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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28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6 장


2


날이 어두워올무렵 안경쟁이가 나타나서 응상의 손에 족쇄를 채우고 머리우에는 고깔을 씌워 밖으로 끌고나갔다.

응상의 가슴은 분노로 뒤설레였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체포하여 중죄인처럼 끌고다니는 법이 어데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여기서는 반항해야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마당에는 발동을 건 수인차가 서있었다.

역으로 실려나가 객차에 오른 그는 밤새도록 흔들리는 차칸에 몸을 맡겼다. 그는 국경도시 신의주에 자리잡고있는 평안북도 경찰부 예심감방으로 이송되였다.

밤새 첫눈이 소리없이 내리였다. 바람이 일 때마다 눈송이가 뙤창을 거쳐 감방으로 날아들었다. 미결수들이 머무르는 감방에는 침구도 없었다. 입고온 봄가을외투를 이불삼아 덮고 차디찬 마루바닥에 누워 뙤창을 내다보는 응상의 마음은 암담하였다.

트렁크안에서 까나오게 된 누에를 구원해볼 희망은 완전히 사라지고말았다. 황금색누에알마저 까나오는 시기에 온도억제를 당하여 죽고말았을것이기때문이다.

만리타향에서 애써 구해온 귀중한 누에를 고국땅에 돌아와 애무하게 죽이고도 하소할데조차 없지 않는가. 이러다가는 귀중한 누에알을 모조리 얼구어죽이고말것 같았다. 응상은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낮에야 그는 왜놈예심계장한테 불리워나갔다. 유들유들한 몸집에 기름기가 주르르 흐르는 예심계장은 방금 우유를 진하게 탄 커피를 마신 모양이였다. 입귀에는 뽀얀 우유방울이 말라붙어있었다.

응상에게 있어서는 그렇게도 절박한 문제가 이자에게는 식간에 커피를 마시고나서 나누게 되는 심심풀이 대화밖에 되지 않는듯 했다. 그자는 손수건으로 입언저리를 닦으면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당신이 중국 광동에 건너가 있은게 8년 6개월이 맞소?》

《맞소.》

《당신이 우리와 전쟁상태에 있는 중국에 건너가서 한 일에 대해서는 지금 조회중이요. 그러니 이제부터 종이와 연필을 줄테니 중국에서 반일운동에 참가한 죄목을 빠짐없이 적어내시오.》

《좋소. 그런데 한가지 요구조건이 있소.》

《뭐요?》

《내 트렁크안에는 나의 과학연구자료인 누에알들이 들어있소. 내 집에 련락해서 누에종자들을 간수하도록 해주시오. 당신이 실험유전학자에게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것인가를 리해한다면 말이요.》

《미결수에겐 면회가 허락되지 않소.》

《그래서 이렇게 의견을 내는게 아니요?》

《혹시 그 누에알들에 병균은 없소?》

《모르겠소. 아마 그 누에알들에 반일사상이 숨어있을 념려는 없을듯 하오.》

《이만합시다. 감방에 가서 우리가 요구하는것을 성실하게 쓰시오.》

심문은 이것으로 끝났다. 뙤창으로 엇비슴히 비쳐들던 초겨울의 해살은 이내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그는 무익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고 간수에게 당부하여 도립도서관에서 기하라가 쓴 《실험유전학》을 빌려다가 들여다보았다. 조회요, 확인이요 하는걸 보니 예심이 인차 끝날것 같지 않았다. 기가 막힌 일이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여러가지 밀품종을 가지고 유전의 원리들을 해석하고 분석한 기하라의 책은 유전학이 농업실천에 점점 더 폭넓게 접근하고있는 최근 생물학계의 추세를 그대로 보여주고있었다.

미국의 말러가 초파리에 엑스선을 쪼여 인위적인 갑작변이를 일으킨후 더욱더 많은 유전학자들이 목적의식적인 육종을 실현하려고 애쓰고있었다.

응상도 새로운 동식물육종의 무한한 가능성이 돌연변이현상을 얼마나 인위적으로 옳게 활용하는가에 크게 달려있다는것을 간파했다.

그는 중개농공학교에서 화학시약에 의한 돌연변이실험을 정력적으로 추진시키였다. 그 과정에 X시약을 가지고 누에에서 염색체를 떼내는데 성공했다.

만일 일본비행기가 광동상공에 날아들어 폭격을 개시하여 유전연구실험들이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흥미있는 그의 이 실험들은 종결을 보고도 남음이 있었을것이다.

그런데 폭격을 피하여 고국으로 돌아오니 감옥이 그를 기다리고있는것이 아닌가.

계응상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남들은 최신식설비를 갖춘 유전학전문연구소에서 낮에 밤을 이어 과학연구사업을 해도 미처 앞선 나라들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데 우리는 제 나라가 없어 여기저기 쫓겨다니며 연구사업을 하다못해 애무하게 감옥에까지 들어와 손발이 묶여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응상은 종이를 펼쳐놓고 펜을 들었다.

(일본을 반대한 일이 있는가고?) 어이가 없었다. 모름지기 그가 만주시험장으로 가지 않고 남중국으로 간것이 반일죄라면 죄일것이다. 적대국의 전략물자의 하나인 누에고치생산을 과학기술적으로 도왔으니 그것도 죄목으로 될것이고 그곳에서 그가 한 일이란 과학연구와 교육사업뿐이였으나 전적으로 그렇다고만 할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중국으로 건너가있는 기회에 일본군국주의의 야만적인 침략행위를 더욱 뼈저리게 느끼였다고 할수 있다. 이렇다하게 일제를 반대하여 투쟁한것은 없지만 그가 일제를 뼈속까지 증오하고있다는것만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였다. 그는 사실대로 한페지가량 써서 간수에게 주었다.

며칠후에 그는 또다시 호출을 받았다. 왜놈고등계형사는 그가 쓴것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게 다요?》

《그렇소.》

《계선생! 과학자란 실험에 의해서 증명된 사실적자료들만을 인정한다던데 이걸 어떻게 믿을수 있겠소?》

고등계형사는 문서철을 뒤적거리였다. 겉가위에 계응상이라고 쓴 문서철이였다. 필경 그 문서에는 응상이 1919년 도꾜에서 반일삐라를 쓰고 시위투쟁을 했다는 죄목으로 히비야경찰서에 체포되여 심문을 받다가 정주헌병대로 이송되여 한달가량이나 옥밥을 먹고나왔다는 내용으로부터 시작하여 규슈제대농학부를 마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내용들이 상세히 적혀있을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에게 중국으로 건너가 반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를 들씌우면서 이렇게 고통을 주는것인가? 과연 이자들이 이렇게 하여 노리는 목적이 무엇인가. 가소롭기 그지없어 고소를 머금었다.

《내가 중국에 가서 한 일은 그게 다요!》

그러나 턱이 뾰족하게 생긴 고등계형사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지 말고 솔직하게 자기의 죄상을 고백하는게 좋소. 그러지 않고 우리가 근거를 내놓은 다음에 자기의 죄를 실토한다면 좋지 못할것이요.》

《나는 그이상 더 말할것이 없소.》

《나는 선생이 결백한 학자인줄 알았더니 기대에 너무 어그러지는데요. 오늘은 이만합시다. 가서 좀더 생각해보시오. 선생이 진실을 말할 때까지는 여기서 절대로 나가지 못한다는것을 다시한번 상기시키는바이요.》

고등계형사는 이틀에 한번씩 응상을 불러내여 죄상을 고백하라는 심문을 들이댔다. 그러나 사실 그는 더 말할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없는 죄상을 만들어 고백할수는 없지 않는가.

그러던 어느날 감방문이 덜컹 하고 열리더니 간수놈의 늘어진 목소리가 날아왔다.

《계응상, 밖으로 나와.》

응상은 간수놈의 뒤를 따라 긴 복도를 걸어갔다.

뜻밖에도 그는 어둑시근한 면회실로 들어섰다.

《처가 면회를 왔다. 경찰부장의 특별지시로 허락된것이니 불손한 말을 건네서는 안돼.》

오금을 박아 뇌까리는 간수의 말이였다.

《처가?》

응상은 투박한 의자에 주저앉아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조심스레 나는 문소리에 슬며시 눈을 뜬 그는 어설픈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회색치마저고리를 입은 중년의 녀인이 면회실로 들어섰다.

그 녀자는 목에 두른 밤색목도리를 풀어들고 얼빠진 사람처럼 주춤주춤 다가왔다.

그는 분명 중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고향에 들렸다가 만나본 그의 안해였다.

《이게 웬일이예요?》

말끝을 흐린 그는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응상은 무거운 어조로 말을 건네였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안해는 고개를 돌린채 소리없이 흐느껴울기만 했다. 응상도 더는 말문을 열수가 없었다.

그가 그리도 애타게 그려보던 안해와의 상봉은 이런것이 아니였다. 환대는 받지 못할지언정 일가친척들의 따뜻한 혈육의 정에 묻혀 귀향하리란것만은 의심치 않았다. 안해가 흐느낌을 씹어삼키며 옷고름으로 눈굽을 훔치고 돌아서자 응상은 나직이 물었다.

《부모님들은 무고한지…》

안해는 또다시 목이 메여 어쩔바를 모르더니 고개를 푹 수그리며 중얼거리였다.

《아버님은 간해 겨울에 고뿔을 앓으시다가 그만…》

《돌아가셨단 말이요?》

《예.…》

기여들어갔던 안해의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숨을 거두시기 전에 줄곧 당신을 찾으셨어요.》

《아! 그렇게 되셨는가.》

비통한 심정에 휩싸인 응상의 목소리는 떨려나왔다. 바지개를 지고 어리골로 들어가 숯을 굽던 자식이 이젠 어엿한 학자가 되여 돌아왔노라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누구보다먼저 아뢰이리라 생각했던 마음의 기둥이 일시에 무너져내리였다.

응상은 샘솟듯 솟아나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무슨 죄가 있다고 당신을 여기에 가두고있대요?》

면회실 한쪽구석에 앉아있는 간수를 쳐다보며 바삐 건네는 안해의 말을 듣고서야 응상은 무겁게 머리를 들었다.

《죄?》 응상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죄가 있어야만 여기 들어오는줄 아오?》

《에헴, 여기선 그런 말 하게 되여있지 않아.》

상판이 길쭉한 간수가 성난 눈찌를 하고 이쪽을 건너다보았다. 두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공기가 희박해진듯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났다.

안해는 보퉁이를 펼치고 응상이 좋아하는 시루떡이며 팥밥에 개장국통을 꺼내놓았다. 오래동안 입에 대보지 못한 귀한 음식들이였으나 어느 하나도 맛갈스러워보이지 않았다. 식은 단고기국이 제맛이 날리 없기도 했지만 격분과 설음이 목구멍까지 꽉 차올라 입맛을 젖히게 했던것이다.

간수가 벽시계를 쳐다보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면회시간이 끝난것이다. 안해는 겁에 질린 퀭한 눈으로 남편을 응시하다가 허둥지둥 면회실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런 연후에도 계응상은 한달동안이나 예심감방에 갇힌채 심문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후날 그는 자기의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썼다.

《…1939년 2월 25일부터 4월 5일까지 근 달반동안 나는 중국에서 반일운동에 참여했었다는 혐의로 평북도경찰부에 감금되여 심문을 받다가 석방되였다. 해외에서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무 죄도 없이 변기통이 껴달린 감방에 갇혀 고통을 당하던 그 나날에 나는 버림받은 고아와 같은 쓰라린 비애를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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