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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가 찾아온 조국에서

 

나는 두개의 생일을 가진 류다른 사람이다. 첫번째 생일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인생의 고고성을 울린 1936년 5월 24일이며 두번째 생일은 먼 항행끝에 마침내 평양에 인생의 닻을 내린 1988년 4월 15일이다.

그러니 이 사람의 나이는 첫 생일을 놓고 계산하면 2014년 현재 만 일흔여덟살이요, 두번째 생일을 놓고 계산할 때에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살에 불과하다고 할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여 내가 이런 사람으로 되였는가.

 

주체77(1988)년 4월 15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은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어머니이며 삶과 행복의 요람입니다. 참된 삶과 행복은 조국의 품속에서 시작되고 꽃펴납니다. 조국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으며 이 세상에 조국보다 더 귀중한것은 없습니다. 조국은 생명보다 더 귀중합니다.》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6돐을 맞는 1988년 4월 15일에 나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런 조국의 품에 안기였다. 지리학적선에 불과했던 38°선이 외세의 작간으로 배달민족이 사는 반도에서 분렬의 선으로 된이래 그 수를 헤아릴수 없는 많은 남녘의 형제자매들이 조국의 품을 찾아 평양으로 왔었건만 과연 뜻깊은 이날 4월 15일을 택하여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에 인생의 닻을 내린 사람은 아마 내가 처음일것이다.

이 몸을 싣고 창공에서 여러 시간 날던 기내의 방송에서 불현듯 《우리의 비행기는 드디여 조국의 압록강상공을 날고있습니다.》라는 안내원의 맑고 창창한 음성이 울려나온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을 터치면서 부지중 눈길을 기내의 시창구아래로 던졌다. 인차 압록강의 푸르른 물결이 눈에 안겨왔다.

순간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이라는 《김일성장군의 노래》소절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감과 동시에 그 장중한 선률이 귀전을 울렸다.

이어 나는 스르르 눈을 감으면서 방금전에 안내양의 음성으로 방송에서 울려나온 《조국》이라는 그 단어를 음미해보았다.

(아! 조국이란 과연 무엇이런가. 지금 내가 탄 비행기가 날고있는 창공아래의 땅이 조국의 땅, 내가 찾고있는 조국땅이라면 고향이 있는 전라북도 전주는 무슨 땅이란 말인가.)

조국땅우를 날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고향을 떠나서는 조국을 생각할수 없고 조국을 떠난 고향이란 개념도 있을수 없다. 그래서인지 어떤 민족의 언어생활에서는 《조국》이란 말과 《고향》이란 말이 따로 없고 하나의 단어로 통일되여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국과 고향의 개념은 이처럼 밀착되여있다고 말할수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당도하고있는 조국땅과 전주가 있는 고향땅은 어찌하여 하나의 같은 개념으로 융합되지 못하고있을가? 나는 이렇게 자신에게 묻고있었다.

나는 압록강에서부터 전주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자고로 우리 민족은 우리가 살고있는 반도의 길이를 삼천리로 셈하고있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최북단인 함경북도 온성군 풍서리에서부터 최남단인 제주도의 마라도까지의 거리를 가리키는 리수이다. 그럴진대 압록강에서부터 마라도의 썩 북쪽에 있는 전주까지의 거리는 비행기로 달리면 한시간도 되나마나한 거리로 될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그때 전주까지의 거리가 저 끝없는 우주세계안에 있는 무명천체까지의 거리만큼이나 되는것처럼 생각되여 소스라쳐 놀라기까지 하였다.

나는 력사의 반동들에 의해 사랑하는 고향땅이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땅으로 변해버린 바람에 내가 이렇게 만난을 헤쳐가며 조국의 품을 찾아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는것을 새삼스레 다시한번 깨닫게 되였다.

나는 다시 눈을 뜨고 시창구를 통해 창공아래에 드넓게 펼쳐지고있는 조국산천을 부감하였다.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째여져있는 논밭들, 거미줄처럼 사면팔방으로 뻗은 관개수로, 서해안의 잘 정리된 간석지들, 개미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는 성냥갑만 한 크기로 보이는 뜨락또르들, 이 모든것은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나의 입에서는 《저게 이북땅이 맞습니까? 우리가 유럽의 농업국인 단마르크상공을 잘못 통과하는것이 아닙니까?》 하는 뚱딴지같은 질문들이 연방 튀여나왔다.

물론 이것은 정말 몰라서 튀여나온 질문들이 아니였다. 그것은 형용사를 골라쓸줄 모르고 표현력이 약하며 미사려구를 구사할줄 모르는 리우갑식 감탄부의 련발이였다고 해야 할것이다. 안내원들도 그것을 리해하는것 같았다. 하기에 그들은 아무렇지 않다는듯이 《앞으로 현지에 가보시면 명백할것입니다. 그때에 자세히 보십시오.》라고 하면서 가볍게 웃군 하는것이였다.

고도를 낮춘 비행기가 바퀴를 펴고 평양비행장의 활주로를 달렸다. 가슴이 마구 뛰는 속에서 역사건물이 눈에 안겨온 순간 나는 조건반사라도 일어난듯 부지중 눈길을 역사의 시계탑에 던졌다가 얼른 자기 손목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시계탑의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놓았다.

그 시각이 바로 1988년 4월 15일 12시 30분이였다.

비행기의 승강대에 나오니 수많은 군중이 꽃다발을 흔들고 《조국통일》, 《조국통일》 하고 웨치면서 뜨거운 동포애의 정으로 맞이해주었다. 이 사람이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고 이렇게까지 환영해주다니…

나는 그만 감격에 겨워 눈굽이 뜨거워났다.

나는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닦을 경황도 없이 비행장역사건물에 모셔져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와 위대한 장군님의 초상화를 우러르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 만세!》를 웨치고 또 웨치는것으로 군중의 환영에 화답하였다.

남쪽땅에서 그토록 웨치고싶었던 만세를 이 순간에 한껏 터쳐놓으며 비행기승강대에서 내려오니 붉은넥타이를 두른 귀여운 소녀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기내에서도 느꼈던 겨레의 온기를 평양비행장에서 나는 다시한번 함뿍 느꼈다.

나는 사진기의 샤타를 연방 누르고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앞에서 오랜 숙망이 이루어져 마침내 조국의 품에 안기고야만 감격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오늘은 내가 세상에 다시 태여난 날입니다.

미국의 속지인 이남에서 나의 반생은 너무도 허무하게 가버렸습니다.

이남땅에서 나에게 차례진것은 식민지인테리의 설음과 고통뿐이였습니다.

외세에 억눌려 살아야 하고 군부독재에 의하여 인권마저 무참히 짓밟혀야 하며 교단에 서서도 제자들에게 바른말 한마디 해주지 못하는 이남의 기막힌 현실에 나는 언제나 치욕감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남당국자들의 반공선전을 교육자의 량심으로 스스로 음미해보면서 10여년전부터 이북방송을 체계적으로 들어왔으며 <김일성저작선집>을 비롯한 이북출판물들도 많이 탐독하였습니다.

이 과정에 나는 민족의 기상이 약동하고 륭성번영하는 이북의 실상을 알게 되였습니다. 특히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언제나 민중속에 계시면서 근로하는 민중에게 은정깊은 사랑을 베푸시는 소식을 자주 들으면서 나는 민중중심의 위대한 정치를 하시는 장군님의 고결한 풍모와 덕망에 깊이 탄복하게 되였으며 그럴수록 더욱더 북을 동경하게 되였습니다.

더우기 나는 지난해에 위대하신 수령님의 탄생일을 민족의 대경사로 성대하게 경축하는 이북소식을 듣고는 민족의 태양으로 우러러 추앙하는 수령님의 품에 안기고싶은 마음을 더욱 누를길 없었습니다.

나는 올해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을 이북에서 꼭 맞을 결심밑에 지난 3월말에 이남땅을 떠나 오늘 이처럼 공화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습니다.

나는 이 현실이 꿈만 같습니다.》

그날 나는 자기가 한 말의 마지막단락에서 이 현실이 꿈만 같다고 격조높이 토로하였는데 지금도 그때를 회고하면 가슴이 부풀어오른다. 그 까닭은 그날의 감격이 조국의 품에 안기려는 목적이 이루어진데서만 촉발된것이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인생전환을 위한 그 거사가 자기의 계획대로 민족최대의 명절, 어버이수령님의 탄생일인 4월 15일에 성취된데서 촉발된 감격이란데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인생전환의 결심을 내린 순간부터 그 거사가 이루어질 날을 4월 15일로 확고하게 정하고있었다. 물론 오만가지의 제약이 뒤따를 거사를 두고 이런 작정을 한것자체가 몽상같은 일이기는 하였지만 어쨌든 나는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면 나의 의거입북결심은 어떻게 해서 내려지게 된것이고 또한 내가 그 결심실행을 위한 거사의 날을 어떻게 해서 굳이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인 4월 15일로 정하게 되였는가?

나는 내 삶의 교훈을 놓고 이것을 풀이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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