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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5 장


2


얼핏 보건대 계응상은 광동에서 유전연구와 유전학을 보급하는 사업에만 일심전력을 다 기울이고있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어느 한순간도 두고온 조국과 고향을 잊은적이 없었다.

실험잠실 한쪽구석에 자리잡고있는 자그마한 방에는 그가 특별한 관심을 두고 유지하고있는 누에품종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누에품종들이였다.

광동누에품종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응상은 이 누에들의 사육기일이 5일이나 빠른것에 주목을 돌렸다. 당시 조선의 누에들은 봄가을누에를 기본으로 하는 까닭에 여름철에 적합한 누에품종이 없었다. 만약 이 광동누에품종과 우리 나라 재래종누에품종을 옳게 섞붙임하여 도태육종을 지향성있게 진행하기만 하면 여름철에 칠수 있는 생활성이 강하고 수확성이 높은 누에를 만들수 있을것이 아닌가.

그는 자기가 언제 조국으로 돌아갈지 기약할수 없는 몸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응상은 특이하고 흥미있는 누에품종들을 대할 때마다 그것을 조국의 누에로 만들고싶은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히군 하였다.

그가 절강성의 어느 현에 나갔을 때였다. 그는 돈냥이나 있는 한 관리가 운영하는 종란장에서 특별히 몸체가 큰 피마주누에를 발견하였다. 기후가 온화한 광동지구에서는 그 어디에서나 피마주누에를 키우고있었다. 계응상은 남방지대에서만 자라나는 이 누에에 각별한 흥미를 느끼였다.

조선에서는 일본관리들이 농촌으로 돌아다니며 농민들에게 농가주변의 좋은 땅에 뽕나무를 심을것을 강요하고있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를 결사반대했다. 뽕나무에서 뽕잎을 따자면 6~7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무엇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그런데 피마주누에는 공한지에 피마주를 키워서 당해에 그 잎은 누에사료로 쓰고 열매는 기름을 짜고 대는 섬유원료로 삼는다.

만약 이 누에를 조선의 누에로 만들면 농민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자 피마잠에 남달리 왼심을 쓰게 되였다.

그는 절강성에서 구해들인 몸체가 큰 파르스레한 피마주누에에 역시 남방에서 들여온 금색누에고치를 섞붙임하여 사육기일이 빠른 새로운 피마잠을 육종하였다. 이 누에가 광동교외의 농촌마을에 보급되자 농민들속에서 호평이 대단했다. 새 피마주누에를 10여장이나 쳐서 묵돈을 번 한 농민은 폭신하고 따뜻한 피마주누에고치로 실을 뽑아 두개의 등거리를 만들어가지고와서 량반걸과 계응상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그 농민은 엄지손가락을 흔들어보이며 거듭 《쩨거디 호와.》(이게 제일 좋다.)라고 하는것이였다. 응상은 량반걸과 함께 그 농민과 점심을 같이 나누며 진정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계응상은 그 순간에도 그 농민이 지닌 기쁨을 고스란히 고향사람들에게도 안겨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에 목이 메이였다.

인디아에서 들여온 금색고치를 쥐였을 때에도 그리고 무강현의 산골마을에서 낚시줄로도 쓸수 있는 그물고치를 수집했을 때에도 그는 그것을 새로운 품종으로 육종하는 귀중한 출발자료로 써먹었을뿐만아니라 어느땐가는 그러한 누에를 조국땅에서도 키울수 있다는 기대를 버릴수가 없었다.

계응상의 책상 한옆에는 고대와 중세에 조선의 시인들이 쓴 한시집이 한두권씩 놓여있군 하였다. 수년동안 소식 한장 알길 없는 부모처자와 고향생각이 간절할 때면 출입문우에 가로 걸려있는 룡천검을 쳐다보며 옛 조상들의 시를 한수씩 읽어보군 하였다.


바다건너 저 먼 나라에서

네 아마 갓 불어온게로구나

딱하여라 이따금 서재로 들어

부산히 장막을 흔드는가

꽃철이 다가온다고 저 멀리 고국소식 전하렴인듯


응상이 나직한 목소리로 시읊는 소리를 들을 때면 량반걸은 남의 일 같지 않아 조여드는 가슴을 부여안군 했다. 그럴 때면 응상은 추연한 표정으로 문우에 걸린 시퍼런 룡천검을 올려다보군 했다. 그것은 마치나도 소리없이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나약한 생각을 룡천검으로 잘라버리고 모진 마음을 도사려먹는것 같았다.

중산대학과 중개농공학교에서 강의가 없는 날이면 계응상은 전적으로 교외에 있는 실험잠실에 나가 있군 하였다. 그날도 응상은 손에 실험분석표를 들고 숙소를 나섰다. 교외에 나서서 마차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면 자그마한 강이 나진다. 강건너편 나지막한 둔덕 뽕나무들이 규모있게 자라고있는 그 한복판에 단층으로 지은 실험잠실이 있었다.

강기슭에는 매생이 한채가 물결따라 가볍게 흔들리우고있었는데 그우에는 몸매고운 한 녀자가 노를 잡고있었다. 계응상교수를 기다리고있는것이였다.

교수가 물가에 다달으자 녀인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나 손에 든 분석표에 눈길이 팔린 응상은 아무말없이 매생이에 올라서서 가로놓인 판자우에 앉았다.

계응상은 이 녀자가 부리는 매생이를 타고 근 8년이나 이 강을 건너다녔다. 그러나 그는 한때도 손에서 책을 놓고 눈길을 헛딴데로 돌리는 때가 단 한번도 없었다.

처녀시절부터 매일같이 매생이를 부리며 계응상을 강 저쪽으로 건늬워주고 태워오던 이 녀자는 어느날 길가에서 응상교수를 만나자 반색하며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 녀인을 물끄러미 쳐다본 계응상은 의아하여 물었다.

《뉘신지?》

그 녀인은 모닥불을 들쓴듯 얼굴이 확 달아올라 황황히 달아났다.

응상은 경한 근시여서 얼마간 사이를 두고있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 고장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도 조선의 과학자 계응상이 그 얼마나 독심스레 과학연구를 했는가 하는 일화로 두고두고 이야기했다.

《량선생, 이걸 좀 보십시오.》

밤에 계응상의 방으로 찾아가면 그는 언제나 보던 책을 덮어놓고 흥분된 어조로 동서방의 유전학자들이 과학연구에서 달성한 성과를 이야기하군 했다.

《〈유전학설〉을 발표한 모르간이 마침내 노벨상을 받았소. 그리구 말러와 스테들리는 초파리에 엑스선을 쪼여 인위적으로 갑작변이를 일으킬수 있다는걸 증명했소. 그런데 우리는 누에에 화학물질을 써서 갑작변이를 일으키려고 하는 정도이거던. …》

《그래두 어쨌든 그건 우리의 연구방향이 옳다는걸 보여주고있지 않소.》

《자신심을 가지는건 좋지만 자만심에 사로잡히는건 유해롭다고 보네. 다나까선생도 근래에는 〈유전학〉이라는 대작을 집필하느라고 몹시 긴장한 투쟁을 하고있는것 같네.…》

계응상은 자기의 전후좌우에 나가고있는 세계 각국 유전학자들의 움직임을 항시 자기의 일처럼 감득하고있었다.

이무렵 중일전쟁이 폭발하여 광동시에 일본비행기들이 날아들어 마구 폭탄을 떨구기 시작했다.

중개농공학교 근처에도 소이탄이 떨어져 무서운 화재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 혼잡통에서도 계응상은 한순간도 과학연구사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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