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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5 장


6


응상은 하이퐁항에서 한마장쯤 떨어진 바다가마을 한 어부의 집에 거처를 정하고 배편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허나 또다시 고치에서 나뱅이가 나올 때까지도 배편은 나지지 않았다. 울며 겨자먹기로 알받이를 서두르지 않을수 없었다.

여기저기로 끌고다니며 누에를 제대로 먹여 키우지 못한탓인지 나뱅이들은 한날한시에 나오지 않았다. 층하가 심하여 마지막알받이를 끝내는데 열흘이나 걸렸다. 갈대속에 누에알들을 집어넣고 길차비를 끝냈으나 여전히 배편은 나지지 않았다.

예서 어물어물하다가는 또다시 타국의 낯선 바다가마을에서 누에를 치며 허무하게 세월을 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초조해지는 마음을 다잡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주저앉아서 오복전 졸이듯 속만 태우고있을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응상은 매일 주인집 아이에게 쪽지편지를 써서 중국음식점 접대원한테 보내여 배편을 알아보게 했다. 빈번히 맞춤한 배편이 없다는 소식이 왔다. 황금같은 시간을 무한정 랑비하는것을 더는 참고있을수가 없었다.

그는 누에알들을 갈라내여 어업회사의 랭동고에 넣고 그의 발육을 억제하는 실험에 달라붙었다. 귀중한 누에알을 고국으로 가지고 가기 위해서도 이 실험은 절박했다. 후날 그의 선집에 들어간 랭장법에 의한 누에알깨우기조절법은 이런 불우한 방랑의 길에서 과학적해결책을 찾은것이였다.

누에의 휴면기는 걷잡을수없이 흘러가는데 의연히 배편은 나지지 않았다. 더는 기다려낼수가 없어서 응상은 마침내 길차비를 하고 홍콩을 향해 북행렬차에 몸을 실었다.

차창밖으로는 써레를 찬 물소들이 느릿느릿 돌아가고 망고나무며 빵나무그늘밑에 시름없이 앉아있는 농군들의 모습이 언듯언듯 흘러가고있었다. 지루한 려행끝에 응상은 목적한 홍콩항에 들어설수 있었다.

그가 남방과일을 싣고 인천으로 건너가는 배편을 얻은것은 그때로부터 열흘이 지나서였다. 과일상자들을 빼곡이 실은 짐칸구석에 자리를 잡긴 했으나 응상은 머리맡에 놓은 트렁크에 마음이 씌여 줄곧 속이 조마조마했다.

다른 누에종자들은 아직도 휴면기가 적지 않게 남아있어 별문제 없었지만 극도의 다화성인 피마주누에는 또다시 까나올 때가 되였던것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배에 오르기 전에 얼음을 다섯근이나 사서 트렁크안에 넣고 누에알을 랭장억제하느라 하였지만 벌써 알껍데기가 엷어지고있는게 헨둥하게 알려졌던것이다.

화물선이 대만해협을 빠져나와 백파 출렁이는 난바다에 나서자 파도가 사납게 일었다. 시커멓게 흐린 하늘에서 와들비가 냅다 쏟아지더니 잇달아 북풍이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응상은 점점 더 심해지는 멀미를 이겨내려고 빵창을 밀어제끼고 갑판우로 올라갔다. 화물선은 산마루같은 파도우에 올라앉을 때마다 선체를 부르르 떨었다.

《쏴아, 처절썩…》

파도의 갈기는 배전을 넘어 갑판우를 마구 휩쓸며 돌아쳤다. 쩝쩔한 바다물에 머리를 적시니 흐리터분한 정신이 얼마간 개이는듯 하였다. 그는 마구 쥐여뿌리는듯 한 파도의 포말에 옷깃을 적시며 배전에 꽉 붙어있었다.

몸이 싸늘하게 얼어들었다. 빵창을 열고 후끈한 짐칸으로 내려가자 또다시 머리가 내둘리우고 어질어질하여 어금이를 꾹 깨물고 빈 상자우에 누웠다. 어느때까지나 이렇게 누워있을수는 없었다. 트렁크에서 얼음주머니며 질식되여 죽은 뱀주머니를 바다에 내던진지도 이틀이 지났던것이다.

그는 몸을 일으키여 불안한 예감을 어쩌지 못하며 트렁크를 조심스레 열었다. 순간 그의 입귀가 바르르 떨리였다. 개미누에 네댓마리가 갈대묶음에서 아물거리는게 눈에 띄였던것이다.

응상은 재빨리 새깃털을 찾아내여 개미누에를 종이우에 떨어놓았다. 이때 갈대속에서 개미누에들이 새까맣게 기여나왔다. 피마주누에알이 모조리 터진것이다.

그는 황급히 사다리를 밟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곧장 식당으로 달려가 앞치마를 두르고 낮밥을 짓고있는 취사원에게 간청했다.

《부루가 있으면 좀 주시오. 돈은 달라는대로 주겠소.》

《부루? 쌈싸먹고 배멀미 덜어보자구 그럽니까, 몇줌 있습니다. 돈내시오.》

취사원은 한쪽구석에서 시들은 부루 몇줌을 내주었다. 응상은 달라는대로 돈을 쥐여주고 부루를 두손에 거머쥐고 짐칸으로 내려갔다. 피마주누에는 부루를 먹는다. 허나 설사 부루가 무데기로 있다고 해도 그것만 먹어가지고는 헛고치를 짓고만다.

부루를 잘게 썰어 개미누에를 받아놓은 종이우에 골고루 뿌려주자 아물아물하면서 보이지 않는 입을 분주히 놀리는게 확연했다. 그러나 그나마의 부루도 이틀이 지나자 동이 나고말았다. 그사이에도 곱으로 큰 누에들이 먹이를 먹겠다고 대가리를 쳐들고 휘저었다. 먹이를 달라고 목청이 터지게 부르짖는것 같아 두손으로 귀를 막았다.

피가 터지게 종이장을 핥는 누에를 내려다보고만 있을수가 없어 갑판으로 달아올라가 미친듯이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얼핏 눈에 띠는 귤껍질을 한앞자락 안고 내려왔다.

부질없는짓인줄 알면서도 귤껍질을 썰어서 주어보았다. 굶주린 누에들은 앙증스러운 입을 놀리며 귤껍질을 먹는것 같더니 이내 머리를 흔들며 바라다닌다.

무릎을 꿇고앉아 맥없이 늘어지고있는 피마주누에를 내려다보는 응상의 두눈에 눈물이 그렁하니 고이였다. 짐칸창밖에서는 시퍼런 파도가 끝없이 넘실거리였다. 어디론가 무작정 내달려가 누에먹이를 아름으로 따오고싶었지만 보이는건 무정한 망망대해뿐이였다. 그는 두손으로 가슴을 쥐여뜯었다.

(아, 너희들을 예까지 끌고와서 무리죽음시키다니.)

십년세월 이국땅을 헤매이면서 하나하나 구해들인 누에종자들은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것이 없었다. 허나 이 피마주누에만은 각별한 정을 붙여온 그였다.

한것은 이 누에가 욕심을 낼만 한 특성을 가지고있어 우리 나라 기후에 적응시키기만 하면 그 어데서나 마음껏 키울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있기때문인지 몰랐다. 또한 이 누에는 가중나무잎도 잘 먹는다.

그런데 가중나무는 조선의 산들에는 그 어데서나 잘 자라고있다. 이런 색다른 누에를 우리 나라에서 칠수 있도록 해놓는다면 농민들이 얼마나 좋아할것인가.

바람은 자고 바다는 새색시같이 참해졌다.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잔잔한 바다가 가없이 누워있었다. 해살이 퍼지면서 해무는 서서히 걷히였다. 점점 넓게 트이는 공간사이로 웅건한 산발이 우렷이 안겨왔다. 꿈결에도 잊지 못한 고국의 산발이였다.

《이 불쌍한것들아!》

배전에 꿇어앉은 응상은 새까맣게 타죽은 누에들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눈물을 머금고 속삭였다.

《너희들도 주인을 잘못 만나 험한 바다우에서 객사하게 되였구나!》

응상은 소리없이 눈물을 뿌리며 굶어죽은 누에들을 감싼 종이를 바다에 던졌다. 죽은지는 이미 오래였으나 고국의 산넋으로 만들고싶던 애틋한 심정을 달래일 길이 없어 예까지 싣고와서야 수장하게 됐는지 몰랐다.

해빛을 등진 고국의 산발은 침울하고 무거운 기색을 띠였다. 차고 싸늘한 기운이 떠도는 마가을의 랭랭한 하늘아래 푸른빛을 잃은 대지는 말이 없었다. 응상의 가슴은 알수 없는 불안과 격동으로 높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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