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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5 장


5


하노이에 도착한 계응상은 항가까이에 있는 려관에 묵으면서 보름나마 뛰여다녔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다. 락심한 응상은 중국음식점 구석의 둥근 식탁에 시름없이 앉아있었다.

그 어디에도 애타는 심정을 함께 의논해볼 사람이 없는게 무엇보다 안타까왔다. 그래도 귀에 익은 중국말을 들으며 입에 붙여본 중국음식을 먹어보는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여기에 앉아있으면 어찌다가 찾아오는 중국화물선 선원들의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조선으로 건너가는 배편을 알아낼수도 있다고 보았던것이다. 그러나 이즈막에는 조선으로 건너가는 배편들이 완전히 끊어지다싶이했다.

《안녕하십니까?》

30안팎의 싹싹한 중국인 남자접대원이 반색하며 다가왔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밥과 남새료리 몇가지를 주오. 그런데 내가 부탁하던걸 알아보았소?》

《예, 이제 곧 말씀드리지요.》

접대원은 응상이 좋아하는 신선한 오이채며 안남미로 지은 밥과 남새볶음을 가져왔다. 그는 소란하게 떠들어대는 중국선원들쪽으로 눈길을 던지며 나직이 전해주었다.

《홍콩에서 온 〈태향산〉호 선원들입니다. 남쪽으로 빠져나오다가 일본군함들한테 걸려서 혼났다구 합니다. 캄보쟈를 거쳐서 곧장 쟈카르타에 건너가 생고무를 싣고온다고 합니다.

돌아갈 때도 하노이에 들렸다가 홍콩으로 건너간답니다.》

응상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는 음식을 드는둥마는둥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접대원청년이 발끝걸음으로 재빨리 다가왔다.

《왜 벌써 일어나십니까?》

《잘 먹었네.》

응상은 음식값을 푼푼히 꺼내주고 다시 부탁했다.

《나는 해안거리에서 외따로 떨어진 x려인숙에 들고있네. 혹시 배편이 나지거든 꼭 좀 알려주게.》

《여부가 있습니까.》 접대원은 허리를 갑신하며 대답했다.

응상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문가까이에 놓인 식탁에서 왝왝 소리치는 성급한 손님들에게 술과 료리를 날라다주고 돌아서던 접대원은 벌써 열흘째나 찾아왔다가 근심에 싸여 돌아가는 중년의 조선사람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몇차례인지 모르게 얼음주머니를 갈아채웠지만 때가 되자 누에들은 가죽트렁크안에서 까나와 아물거리기 시작했다. 전날 해안구역의 중국료리집 접대원이 찾아와 며칠내로 인천으로 건너가는 배편이 있을수 있다는 말을 들은 응상의 마음은 황급해졌다.

그러나 그는 누에들을 살리기 위하여 뽕밭이 있는 하노이교외로 나갔다. 갈대이영을 이고 참대울바자를 둘러친 농가에서 방 한칸을 빌려가지고 참대가치로 잠박을 만들어놓고 누에를 치는데 달라붙었다.

무명 석자를 짜도 틀은 제대로 차린다고 한가지 품종에 100마리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150종을 따로따로 갈라놓고 키워내자니 잠시도 누에곁을 떠날수가 없었다. 애기누에때는 뽕이 얼마 들지 않았지만 누에가 넉잠씩 자고나자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출입문에 촘촘한 그물모양의 문발을 쳐놓았지만 파리나 모기가 달려들어 악착스레 누에를 빨아먹는통에 상한 누에들이 적지 않았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근 십여년동안 유지해오던 희귀한 누에종자를 씨종자 하나 남기지 않고 잃을것만 같아 몸서리가 쳐졌다.

그는 누에잠박을 빼곡이 들여놓은 방 한쪽에 지적을 펴놓고 새우잠을 잤다. 누에는 뽕을 아귀처럼 먹어댔다. 돈을 주고 주인집 녀자한테 부탁하여 산뽕을 따다가 먹이기도 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여 눈자위에 뻘건 피줄이 살아올랐다.

그러나 응상은 누에를 골고루 잘 먹여 한날한시에 일제히 올리려고 밤잠도 제대로 자지 않았다.

련 사흘 폭우가 내렸다. 응상은 참대바구니를 지게에 지고 뒤산으로 올라갔다. 주인집에서 도롱이를 빌려썼지만 온몸은 순식간에 물참봉이 되였다.

그는 풀숲이 허리를 치는 산속에서 한잎두잎 산뽕을 따고 가래나무잎을 따내리였다. 참대바구니에 뽕잎을 가득채웠을 때에는 날이 어둡고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였다.

그는 어금이를 꾹 다물고 길을 재촉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조급했다. 집을 나설 때 뽕잎을 푼푼히 주지 못했는데 넉잠 자고난 누에는 아지뽕을 굶주린 황소 꼴단 삼키듯 한다. 뽕잎을 들장낸 누에들은 모조리 바라나오기가 일쑤이다. 그렇게 되면 피마주누에나 금색누에와 같이 몸색이 유표한것은 골라서 제 잠박에 올려놓을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것은 모조리 뒤섞이고말것이 아닌가.

불안한 심정을 걷잡지 못하며 참대삽짝을 제끼고 웃방으로 들어선 그는 아연실색하여 우뚝 서버렸다. 방바닥에 허연 누에가 한벌 깔려 돌아치고있었다. 뒤따라 달려온 주인집내외는 방바닥에서 바라다니는 누에를 덤벅덤벅 쥐여 잠박우에 올려놓으려 했다. 응상은 팔을 쳐들어 그들의 행동을 제지시켰다. 거들어주려면 방금 따온 뽕잎에서 물기를 씻어내는 일을 해달라는 시늉을 했다. 주인내외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응상은 울상이 되여 표식이 뚜렷한 누에들부터 차근차근 골라서 제잠박에 올려놓았다. 품종을 감별할줄 아는 섬세하고 예민한 눈초리를 지녔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쩔번 했는가. 그러나 아쉽지만 명확치 않은 수십마리의 누에들은 삼태기에 담아 밖에 내던지지 않을수 없었다.

겨우 흩어진 누에들을 수습해놓고 젖은 뽕을 마른 걸레로 빡빡 문질러 잠박우에 올려놓자 밤은 이미 깊었다. 주인집에서 밥상우에 가져다놓은 만두와 참대순볶음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

한겻동안 따온 뽕은 누에들이 밤사이에 말끔히 먹어치웠다. 응상은 어뜩새벽에 자전거를 빌려타고 삼십여리나 떨어진 농촌마을로 찾아가 뽕을 사서 짐틀우에 가득 싣고 돌아왔다.

때늦은 조반을 먹고 매시근하여 벽에 기대여 졸고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주인내외와 무엇이라고 말을 주고받는것 같더니 웃방문이 열리였다. 고개를 든 응상은 두눈을 번쩍 떴다. 온몸이 비에 후줄근하게 젖은 해안거리 중국료리집 접대원청년이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그의 앞에 서있는것이였다.

《에- 겨우 찾았습니다. 마침 오늘 쉬는 날이여서…》

부산을 떨며 말머리를 뗀 청년은 재빨리 입을 놀리였다.

《선생님, 배편이 나졌습니다. 래일 아침 8시경 조선 부산으로 안남미를 싣고가는 흥콩짐배가 하노이 2부두에서 떠납니다. 내가 갑판장과 교섭까지 다 해놓았습니다.》

《래일 아침 8시에?》

계응상은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수만마리의 누에를 내려다보며 물러앉듯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안타까이 속삭였다.

《이 누에들은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원참 선생님두, 이따위 벌레들때문에 배편을 놓친다는거야 말이 됩니까? 이런 배편은 두번다시 만나기 어려올겁니다.》

응상은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쥔채 한동안 까닥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천신만고하여 보존한 이 누에품종들을 애지중지 살려내서 조국으로 가져간다 해도 반겨맞아줄 사람이 없다는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 누에들을 이역만리에 내던지고 빈몸으로 돌아갈수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타는듯이 간절한 눈길로 접대원청년을 쳐다보았다.

《친구, 고맙네. 그러나 나는 누에를 치는 나그네라네. 이 누에를 떼여놓은 나의 생활이란 생각조차 할수 없네. 나는 웰남에서 해를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이 누에들에서 알을 받아가지고야 조선으로 가겠네.》

접대원청년은 리해할수 없다는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나 이 중년의 사나이가 그저 누에를 키우는 범속한 사람이 아니란것만은 짐작이 된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아갔다.

이튿날 새벽, 깨여나자마자 뒤산으로 올라간 응상은 가중나무며 피마주잎을 포대로 가득 따가지고 농가로 내려왔다. 누에의 똥갈이를 해주고 밖으로 나온 응상은 꺼칠한 망고나무에 등을 기대인채 안개속에 잠긴 부두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소스라치듯 회중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아침 8시였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였다.

애타는 기다림도 사라지고 바닥없는 허탈의 나락에 빠진 그는 물녘에 기신없이 주저앉았다.

그때 《부-응.》하고 둔중한 배고동소리가 부두쪽에서 은은히 울려왔다. 조여드는 가슴을 부여안고 사정없이 뒤흔드는 배고동소리를 새겨듣는 그의 눈에는 뿌연 안개가 서리였다. 어느덧 그의 눈가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리였다.

가없이 펼쳐진 낯설은 바다는 훈훈한 바람을 안고 물장구를 치는 어린애와 같이 즐겁게 뛰놀았다. 《솨아, 솨아.》 기슭에 부서지며 뒹구는 파도소리는 또 얼마나 정다웠으랴. 《아우, 아우-》 한가롭게 날아예는 갈매기의 우짖음소리도 한없이 유정하였다. 응상은 애타는 갈망을 안고 몸부림쳤다.

아, 언제면 길섶에 민들레 피여있고 울밑에서 참새떼 재재거리는 정다운 고향땅에 가볼수 있을가. 시내가에 늘어선 수양버들의 설레임소리를 들으며 만시름을 잊고 그 상가지우에서 우짖는 반가운 까치의 우짖음소리를 들어볼수 있을가.

어느덧 누에는 고치를 틀고 나뱅이로 되여 알을 까놓았으나 하노이에서는 더는 고국으로 가는 배편을 찾을 길이 없었다. 다행히도 친절한 중국음식점의 접대원이 잊지 않고 며칠후 하이퐁에서 제주도로 건너가는 배편이 있다는 전갈을 가지고 찾아왔다. 응상이 그에게 수고한 값을 치르려 하자 그는 노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러지 마십시오. 나도 부모처자를 천리밖에 두고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입니다. …》

응상은 그의 두손을 꼭 잡고 오래도록 놓을줄을 몰랐다.

이튿날 응상은 또다시 짐을 꾸려가지고 기차를 타고 하이퐁으로 찾아가 닥치는대로 마차를 잡아타고 하노이음식점 접대원이 일러준대로 해안통의 자그마한 중국료리집에 찾아갔다. 여기에도 항구로 드나드는 배물계에 환한 접대원이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주도로 건너가는 배는 그가 도착하기 전날 떠나가버렸다는것이였다.

응상은 맥없이 식탁앞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강심을 먹고 예까지 찾아왔던 의지의 한쪼박마저 말끔히 빠져달아나 버리고만듯싶었다.

《무슨 음식을 드시겠습니까?》

처녀처럼 몸매가 호리호리한 청년이 거듭 묻는 소리를 듣고야 감았던 눈을 스르시 떴다. 그는 좋을대로 하라는듯 팔을 저었다. 접대원은 제 좋을대로 문어볶음에 맥주를 가져다놓았지만 응상은 두팔굽을 식탁우에 얹은채 까딱하지 않았다. 물먹은 솜같이 나른해진 육신은 땅속으로 잦아드는것만 같았고 눈정기는 뿌옇게 흐려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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