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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0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6 장


4


《데거, 령감태기 배시때기가 열달찬 아낙네 배만 하지?》

《정말.》

《와 그래, 와 남의 귀시때길 잡아댕겨?》

붐비는 역구내에서 사투리가 진한 고향말투를 얼핏 귀결에 들은 응상은 가슴이 뭉클했다. 모처럼 귀에 박힌 고향사투리를 듣자 나서자란 고향으로 돌아왔다는것을 현실적으로 감득했던것이다.

마음을 어수선하게 흔들어놓던 착잡한 생각은 가뭇없이 날아나고 갈망에 타던 향수의 정이 울컥 치밀었다. 무례하게 팔굽을 치며 지나가는 캡을 눌러쓴 젊은이도, 개털모자를 푹 내리쓰고 땅만 내려다보며 걷는 농군도 혹시 고향사람이 아닌가 하여 정다운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설레이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나들문을 나서던 응상은 어리둥절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달피털모자에 락타오바를 걸친 신사들이며 여우털목도리를 두른 살색이 뽀얗고 몸집이 실한 녀인들이며 경찰복을 입은자들이며 제복을 입은 관리들이 넓은 공지에 빙 둘러서있다가 응상이 나타나자 한결같이 미소를 뿌리며 손을 흔드는것이였다.

《계응상선생의 귀향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향수내와 분내를 진하게 풍기는 젊은 녀자가 환영나온 사람들의 손길에 떠받들리운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다가와 생화묶음을 내미는것이였다. 응상은 어떻게 되여 정주읍내 신사유지들과 관리들이 역전까지 마중나와 자기를 환영하게 되였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수 없어 얼떠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그는 어정쩡하여 은행리사요, 우편국장이요, 정주원종장 장장이요, 경찰서 계장이요 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지 않으면 안되였다.

《선생이 저명한 농학사가 되여 돌아오신것은 우리 정주군의 더없는 영광입니다.》

낯도 코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바라지도 않던 환영을 받은 응상은 감동을 느끼기 전에 아연해지였다. 과연 그에게 언제 이런 살틀한 벗들과 친지들이 있었더란 말인가.

승용차에 실려 네거리의 음식점에 성대하게 차려놓은 연회상으로 곧장 안내된 응상은 반도생물학계의 거장으로 솟아오른 그의 경탄할만 한 노력에 대한 귀간지러운 치사에 얼이 칠 지경이였다.

그의 곁에 바투 붙어앉아 각별히 친절을 베풀며 음식을 권하던 은행리사란 사람이 정주원종장 기술주임으로 사업해달라는 말을 꺼냈을 때에야 응상은 정신이 펄쩍 들었다.

《선생이 우리 원종장 기술주임으로 들어서면 정주원종장에 돈소나기가 쏟아질겝니다. 그렇게 되면 선생이 정주의 1등갑부가 되는건 떼논 당상이지요.》

거나해진 원종장 왜장장은 류창한 조선말로 이렇게 툭 터놓고 지껄였다. 그제서야 응상은 읍내 신사유지들이 무엇때문에 초라한 차림새의 그를 이렇게 환대했는가 하는것을 알수 있었다.

《난 당신이 구성고을에 사는 계경삼이한테 돈 천원을 꿔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한치 앞도 내다볼줄 모르는 천치지요. 타산은 언제나 인망을 얻는데 방해가 되거던요. 아마 그때 당신이 나한테 찾아왔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겁니다.》

은행리사란 사람은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고 주어섬겼다.

《리사선생, 침바른 소리 마시오. 아무러면 당신과 같이 앞이 밝은 사람이 아무런 담보도 없는 숯쟁이아들한테 일금 천원을 꿔줄 바보짓은 하지 않았으리라고 보는데요.》

땅딸보 왜장장이 짐짓 정색하고 이렇게 지껄이자 은행리사는 《하하, 명철하신데요. 솔직히 말하면 그랬을겁니다. 너나없이 린색한탓으로 행운을 놓쳐버리지요.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계응상선생의 성공에 대하여 진실로 감탄하고있는겁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난생처음 소란스러운 연회에 참가한 응상은 머리속이 근질근질하고 속이 휘휘 내들리는것 같아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몸은 비록 연회석에 앉아있었으나 마음은 전혀 다른것을 찾아헤매고있었다. 그는 어찌하여 난데없는 이런 자리에 끌려들게 되였는지 알수 없다는듯 한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자, 조용돌 하시오. 이제 저명한 유전학교수이며 잠학과학자인 농학사 계응상선생이 여러분들에게 몇마디 말씀을 하시겠습니다.》

얼근하게 취한 은행리사가 량해를 구하듯 응상에게 능글진 미소를 던지며 말을 떼자 장내에서 짜락짜락 박수소리가 일었다. 응상은 낯이 벌개서 기다란 식탁앞에 빙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계응상선생, 어서 말씀하십시오.》

누군가가 재촉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응상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내는 조용해졌다. 과연 이들에게 무엇을 말할수 있단 말인가. 응상은 고개를 떨구고 상우의 어느 한점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조롱기가 내돋힌 번들거리는 상을 마주대고 무엇이라고 나직나직 속삭이는 나비넥타이신사들이 눈에 띄였다.

어느 한때도 상면해보지 않던 낯선 사람들, 부지중 응상은 도저히 함께 어울릴수 없는 그런 딴세계의 인간들과 자리를 같이했다는걸 뚜렷이 의식한 동시에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자기의 립장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였다.

《이렇게 환대해주어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의 기대에 보답할것 같지 못합니다. 학자들이란 원래 괴벽스러운 사람들이여서 너나없이 자기 세계에서 조용히 살기만을 바라지요. 저도 이런 류의 인간이여서 실험실이나 자그마하게 하나 꾸려놓고 과학연구를 하려고 합니다.》

장내에서 수군수군하는 말소리들이 응상의 귀전에까지 울려왔다.

《숯쟁이노릇이나 하던 주제에 돈냥이나 벌어왔다구 배를 튕기는군.》

《덕다리 사는 에미넨 중국서 송금해온 돈으루 논밭을 여러 정보 샀다면서?》

응상이 안색을 흐리며 자리에 앉자 은행리사가 선웃음을 치며 재빨리 말했다.

《계선생, 생각을 잘못하십니다. 우리 반도의 실정은 중국과는 딴판이라는걸 아셔야 합니다. 관건에 의탁하지 않고는 과학연구는 고사하고 명줄을 유지하기도 힘들단 말입니다. 선생은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뜻을 반에 반도 리해하지 못할겁니다. 두고보시오. 그저 경험자들인 우리 말을 따르는게 랑패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땅딸보 왜장장이 맞장구를 쳤다.

《아무리 가쯔라선생이 많은 자금을 가지고있다 해도 현대적인 실험기구들을 자비로 마련해놓고 연구사업을 해나간다는건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우리도 계선생의 처지를 충분히 참작하여 이런 권고를 하게 된겁니다.》

은행리사는 동의를 구하듯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눈길을 보냈다.

저마다 그렇다는듯 고개들을 끄덕이였다. 이를테면 조선인농학사가 아무리 뛰여난 재능을 지니고있다 해도 이 땅에서는 지방잠업기관의 일본관리밑에서 기술봉사나 하는것이 분수에 맞는 마땅한 일이라고 귀뜀해주는듯 하였다.

《감사합니다.》

응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맺고끊듯이 말했다.

《난 원래 그런 일을 할만 한 재목이 못됩니다. 습벽이 나쁘게 붙어서 혼자 연구사업을 하지 않고는 일을 할수 없지요.》

일순 정적이 깃든 연회석상에는 싸늘한 랭기가 돌았다.

《계선생, 우리는 선생이 조급하게 결심을 내릴것을 원치 않습니다. 심사숙고해주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의견을 드리는것은 우리들의 의사만이 아니라는것쯤은 아시겠지요?》

은행리사의 아량을 보이는듯 한 태도에는 위협조의 예리한 그 무엇이 암시되고있었다. 응상은 미간을 찌프리며 번번한 얼굴에 칼날처럼 박힌 그의 작은 눈을 바라보았다. 은행리사는 서슬푸른 작은 눈매에 미소를 띠고 오금을 박듯이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선생이 만족한 대답을 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공연히 기대를 가지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이 50이 가까와오도록 고치지 못한 성미를 이마적에 와서 급스리 고칠수야 없지 않습니까.》

응상이 딱 잘라 말했다. 하여 읍내 유지들이 입을 모아 응상을 설복시켜보려고 끈덕진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 모든것이 수포로 되고말았다. 응상은 왜장장과 은행리사들이 승용차를 구해주겠다는 친절한 권유도 물리치고 짐군을 하나 얻어 트렁크를 지워 앞세우고 터벅터벅 걸어서 물곬로 올라갔다. 응상이 음식점에서 사라지자 읍내 유지들은 저마끔 한마디씩 지껄였다.

《흥, 내 참 눈꼴이 사나워서. 거지행색이나 겨우 면한 주제에 그 좋은 만냥짜리 관직을 마다하다니.》

《얼치기가 아니면 불순분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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