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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5 장


3


《서유럽에서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유전학이 장족의 발전을 이룩하기 시작했지만 우리 중국에서는 전국각지에서 새별처럼 돋아오른 개별적인 유전학자들과 계응상과 같은 학자들에 의하여 첫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움틔우고 자래운 유전학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전국을 통일한 다음에도 인차 생물학을 세계적수준에서 발전시켜나갈수 있었다고 봅니다. 》

밤도 퍼그나 깊었다. 계원삼은 월귤나무잎새 살랑거리는 정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량반걸은 원삼을 조선의 공식대표단성원중의 한사람이기 전에 오래동안 헤여져있던 친혈육을 맞이하듯이 그렇게도 극진히 맞아주었다.

《오늘 저녁은 자네의 부친이 묵고있던 이 집에서 옛말이나 하면서 함께 쉬자구. 난 여기서 자네 부친과 침식을 같이하며 과학론문을 집필하기도 하고 밤새워 론쟁을 벌린적도 한두번이 아니라네.》

량반걸의 부드럽고 다감한 빛이 넘치는 얼굴에는 진정 옛친우를 못잊어하는 숙연한 빛이 얼른거리군 하였다. 자리를 펴고 누웠으나 원삼은 좀체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잠자리가 불편한 모양이군요.》

곁에 누운 량반걸이 다심한 어조로 말했다.

《아닙니다. 웬일인지 이 고장의 모든것이 제가 오래전부터 눈에 익혀두었던것처럼 친숙하게 안겨옵니다. 부친은 자주 저희들에게 여기서 겪었던 잊을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군 했지요. 참, 그때 량반걸선생이 아니였다면 저의 부친의 운명이 어떻게 되였겠습니까?》

《원, 무슨 소리를 하오? 그 일은 돌이켜보기조차 괴롭소.》

량반걸은 부지불식간에 몸서리를 치며 둥근 창문 저쪽에 무한대로 펼쳐진 람청색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나도 그 가없는 공간속에서 영원히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비참한 력사의 한순간을 련상하고있는듯이…

계원삼의 눈앞에도 부친이 몇번째인지 모르게 들려준 그 잊지 못할 이야기들이 생생한 화폭으로 펼쳐졌다.

1938년 봄 어느날 아침 나들이옷차림을한 량반걸이 응상의 방으로 찾아왔다. 웬일인지 그의 얼굴에는 전에 볼수 없던 근심이 어려있었다.

그는 응상의 곁에 놓인 교의에 앉으며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계선생, 내 오늘 남경엘 좀 다녀오겠소.》

《남경엘?》

응상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베이징 서남방 로구교에서 중국군대를 공격함으로써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본군대는 천진, 상해를 점령한데 이어 지난 12월에는 남경을 점령했다. 신문을 통하여 남경에 침입한 일본군의 만행보도를 들은 응상은 치를 떨었다.

일본 화중파견군사령관 미쯔이 이시네휘하의 6사단은 남경 화평문근처에 모여든 중국사람 수백명을 삼대 쓸어눕히듯 하였다. 6사단장 다니놈은 자기의 병사들에게 저마다 중국인 100명을 죽이는 경쟁을 벌리라고 명령하고 그를 집행한자들에게는 상을 주겠다고까지 하였다는것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지판으로 찾아가겠다는거요?》

《안전하게 다녀올수 있는 통로가 있으니 념려마시오.》

량반걸은 흔연히 말했다.

그가 갑자기 남경에 다녀오겠다고 하는것은 이런 사태가 빚어지리란걸 예견하지 못하고 남경의 X상회에 계약해놓은 수십만원어치에 해당한 실험기구들과 화학시약들을 가져오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배수가 높은 새로운 현미경이며 건조기, 랭동기, 시약…

교잡의 방법으로 새로운 누에를 육종하는 사업은 한계점에 도달한듯 싶었다. 새로운 방법으로 육종사업을 진행하고 유전실험을 추진시키는데서 현대적인 과학기구를 구입하는 문제는 더는 지체할수 없는 문제였다. 한데 이 혼잡통에 그 귀중한 실험기구들이 파괴소각되였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 길을 떠나면서 량반걸이 걱정하는것은 그것때문만이 아니였다.

일본군대가 남경에 기여들어 수십만의 중국사람들을 파리보다도 더 무참하게 죽이고있다는 소식에 접한 광동시민들의 격분은 극도에 달하였다.

거리에서는 시민들과 대학생들이 매일같이 《일제를 타도하자!》는 구호를 웨치며 시위를 벌리고있었다. 격분한 시민들은 일본인상점을 불태우고 일본인들이 눈에 띄기만 하면 모조리 잡아 불태워죽이는 보복행위가 벌어지고있었다. 개중에는 애무하게 일본인으로 인정되여 목숨을 잃은 외국인도 없지 않았다. 량반걸은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당분간은 대학강의에 나가는것도 삼가하는게 좋겠소.》

《허허, 량선생두. 어찌 대학강의를 그만두겠소.》

계응상은 허거프게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니요. 생각해보오. 이웃도시에서 수십만의 무고한 동포들이 왜놈들의 총칼에 찔려 죽었소. 지금 광동시민들은 리성을 잃고있소. 일본인 비슷한 사람을 보기만 해도 복수심이 끓어올라 그들에게 분풀이를 하는 극단적인 청년들도 있거던. 제발 나한테 약속해주오. 절대로 거리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이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길을 떠나지 않겠소.》

《약속하지 않겠소. 그러니 당분간은 량선생도 출장을 떠나지 마시오.》

계응상은 고집을 부렸다. 량반걸은 교의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가 더는 이렇게 한자리에서 앉은방아를 찧을수 없다는거야 계선생이 나보다 더 잘 알지 않소. 나에겐 믿음직한 안내자가 있으니 별일 없을거요. 그래 약속하겠소?》

《알겠소.》

응상은 더는 우기지 못하고 응낙했다. 량반걸은 응상에게서 이렇게 대답을 받아내고도 안심치 않아 집안일을 돌보는 왕아바이에게 조용히 당부했다.

《아바이, 계응상선생이 당분간 절대로 거리에 나가지 않도록 잘 도와드리시오. 내 말을 알으시겠소?》

《알겠쉐다. 그런데 계선생은 마음이 곧은분이여서 한번 하시겠다고 작정하신 일은 막무가내로 해내시니 그게 야단입니다. 》

《그래서 왕아바이한테 이렇게 부탁하는겝니다. 아바이두 요즘 거리가 얼마나 소란한지 아시지 않습니까? 혹시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이 쪽지에 써놓은 주소루 련락을 해주십시오. 난 남경에 갔다가 인차 무한을 거쳐 광동으로 돌아올 작정이니까요.》

량반걸이 그렇게도 간곡한 부탁을 했건만 정작 강의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응상은 안절부절하지를 못했다. 그는 격노한 군중들이 거리로 밀려다니며 엄청난 일들을 저지르고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조선사람인 그가 꺼리낄것은 조금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침해가 퍼질무렵 여느때와 다름없이 자그마한 가죽가방에 강의안을 넣어가지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섰다.

왕아바이가 계응상이 자기 방에 없다는것을 알게 된것은 그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는 장거리에 나가 남새를 사가지고온 다음에야 이러한 사실을 알고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날자를 따져보니 강의를 나가는 날이 분명했다.

그는 황급해지는 마음을 걷잡지 못하며 급히 집을 나섰다. 전날에 도시중심광장에서 대학생들이 일본인장사군들을 간첩들이라고 붙잡아서 혼찌검을 냈다고 한다. 그들중에는 간첩노릇을 한 왜장사군들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계응상이 중산대학에서 초기에 일본말로 유전학강의를 했기때문에 어떤 학생들은 그를 일본인교수로 오인하고있을수가 있었던것이다.

왕아바이는 계응상이 대학으로 다닐 때 늘 다니는 행로를 따라 둘레둘레 사위를 살피며 걸음을 재촉했다. 중산대학이 자리잡고있는 거리의 첫 네거리에 들어선 왕아바이는 흠칠 걸음을 멈추었다.

혼잡을 이룬 저쪽 인도로에서 대학생들이 웬 사람을 붙들어놓고 와야와야 떠들며 밀려가고있었다. 그들속에서 언듯 하는 흰 와이샤쯔를 띠여본 왕아바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어딘가 모르게 학생들에게 끌려가는 사람의 모상이 계응상을 련상시켰던것이다. 그는 두주먹을 부르쥐고 교통정리원이 불어대는 호각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하는 자동차앞을 지나 그쪽으로 달려갔다.

《일본놈의 앞잡이다.》

《쪽발이교수다!》

대학생들은 달이 뜬 눈들을 번뜩이며 마구 떠들어댔다.

《여보시오. 대학생님네들! 그분은 그런 사람이 아니외다. 그런 사람이 아니요.》

왕아바이는 정신없이 달려나가 학생들의 팔에 매달리며 부르짖었다. 그는 목이 꽉 메이고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여 말도 제대로 번질수가 없었다. 량팔을 한패의 대학생들에게 꽉 잡히운 계응상은 찢어진 줄무늬 와이샤쯔를 바람에 펄럭이며 공원쪽으로 끌려가고있었다. 왕아바이는 학생들을 헤치며 꽉 잠긴 목소리로 《젊은이들! 저분은 일본사람이 아니요. 일본사람이 아니란 말이웨다.》라고 연신 중얼거렸으나 격동된 학생들은 그를 사정없이 밀쳐버렸다. 길섶에 어푸러졌다가 막무가내로 다시 학생들의 팔에 매달려 정신없이 중얼거리자 한 학생이 사납게 노려보며 욱박질렀다.

《일본간첩을 두둔하면 령감두 목이 뎅겅한다는걸 모르우?》

왕아바이가 길섶으로 밀치워나 정신을 차렸을 때 대학생들의 무리는 이미 공원 저쪽에서 함성을 올리고있었다.

《왜놈의 앞잡이를 불태워죽이라.》

《철천의 원쑤 일본놈들을 찢어죽여라.》

왕아바이는 눈앞에 벌어진 사태가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길이 없는 어마어마한 일이라는것을 감득했다. 그제서야 그는 량반걸이 떠날 때 적어준 쪽지가 생각나서 그것을 품속에서 꺼내들고 우편국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계응상은 년중 한두차례씩 중산대학 종합강의실에서 세계유전학의 발전추세에 대한 강의를 한적이 있었다. 이때 강의를 받은 한 남학생은 계응상을 일본인교원으로 생각하고있었다. 바로 그 학생이 자기네 학과학생들과 떼를 지어 교문을 나서서 네거리로 나서다가 가방을 들고 걸어오는 계응상을 띠여보았다. 우뚝 걸음을 멈춘 그는 계응상을 가리키며 소리질렀다.

《쪽발이반동교수다!》

그는 학생들을 휘동하여 내달리며 빠른 말씨로 계응상의 유전학강의가 도이췰란드놈들이 제창하는 우생학과 무엇이 다른가고 지껄였다. 그 학생은 필경 도이췰란드놈들이 채용한 우생학이 50만의 도이췰란드시민들을 《정신병자》, 《결핵환자》, 《알콜중독자》, 《라태자》 등의 딱지를 붙여 거세할것을 주장한 소책자를 보았으며 그 우생학이야말로 유전학의 안받침을 받고있는 학문으로서 계응상이 중국인멸살정책을 실시한 일제의 사상을 암암리에 선전한것이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생물체를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을 진리대로 설명했을뿐인 계응상의 강의는 히틀러도배들이 인종론을 주장한것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건만 대학생들은 사리를 가릴 겨를도 주지 않고 왁 달려들어 계응상을 처형하려고 끌고갔던것이다.

한편 량반걸은 안내자를 따라 남경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으나 거리는 페허로 되고 인적조차 드물었다. 일본군대가 미친듯이 지른 방화에 의하여 시내 건물의 태반이 불타버렸다. 약속한 상회가 자리잡고있던 거리에는 재가루와 타다만 시꺼먼 기둥들만이 얼기설기 얽혀있을뿐이였다.

량반걸은 락심천만하여 무한으로 행로를 바꾸었다. 그런데 그가 옛친우의 집에 찾아들어가자 거기에서는 또다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계응상선생 체포되여 끌려감. 량반걸선생 급래 요망.》

량반걸은 눈앞이 캄캄하여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리고 전보발신시간을 들여다보니 전보는 낮전에 친것이였다. 그때로부터 2시간반이 지났으니 모든것이 끝장나고말았을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주저앉아있으면 어쩔셈이란 말인가. 그는 소스라쳐 일어나 황급히 승용차를 불러 타고 비행장으로 향했다.

한시간후에 량반걸이 려객비행기를 타고 광동으로 날아가 시중심공원으로 달려갔을 때는 날이 어둡기 시작할무렵이였다. 공원에는 격동된 군중들의 무리가 꽉 차있었다. 담을 쌓고있는 사람들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선 량반걸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하였다.

《왜놈앞잡이를 타도하라!》

《남경형제들의 피값을 받아내자!》

격노한 군중들의 함성이 터지는 가운데 공원 한복판 높이 쌓아올린 장작더미우에 한 사나이가 묶이워있었다. 한 청년이 휘발유초롱을 들고나가 장작더미에 휘뿌리자 홰불망치를 든 체구가 우람찬 청년이 거쉰 목소리로 웨쳤다.

《여러분, 이자는》 그 청년은 홰불을 쳐들어 장작더미우에 서있는 사나이를 가리키며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교수의 탈을 쓰고 신성한 우리 중산대학에 기여들어 학생들에게 인종론을 설교하던 일제의 간첩이요. 웃음속에 칼을 품은 이런 교활한자들의 소리없는 책동에 의하여 우리의 사랑하는 동포형제들이 피를 흘리고있소. 그래 이런 간악한 원쑤를 살려둘수 있겠소?》

《간악무도한 일제놈들에게 죽음을 주라!》

군중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량반걸은 장작더미우에 올라선 사나이가 누구인가를 도무지 알아볼수가 없었다. 옷자락이 갈기갈기 찢기고 얼굴이 온통 피멍이 진 그 사나이가 계응상이라고는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앞으로 나가 장작더미우를 쳐다본 량반걸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후를 각오한듯 비참한 표정을 짓고 추연한 눈길로 창공을 우러러보는 사나이는 분명 계응상이 아닌가! 량반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리였다. 그는 어푸러질듯이 허겁지겁 앞으로 달려가 계응상이 얽매여있는 장작더미로 기여올랐다.

빙 둘러섰던 군중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의외의 광경을 바라보며 응성거렸다. 량반걸은 계응상을 한팔로 그러안고 비분에 찬 눈길로 군중들을 바라보았다. 사방에서 떠들썩한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량반걸선생, 내려오라.》

《어째서 일제의 간첩을 두둔해나서는가?》

《량반걸을 끌어내리라!》

하나 량반걸은 끄떡하지 않고 장작더미우에 꿋꿋이 서있었다. 물끓듯 하던 웨침소리가 잦아들자 량반걸은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여러분! 당신들이 왜놈의 간첩이라고 하는 계응상선생은 일본사람이 아니요. 이 선생은 우리 중국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악독한 일제놈들에게 제 나라를 빼앗기고 부모처자들도 없는 만리타향에 와서 과학연구와 교육사업을 하며 우리 중국을 진심으로 도와주고있는분이요. 자기 나라의 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고 해서 일본놈들한테 잡혀가 감옥살이까지 한분입니다. 비록 일본에 건너가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일본놈들밑에서 굽신거리며 일하지 않으려고 부모처자가 기다리고있는 고향산천을 뒤에 두고 우리 중국으로 찾아왔습니다.

이 선생은 광동에 와서 십여종의 새로운 누에품종을 만들어 중국의 잠업발전과 유전학의 기초를 닦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우리는 이 교수선생에게 마땅한 감사를 드려야 할것입니다. 그런데 은혜에 보답하기는 고사하고 이런 애무한 죄를 씌워 처형하려고 하다니, 세상에 이렇게 무례한짓이 어데 있습니까? 누가 이 선생을 일본놈의 간첩이라고 했습니까?》

응상을 왜놈간첩이라고 고발한 청년이 선뜻 앞으로 나섰다.

《내가 그랬습니다. 내가 알건대 그가 그리도 제창하는 유전의 법칙들은 히틀러가 고창하는 우생학과 일맥상통하는것이라고 봅니다.…》

얼마간 당황하긴 했지만 어성을 높여 도전적으로 대꾸했다. 량반걸은 가슴이 떨리여 갑자기 그에게 무엇이라고 설명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타는 목을 추기려는듯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안타까운 눈길로 군중들을 내려다보던 량반걸은 갈린 목소리를 냈다.

《여기에는 나와 면식있는분들과 제자들도 있을것입니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계응상선생과 함께 나를 처형해주시오.》

모여섰던 사람들속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열이 올랐던 대학생들은 어리둥절하여 떠들어댔다. 이때 한 청년이 앞으로 달려나왔다.

《여러분!》

그는 흥분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웨쳤다.

《나는 계응상교수선생한테서 유전학을 배우고있는 학생이요. 저 선생은 일본사람이 아니며 우리에게 인종론을 설교한적도 없소.》

《옳소.》

군중들속에서 몇몇 대학생들이 목청을 돋구어 호응해나섰다. 그제서야 량반걸은 격한 심정을 가라앉히고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이 선생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고있던 자연의 법칙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애써왔을뿐입니다. 오늘도 이 선생은 학생들에게 약속한 강의를 해주기 위하여 대학으로 가다가 이런 봉변을 당했습니다.…》

계응상교수를 고발했던 청년의 손에서 홰불망치가 땅에 떨어졌다. 응상의 제자들이 앞을 다투어 장작더미로 달아올라가 결박한 그를 풀어놓으며 사죄했다.

《선생님, 무지막지한 저희들의 행동을 용서해주십시오. …》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장작더미에서 땅바닥으로 내려선 계응상은 빙둘러선 사람들을 맥없이 둘러보고는 물러앉듯 주저앉으며 의식을 잃었다.

《령감!》

량반걸은 비애에 찬 떨리는 목소리로 왕아바이의 앞자락을 쥐고 흔들었다.

《내 뭐라고 합데까, 예?》

담가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계응상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걷는 량반걸의 눈가에서는 두줄기눈물이 마냥 흘러내리였다.

계응상은 병원침대에 누운채 좀체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너무도 큰 정신적충격을 받은데다가 쌓이고쌓인 거듭되는 재난의 중하를 이겨낼수가 없었던 모양이였다.

량반걸은 잠시도 그의 곁에서 떠날수가 없었다.

이틀만에야 의식을 차린 계응상은 근심에 싸여 자기를 굽어보는 량반걸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다 리해하오. 이게 다 일본놈들때문이지…》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계응상은 몸이 추서자 다시 대학에 나가 유전학강의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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