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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제1장


3


음침하게 흐린 하늘에는 먹장구름들이 뭉게뭉게 타래치고있었다. 그 먹장구름들은 봄을 맞아 짙푸르게 초목이 살아오르는 처창즈유격구마을들을 심술궂게 내려다보는것만 같았다. 마을의 뒤산 중턱 자작나무, 봇나무들이 우거진 속에 하나의 봉분이 솟아있는데 허우대 큰 사나이가 그앞에 머리를 숙이고 서있었다. 25살의 젊은이였지만 검스레하니 볕에 타고 뾰족하니 여윈 그의 얼굴에는 고뇌와 슬픔의 빛이 겹치고 또 거기에 심각한 사색의 빛이 감출수없이 우러나와 어지간히 나이를 먹은 중년을 방불케 하였다. 그는 어제날의 《민생단》혐의자였던 박덕산이였다.

지금 덕산은 전영림반일부대공작을 위해 유격근거지를 떠나게 되면서 한을 품고 땅속에 누워있는 강정익을 찾아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친다. 묘소주위에 우거진 자작나무들이 흔들리며 울부짖는다. 묘소를 향해 머리를 숙이고 서있는 박덕산의 두눈에는 눈물이 그렁하였다.

(강정익동지, 이젠 더는 일어날수 없는것입니까. 원통합니다, 정말 원통합니다.

동지의 유언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김일성장군님을 민족의 구세주로 높이 받들고 혁명의 한길을 억세게 걸어갈것입니다.)

덕산은 강정익에게 마음속 말을 하고나서 머리를 숙여 하직인사를 하였다.

이윽고 그는 처창즈의 산과 강, 유격구마을을 맹세가 불타는 눈길로 바라보다가 힘있게 걸음을 내짚었다.

오전에 처창즈를 떠난 박덕산은 저녁녘이 다 되여서야 전영림반일부대가 자리잡고있는 산에 당도하였다. 서쪽하늘에 누렇게 번져가는 황혼빛이 키높은 이깔나무들의 푸른 웃초리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여가고있었다.

덕산이 얼굴에 질펀히 내배는 땀을 닦으며 산발을 타고 오르는데 앞쪽에서 《서라!》하는 명령조의 중국말소리가 울려왔다. 도퉁을 어깨에 걸친 반일부대병사가 바위우에 앉아서 덕산을 바라보고있었다.

덕산은 저도 모르게 후 하고 숨을 내쉬였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았던것이다.

《로형, 안녕하시우? 산에서 고생많겠소.》 하고 덕산은 그 병사를 향해 류창한 중어로 인사말을 던지였다.

병사는 바위우에 걸터앉아 두다리를 흔들거리다가 옆에 대고 말하였다.

《우리 동포로구만. 어떻게 하자나?》

그러자 숲속에서 아편대통을 입에 문 병사가 또 한명 나타났다.

《뭐, 동포라구? 혹시 왜놈의 밀정인지 누가 알아?》

아편대통을 문 병사는 걸탐스레 아편연기를 삼키며 덕산에게 물었다.

《야, 넌 어디로 가는 길인가?》

《전영림대장을 찾아가는 길이요.》

《뭐 전영림대장?… 허, 이것 봐라. 우리 대장님의 성함을 알고 온걸 보니 밀정이 틀림없어. 어서 배낭을 풀어놔, 수색해봐야겠다.》

아편연기를 삼킨탓에 기분이 좋아진 대통을 문 병사가 히죽히죽거리며 노래하듯 엮어대였다.

《어서 이 어르신님께 대접할걸 내놓으시지. 빵이면 빵, 떡이면 떡, 아편이면 아편, 돈이면 돈… 반일하는 어른들은 마다하는게 없다구요.》

《화센(경계가 엄중하군.).》 덕산은 웃으며 반일부대들속에서 통용되는 은어로 대꾸하였다.

지난날 반일부대들속에 들어가 많이 공작한 경험이 있는 덕산은 그들의 은어를 잘 알고있었다. 덕산이 던지는 한마디 말에 두 반일병사의 눈이 퀭해졌다.

《어, 그러니 우리와 한족속인가? 그래 우리 대장님은 왜 만나자는거야?》

《잔말말고 날 대장님께 안내하라구, 후날 경치지 말고…》

덕산은 뚝 눈을 부릅뜨며 엄포를 놓았다. 어수룩하게 보였다간 행패질을 하며 짐을 몽땅 털고 쫓아버리든가 심심풀이하듯 매질을 가해올수도 있었다.

덕산의 당당한 태도에 기가 질렸던지 두 병사는 이마를 마주대고 수군수군하더니 아편담배를 피우던 병사는 남고 다른 한명이 그를 이끌고 숲속의 한 귀틀막으로 데리고 갔다.

막안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마른풀을 깔고 그우에 모포 두장을 펴놓았는데 모두 세명의 군인들이 보였다. 한명은 모포우에 드러누워 잠을 자고있었고 두사람은 마주앉아 마장을 놀고있었다.

아마 부대 초입에 자리잡은 보초막인듯싶었다.

덕산을 데리고간 병사가 마장을 노는 두사람을 향해 말하였다.

《패장님, 이 사람이 대장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기에 데려왔습니다.》

목갑총을 엉치쪽에 드리우고 문쪽을 등지고 돌아앉은 사람이 패장인듯 마장쪽을 바닥에 내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어떤 건방진 자식이야?》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는데 텁수룩하게 구레나룻은 나있었으나 눈빛과 매끈한 살결로 미루어 아주 젊은 청년이였다.

고수머리에 매부리처럼 날이 선 코날, 앞이 한대가 빠진것이 흠이라 할수 있지만 잘 생긴 미남형의 그 청년을 보는 순간 덕산은 깜짝 놀랐다.

《아니, 너 한영덕이 아니야?》

패장이라는 그 청년의 얼굴에도 반가운 웃음이 확 피여올랐다.

《덕산형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예요?》

한영덕은 벌떡 일어나 덕산을 얼싸안고 돌아갔다.

《야, 모두 인사들 해. 내게 형님되시는분이야.》

한영덕이 자기 부하들에게 절을 시키겠다고 하기에 덕산은 당황해났다.

《영덕이, 그만해라. 내가 이런 절을 받고 좋아할 사람이 아니지 않나.》

《그래도 모르는척 하고 받으시라요.》

영덕은 자는 병사까지 깨워서 덕산에게 절을 시키였다.

그만큼 박덕산을 만난 한영덕의 기쁨은 말할수없이 컸던것이다.

한영덕은 4년전 덕산이가 가족과 함께 연길현 소오도구라는 산골에서 살 때 헐벗고 지친 몸으로 그의 집에 들어왔었다. 그때 15살이였던 소년 한영덕은 부모를 다 잃은 고아로 남만땅 어디엔가 살고있다는 형을 찾아가는 길이였는데 굶주리고 지치여 더 갈수 없는 형편이였다. 덕산은 영덕을 자기 집에 들이고 일주일동안 먹여주며 몸을 추세워주었고 그가 다시 떠나겠다고 할 때는 로자까지 보태여주었었다.

한영덕은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하면서 덕산이네 가족과 헤여졌다. 그런데 덕산이 반일부대에 와서 뜻밖의 해후를 하였던것이다.

《그런데 넌 어떻게 여기 와있는거냐?》

덕산의 물음에 영덕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시들하게 대답하였다.

《살길을 찾다가 결국은 구국군에 들어오게 되였지요. 헌데 형님은 무슨 일로 우리 대장을 찾아오는가요?》

《나야 왜놈들과 싸우러 왔지.》 덕산은 웃으며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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