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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제1장


4


전영림반일부대의 패장 한영덕은 동료들에게 자신의 지난날에 대하여 말하기를 싫어하였다. 그것은 그자신이 아직 마음을 터놓을만 한 벗을 찾지 못하였고 또 자존심이 남달리 강하여 우는 소리는 그 누구에게든 할 필요가 없고 오직 힘과 능력으로 남들을 누를 때에만 많은것을 성취할수 있다고 간주하였기때문이였다.

사실 그의 지난 생활은 불우하였다.

덕산의 집을 나선 후에도 한영덕은 이미전에 중국 동북으로 건너간 형을 찾아 방랑생활을 계속하였다. 빌어도 먹고 때로는 어떤 부자집에서 머슴을 살며 몇달을 보내기도 했고 목재소에서 소년로동도 했으며 현성의 상점에서 심부름군으로 일하다가 도적의 루명을 쓰고 단벌옷이 찢어지도록 매를 맞고 쫓겨나기도 했다. 그속에서도 열다섯살소년에게 한가닥 힘을 안겨준것은 이제 형을 만나면 만사가 풀리게 되리라는 희망이였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녁 영덕의 지친 다리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에 있는 주막집에서 접히였다. 게딱지같은 초라한 집들이 널려있는 볼꼴없는 마을의 유축에 위치한 주막집은 제법 넉넉하고 포실한 여러칸짜리 중국식기와집이였다. 주막집에서 풍기는 구수하고 달콤한 음식냄새가 영덕의 허기진 창자를 뒤집어놓는것만 같았다. 다행히 영덕의 다 해진 베잠뱅이적삼 호주머니에는 누군가에게서 받은 동전 두잎이 들어있었다.

영덕은 그 동전 두잎을 꽉 그러쥐고 주막집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에서는 더러운 옷차림을 한 쿠리풍의 사내들이 식탁을 차지하고 권커니작커니 떠들썩하게 술을 마시는가 하면 조용히 혼자 앉아 짜장면을 먹는 농군도 있고 바지저고리차림의 사내가 섞인것을 보아 조선사람들로 보이는 몇사람이 시름겨운 낯색으로 서로 멍하니 쳐다보며 술병을 기울이는 모습도 보이였다. 영덕은 접대하는 녀인에게 호떡 한그릇을 청해다가 빈 식탁을 찾아가 앉았다. 고소한 호떡냄새를 기분좋게 한번 들이키고나서 허겁지겁 먹어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다음끼니를 생각하고 호떡 몇개를 종이에 싸서 주머니속에 건사해두는것을 잊지 않았다.

이때 조선사람들속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이 영덕을 여겨보다가 슬그머니 그의 앞에 와앉았다. 로동복차림에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인 그사람이 문득 물었다.

《너 영덕이가 아니냐?》

영덕은 깜짝 놀라 머리를 쳐들었다. 그리고 《아저씨!》 하고 소리치며 일어섰다. 영덕은 형과 함께 집을 떠났던 한마을사람을 만났던것이다.

《네가 맞구나. 난 비슷한 애도 다 있구나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더랬지. 그런데 네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느냐?》

《형을 찾아다니고있어요.》

《네 형을 찾는단 말이지?》

《그래요. 형님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나요?》

《형?…》

고향사람은 눈길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둥거리였다.

《아저씨랑 같이 만주로 가지 않았어요?》

고향사람은 대꾸없이 한손을 뻗쳐 영덕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리고 접대원에게 술 한병을 청하였다.

《그래, 나랑 함께 만주에 와서 일했댔지. 더러운 놈의 세상…》

그는 푹 한숨을 내쉬고나서 계속하였다.

《우린 왜놈이 경영하는 탄광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네 형님은 그만 잘못되고말았구나. 락반사고가 났지.》

《아니예요!》

영덕은 벌떡 일어서서 소리쳤다. 주막집안의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았다.

《그건 거짓말이예요.》

영덕은 두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밖으로 내달았다. 주막집울타리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울었다. 그처럼 의지하고싶어 찾던 형님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그 소리가 마치 하늘이 무너진다는 소리처럼 들리였다.

고향사람이 다가와 위로하듯 영덕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나랑 같이 고향에 돌아가자. 나도 이젠 탄광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란다.》

《아버지, 어머니가 다 죽었는데 어떻게 돌아간단 말이예요?》

《그게 정말이냐?》

《전염병이 돌아 다 죽었어요. 집에서 나 혼자 남았어요.》

영덕은 고향사람의 손을 뿌리쳐버리였다. 그가 자꾸 무어라고 말하면서 영덕을 얼리였으나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그와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싶은 생각은 꼬물도 없었다. 부모들이 세상을 떠나간 후 천대와 멸시만을 받다가 한을 품고 떠나온 그곳에 조그마한 미련도 없었던것이다.

《그럼 맘대로 하렴. 억지로 데리고 갈수는 없으니까. 난 길이 바빠 가야겠다.》

고향사람은 영덕의 호주머니에 지전 몇장을 쑤셔넣어주고 떠나가버리고말았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지는데 설음과 절망감에 사로잡힌 영덕은 어찌할바를 잊고 주막집앞에 퍼더버리고 앉아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행의 구렁텅이로 깊숙이 빠져드는것만 같은 기구한 운명의 원인이 무엇때문인지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허기져 쓰러졌던 자기를 집에 업어들이고 돌봐준 형님과도 같이 인정깊은 사람인 박덕산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겨서 네가 이 고생을 하는구나. 그저 그 원쑤놈들을 하루빨리 쳐없애고 나라를 찾아야 하는거다.》

그때는 박덕산의 말이 리해되는듯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꼭 들어맞는것 같지도 않았다. 조선사람들중에서도 자기만이 특별히 더 불행한것만 같았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것인가? 눈앞이 아뜩해지는 속에서 박덕산의 수더분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 형님을 다시 찾아가볼가?

어디선가 털이 누런 강아지 한마리가 나타나 지그시 영덕을 바라보았다. 갈비뼈가 앙상하고 삼각형모양으로 흰털이 돋아난 배가 홀쭉한것을 보니 어미나 집을 잃고 방황하는 강아지인듯싶었다. 축 처진 귀박죽이며 물기가 어린 동그랗고 까만 두눈에 어쩐지 슬픔이 어려있는것만 같았다. 영덕은 주머니를 뒤져 좀전에 주막집에서 넣어두었던 호떡 몇개를 꺼내여 발치에 놓았다. 누렁개는 슬렁슬렁 다가와 호떡을 먹기 시작하였다. 영덕은 자기처럼 불쌍해보이는 강아지를 쓸어주었다.

강아지는 호떡을 다 먹고나서 동정을 구하듯 영덕의 손을 핥으면서 안겨들었다. 왜서인지 갑자기 사그라들었던 설음이 북받쳐올라 강아지를 끌어안고 털에 얼굴을 묻으며 흑흑 느껴울었다. 그때 주막집안에서는 술에 취한 어느 나그네가 부르는 타령소리가 쓸쓸하게 울려나오고있었는데 그 타령소리가 더욱더 그의 마음을 애달프게 해주었다. 그래서 그의 눈에서는 더욱더 슬픈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얘, 너 왜 그렇게 울고있니?》

녀인의 살뜰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영덕은 강아지의 북실한 등에 틀어박고있던 얼굴을 쳐들었다. 등에 어린애를 업은 애젊은 녀인이 그를 동정어린 눈길로 내려다보고있었다. 저녁녘의 어슴푸레한 빛속에서도 녀인의 모습은 선녀처럼 아름답게 그의 눈에 안겨들었다.

《너 밥을 먹지 못한 모양이구나. 자, 여기 빵이 있는데 어서 먹어라.》

녀인은 마치 누이처럼 다정하게 말하며 찐빵 한개를 내밀었다.

영덕은 의아하여 눈물에 젖은 얼굴로 녀인을 멍히 쳐다보았다. 돌아간 어머니를 내놓고는 아직까지 그 어떤 녀인도 살뜰하게 자기를 대해준적이 없었다.

《왜 그렇게 보니? 어서 먹어라.》

영덕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럼 넌 왜 우는거니?》

이렇게 물으며 녀인은 그의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이처럼 다정한 녀인에게 자기의 슬픔을 몽땅 털어놓고싶은 충동을 느끼였다.

《조선에서 형님을 찾아왔는데 형님이 탄광에서 일하다가 그만 죽었대요.》

《형님이 죽었다구? 에구… 그런 일이 있었댔구나. 글쎄 내 어쩐지… 참 안됐구나. 그럼 넌 이제 어디로 가야 하니?》

《모르겠어요. 난 아무도 없어요.》

《아니, 아무도 없다니?…》

이윽고 그는 어머니처럼, 누이처럼 다정한 그 녀인에게 자신의 신상에서 일어난 모든것을 다 이야기하였다.

녀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을 보면서 영덕은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아, 얼마나 마음씨 고운 아주머니인가. 이런 아주머니가 곁에 있어준다면 그 어떤 슬픔도 불행도 다 이겨낼것만 같았다.

녀인은 치마저고리 옷고름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내더니 말하였다.

《어디 가나 우리 조선사람들은 불쌍하구나. 나도 몇년전에 헤여진 남편을 찾아가는 길이란다.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니? 내가 네 누이가 되여줄게. 얼마간 먹어도 같이 먹고 굶어도 같이 굶으면서 어디 한번 가보자. 이제 만나보면 알겠지만 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란다. 애아버지를 찾으면 안착된 생활을 할수 있을거야. 애아버지한테서 집을 다 잡아놓았으니 빨리 오라는 편지가 왔단다.》

녀인은 품속에 소중히 간직하고있던 편지를 영덕에게 꺼내보였다.

《고마워요.》 하고 영덕은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녀인은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이였다.

《고마울게 있니? 너같은 동생이 있으면 내겐 힘이 되는거란다.》

어느 사이엔가 영덕의 가슴속에는 이 녀인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도 아까울것 없다는 고마움과 믿음의 감정이 꽉 차버렸다. 하여 영덕은 처음 만난 녀인에게 선뜻 자기의 앞날을 의탁하게 되였다.

녀인의 이름은 리정애였다. 정말 정애는 동생처럼 영덕을 위해주었고 영덕은 친누이처럼 정애를 따랐다. 그는 전염병에 걸려 죽은 누이가 살아있다고 해도 정애처럼 다정하게 자기를 대해주지는 못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생활은 영덕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안도현의 어느 인적드문 길에서 그들은 토비들에게 붙잡혀 그놈들의 소굴에 끌려가게 되였던것이다.

한 50여명의 부하들을 거느린 두령은 《천백룡》이라는 요란한 이름을 가졌는데 그 이름은 잔인한 악행들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해치우는 피비린 행적으로 하여 린근사람들에게서 공포의 대명사로 불리우고있었다. 또 이놈은 색광으로도 유명하여 자기 소굴에 두명의 녀편네를 거느리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운 녀자들을 보면 강간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놈이 제 소굴에 끌려온 리정애를 보고 대뜸 반하여 자기의 세번째 처로 맞아들이겠다고 선포할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그 두령놈에게는 정애에게 남편이 있고 또 두살잡이 어린애가 달렸다는것도 상관이 없었다.

정애가 말을 듣지 않자 놈은 하루동안 생각할 시간을 준다고 하면서 그들을 창고에 가두게 했다. 창고에는 이미 두명의 인질들이 갇혀있었다. 한명은 중국사람이였고 다른 한명은 젊은 조선녀인이였다. 그들은 가족측에서 방포(인질을 찾기 위해 바치는 돈)를 내야만 놓여나갈수 있는 사람들이였다.

정애는 어찌할바를 몰라 울기만 했고 영덕은 격분하여 가슴만 풀떡거리다가 이미 창고에 갇혀있던 조선녀인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고 물어보았다. 알고보니 그 녀인은 돈푼이나 있는 의원집 며느리인데 집에서 인차 돈을 마련해가지고 데려가기로 되여있었다. 그 의원집 며느리는 이 《천백룡》에게 강요당하면 빠지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측은한 눈으로 정애를 바라보았다.

《마음을 굳게 먹어요. 혹시 귀인이 나타나서 구원해줄는지…》하고 그 녀인은 정애를 위로해보려고 했다.

하루동안 시간을 준다던 토비놈들이 저녁이 다 되였을무렵 갑자기 정애를 불러냈다. 정애는 무슨 예감이 들었던지 품에 간수하고있던 남편의 편지를 영덕에게 맡기였다.

《영덕아, 이 편지를 건사하고있어.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이 편지를 가지고 애아버지를 찾아가거라.》

정애는 문쪽으로 가다가 다시한번 영덕을 돌아보았다. 무슨 말을 할듯 하다가 그만두고 창고에서 나갔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본 살아있는 다정한 녀인의 모습이 될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창고밖에서 토비들이 벅적 떠드는 소리, 정애의 울부짖음소리, 어린애의 울음소리가 들리다가 사라져버렸다.

《이놈들아, 문열어라.》

영덕은 악이 나서 발길로 창고문을 쾅쾅 걷어찼다. 이윽고 토비 두놈이 와락 문을 열어제끼고 들어와 무작정 몽둥이를 영덕에게 휘둘러댔다.

《자식, 두령님이 누나를 호강시켜주겠다는데 뭐가 맞갖지 않다는거야. 두령님이 오늘 결혼식을 방해하는 놈은 사정없이 죽이겠다고 했으니 찍소리말고 있어.》

영덕이 매를 맞고 쓰러졌는데 놈들은 정애가 업고나갔던 어린애까지 창고안에 들여다놓고 문을 덜컥 닫아버렸다. 기신없이 쓰러졌던 영덕은 겨우 일어나앉아 우는 애를 그러안고 달래였다.

《영민아, 울지 말아. 엄마가 이제 인차 돌아온다.》

토비들이 리정애를 억지로 결혼식장에 끌어갔다는것을 영덕은 후날에야 알았다. 두령놈에게는 하루동안 기다려줄 너그러움도 체면도 없었다.

밖에서는 피리에 맞추어 부르는 토비들의 게걸스러운 노래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저들끼리 소란스럽게 싸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두령놈이 잔치상을 크게 벌려놓았던것이다.

그날 밤 소동이 일어났다. 리정애가 치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무에 목을 매달고 목숨을 끊었다.

이름모를 숲속에 불쌍하고 억울하게 목숨을 버린 조선녀인이 묻힌 무덤이 생겨났다. 영덕은 무릎을 꿇고앉아 그 무덤가의 흙을 움켜쥐고 자꾸만 몸을 떨었다. 친누이처럼 사랑하고 따르던 녀인의 죽음앞에서 영덕은 울지 않았다. 울고싶어도 눈물은 나오지 않고 《끅―끅―》하는 갈린 소리만이 목구멍에서 새여나왔다.

이 세상은 다시한번 영덕을 걷어차버렸고 망국노의 뼈저린 아픔과 분노를 가슴속에 서리서리 뭉치게 해주었다. 영덕의 피발진 두눈에는 린광처럼 퍼런빛이 뿜어나오고있었다. 복수의 갈망이 뼈속에서 소리내여 우는것만 같았다. 그밤으로 영덕은 때없이 슬픔에 울고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천진하기도 했던 자기의 소년시절과 결별하였다.

그후 《천백룡》토비부대에는 약삭바른 소년토비가 두드러지는 존재로 나타났다. 체격이 옹골차고 날파람있는 소년은 거치른 토비들의 심부름을 곧잘 들어주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환심을 샀다.

소년은 사냥에 재간이 있어 자체로 옹노를 만들어 짐승길에 놓아 산토끼나 노루를 잡아 두령에게 가져다바침으로써 메기입처럼 큰 두령의 입이 헤 벌어져 귀밑까지 찢어지게 만들군 했다.

《괜찮아, 복덩이가 굴러들어왔군.》 하고 두령은 소년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소년은 다름아닌 한영덕이였다. 영덕은 리정애의 시신을 묻은 후에 갈 곳이 없다고 하면서 토비소굴에 남아있었던것이다.

어느날 두령은 몇명의 충실한 부하들을 데리고 심심풀이삼아 울창한 숲으로 사냥을 갔는데 영덕이도 동행하게 되였다.

일행은 그만에야 황소만 한 갈색곰과 맞다들리게 되였다. 토비들의 선불질에 독이 오른 갈색곰이 미친듯이 달려들자 토비들이 혼비백산하여 들고 뛰였다. 그래도 담이 큰 두령이 허우대 큰 체통으로 버티고서서 사냥총을 쏘았다. 그러나 곰은 쓰러지지 않고 사납게 울부짖으며 그냥 두령에게 덤벼들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영덕이 도망치는 한 토비에게서 마상대를 빼앗아들고 정확한 묘준사격으로 곰의 드러난 앞가슴부위의 급소를 쏘아맞혔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에게서 배운 사격솜씨,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익히고 어른들의 감탄을 자아내던 그 사격솜씨가 여전히 그의 정신과 육체속에 잠재해있었다. 곰은 마침내 두령의 발치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네다리를 버둥거리였다. 뒤로 벌렁 나가넘어진 두령의 바위돌같은 얼굴에는 식은땀이 질펀하였고 가로 째진 큰 입술이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두령은 영덕의 부축임을 받아 일어섰다.

《개자식들…》

그는 누군가를 욕질하며 두덜거리더니 영덕이를 한팔로 와락 잡아당겨 그러안았다.

《네가 날 구원해주었구나.》

이때부터 영덕은 두령의 각별한 신임속에 호위병으로 되였고 토비들은 누구나 그를 두려워하게 되였다.

얼마후에 전영림의 반일부대가 《천백룡》토비부대에 대한 소탕작전을 벌리였다. 전영림은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있는 이 토비무리들을 징벌할 결심밑에 면밀한 작전을 세우고 이 습격전투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위험한 토비생활속에서 촉감이 예민해지고 도망치는데 남다른 장끼를 가지고있는 두령은 영덕을 데리고 반일부대병사들의 포위속에서 빠져나갔다. 반일부대병사들이 추격하는데 두령놈은 마치도 노루처럼 빠른 속도로 잡관목이 널린 산탁을 내달렸다. 영덕이 바싹 그뒤를 따랐다. 잠시후에는 반일병사들의 추격의 총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깊은 수림속에 들어서게 되였다.

두령놈이 이젠 살았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늦추고 긴숨을 내쉬는데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울리였다.

《서라!》

두령놈이 화들짝 놀라 돌아섰다. 한영덕이 기병총을 겨누고 서있었다. 두령놈은 영덕의 치째진 두눈에서 금시 자기를 태워버릴듯 뿜어나오는 증오의 불줄기를 보고 몸을 떨었다. 그리고 영덕이 더는 소년이 아님을, 그 누구도 당해내기 어려운 당당한 사나이임을 깨달았다.

《네가?》

《총을 던져라.》

《너 왜 그러느냐?》

두령놈은 권총을 던지는척 하다가 옆으로 엎어지며 영덕을 쏘았다.

그러나 영덕은 더 날래였다. 어느새 그의 기병총이 불을 뿜었고 놈은 권총을 떨구고 왼손으로 총알에 맞아 피흐르는 오른손을 감싸쥐였다.

《네가 왜 나를?…》

놈은 믿어지지 않는지 거적눈을 흡뜨고 영덕을 올려다보았다.

《무릎을 꿇어라, 어서!》

영덕이 당장 방아쇠를 당길듯 위협하자 놈이 엉거주춤 무릎을 꿇었다.

《네가 내 누님을 죽게 만든것을 벌써 잊었는가?》

《그 녀자야 네 친누나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친누나보다 더 귀중한 녀자였다. 난 누님의 무덤앞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손으로 널 죽이겠다고 맹세했다. 이젠 사연을 알았으니 맹세대로 널 죽이겠다.》

영덕은 두령놈을 향해 총을 한방 쏘았다. 놈이 머리를 땅에 구겨박고 꿈틀거리였다.

《조선사람들이 언제나 구박당하기만 하고 살지 않는다는것을 알고 죽어라.》

영덕은 씹어뱉듯 말하고 다시금 방아쇠를 당기였다. 두령놈은 걸레짝처럼 되여 너부러지고말았다. 영덕은 놈의 시체에 침을 뱉고 돌아섰다.

그리고 추격하며 달려온 반일병사들에게 총을 바치고 포로가 되였다.

전영림이 두령을 사살한 한영덕을 만나주었다. 전영림은 영덕에게서 자기 두령을 죽이게 된 사연을 듣고나서 리해가 되는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윽고 그는 영덕에게 물었다.

《우리 부대에 들어와 싸울 생각은 없나? 우린 동북을 강점하고 중국사람, 조선사람들을 다 못살게 구는 일본놈들과 싸우는 사람들이요.》

《절 받아준다면 왜놈들과 싸우겠습니다.》

영덕은 박덕산의 집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덕산의 교양을 받았고 또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조선사람들에게서 나라를 빼앗고 죽음에로 내모는 왜놈들이야말로 자기가 복수해야 할 불구대천의 원쑤임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오직 복수의 길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극악하기로 소문난 토비두령은 죽였지만 왜놈들은 아직 한놈도 잡지 못하였다. 하여 영덕은 왜놈들을 죽이기 위해 전영림의 반일부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총 잘 쏘고 전투에서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무쌍한 병사로 되였고 2년후에는 통솔력있는 패장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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