잘 이야기하여 병사들이 그의 말을 듣겠다고 모여들군 하였다. 덕산의 사람됨을 전영림이 응당하게 평가했는지 그는 인차 부대의 선전간사로 임명되였다.

영덕은 자기가 형님으로 따르는 덕산의 인기가 올라감에 따라 같은 조선사람으로서 은근히 자부심이 생기였다. 평소에 그는 조선사람이 망국민이라는데로부터 많이 자존심이 상해있던터였다. 그래서 중국인병사들을 엄격히 대하며 위신을 차리게 되는것인지도 몰랐다.

박덕산은 한영덕에게 눈인사를 하고나서 병사들에게 말하였다.

《무더운 날씨에 훈련을 하느라 수고들 합니다.》

병사들이 덕산을 보고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일본놈들과 싸워이기자면 훈련을 잘해야 합니다. 총도 제대로 못 쏘면 그놈들이 우릴 허수아비군대로 여기게 되지요. 그놈들이 신식무장을 갖추고 정규적인 훈련을 받은 군대라지만 우리가 높은 애국심을 가지고 정신육체적으로 자신들을 단련해가면 능히 그놈들을 쳐물리칠수 있습니다. 한패장, 그렇지 않습니까?》

《박간사님의 말이 전적으로 옳소.》 한영덕이 수긍하였다.

덕산은 처벌을 받은 병사의 기분을 눙쳐주려는듯 그 병사에게서 총을 달래더니 자신이 능숙하게 꿇어사격자세를 취해보이였다. 지난날 여러 반일부대들에서 공작을 하며 다년간 병사들과 훈련도 함께 한 전적이 있는 덕산은 모든 제식동작이 몸에 배여있었다.

《한패장, 봐주시오. 내 자세가 어떻습니까?》

《정확합니다. 간사님이 어떻게 하는가 보란 말이요.》

영덕은 처벌을 받았던 덩치 큰 병사에게 말하였다. 농군출신의 그 병사는 헤식은 웃음을 짓고 말하였다.

《잘해보겠습니다.》

이윽고 영덕은 병사들에게 휴식구령을 주고나서 덕산과 함께 밑둥 실한 참나무 그늘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왔어요?》 영덕은 조선말을 자유롭게 하는 쾌감을 느끼며 물었다.

《그저 영덕이 보고싶어서 찾아나왔지.》

덕산은 담배쌈지를 풀어놓고 영덕에게 권하고 한대 피워물었다.

그는 담배연기를 내뿜다가 입을 열었다.

《영덕이가 병사들을 지내 엄하게 대한다는 말이 있더구만.》

《그럴수 있지요. 하지만 부하들을 너무 어루만지면 안되는거예요.》

《그렇다고 직권으로만 내려누르려고 하면 어느 병사가 너를 진심으로 따르겠니?》

영덕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궁싯거리다가 괜히 한손으로 발치의 풀대들을 잡아뽑았다. 그는 새파란 잔디밑에서 활발하게 기여다니는 개미들을 보면서 생각하고있었다.

(확실히 덕산형님은 보통사람이 아니야. 혹시 형님이 공산당이 아닐가?)

덕산이 담배꽁초를 쥐여던지고나서 군복웃주머니에서 면도칼 한개를 꺼내 영덕에게 내밀었다.

《옛다, 내 너를 위해서 하나 마련했다.》

《아니, 이건 갑자기 왜 내게 주는거예요?》 영덕은 의아한 눈길로 덕산을 보았다.

《새파랗게 젊어가지고 수염을 시커멓게 자래놓으니 늙은이같은게 보기가 딱하구나.》

덕산의 핀잔조의 말에 영덕은 저도 모르게 턱을 쓸어만졌다. 억세여보이는 그의 턱에는 구레나룻이 텁수룩하게 돋아있었다. 영덕은 시뭇이 웃으며 장알박힌 손바닥으로 면도칼을 든 덕산의 손을 밀었다.

《내가 뭐 면도칼이 없어서 그러는줄 알아요? 우정 잘 깎게 되지 않는걸요. 얼굴이나 잘 가꾸어서는 뭘 하겠어요. 왜놈새끼들과 격투하다가 이발도 하나 부러졌는데… 그저 왜놈들과 잘 싸우면 되는거예요.》

영덕은 앞이 한대가 빠진 크고 누런 이발을 드러내보이며 웃었다.

《다들 무섭게 보라는거예요.》

《넌 토비들속에서 막 살던 습성을 없애야겠다. 너야 여느 병사도 아니고 패장이 아니냐? 병사들은 알게 모르게 상관의 습성을 따르게 되지. 강하고 규률있는 군대는 우선 그 단정한 외모에서부터 기풍이 알리는거야.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항일유격대원들은 그 어떤 환경속에서도 되는대로 생활하는 법이 없단다. 그래서 싸움에서 패배를 모르는거지.》

김일성장군님에 대해서 잘 알아요?》 영덕의 얼굴에 짙은 호기심이 어리였다.

《알아도 잘 알지. 동만에 그 명성이 자자한분이 아니냐.》

《대체 그분이 조선사람이예요?》

《그건 또 무슨 생뚱같은 소리냐? 김일성장군님이야 우리와 같은 조선사람이지. 넌 그것도 모르니?》

《글쎄 어떤 중국사람들은 김일성장군님이 다부산자차림을 하고 류창한 중국말로 반일연설을 하는것을 본적이 있는데 중국사람이 분명하다고 말들을 하거던요.》

《그이께서는 일찍부터 지하공작을 많이 하셨는데 그때 중국사람처럼 변장하고 다니셨단다. 나도 아직 그분을 만나보지는 못했는데 중국말도 중국사람보다 더 잘 하신다더라. 지금도 그분께서는 적들과 싸워이기고나서는 군중들을 모여놓으시고 연설을 하시는데 중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한번은 중국말로, 그다음엔 조선말로 연설하신다는거야. 그래서 중국사람들이 그분께 매혹되는거지.》

《그래요? 그러니 김일성장군님은 조선사람이시군요.》

영덕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덕산의 말은 정말 조선사람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는것이였다.

《우리 조선사람들이 다른 민족보다 못한게 뭐예요? 조선사람 하나하나를 보면 다 똑똑한데 왜 이역땅에 쫓겨와서 천대와 구박을 받는것인지 모르겠어요.》

《그건 다 우리 조선사람들이 참다운 령도자를 모시지 못하였기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5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민족을 구원할 령도자를 모시게 되였다. 그분이 바로 김일성장군님이시다.》

김일성장군님의 년세는 대체 얼마나 되셨는가요?》

《네 생각엔 얼마나 되셨을것 같니?》

《그렇게 명성높은분이시니 년세가 어지간히 많으실거예요.》

《허허허.》 덕산은 크게 웃어제꼈다. 《그분은 우리처럼 젊은분이시란다.》

《그렇게 젊으신가요?》

영덕의 가늘게 째진 두눈이 금시 동전만큼이나 동실해졌다. 그리고 계속하여 경탄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대단하구만요. 어쩌면 그런 일도 다… 그야말로 하늘이 낸분이시구만요.》

《영덕이 그 말 하나는 잘했다. 우리 조선을 위해 하늘이 낸분이시지. 벌써 10대의 나이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이라는 청년조직을 무으시고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지도자로 등장하시였단다.》

영덕은 마침내 의문이 서린 눈길로 덕산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혹시 형님은 그분의 부하가 아닌가요?》

덕산은 생각에 잠겨 솜뭉치처럼 탐스러운 구름들이 떠돌고있는 하늘가 멀리를 바라보고있었다.

《너에게야 무엇을 숨기겠니. 난 김일성장군님을 따르고 그분의 뜻을 받들고 싸우는 공산주의자다.》

영덕은 덕산이 무엇때문에 반일부대에 들어왔는지 어렴풋이 깨도가 되는것 같았다. 그의 생각을 확인시켜주듯 덕산이 명백히 찍어말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중국인반일부대가 왜놈들과 싸우는 길에서 동요없이 줄기차게 나가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 공작원들을 파견하도록 하시였단다. 난 네가 그분이 바라는 참된 조선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알겠어요. 나도 형님처럼 김일성장군님만을 따르겠어요.》

《그러자면 모든 면에서 반일부대병사들의 본보기가 되여야 하는거다.》

《형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내 다 알아요. 난 오늘 처음으로 조선사람으로 태여난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어요.》

영덕은 구레나룻을 쓸며 덕산에게 손을 내밀었다.

《면도칼을 달라요. 내 이제부터 텁수룩한 꼴을 보이지 않겠어요.》

《자식, 그러고보면 너도 조선사람이 틀림없구나.》

덕산은 정어린 눈길로 영덕을 보며 면도칼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때 참나무우듬지에 아름다운 꾀꼬리 한마리가 날아와 은방울 굴리는듯 한 소리로 울기 시작하였다. 영덕은 미소를 짓고 머리우의 잎새무성한 우듬지를 올려다보았다. 그에게는 마치 꾀꼴새가 민족의 앞날을 축복하는 노래를 불러주는것처럼 생각되였다.

어느날 부대는 식량공작을 위해 놈들이 경영하는 목재소를 습격하는 전투를 벌리게 되였다.

20여필의 말과 적지 않은 밀가루를 로획한 부대는 적들의 《토벌대》가 증원되여 달려들자 얼마간 맞불질하다가 인차 철수하였다. 일정한 장소에 집결하여 인원을 점검해본 결과 몇명의 행방불명자들이 생겼는데 그중에는 박덕산이도 있었다. 한영덕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만 같았다. 행방불명된 사람들은 대체로 전투의 와중에 부상을 당해 쓰러졌거나 혹은 전사한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영덕은 뒤떨어져서 대원들을 찾아보게 해줄것을 전영림에게 부탁하였다.

《이제는 놈들이 추격해오는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좀 휴식하면서 기다려보자.》 하고 전영림이 말하였다.

전영림은 마흔남짓한 뚱뚱한 몸집의 사나이로 말이 없고 행동거지가 점잖았다. 그는 이전에 경찰서장을 한 경력을 가지고있지만 반일감정이 강하였다. 지휘관으로서의 그의 장점의 하나는 부하들중의 기둥이라고 할만 한 사람들에게 각별한 인정을 베풀어줌으로써 그들이 단순히 명령에만 따르는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인정적으로 자기를 따르게 하고 그들을 통하여 전부대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는것이였다. 한영덕이 전영림의 곁에서 몇년간 생활하면서 이 중국인부대를 떠나지 못하고있는것도 바로 전영림의 그 인정때문이라고 할수 있었다.

전영림은 부대를 산등성이에서 휴식시키면서 한영덕을 비롯한 몇명의 대원들을 파견하여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아보게 하였다.

영덕이 막 떠나려던 참에 《저기 나타났다!》 하는 누군가의 소리가 울리였다. 골짜기를 바라보니 박덕산이 부상당한 사람을 업고 힘겹게 산을 올라오고있었다.

《덕산형님!》

영덕은 너무 반가운김에 크게 소리치며 덕산을 맞받아 달려내려갔다.

얼굴과 온몸이 화락하니 땀에 젖은 덕산은 부상병을 그냥 업은채 영덕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짓고 서있었다. 영덕은 덕산의 등에서 부상병을 거칠게 안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부상병은 왼쪽눈이 먼 애꾸였는데 그래서인지 사나운 인상을 주는 병사였다. 애꾸눈의 병사는 금시 숨이 넘어가는것처럼 죽는다고 아부재기를 치며 대굴대굴 굴었다.

영덕은 부상병을 본척도 않고 덕산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예요?》

《좀 뒤떨어져 철수하댔는데 목재소 주인놈의 집 울타리곁에 이 사람이 쓰러져 살려달라고 하더구나.》

《더러운 놈의 새끼…》 영덕은 뒤따라 내려온 병사의 등에 업혀가는 부상병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저 애꾸놈은 분명 왜놈계집을 어째보려 하다가 부상당했을거예요.

벌써 오래전에 사람되기를 그만둔 놈이지요.》

박덕산이 업고 온 애꾸눈의 부상병은 원래 《천백룡》토비부대출신으로 영덕이와 리정애를 붙잡아 끌어왔고 괴롭힌자로서 영덕은 그에게 삭일수 없는 원한과 증오심을 품고있었다. 전영림의 반일부대에는 토비출신의 병사들이 많았다. 전영림은 잘못을 뉘우치고 입대를 희망하는 토비들을 부대에 받아들이였었다.

《영덕이, 그만하라구.》

《어쨌든 형님이 살아왔으니 다행이예요.》

산등성이에서 기다리고있던 전영림이 느슨한 미소를 짓고 박덕산을 바라보더니 그가 다가와 보고하자 한손으로 어깨를 툭 치며 말하였다.

《당신은 사내대장부요. 정말 장하오.》

잠시후 부대는 로획물자들을 말파리에 싣고 자기의 근거지를 향해 행군하였다.

박덕산은 한영덕과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덕이, 난 타고난 토비나 강도가 없다고 생각해. 다 험한 세상에 살길이 막히니까 그런 길에 들어선거야. 난 왜놈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선 사람은 다 동지로 사귈수 있다고 본다.

내겐 강정익이라고 가까운 동지가 한명 있었어. 견실한 혁명가였고 공산당의 간부였는데 좌경분자들이 그를 〈민생단〉으로 몰아 총살하려고 했어. 그때는 〈민생단〉혐의분자를 옹호하면 곧 그 사람이 〈민생단〉감투를 쓰는 험한 판이라 강정익이 〈민생단〉이 아니라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누구도 감히 그 부당함을 까밝히며 나설수가 없었지. 그런데 강정익동지를 총살하려는 그 마당에 처창즈유격구주변에 주둔하고있던 반일부대병사들이 달려들었어. 그들은 강정익동지를 총살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것이였지.》

덕산은 당시 반일부대병사들이 강정익을 옹호하여 들고일어나 소동을 일으킨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였다.

《난 그때 구국군병사들의 깊은 의리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댔어. 한마디로 좋은 사람들이지.

물론 구국군부대에 질이 나쁜 사람들도 있을수 있겠지. 하지만 병사들중의 다수는 로동자, 농민출신으로 천대와 멸시를 받던 사람들이고 또 만주를 타고앉은 왜놈들을 증오하는 사람들이야.》

반일부대는 사기가 올라 행군을 다그치고있었다. 한동안 식량고생을 하였던지라 전투를 짧은 시간에 성과적으로 결속하고 식량도 해결한 사실은 모두의 얼굴들에 흐뭇한 미소를 그리게 하는것이였다. 대렬의 선두쪽에서 가끔 울려오는 말울음소리는 그들의 발걸음을 힘차게 추동하는것만 같았다.

박덕산과 한영덕은 대렬의 후위쪽에서 행군하고있었다. 덕산의 깊은 정신세계를 음미해보는지 영덕은 말없이 걷고있었다. 그에게는 박덕산이 인생과 혁명의 진리를 깨우쳐주는 스승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그의 머리속에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혹시 강정익동지가 정애누님의 남편되는 사람이 아닐가?)

《그래 그 강정익동지가 어떻게 되였어요?》

한영덕은 긴장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걸음을 약간 늦추기까지 했다.

《그후에 나랑 같이 〈민생단〉감옥에 갇혀있었는데 유격근거지를 〈토벌〉하려고 달려든 왜놈들과 싸우다가 희생되였어.》

《정익동지에게 가족이 있었는가요?》

《갑자기 그건 왜 묻나?》

《뭔가 생각되는바가 있어서 그래요. 그 정익이란 이름이 정애누님이 말하던 애아버지 이름같아서… 누님은 내게 자기 남편에 대한 말을 많이 들려주었어요. 조선으로 보내온 편지에 애아버지가 안도현에 있다고 주소를 적어보냈던것 같았어요.》

《그래? 그럼 토비두령때문에 죽은 그 누이가 강정익동지의 안해가 아닌가?》

덕산의 유순하게 빛나던 가느다란 두눈에 경악의 표정이 어리였다.

《정익동지에겐 가족이 없었어. 가족을 조선에 두고 홀몸으로 동북에 와서 혁명을 했지. 그런데 4년전에 안해가 애를 업고 남편을 찾아떠났다는 소식을 받은 이후로 소식을 몰라 애타하고있었어. 정익동지는 왜놈들의 총에 맞아 희생된 바로 그날에도 안해가 왜놈들의 〈토벌〉에 걸려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내게 말을 했었지.》

《그러니 그분이 바로 정애누님의 남편이 아닐가요?》

영덕은 걸음을 멈추고 덕산의 팔소매를 잡아당기였다. 덕산은 못박힌듯 서서 영덕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대렬은 산발을 타고 그냥 앞으로 나아가는데 두사람은 그것을 잊고 자기들의 감정세계에 빠져버렸다.

《누님이 나더러 꼭 남편되는분을 찾아가보라고 했는데…》

영덕은 눈물이 글썽해서 배낭을 벗어놓고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손에서 한통의 편지가 묻어나왔다. 이젠 보풀이 일대로 인 편지였다.

《난 누님을 잊을수 없어 이 편지를 아직도 건사하고있었어요. 혹시 누님 남편을 만나게 되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비록 화염과 볕에 그슬려 거칠게 탔으나 면도를 깨끗이 하여 이목구비가 또렷한 영덕의 얼굴에는 슬픈 추억의 빛이 어리였다.

영덕이 내미는 편지를 들여다보노라니 덕산은 가슴이 후들후들 떨리였다. 그는 강정익이 안해에게 쓴 낯익은 필체의 글을 보았던것이다.

《아, 강정익동지의 안해가 그렇게 잘못되였구만. 헌데 그 애는, 정익동지의 아들애는 어떻게 되였단 말인가?》

덕산이 영덕의 어깨를 붙잡고 안타깝게 흔들었지만 영덕은 침통한 얼굴로 설레설레 머리를 저을뿐이였다.

그때 당시 리정애의 아들애는 토비소굴에 인질로 잡혀와있던 의원집며느리가 놓여나가면서 데리고갔었다. 《이 애를 잘 키워주세요. 내 후날 꼭 찾아가겠어요.》 하고 영덕은 그 녀인에게 무릎을 꿇고앉아 부탁을 하였다.

《어서 대답하라구. 왜 말을 못해?》

덕산이 재촉하자 영덕은 죄스러움이 짙게 어린 얼굴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모르겠어요. 의원집며느리가 데려간 후로는 나도 알지 못해요.》

덕산은 영덕의 손을 꽉 잡아쥐며 말하였다.

《영덕이, 우리 앞으로 꼭 그 애를 찾자. 아버지, 어머니가 못다 준 사랑을 우리가 주어야 할게 아니야?》

《옳아요. 나도 항상 정애누님 생각을 하면서도 처지가 이렇다보니 그 애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있었어요.》

《언제든지 찾아내자구, 언제든지… 강정익동지는 김일성장군님께 충실한 혁명전사였다.》

덕산은 얼굴에 결연한 빛을 띄웠다.

《헌데 덕산형님은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예요?》

《나?》

박덕산은 새삼스레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앞에서 대오가 흘러가고있었고 옆에도 뒤에도 사람이 없었다. 머리우에선 한여름의 태양이 높이 떠서 무성한 나무잎새들을 뚫고 눈부신 빛을 쏘고있었다. 덕산은 목소리를 낮추어 엄숙하게 말하였다.

《영덕이, 난 이 부대를 이끌고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자고 결심하고있어.》

《그러니 형님은?…》 영덕은 놀라서 걸음을 멈칫했다.

《이 반일부대가 살아남아 끝까지 왜놈들과 잘 싸우자면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 그이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것을 난 똑똑

히 알고있어.》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간다면 난 그 어떤 사지판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형님을 따라가겠어요.》

《고맙다.》

덕산은 영덕의 어깨를 와락 껴안았다. 그들은 동지적인 피가 서로의 몸에 세차게 굽이침을 느끼였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