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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회


황위형제 엄신의 란을 평정하고
황씨가문에 복록이 대를 이어 계승되다


황기의 추상같은 목소리에 엄신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허나 용기내여 맞받아 소리쳤다.

《내 오늘 너를 죽여 부친의 한을 풀리라.》

황기와 엄신이 서로를 향해 동시에 마주나갔다. 황기는 룡천검을 추켜들고 엄신은 삼지창을 꼬나들고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질풍같이 내달았다. 황기가 탄 황부루와 엄신의 밤색말이 어긋치고 검과 창이 맞부딪쳤다. 엄신이 황기와 십여합을 어울렸는데 그 창법이 점점 어지럽고 정확치 못하더니 수세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순간 황기가 벽력소리 한번 지르며 룡천검을 비껴치니 엄신의 머리가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엄신의 목이 나떨어지는것을 본 만왕이 울상이 되여 진중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누가 나가 적장의 목을 벨고?》

적진중에서 남만의 제일가는 장수인 포태가 뛰쳐나왔다. 만왕의 부마인 포태는 키가 구척이고 팔이 여느 사람보다 두뽐이나 길고 백근짜리 철퇴를 지팡막대처럼 다루는 사납기 그지없는 장수였다.

《햇내기같은 황기야! 네 감히 우리 선봉장을 죽였으니 내 너를 용서치 않을테다.》

두억시니같은 포태가 눈을 부릅뜨고 달려나오자 황기가 눈에 정기를 모으며 룡천검을 비껴들고 쏜살같이 맞받아나갔다. 질풍같이 달려나가던 황기가 뽐창을 한줌 왼손에 꺼내들고 말우에서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황기의 왼손에서 예리한 뽐창들이 포태의 상판에로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뽐창이 포태의 눈과 코, 입 그리고 철퇴를 추켜든 손목에 사정없이 날아갔다. 철퇴를 쳐들고 달려나오던 포태가 몸을 솟구치는 황기를 겨냥하고 철퇴를 날리려는데 순식간에 날아오는 뽐창이 그의 손목이며 얼굴에 가차없이 틀어박혔다. 미처 손쓸새없이 포태의 육중한 구척장신이 땅바닥에 쿵 떨어졌다.

몸을 솟구쳤다가 앞으로 내달려오는 황부루에 다시 올라앉은 황기가 말머리를 돌려 짓쳐나가면서 땅에서 딩구는 포태의 통나무같은 목을 겨누고 룡천검을 휘둘렀다. 포태의 대가리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황기의 특기인 말을 타고 달리다가 허공으로 솟구치면서 뽐창을 던지는 재주앞에 남만국의 부마이며 제일가는 장수인 포태가 철퇴 한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뒈지고말았다.

련거퍼 두 장수를 파리잡듯 해치우는 황기의 뛰여난 검술앞에 만왕은 눈이 퀭해졌다.

《아니, 저놈은 대체 사람이냐, 귀신이냐? 아군의 용장을 순식간에 해치우다니. 황운이가 범이라면 저놈은 날아다니는 범이로구나.》

징을 울려 만왕은 싸움을 중지하게 하였다.

부랴부랴 호피안석에서 몸을 일으킨 만왕은 진을 허물지 말고 방비를 강화하되 절대로 교전하지 말라는 령을 재차 내렸다. 바다로 철수하자고 하니 발해군이 그뒤를 엄습할가 념려해서였다. 자칫하면 배다리에서 군사가 전멸될수 있었다.

대도독 황위는 첫 싸움에서 적장을 둘씩이나 료정낸 부도독 황기를 칭찬하고 진을 철수시키지 않았다. 이 기세로 냅다 공격할수도 있었지만 일단 적이 바다로 나가면 놓칠수 있다고 생각한 황위는 싸움배가 마련될 때까지 본격적인 싸움은 피하는것이 상책이라고 여겼다.

반면에 진을 거두어 군사들을 성안으로 돌려세우면 적들이 밤도와 바다로 달아날수 있다고 여겨 진중에 한시도 적의 동태를 놓치지 말고 살피며 일단 적의 움직임이 보이면 가차없이 공격하라는 지시를 주었다. 부도독 황기가 대도독 황위의 령대로 각 장수들을 신칙하며 적진중을 예리하게 주시하였다.

그날밤 수군장이 싸움배 오백척을 다 준비했다는 보고를 하였다.

결국 아군의 싸움배는 팔백척으로 된셈이였다. 황위는 수군장더러 모든 수군졸들에게 불화살과 기름을 덧부은 홰몽치를 두개씩 준비하라는 지시를 준 다음 성벽우에 기계활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준비가 다되였다는 수군장의 보고를 받은 황위는 그날밤 삼경무렵 팔백척의 싸움배를 은밀히 출동시켜 적병선을 포위하게 하였다. 짙은 어둠속에서 달빛을 따라 팔백척의 싸움배가 은밀히 기동하고있었지만 마주하고있는 륙지의 아군에게만 신경을 도사리고있는 적들이 포착할리 만무하였다.

동녘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올무렵 군사들에게 일찌감치 식사를 시킨 대도독 황위는 철기군 오만을 전부 성밖에 진을 치게 한 다음 부도독 황기더러 적진을 공격할것을 명령하였다.

령을 받은 황기가 황부루에 올라 룡천검을 비껴들고 나갔다. 그뒤로 삼만의 철기군이 창과 칼, 활을 억세게 틀어쥐고 나아갔다.

온밤 불안한 마음으로 바다에 떠있는 지휘선에도 가지 않고 장막에서 밤을 보낸 만왕이 다급한 말발굽소리에 내다보니 발해군의 군사들이 무섭게 쳐들어오고있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셔지지 않고 희뿌연 안개가 뒤덮인 새벽인데 이 무슨 일인가.

황급히 진을 수습하라는 령을 내린 만왕은 엄수더러 황기를 막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만왕의 아부재기에 엄수가 다급히 창을 들고 나섰다. 황기가 두눈에 불을 켜고 엄수를 향해 질풍같이 달려나갔다.

검과 창이 부딪치고 두사람이 탄 말이 서로 어기는 찰나 황기가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더니 어느새 엄수의 말잔등에 옮겨가 그의 허리를 안아 십보밖으로 뿌려던졌다. 엄수는 돌멩이처럼 땅바닥에 쿵 떨어지면서 허리가 부러져 그자리에서 즉사하고말았다.

그 모습을 본 적진중이 풍랑에 설레는 갈대마냥 뒤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아침요기도 하지 못한 무리들이 혼비백산하여 순식간에 사냥군에게 몰리우는 짐승떼로 화하고말았다.

그 기세로 황기가 적진의 한복판으로 날아들어갔다. 적진을 누비며 내닫는 황기의 룡천검에 좌우의 적들의 머리가 무우밑둥 잘리우듯 떨어져나갔다. 어제는 저희들의 제일가는 장수라 일컫는 엄신과 포태를 단숨에 베이고 오늘은 엄수를 한손에 들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허리를 분질러 즉사시킨 황기의 용맹과 신비한 무예앞에 공포에 질린 적들은 놀란 갈게마냥 여기저기로 달아났다.

칼을 뽑아든 황기가 만왕을 찾으며 벽력같이 소리쳤다.

《무지막지한 만왕은 어데 있느냐.

네 아무리 무지한 오랑캐라고 한들 발해국을 모르고 감히 변방을 침노하다니, 빨리 나와 목을 드리우라!》

만왕이 오금이 서늘해서 장막에서 황황히 뛰쳐나와 바다에 떠있는 지휘선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그뒤를 따라 적군사들이 창과 칼을 다 집어던지고 살구멍을 찾아 배다리로 벌떼마냥 우르르 달아난다.

황위가 적들이 배에 오르려고 배다리로 몰려가는것을 보고 성우에 설치한 기계활을 쏠것을 명령하였다. 그와 동시에 수군장에게 화공으로 적의 병선을 공격하라는 볼화살신호를 보내였다.

저저마다 먼저 배에 오르겠다고 싸움질하는 적패잔병들로 하여 배다리에는 적군사들이 까마귀마냥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그 까마귀떼를 향하여 성우의 기계활이 드세찬 화살세례를 안겼다. 안개속에 숨어있던 아군의 팔백척 전선이 쏜살같이 적병선으로 육박하더니 불화살을 퍼부었다.

삽시에 배다리에는 적의 시체가 산더미를 이루고 바다에 떠있는 적의 병선에 화염이 치솟기 시작하였다.

겨우 지휘선에 오른 만왕이 적장들을 내몰아 아군의 전선을 막으라고 고함쳤다.

조석이 아군의 싸움배바닥에 구멍을 뚫어 배를 가라앉게 하려고 해적무리들을 물속으로 마구 내몰았다. 이번 기회에 횡재를 보려고 따라온 해적떼들이 물개마냥 바다물속에 자맥질해들어갔다. 해적들이 아군의 싸움배바닥에 구멍을 뚫으려고 쇠꼬쟁이와 망치를 들고 다가들었다.

수군장이 활을 잘 쏘는 군사들을 선발하여 물속에서 언뜻거리는 해적들을 보는 족족 쏘아죽이고 배밑창에 붙은 적은 장창으로 찌르게 하였다. 창의 길이가 짧아 적에게 미치지 못하자 수군장이 장창에 검을 비끄러매서 찌르게 하였더니 적의 몸뚱아리에 검이 가닿았다. 삽시에 살에 맞고 창과 검에 찔리워죽은 적의 주검이 바다에 둥둥 떠오르고 검붉은 피가 바다물을 물들였다.

대세를 관망하던 황위가 기계활을 중지하고 북을 울리며 장수기를 휘둘렀다.

만단의 태세를 갖추고있던 팔백여척의 발해군의 싸움배가 일제히 화염에 휩싸여 허우적거리는 적의 병선을 향해 쏜살같이 나아갔다. 선두에 예리하고 긴 창을 꽂은 병선이 달리던 그 기세로 적의 배를 들이받고 방패에 몸을 가리웠던 살수들이 일제히 활을 날리니 불세례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선창에서 어물거리던 적들이 무데기로 살에 맞아 바다에 떨어졌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황기를 선두로 하는 아군의 철기군사가 배다리로 질주하였다. 배다리를 뛰여넘어 말을 탄채로 적의 병선에 날아들어갔다. 단숨에 적의 병선에 올라 적들을 료정낸 황기가 그 배의 돛대에 부도독의 장수기를 띄우고 곧바로 만왕이 탄 지휘선으로 공격해나갔다.

황위가 다시 잦은 북가락을 울리며 홍기를 내흔들었다.

그 신호에 따라 아군의 싸움배들이 만왕이 탄 지휘선과 아직 남아있는 적의 병선을 사면으로 압박하며 포위환을 좁혔다.

황기가 탄 배가 만왕의 배에 닿았다. 황기가 몸을 휙 날려 만왕의 지휘선에 뛰여올랐다. 그뒤로 십여명의 날랜 용장들이 따라올랐다.

사색이 되여 전전긍긍하던 만왕이 귀신같은 스산한 몰골을 하고 대검을 들고 황기와 마주섰다.

《내 오늘 너를 죽여 황운과 설연의 가슴을 박박 찢어놓을테다. 이 햇강아지같은 자식아! 어디 한번 이 백전로장의 맛을 봐라!》

시누런 이발을 드러내며 만왕이 제법 으르렁거렸다.

《이 흉악한 오랑캐야! 감히 여기가 어디라구 침범하느냐.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도 불사하는 선친들의 뜻을 이은 우리가 그래, 너같은 오랑캐들의 무리들을 용서할상싶으냐!

어서 이 복수의 칼을 받으라!》

만왕이 미처 대적할새가 없이 황기가 허공을 가르며 룡천검으로 맹렬히 공격하였다. 만왕이 대검을 한번 휘두르는 사이 황기의 룡천검은 대여섯번이나 춤을 추니 싸움에 쩌들은 만왕인들 어찌 대적할수 있으리오. 만왕의 투구가 머리에서 벗겨져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갔다. 언제 황기가 칼등으로 후려쳤는지 만왕의 손등이 퉁퉁 부어오르고 대검을 떨구었다.

만왕의 가슴팍에 룡천검을 들이대며 황기가 부르짖었다.

《그래도 항복하지 않을테냐?》

만왕의 우멍스러운 눈에 정기가 풀어지더니 고개가 푹 떨어졌다.

《이 무도한 오랑캐를 결박하라!》

억대우같은 군사들이 투구가 벗겨지고 먼지가 낀듯 시뿌연 머리를 푹 늘어뜨린 만왕에게로 다가와 결박하는데 만왕의 눈에서 비통한 후회의 눈물이 멈출줄 몰랐다.

병선의 어느 구석에 숨어있다가 붙잡혀 오라에 온몸이 칭칭 감긴 조석과 손락이 선창에 끌려나왔다. 만왕과 조석 등이 사로잡히자 병선에 남아있던 적의 수군사들이 스스로 손을 들어 항복하였다.

어느덧 수평선에 아침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언제 날이 어두웠던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밝은 새날의 아침이였다. 해살이 온 바다를 금빛은빛으로 수놓으며 누리에 비쳐갔다.

와- 와- 발해군사들이 터치는 승전의 함성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그에 화답하는듯 솨- 솨- 파도가 격랑쳤다.

전장을 일별한 대도독 황위가 회군을 알리는 징을 울렸다. 황기가 진중을 수습하고 수군장이 뭍으로 배머리를 돌렸다.

장대에 이른 부도독 황기와 수군장이 대도독 황위에게 승전보고를 하였다.

황위가 격정에 겨워 황기와 수군장을 그러안고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다.

《대도독의 신묘한 계책으로 아군은 횡포한 오랑캐와 역적들을 소멸했나이다.》

수군장의 찬사의 말에 대도독 황위가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나라위한 그대들과 군사들의 그 애국충정이 승전을 안아왔도다!》

장대앞에 정렬한 아군의 군사들이 대도독 황위와 부도독 황기, 수군장을 향해 창과 칼을 추켜들고 환호를 올렸다.

대도독 황위는 만왕과 조석 등을 문초하여 이번 변란의 상세한 내막을 알아내고 이백명의 군사들의 감시하에 그자들을 함거에 실어 황성으로 먼저 압송해보내였다.

이어 대도독 황위는 부도독 황기와 함께 남해변방을 순시하며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고려후국의 고을관장들을 만나 변방방비를 강화할것을 신칙한 다음 대오를 거느리고 회군길에 올랐다.

엄신과 만왕을 소멸하기 위해 원정군을 남방으로 떠나보낸 임금은 허왕 황운과 함께 첩보가 당도하기만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있었다.

원정군이 남방으로 출정한지 스무날이 되는 날 승전을 알리는 첩서가 탑전에 당도하였다.

임금이 몹시 기뻐하며 급히 첩서를 떼여보았다.

《정남대도독 황위는 성상에게 허리굽혀 인사를 드리며 이 첩서를 올리나이다.

소신 등은 성상의 흥복을 입어 첫 싸움에서 엄신과 포태 두 적장을 죽이고 두번째 싸움에서 엄수를 죽이고 만왕과 조석 등을 사로잡고 승전하였소이다.

싸움이 끝난 후 남방고을을 순회하면서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지금은 회군길에 있사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페하는 더는 념려마소서.》

임금이 첩서를 보고나서 룡상을 탕- 쳤다.

《대내상과 대장군이 비록 나이가 어려도 이렇듯 대공을 세우니 짐이 어찌 천하를 근심하리오.》

허왕 황운의 얼굴에도 기쁨이 어렸다.

《그대부부의 나라위한 충정은 고금에 없더니 이제는 그대의 아들들이 선친들의 뜻을 이어받아 짐을 도와 천하를 평정했도다.

과시 그대의 부자야말로 발해국의 으뜸가는 충신이요, 사직을 떠받드는 대들보로다. 그대의 부자와 같은 충신들이 있음으로 하여 이 발해국에 억만년 드놀지 않는 반석이 마련되였도다. 어찌 아름답고 즐겁지 않으리오.》

허왕 황운이 송구해하며 사례하였다.

《페하의 흥복을 입어 부자가 한몸에 아름찬 벼슬에 올랐으니 신은 두려움을 금할수 없나이다.

복이 과하면 재앙이 난다고 하였으니 신은 살아서 나라위해 멸사복무하고 죽어 후세에 가서도 결초보은함이 소원이옵니다.》

임금이 남왕 조명걸에게 령을 내려 대도독 황위와 부도독 황기를 영접하라고 하니 소왕 시춘이 저도 가겠노라고 나섰다. 그새 우시춘이 병이 다 나은 상태였다. 임금이 승낙하였다.

남왕 조명걸과 소왕 우시춘이 고려후국의 지경까지 나와 승천하고 돌아오는 그들을 성대히 맞아주었다. 고려후국의 왕도 지경밖까지 따라나와 발해군사를 바래주었다.

조명걸과 우시춘이 황위형제를 안내하여 황성으로 입성하였다. 젊은 황위형제가 대도독 절월과 부도독 절월을 앞에 세우고 십만대군을 휘동하여 황성으로 들어오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였다. 하늘높이 비껴든 창검이 해를 가리우고 승리의 개가는 산천을 진동하였다.

황성에 당도한 대도독 황위가 섬돌아래에 한무릎을 꿇었다. 그뒤를 부도독 황기가 따라섰다.

희색이 만면해서 황위를 굽어보던 임금이 호탕하게 웃었다.

《경의 부모는 발해국을 떠받드는 기둥인데 경의 형제 또한 대공을 이루고 돌아왔으니 경의 부자형제의 나라위한 그 충의심은 동서고금에 아직 있어보지 못했도다.

충신들인 부모의 뒤를 이은 경들과 같은 훌륭한 젊은이들이 있는데야 짐이 천하를 다스림을 어이 근심하리오.》

옥잔에 어주를 부어 대도독형제를 위로하고난 임금이 조서를 내렸다.

《조석과 손락은 가차없이 참하여 나라지경을 조리돌림시키라. 그리고 만왕은 외국의 이족이니 돌려보내되 배상금으로 금은 십만냥을 받아내고 각별히 훈계하여 차후 마음을 고쳐먹고 발해국을 진심으로 받들며 조공을 페하지 말도록 하라. 다시한번 딴 마음을 품으면 그때엔 살기를 바라지 못하노라.》

만왕이 죽어 백골이 되여도 은혜를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돌아갔다. …

그후 허왕 황운은 조정에서 임금을 보좌하고 허왕비 설봉선은 내궁에서 황후를 돕고 황위, 황기형제는 각기 자기 직분에 충실하여 나라정사를 다스리니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나라안에 울리고 백성들은 격양가를 부르며 태평성대가 도래했다고 칭송하였다.

몇해가 지나자 허왕부부는 표를 올려 현덕부로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몹시 서운해하며 대궐로 직접 불러들여 만나주었다.

《짐이 복이 얕고 덕이 박하여 역적 엄평의 란을 당하고 세상에 살아남지 못할번 했다가 다행히도 그대들의 충의지심으로 목숨을 보존하고 대의명분을 수습하여 종묘사직을 안보하였을뿐아니라 천하를 다시 평정했도다. 이는 전수이 그대들이 충의를 다해 나라를 구원한 덕분이로다. 비록 그대들에게 중경현덕부라는 나라의 한개 지경을 봉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그대들의 하해같은 공덕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바 되리오.

이제 그대들이 현덕부에 가면 남은 여생이나마 충의를 다하여 길이 멀고 험함을 혐의치 말고 한해에 한번씩 황성에 올라오도록 하라. 그래서 반가운 얼굴들을 서로 만나보게 하고 짐의 정사를 도와 깨닫지 못하는 허물이 있거든 간해주어 선임금들의 대업이 세세년년 이어지도록 하라.》

분에 넘치는 찬사를 받고 허왕부부는 몸둘바를 몰라하며 눈물속에 하직인사를 올렸다.

대궐에서 물러난 그들부부를 이번에는 황태후와 황후가 불러 위안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다음날 허왕부부는 부하들과 시종들을 거느리고 중경현덕부로 떠나갔다. 황위형제와 문무백관들이 십리밖에까지 따라나와 배웅하였다.

중경현덕부에 이른 허왕부부는 문무신하들과 백성들의 기대와 믿음을 한시도 잊지 않고 정사를 공정하게 펴나갔다. 상벌을 옳게 정하고 배움을 장려하고 군사와 농사, 상업에 힘을 넣고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물산이 풍요해지고 인재가 넘쳐났으며 거리들에는 떠돌아다니는 방랑객이 없어져 현덕부는 나라안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혔다.

그들은 한해에 한번씩 황성으로 올라가 임금을 뵙고 정사를 살펴 보좌하고 황위형제를 신칙하군 하였으며 어린 손자들이 부모들의 넋을 이어가도록 왼심을 썼다.

황운과 같은 변심을 모르고 재능이 출중한 충신재사들과 유명무명의 민족의 아들딸들의 노력으로 발해는 남쪽으로는 서부의 대동강류역에서부터 동부의 덕원(오늘의 원산일대)에 이르는 계선을 경계로 후기신라와 접하였고 동북쪽으로는 오호쯔크해, 동쪽은 조선동해, 서쪽은 료하계선에 이르는 지역을, 북쪽은 흑룡강이북계선에 이르는 광활한 령토를 차지하고 그 어떤 외세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동방의 강국, 그 이름도 자랑스럽고 긍지높은 《해동성국》으로 세상에 더더욱 이름을 떨치게 되였다.

허왕비 설연은 삼자일녀를, 설중매는 이남일녀를 낳았는데 황운의 자식들모두는 부모들의 애국충정의 넋을 이어받아 충의와 재능, 정력을 다 바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전심전력하였다.

자식들의 성장하는 모습과 사랑하는 강토-발해가 강해지는 숨결에서 삶의 보람과 락을 느끼며 황운부부는 팔십여살까지 후회없는 생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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