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1회


제 1 장


1



어둠이 내려덮인 평양의 하늘에 눈송이들이 흩날리고있다. 거리엔 가로등빛이 은은하게 흐르는데 어둠을 가볍게 물리쳐버린 그 개개의 등들은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들을 반겨 미소를 뿌리는것만 같았다.

눈은 따뜻해보이는 가로등빛에 감빛으로 물들어 도로우에 푸근히 내려쌓이였다.

승용차 한대가 네바퀴밑으로 눈가루를 뽀얗게 일으키면서 도로를 달린다. 내각 제1부수상 김일이 승용차 뒤좌석에 앉아 시름겨운 눈길로 창밖을 바라보고있었다.

육중한 몸집을 좌석에 무겁게 실은 그의 퉁투무레한 얼굴에 엄숙한 빛이 어리였다.

준엄하고 복잡다단했던 한해가 저물고 새해 1969년 정월도 다 지나가고있었지만 국제국내정세는 여전히 복잡하였다.

지난해에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우리 인민군 해군경비정에 의해 나포된 사건을 계기로 조선반도에서 감히 전쟁을 일으키려고 미쳐날뛰였었다. 조성된 정세하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적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이라는 선언을 하시여 물불을 모르고 헤덤비는 놈들을 전률케 하시였다. 인민들은 수령님의 교시와 당정책관철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 온 나라를 철벽의 요새로 다지였으며 생산에서도 례년에 없는 혁신을 일으켜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펴나갔다고 볼수도 없었다. 인민군대의 한 군부대에서 수령님께 근심을 끼쳐드린 사건이 발생하였던것이다. 민족보위성의 장령 한영덕이 긴장한 정세에 대처한다고 제나름의 《고견》을 내세우고 군사훈련에만 치중하면서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을 홀시하는 후과를 초래하였다.

한영덕은 김일의 전우였기에 그로 인한 김일의 괴로움은 더우기나 큰것이였다. 그의 큼직한 코의 날개에서 량쪽입귀로 휘우듬하니 패인 주름이 더 깊어진것만 같았다.

(한영덕이, 네가 어떻게 그렇게 변할수 있단 말인가.) 하고 김일은 몇번이고 마음속으로 되뇌이고있었다.

그는 속이 타드는듯 하여 차창을 조금 열어놓았다.

가로등빛에 어두운 밤도 아랑곳없이 좋아라고 눈싸움을 하며 놀아대는 소년들의 무리가 눈에 띄웠다. 눈이 두텁게 깔린 공지의 한쪽에서는 눈덩이를 크게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한쪽에서는 서로 좇고 쫓기우며 눈을 주먹만큼씩 빚어 깔 내기를 한다. 내뛰다가 넘어진 아이의 목덜미에 눈을 쑤셔넣으며 좋아라고 웃어대던 한 소년이 도로를 지나가는 김일의 승용차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빗장을 지른듯 한일자로 꾹 다물렸던 김일의 입귀가 느슨하게 벌려지며 미소가 어리였다. 정세가 아무리 긴장하다 하여도 아이들의 행복한 생활은 예전이나 변함없이 흐르고있었다.

(보다 행복할 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수령님을 더욱더 높이, 더욱더 충직하게 받들어모셔야 할것이다.) 하고 김일은 생각하였다.

눈발이 섞인 차거운 겨울바람이 불어들어왔다. 김일의 얼굴에 눈이 달라붙으며 녹아내린다. 그는 투박한 손으로 세면이나 하듯 얼굴을 비비였다.

《1부수상동지, 그러시다 감기걸리겠습니다.》 운전사 옆좌석에 앉은 부관 림병욱이 뒤를 돌아보며 우려섞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부관 림병욱은 30대의 미남청년으로서 몇년전에 김일의 부관으로 임명되였다.

《괜찮아.》

김일은 혼자소리처럼 짤막하게 대꾸하며 좌석등받이에 머리를 얹었다. 림병욱은 자기의 오른손을 뒤로 뻗쳐 뒤창을 올려닫았다. 김일은 상관치 않고 눈을 꾹 감았다.

(아, 수령님께서 얼마나 심려하셨겠는가.)

마음속으로 수령님을 생각하노라니 무딘 칼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마구 허비는것만 같았다.

(김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그동안 너는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 그래 군대일은 자신의 사업과 거리가 멀다고 감히 변명할수 있단 말인가.)

김일의 꾹 다문 입귀로 알릴듯말듯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1부수상동지, 저택입니다.》

김일은 부관의 말을 듣고서야 괴로운 상념에서 깨여났다. 그는 하루동안의 분망한 사업으로 피로해진 몸을 힘겹게 움직여 승용차에서 내리였다.

만수대기슭에 자리잡은 집창문마다엔 불빛이 환하였다.

승용차소리를 듣고 몸매가 자그마한, 첫눈에 소박하고 아련해보이는 나이지숙한 녀인이 실내옷에 뜨개옷을 어깨에 걸치고 2층에서 급하게 내려왔다. 김일의 안해 허창숙이였다.

《이제야 오세요?》

허창숙은 김일의 손에서 서류가방을 받아들고 그를 부축하듯 팔을 붙잡고 2층으로 올라갔다.

침실에서 허창숙은 김일이 벗는 외투를 받아들어 옷걸개에 걸었다.

《방금전에 장종학동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댔어요.》

《장종학에게서?…》

장종학은 내각 건설부문의 일군으로서 지금 나라의 서북부에 건설되고있는 방직공장건설장에 나가있었다.

《무슨 일때문이요?》

《종학동무는 한영덕동무가 어찌되였는가 사실여부를 알고싶어 전화했더군요. 아마 벌써 무슨 뛰뛰한 소문이 도는 모양이예요.》

장종학은 김일이나 허창숙 그리고 한영덕과도 인연이 깊은 사람이였다. 그가 방직공장건설장에서 장거리전화를 걸어온것을 보면 아마 이번 인민군당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한영덕이 해임철직된 소문을 듣고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이제 지방지도를 나가면 방직공장건설장에도 들려봐야 한다. 아무래도 그때 장종학을 만나게 될텐데 한영덕의 일을 두고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것이다.

이때 곁에 위치한 딸애의 방쪽에서 처녀의 흐느낌소리가 희미하게 간간이 들려왔다.

《무슨 소리요?》

《은희방에 설미가 와있어요. 은희가 대학에 갔다오다가 설미가 보통강가에서 울고있는걸 보고 데려왔다나봐요.》

허창숙의 말을 들으니 김일은 다시금 가슴에 예리한 아픔을 느끼였다.

설미는 한영덕의 딸로 은희와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아버지들의 동지적관계가 그 자식들에게도 친근감을 조성하는것이였다.

은희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이고 설미는 평양상업대학(당시) 학생인데 은희가 설미보다 한살 우이다.

김일은 저녁식사를 차려놓았다고 하는 창숙의 말을 귀등으로 흘리며 딸애의 방으로 건너갔다. 책상과 의자, 자그마한 책장이 놓여있고 긴 쏘파와 침대 하나가 놓여있는 소박한 방이였다.

은희와 설미가 긴 쏘파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두 처녀가 다 늘씬하고 체격이 실했는데 설미가 은희보다 얼굴색이 희고 부드러워보이였다.

실내복차림의 은희가 아버지를 보고 일어나 《아버지 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고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울던 설미는 당황하여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설미야, 네가 아직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부모들이 걱정하지 않겠느냐.》

김일의 말에 설미는 대꾸를 못하고 푹 젖은 손수건으로 눈만 닦아냈다.

《그래 아버지는 집에서 뭘 하고있더냐?》

설미는 또 대답을 못하고 갑자르다가 옆에서 은희가 손을 툭 쳐서야 애절한 눈빛으로 김일을 보며 목메인 소리로 말하였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혼자 강가에 나가계십니다.》

《그래?》 김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설미야, 너 나하고 함께 아버지를 찾아보자.》

《예?》

설미는 김일의 말이 무슨 뜻인지 리해가 안되는듯 그 자리에 오똑하니 서서 김일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머루알처럼 동자가 새까맣고 쌍까풀진 두눈이 서서히 고이는 눈물방울로 뿌옇게 흐려진다.

《어서 차비를 해라. 나하고 함께 가보자.》

김일은 은희에게 설미를 도와주라고 눈짓하고는 먼저 그 방을 나섰다.

잠시후 김일은 설미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한영덕이 나가있다는 보통강변으로 향하였다.

밤이 깊어지면서 눈바람은 사납게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승용차를 타고가면서 김일은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문득 장종학에게서 한영덕을 념려하는 전화가 걸려왔었다는 안해의 말이 떠올랐다.

(종학동무도 남달리 신경이 씌여질수 있지. 하지만 나를 포함한 그 누구의 아픈 심정일지라도 우리 수령님의 심뇌에야 미칠수 있겠는가.)


×


눈은 세찬 바람에 마구 흩날리며 하염없이 떨어져내렸다. 밤이 깊어 고즈넉해진 보통강가에 견장이 없는 장령외투를 입은 중년사나이가 홀로 서있었다. 중키에 단단한 체격을 가진, 둥그스름한 얼굴에 날카로운 빛이 어린 그는 어제날 인민군대에서 그 이름이 쟁쟁하던 한영덕이였다. 지금은 과오를 범하고 철직되였지만 그 정신과 육체는 여전히 군인의 세계를 갈구하고있었다. 비판을 받고 철직된 그는 무서운 절망상태에 빠져 이 강변으로 나왔다.

그의 주위에 너저분하게 널려진 담배꽁초들이 내리는 눈에 묻혀가는데 그는 또 한대의 담배를 피워물었다.

한영덕은 후― 하고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괴로운 한숨을 토해냈다.

지금도 그는 자기자신이 어떻게 되여 그런 과오를 범하게 되였는지 똑똑히 알수가 없었다.

민족보위성의 요직에서 근무하고있던 그는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이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장한 정세가 조성되자 군대의 군사기술수준을 한계단 더 높이려는 계획을 가지고 전연군부대에 내려갔었다.

자기딴의 그럴듯한 계획에 현혹된 그는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홀시하게 되였으며 결국은 그가 시범을 창조한다고 내려갔던 부대의 일부 군인들속에서 군사기술만능을 우상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던것이다. 이것은 사상의 힘으로 제국주의원쑤들과 싸워이겨온 혁명군대의 전통을 무시한것으로서 대단히 엄중한 과오였다. 하여 그는 응당한 처벌을 받게 된것이였다.

(내가 언제 그렇게 어리석은 놈으로 되였단 말인가.)

한영덕은 어찌나 자기자신이 저주로웠던지 그냥 선자리에서 얼어죽고싶은 심정이였다.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이 얼핏얼핏 떠올랐다. 함경북도의 산골마을에서 태여나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살아온 한영덕이였다.

어머니가 밀가루마대를 얻어다 해준 옷을 입고 형과 손우누이와 함께 부모들의 일손을 도와 지주놈의 소작농사를 했다. 아버지가 솜씨있는 사냥군이여서 영덕은 아버지를 따라 험한 산발을 톺아오르며 짐승사냥을 주로 다니였다. 어려서부터 총쏘는 법을 배우고 사냥묘기를 터득한 영덕은 크고작은 짐승들을 곧잘 잡아 아버지와 동네어른들의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집이 워낙 빚을 많이 지다보니 사냥물을 지주놈에게 떼우기만 했고 생활은 여전히 펴이지 않았다.

온 가족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아득바득 일하였건만 살림은 갈수록 쪼들리고 생활고에 지친 형이 탈가하여 간도로 넘어갔다. 그후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부모들과 누이가 앓다가 사망하고 홀로 남은 영덕은 간도로 간 형을 찾아 조국땅을 떠났다. 고아의 설음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방황하던 그가 인생의 보람을 느끼게 된것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그는 곧바른 성장의 길을 걸어왔다.

수령님의 품을 떠나서 자신의 영광과 행복에 대해 어찌 생각할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오늘 그는 수령님께 크나큰 걱정을 끼쳐드린 배은망덕한 놈으로 되고말았다.

《이따위 몸뚱이가 숨을 쉬여 무엇에 필요하단 말인가.》 그는 입속으로 나직이 뇌이였다.

이때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걷어차며 한사람이 영덕에게로 다가왔다.

《영덕동무.》

귀에 익은 그 부름소리에 한영덕은 흠칫 놀라며 돌아섰다. 다음순간 그는 삽시에 뜨거운 그 무엇이 머리를 때리는것을 느끼며 온몸이 굳어져버렸다. 김일이 이밤중에 한영덕을 찾아 강변으로 나온것이였다.

영덕의 손에서 담배꽁초가 떨어지고 그동안 몸에 쌓여있던 눈의 일부가 부실부실 떨어졌다.

《아니 이밤에 여기엔 어떻게?》 영덕의 커다래진 두눈이 이렇게 묻고있었다.

《설미가 우리 집에서 울고있더구만. 잘난 아버지의 해임철직앞에서 그 애의 마음이 편할리가 없겠지.》

그제야 한영덕은 먼발치에 서있는 처녀의 모습을 띄여보았다. 김일과 함께 온 딸애가 자기들을 지켜보고있는것이였다.

송구스러운 마음이 밀물처럼 가슴에 차올랐다.

(나같은 놈이 무엇이라고…)

《1부수상…동지…》

《그래 여기서 뭘하고있는거요?》

한영덕은 입이 얼어붙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1부수상동지를 볼 낯이… 없습니다.》

《동무에 대한 소리를 전해듣고 난 놀랐소. 그래 영덕동무의 사상정신상태가 그게 다요?》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얼어붙은 강바닥에 깔렸던 눈들이 장막처럼 일어나서 몰려갔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되여… 어떻게 되여 그런 과오를 범하게 되였는지…》

《내가 보건대 동무에겐 무서운 영웅주의와 소총명이 잠재해있었소.

다른 사람들을 다 자기 발밑으로 내려다보았지. 그래 내 말이 틀리오?》

《맞습니다.》

《인정하는군.》 김일의 얼굴에 얼핏 조소가 어리였다.

《그래서 다른 동무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지. 저만 저라고 냅다 내밀었지. 그런 면에서야 한영덕을 당해낼수가 있나. 군사관료주의, 독단이 어느 지경으로 사람을 끌고가는지 내 동무를 보고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오.》

영덕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길게 내그었다. 그 한숨소리는 휘파람같은 바람소리속에서도 뚜렷이 들리였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정말이지 이 손으로 동무에게 무서운 벌을 안겼으면 좋겠소. 한영덕이 감히 사상교양을 등한히 하다니…》

《아닙니다.》 영덕이 절규하듯 부르짖었다. 《제가 어떻게… 그럴수 없지요. 그럴수 없단 말입니다.》

《본의는 어떻든간에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지금 수령님을 따라 항일의 혈전만리를 함께 헤쳐온 전우들이 동무에 대해 얼마나 격분하고있는지 아는가, 응? 최현동무랑 림춘추동무랑 그리고 박성철동무랑… 모두 동무를 용서할수 없다는거야. 뭐라고 하는지 아오? 배신자가 나왔다고 해. 한영덕이 감히 우리 당의 고귀한 혁명전통을 무시했단 말이요.》

김일은 오른손 주먹으로 홱 눈보라를 후려갈기였다. 한영덕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하니 고이더니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리였다.

《1부수상동지도 알지 않습니까. 나야 그렇게까지 배은망덕한 놈이 될수는 없지 않습니까.》

바람은 더욱더 세차지고 눈발은 사납게 얼굴을 때리였다. 강변의 버드나무들이 몸부림치듯 마구 태질하였다.

김일의 눈굽도 쩌릿하니 젖어들었다. 그렇다, 나도 그렇지만 이 한영덕이도 수령님을 떠나서는 살수 없는 사람이다. 조선혁명이 수난을 겪던 그 시절 속절없이 시들어가던 우리는 모두 태양의 빛을 받아 다시 태여나지 않았던가.

중국 동북에서 수령님을 사무치게 그리며 흘러간 그 나날들이 되새겨졌다.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